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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약2:1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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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http://je333.com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한 사람이 지나가다 보고하는 말이 "왜 변변치 못하게 행동해서 거기 빠졌는가?"하고 꾸짖기만 하고 지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유교는 윤리적으로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 잘못을 전제적으로 경책만 합니다.
또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하는 말이 이편으로 나무 가지를 붙잡고 저편으로 돌뿌리를 딛고, 올라오라고 다만 동정의 뜻을 표하며 나오는 방법을 말해 주었습니다. 불교는 자비의 종교입니다. 자력으로 구원 얻는 지식을 제시하여 줄 뿐입니다. 그러나 자기 노력이나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책망하거나, 물에서 나오는 지식을 전할 여지가 없으므로 자기 자신이 물 속에 들어가서 죽어 가는 자를 끌고 나와서 상처를 치료해 주고 새 옷을 입히고 그 사람의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공자나 석가처럼 이론만을 가르치지 않고 죄인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구속하여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데려다 주십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뿐 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4:1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
어떤 종교이든 사랑과 자비를 말로만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익(無益)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13: 1)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은 언제나 약속하시고 또 실천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약속만 하는 하나님이던지, 혹은 실천만 하시는 하나님이던지, 양자 가운데 하나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언제나 약속과 실천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16세 때 유기 상점의 점원을 하면서도 「소학」, 「맹자」, 「고문진보」 등을 탐독하여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푼푼이 모은 돈으로 독립하여 유기 상점을 경영하다가 시골 마을로 이사하여 승천제라는 학교를 세우고 동네 소년들을 모아 가르쳤습니다. 그 후 평양에서 안창호 선생의 강연에 감동을 받은 그는 청년 교육만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때 이승훈은 안창호의 손을 잡고 "참으로 옳은 말씀이오. 사람이란 옳은 말을 들으면 곧 행하는 것이 제일이오. 나는 곧 행하기를 맹세하는 의미로 머리를 깎겠소."
조국의 독립을 앞당기는 길은 국민을 깨우치는 것이라고 생각한 선생은 정주 향교의 삼백 석 토지를 팔아 오산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건실한 청소년들을 모아 민족정신을 일깨워 조국 독립의 동량들을 길러 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일이라도 그것이 옳은 일이면 반드시 실천하는 습관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은 공허한 구호일 뿐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말을 앞세우기 보다는 몸소 실천에 옮기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합니다.
"나는 난폭운전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이고도 쏜살같이 달리는 총알택시가 있습니다.
"이 차량은 무자료 주류를 운반하지 안습니다"라고 하면서 뒷거래하는 차량을 보게 된다면? 이것은 슬로건과 삶이 전혀 모순된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이 사회는 '정답의 위기'가 아닌 '실천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 아무 젊은이나 붙들고 물어 보십시오. 이 사회가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정답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회가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슬로건이 삶으로 실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언행일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해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7:24)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
스코틀랜드의 호수에서 작은 배로 승객을 실어나르는 한 늙은 선원이 있었습니다.그 노인의 한쪽 노에는 `믿음',다른 쪽 노에는 `실천'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한 승객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노인에게 물었습니다.그러자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자 한번 보십시오. 노인은 `믿음'이라는 노를 힘차게 저었습니다.배는 원을 그리며 제 자리에서 맴돌았습니다.이번에는 `실천'이라는 노를 저었습니다.역시 배는 반대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맴돌 뿐이었습니다.이번에는 두 개의 노를 함께 저었습니다.배는 물살을 가르며 쏜살같이 앞으로 전진했습니다.노인은 승객을 향해 잔잔한 미소를 보냈습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믿음 없는 행위'와 `행위 없는 믿음'은 모두 제 자리를 맴도는 배와 같습니다.신앙은 반드시 믿음과 실천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믿음의 실천입니다.행함이 없는 믿음은 언어의 유희일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껏 미루어 오던 작은 일이라도 실천에 옮겨 봅시다. 우리 모두는 말뿐이 아니라 행위로 나타나는 참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신 주님,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마음속으로만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도록 도와주소서.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뻐하거나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게 하소서. 말씀을 신뢰하고 지키려는 굳은 결심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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