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이현주 › 장례

이현주 | 2021.03.10 00:29:11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이현주2760.<사랑 아니면 두려움/분도>


67.장례


꿈의 앞부분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뒷부분 몇 장면만 전쟁터 파편처럼 남아 있다. 후배들이 모여 누구 장례를 치른다. 처음 보는 젊은이가 망치로 천장을 부순다. 솜씨가 훌륭하다. 목수들과 어울리며 잔뼈가 굵었고 지금은 전도사로 산골 교회에서 목회한단다. 누가 그에게 어느 학교 출신이냐고 묻자 귓속말로 대답하는데 물은 사람이 큰 소리로 "중학교 졸업이라고?" 하는 바람에 그의 학력이 중학교에서 멈췄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아무가 땅에 떨어져 있는 빵 조각과 인절미 한 덩이를 건네 주자, "이거 우리 집에서 가져온 건데?" 하며 받아먹는다.
장면이 바뀌고 여기는 장례식 현장이다. 아는 얼굴의 후배들이 예복을 갖추고 단상에 앉아 있다. 누구도 아무를 알은체는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자취 없이 몸을 피하는 게 저들에 대한 마지막 예우라는 생각으로 돌아서다가 그래도 온갖 쓰레기들로 지저분한 집 안은 대강 치워 놓고 가야겠다 싶어 겠다 싶어 봉당에 엎질러진 고추장을 손으로 긁어모으는데까 지가 기억에 남아 있는 꿈의 전부다.
꿈이지만 잘했다. 사람들이 알아 주거나 말거나, 누가 왜 이렇게 했는지를 캐어묻지도 않고서, 더러워진 곳을 깨끗이 청소하고 어지러워진 것을 가지런히 정돈하려 한 건 잘한 짓이다. 그래, 그렇게 사는 거다. 그마저 또 다른 하나의 쓰레기로 남겠지만··· 어쩔 건가? 누구도 제 송장까지 치워 놓고서 죽을 순 없는 일이다.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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