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라면 두 봉지

보시니 | 2004.06.14 22:46:28 | 메뉴 건너뛰기 쓰기
내가 6학년 담임을 할 때였어. 그 애는 처음 보았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늘 허름한 차림이었어. 나는 아이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었지. 그 애는 유리창을 하나를 닦아도 최선을 다해 닦았고, 누가 보든 안보든 물걸레를 깨끗이 빨아 책걸상을 닦았어. 비오는 날이면 찢어진 우산으로 친구를 바래다주었고, 수업시간엔 눈을 반짝이며 들었어.
주눅이 들만 한데도 당당하고 따뜻했어. 그는 보석처럼 빛나기 시작했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6년 만에 처음으로 반장 후보가 된 거야. 62표 중 53표를 얻어 반장이 되었어. 그의 순수함은 주변 친구들을 순수하게 만들었지. 또한 전교 학생회장이 되었어.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그의 변화를 못 믿겠다는 듯이 바라봤지.
졸업할 때 그 애는 전체 수석을 했어. 졸업식을 마치고 그 학생의 부모님이 나를 찾아오셨지. 6년 동안 학교에 와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래. 그분들이 내게 인사했어. "선생님, 인사할 줄도 모릅니다. 고맙습니다, 그저 고맙습니다 선생님. 부끄럽지만 저희들의 작은 정성입니다." 그분들은 허름한 포장지에 싼 선물을 주고 가셨어.
난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지. 텅 빈 교실에 앉아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펼쳤어. 포장지 안에 들어있던 선물, 그것은 라면 두 봉지였어. 주르륵, 눈에서 눈물이 흘렀지. 난 가난을 알아, 그리고 그 가난 속에서도 사랑은 꽃 핀다는 사실도 알고. 그것은 내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값진 선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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