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한복음 ›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궁극이 | 2024.01.17 13:47:1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요6:31-37
설교자
김경형목사
참고
궁극교회 주일예배

631-37: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31-34: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하나님께서는 참 생명의 떡을 먹고자 하는 자에게 그 약속을 지키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약속을 확실히 믿는다. 떡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배가 부르다는 것은 만족을 의미한다. 무엇에 만족하게 되면 다른 것은 쳐다보지 않게 된다.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내가 참 떡이다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은 참 떡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의 뜻을 바로 잡으면, 참 생명의 떡을 먹으면 이 사람 속에는 성령님께서 역사를 하기 때문에 기쁘고 즐겁고 마음에 평안이 깃든다. 성령님은 지금도 이 역사를 하고 계시고, 세상 마지막 날까지도 이 역사를 하신다. 그런데 이 역사는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서 믿는 사람인데도 이것을 알지 못한 채 세상부요의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자가 많다. 이런 자에게는 참 만족의 약속이 없다.

 

영적인 것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주림이 없다. 주림이 없다는 말은 궁핍함이 없다는 건데, 사람이 무언가에 궁핍하면 염려 걱정이 되고 힘이 없다. 영적인 면에 주림이 있는 사람은 영적인 면에 만족이 있을 수가 없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며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나갈 때 영원한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되는 것인데, 영적인 면에 만족이 없이 살면 이게 있을 수 없는 거다.

 

참 주님을 찾고자 하는 자는, 참 교회를 찾고자 하는 자는, 참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는 진리생명의 양식이 있는 교회를 찾아가야 한다. 어느 교회이던 주님의 신실한 종이라면 하나님과 자기와의 약속이 들어 있는 말씀을 선포한다. 교회 인도자는 항상 이 면을 생각하고 말씀을 전해야 한다. 세상 육적인 것을 주고, 하나님과의 약속이 없는 삶을 살게 하면 저주요 앙화다.

 

성도는 생명의 말씀을 먹어야 만족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지혜가 생기고, 다스림이 나온다. 이 다스림은 먼저 자기의 마음부터 다스린다.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면 남에게 넘어가게 되어 있고, 자기 집이나 이웃을 다스릴 수 없다. 자기부터 바로 서지 못하면 자기에게 하나님의 약속 이행이 안 된다. 충성봉사가 문제가 아니라 이게 문제다.

 

목사의 입장에서 어떤 성도를 볼 때 저 사람은 저 성격 성질만 고치면 은혜가 들어가고 봄에 새싹이 돋고 자라듯이 빨리 펴지는 게 있을 텐데이런 게 있다. 목사라면 성도들의 이런 면을 빨리 알아차리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이치의 말씀을 줘야 한다. 성도의 입장에서는 목사님으로부터 자기가 바로 설 수 있는 이치의 말씀을 받았으면 이 말씀의 이치대로 자기를 빨리 고치면 자기가 빨리 서게 된다. 우리의 이룰구원은 깨달은 진리이치의 말씀을 현실에서 이치대로 써먹고, 성장이 되고, 주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는 거다. ‘예수 믿고 세상에서 부자 되고하는 신앙에서는 이 약속이 이뤄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신앙으로 나가는 교회는 성령의 열매가 안 열린다. 성령의 열매란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 주님의 성품을 입는 것인데, 기독교 안의 구복주의, 신비주의, 국구주의, 초절주의, 현세주의 등등으로 나가는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신앙이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가 없다. 이런 게 기독교 안의 큰 함정들이다. 장감성 등의 정통교단에 속해 있을지라도 이런 기독교 함정에 속하는 이질적인 신앙노선으로 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기독교 신앙은 간판이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교단이나 교파의 간판을 달고 설교를 했느냐? ‘궁극교회란 궁극적 결과적 최종적으로 내가 효력을 볼 수 있는 것을 교훈하는 교회라는 뜻이다.

 

수십 년 교회에 다녔어도 속 성품이 달라진 게 없다면 뭘 한 거냐? 주님의 말씀에는 약속이 들어 있는 건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이 자기에게 이뤄진 게 있는지? 자기 가정에 이뤄진 게 있는지? ‘여호와 하나님이란 계약대로 이루신다라는 뜻이다. 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기에게 이뤄진 게 없다면 하나님께서 잘못했기 때문인지, 자기가 잘못했기 때문인지를 따져봐라.

 

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지금 예수 믿는 자기는 영적인 면에 주림인지, 물질적인 면에 주림인지? ‘내가 영적인 면에 아는 게 별로 없고 깨달은 게 별로 없으니 이렇게 살면 되겠느냐?’ 하는 걱정을 하는 건지, 물질이 없어서 먹고 사는 것을 걱정을 하는 건지?

 

믿는 사람이 영적인 면에 만족이 되지 못하면 얼마 못 가서 물질적인 것도 못 다스리게 된다. 이런 사람은 모든 삶의 이해타산이 물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물질을 늘리기 위해 적은 돈을 가지고 떼돈을 벌려고 하다가 있는 돈마저도 다 날려버린다. 이건 육의 사람이다. 수 년, 수십 년을 믿었는데도 자기가 지금 어느 면에 주린지를 모르고 있다면 예수 헛 믿은 거다. 헛 믿은 사람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겠느냐? 이런 사람은 늙어 죽도록 믿어도 주님의 약속이 없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사람이 목이 마르면 목이 타고 속에서 불이 난다. 답답하고 죽을 수도 있다. 물을 마시는 것을 영적으로 말을 하면 어떤 사건을 겪는 것을 말하는데, 세상에 속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사람을 영원히 시원하게 해 주지 못한다. 세상은 인간을 영원히 시원하게 해 줄 게 없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만족을 가져다 줄 게 없다. 돈도 사업도 영원히 시원하게 해 주지 못한다.

 

집을 지을 때 낮은 집을 짓는 것보다 높은 집을 짓는 게 더 힘이 들고 위험하다. 그러나 높이 올라간 집 위에서 쳐다보면 멀리까지 볼 수 있다. 그래서 멀리까지 보려면 높이 올라가야 한다. 사람을 볼 때도 사람의 마음을 보는 수준이 높아야 상대를 잘 알 수 있다. 그래야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영접할 사람인지 밀어낼 사람인지 알게 된다. 이렇게 되려면 주님의 마음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불과 가까우면 따뜻해지고, 어름을 만지면 차갑게 만들어졌다. 신앙 면에서도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참 진리, 참 하나님의 본질을 찾고 가까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으로 온전케 된다. 이러면 늘 기쁨이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 믿는 이 실상의 효력을 알고 있느냐? 예수 믿는 그 날부터 하나님의 지혜지식성, 하나님의 신적인 도덕성, 하나님의 신적인 능력성의 사람으로 얼마나 만들어졌느냐? 만들어진 것만큼 자기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거다.

 

세상축복운운하는 교회에는 영인성장이 없다. 영인의 실상화가 없다. 하나님의 속성으로 인격화 성품화 되는 참 자기가 없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믿을 수 있겠느냐? ‘물질축복운운하는 교인은 믿지 말아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보고도 믿지 않는다? 이게 무슨 말이냐? 예수님 앞의 무리들은 예수님의 몸과 신장과 옷을 입은 것 등을 다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게 무엇이냐? 영적인 면이다. 하나님의 거다. 하나님의 것은 예수 당신의 거다. 하나님의 속성이다. 주님의 속성은 만능의 능력이다. 이 속성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나오는 거고, 만드는 거다. 이 속성이 없으면 속빈 강정이다. 아무 능력도, 역사도 나오지 않는다.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이 말씀이 당신의 육신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는 건지, 아니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데도 이걸 보고도 예수님을 안 믿는다는 건지? 후자다. 사람이 말을 할 때 내가 상대의 기준에서 말을 하는 게 있고, 나의 기준에서 말을 하는 게 있고, 제 삼자의 입장에서 이쪽저쪽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말을 하는 게 있다. 상대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내 말을 들으면 내 말을 오해하고 대립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거다.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도 믿지 않았다면 당시의 무리들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뜻을 잘못 안 거다. 그러면 지금의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봐야 바로 본 게 되느냐? 예수님께서 병자나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신 것은 그 껍데기를 보라는 게 아니라 영적인 면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을 보라는 거다. 이렇게 보면 바로 본 거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기의 영적인 면은 못 본 채 내가 병이 들었으니 이 병을 고쳐주십시오라고 한다면 이건 예수님을 바로 본 게 아니다. 오늘날 껍데기만 보고 그게 다인 것처럼 알고 있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아버지께로 밀착시키는 일을 하셨다. 목사들은 이 말씀을 신경 써서 들어야 한다. 아버지의 생각과 내 생각과 다를 수가 있는데, 목사가 자기 생각대로 가르쳤는데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나오면 아버지께서 교인들을 자기에게 주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란 예수님께서 가만히 계시는데 하나님께서 알아서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맞는 일을 하시면 주신다는 거다.

 

예수님의 이 일은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들이 못하는 일이다. 사람을 온전케 하는 일은 하나님만 하시는 일이다. 주님이 이 일을 하셨으니 아버지의 일을 한 거고,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일을 하면 아버지의 일을 하는 거다. 목사가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부자가 되자라고 한다면 이건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말이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목사가 하나님과 사람들의 중간에 서서 사람들을 하나님께 못 가게 하는 거고, 마귀처럼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하는 거다.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람을 주실 때는 내어 쫓으라고 준 거냐? 아버지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자를 주님 밖으로 내어 쫓는다면 주님의 종이겠느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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