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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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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http://christustraeger.tistory.com/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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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목사, 어용종교
2011/01/21
예전에는 '정치목사'라고 하면 문익환 목사 같은 '좌경화된 빨갱이목사'를 뜻했다.(*1) 내가 기억하는 그 예전이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전반 쯤이었다. 그때 한국교회의 풍경은 어떠했던가.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교계의 거물급 목사들이 조찬기도회에서 '민족의 영도자 전두환 장군'을 위한 축복기도를 남발한 앞뒤로 대다수의 한국교회는 민주화의 물결이 밀려옴에도 불구하고 꿀먹은 벙어리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독재자들의 경제성장구호에 발맞춰 줄기차게 교회의 대형화를 지향해 나갔다.(*2)
한국교회의 당시 발자취는 더할 나위없이 정치적이고, 어용적이었다. 그런데 정치목사라는 딱지는 이들이 아니라, 민주화나 통일운동을 주도하거나 동참한 목사들에게 붙여졌다.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그랬다. 독재자를 위한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목사들은 설교시간에 정교분리원칙에 따라 정치얘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정치얘기를 하지 않았다기 보다 하나를 하더라도 넌지시 에둘러서, 성경구절을 들먹이면서 했다.
독재자를 위한 국가조찬기도회부터가 '위정자에게 복종하라'는 로마서 13장의 권고로 정당화되었다. 하지만 로마서 13장의 권고가 독재자에 부역하는 어용종교 노릇이나 하라는 뜻인가? 갖다 붙인다고 다 '오직 성경으로만'이 되는 게 아니다. 성경의 정신, 계시의 정신, 복음의 정신에 부합할 때 '성경적'이라는 수식어가 합당하게 된다.
기독교의 어용종교화가 영적 타락을 의미한다는 것은 역사가 누차 보여주었다. 고대교회가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로마제국의 어용종교화하면서 초대교회의 영적 건강성을 잃게 되었다. 러시아혁명 전야의 정교회 역시 어용종교화하면서 막장을 치달았다. 독일교회가 히틀러 치하에서 저질렀던 신앙적 일탈 역시 어용종교화한 기독교의 타락상이었다. 과연 이게 로마서 13장의 정신이었는가?
어쨌든 거물급 목사들이 그 실상을 잘 대변한 바 한국교회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간에 부지런히 성경구절을 들먹였기 때문에 '오직 성경으로만' 목회를 하는 듯 보였다. 덕분에 한국교회는 무수한 시민들이, 아니 역사와 겨레가 독재로 말미암아 고통당할 때, 독재자에 대한 예언자적 항거와 비판을 통해 민족과 함께 아픔과 고난을 당하기 보다 독재자의 안락한 비호 아래 독재자를 위한 축복기도와 더불어 급격히 교세를 팽창해 나갈 수 있었다.
정교분리원칙 역시 악용되긴 마찬가지였다. 역사적으로 정교분리원칙은 겉보기로만 둘러대는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루터의 두 왕국론이 표방한 정교분리원리는 루터 자신이 독일농민들의 혁명에 대해 가장 잔인한 태도로 제후들의 무자비한 진압을 독려하는 단초가 되었을 뿐 아니라, 루터교회 안에서 히틀러의 독재에 무기력하게 굴종하는데 빌미를 제공했다. 미국의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진영에서 신봉한 정교분리원리 역시 미국교회가 백인의 기득권에 부역하는 데 핑계거리가 될 뿐이었다.
한국교회는 소위 칼뱅의 후예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 칼뱅은 정교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는 독재자에 저항하라고 가르쳤다. 한국교회가 칼뱅의 얼을 배웠다면 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했어야 할텐데, 미국 근본주의의 허울뿐인 정교분리원리를 답습하고 말았다.(*3)
한국교회 다수의 정치적 행보는 겉과 속이 달랐다. '오직 성경으로' 하는 것 같았으나 결국 드러난 실제동기는 자신들의 성공이었다. 정교분리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교회성장에 도움될 것 없는' 민주화라는 이슈를 귀찮게 입에 올리기 싫은 것이 진짜 속내였다.
한국교회 회중은 목사가 '중립적'이고, '정치적'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정치얘기를 드러나게 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정치적이고 편향적이고 비복음적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한국교회는 실질적으로 한국사회의 극우세력 가운데서도 기둥 노릇을 하고 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여! 부디 슬기롭게 헤아려 보기 바란다. 과연 여기에 대해 '중립'을 지키고 침묵해야 하는가? 그런 중립은 깡패한테 친구나 동료가 얻어맞는 것을 보면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당신은 그 상황에서 이렇게든 저렇게든 결단할 수밖에 없다. 당신은 침묵함으로써 깡패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 사이에서 모종의 결단을 한 것이다!
[덧붙임]
*1. 각종 검색엔진과 포탈에서 '정치목사'라는 낱말을 입력해보면, 요즘은 김성광, 김진홍, 김홍도, 서경석, 이수영, 추부길 목사처럼 반공이데올로기를 성경말씀과 동급으로 놓고 친수구기득권적 발언을 쏟아내는 타입의 목사들을 대중이 '정치목사'라고 인식하게 됐다. 사필귀정 아닌가.
그러나 최근 수구기득권세력의 전략은 다시 한술 더 뜬다. 한상렬 목사의 경우에서 보듯 통일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목사를 '가짜목사', '악질빨갱이'라는 낙인을 찍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익의 정치목사는 그래도 목사지만 좌파목사는 목사도 아니라는 인식을 깔고 있는 중이다.
여기엔 주류언론이 한몫 거들고 있다. 그들은 지만원의 시스템 클럽에서 활동하는 극우성향 누리꾼이 조작한 한상렬 목사의 기도문을 확대재생산했을 뿐이 아니었다. 전주고백교회에서 공개한 한상렬 목사의 모두진술을 보면 주류언론이 한상렬 목사가 하지 않은 발언을 제멋대로 조작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관계에 있어서 한상렬 목사가 북한체재를 찬양한 것도 아니고, '위대하신 김정일 장군님을 흠모합니다' 따위의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국내언론보도는 침소봉대와 단장취의 투성이였다.
다만, 아무리 한상렬 목사의 최선의 의도를 존중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언사를 사용한 것과 선군정치가 평화적이라고 한 부분은 결정적인 말실수였다. 특히 북한군대가 대한민국 영토에 포격을 가해 우리 군인과 시민 가운데 사상자가 발생한 시점에서 선군정치의 평화성이라니, 꼬투리 잡기 딱 좋은 패착이었다.
수구기득권세력은 이런 떡밥을 놓치지 않고 한상렬 목사를 가짜목사로 몰아세우고 있다.
또다시 남북대화를 하는 게 범죄이고 국가반역이 되는 시절이 되었으니 씁쓸한 현실이다.
*2. 나는 이 블로그에서 현재 한국교회는 증오와 희생양만들기를 동력으로 하는 반공이데올로기의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논지를 종종 피력해 왔다. 원래 이번 포스트는 이 문제에 대해 좀더 생각을 풀어보고 싶었다. 글 제목을 매겨놓고 글을 조금 쓰면서 근거를 적시하느라 검색을 해보니 지난 1월7일자로 제3세계 그리스도연구소 김진호 목사가 한겨레21에 "개발시대 고통 흡수해 대형교회를 세우다"라는 제목으로 무척 좋은 글을 쓴 것을 알게 되었다.
글쓴이의 논지는 그동안 피력해 왔던 내 생각과 대체로 궤를 같이 하는데, 한경직과 조용기라는 한국개신교사의 상징적인 두 인물과 반공신앙의 관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논해주었다. 내가 글을 쓰려고 했던 대목과 고스란히 겹치는 내용이어서 이 대목을 굳이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특히 한국교회의 독특한 기도원제도를 건드려준 대목은 나 자신이 이 문제를 좀더 큰 그림으로 그려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사실관계를 미처 확인하지 않은 대목도 눈에 띄긴 하지만 전체논지와 상관없는 옥의 티일 뿐이다.
*3. 요즘 한국교회의 행태를 보면 아예 거추장스러운 정교분리의 명분 따윈 벗어던진 것 같다. 정말 무슨 극우파 신정정치라도 꿈꾸는 것인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현정권이 영원한 줄 아는가? 대체 뒷감당은 어찌들 하려고 그러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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