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출애굽기 › 물이 달아졌더라

조용기 목사 | 2008.10.22 20:17:33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출15:22-25
설교자
조용기 목사
참고
2003년 7월 27일 주일2부설교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물이 달아졌더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2절~25절의 말씀을 보면은 놀라운 장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방금 창일한 홍해수를 하나님의 기적으로 건너서 의기충천하고 영광으로 넘치는 행진을 계속했는데 그런 영광이 계속할줄로 알았는데 황야로 들어와서 사흘길을 걸어가는데 물이 없습니다. 밤에는 춥고,낮에는 작열하는 태양빛 밑에 목이 탈대로 탔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닌 사흘동안 물 한모금 마셔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체험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오직 마음속에 좌절과 절망과 원망과 탄식만 꽉 들어찼습니다.모세여 우리에게 물을달라!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와서 목말라 죽이게 하느냐? 탄식과 원망이 사뭇쳤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물이 있다고 고함을 쳐서 뛰어가보니 연못이 있는데,사람들 마다 철벙철벙들어가서 물을 마시고는 나와서 배를 안고 뒹굽니다. 물이 독이 있습니다. 쓴물입니다. 토하고 그 물을 마신자마다 고통을 당했습니다. 마실수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원망은 하늘에 사뭇쳤습니다. 모세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즉 하나님이 응답하시되 바로 물가에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나뭇가지를 꺾어 물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만세전에 이 사실을 아시고, 그 쓴 연못곁에 나무가 자라게했습니다. 이 나무는 쓴 물은 달게하는 놀라운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를 꺽어서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해독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다시 생기가 오르고 용기충천하고 소망이 가득차게 된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큽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끊임없는 죄악의 쓴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1. 죄악의 쓴물

첫째로, 우리의 마음속에 넘치는 이 죄악의 쓴물이 어디서 나온 것이 겠습니까? 아담의 타락이후 인류의 영혼속에 죄악의 쓴 물이 가득하게 되고, 계속해서 이 쓴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한것입니다. 이 죄악의 쓴물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하고 우리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버림받은 존재가 되게 만들어준것입니다.
이사야 59장 2절"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라고 한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아도 찾을수가 없습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하나님 얼굴을 가리워 놓고 마는것입니다.
12절에 보면 “대저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거한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죄의 쓴물은 우리의 마음속에 솟아오르고, 이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4절에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죄 때문에 수고롭고 괴로워하고 계신것입니다. 이 죄악의 쓴물이 마음속에 솟아오르고 이 죄악의 쓴물에는 사망의 독이 가득합니다. 이 죄악의 쓴물을 우리가 늘 마시면 마음속에 사망의 독 때문에 평안을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3-18절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을 저버리고 가슴속에 죄의 연못을 가지고 있는 인생들의 실상을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것입니다. 이 죄의 쓴물은 인간의 힘으로 달게 할 수 없습니다. 수양과 도덕으로 쓴물을 달게 할 수가 없습니다. 고행을 했어도 이 쓴물은 달아지지 않고, 어떤 종교를 믿어도 이 쓴물은 달아지지 않습니다.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모시면 죄악의 쓴물이 단물, 즉 용서와 의와 영광의 면류관으로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갈보리 산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그 십자가의 나무가 바로 모세가 쓴 연못에 던진 상징적인 그 나무인것입니다. 갈보리 산 십자가 피로 얼룩진 그 나무를 우리의 가슴속에 품을 때 죄악의 쓴 연못물이 달아질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15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높이 달려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속죄한 그 십자가 나무를 우리가 끌어 않을 때 우리에게는 놀라운 은총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것입니다. 죄의 쓴물을 가슴속에 갖고 고통과 절망의 처하여 여러번 자살을 기도한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고, 심리학자에게 가서 치료도 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이 왜 그 부인이 계속해서 자살을 기도하는가 그 이유를 물은즉, 그 영혼속에 씻을수 없는 죄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홀로된 어머니의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그 딸을 잘 키워서 훌륭하게 자라게 하고 시집을 보냈습니다. 남편은 세일즈맨으로서 돈을 잘 벌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항상 출장을 가고 이 부인은 어머니를 모시기 때문에 출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집에 있었는데, 한번은 남편이 멀리 출장을 가는데 그 어머니가 자꾸 말합니다. “ 얘야 따라가라 따라가라. 나는 혼자서 집에 있으면 된다. 따라가라, 걱정하지 마라.” 그래서 남편을 따라 출장을 갔는데 갔다가 돌아와서 문을 열어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창을 따고 들어가 보니까 어머니는 홀로 죽으셨습니다. 싸늘한 시체가 되었습니다. 그 죽을 시체를 안고 딸은 몸부림치면서 울었습니다. “ 내가 어머니를 죽였다.어머니를 두고서 남편을 따라 출장을 가 있을동안에 어머니가 몸이 아파 병들어도 도와줄사람 없이 죽고 말았으니, 내가 어머니를 죽인 것이다 ” 그래서 어머니늘 장례식을 한다음에 그 죄책으로 말미암아 몸부림치고 견딜수가 없어서 그는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인 고통가운데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 자매님. 자매님의 병은 약으로 심리학자의 카운슬링으로 치료받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천년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치료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당신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것입니다. 당신이 어머니를 돌보지 못해서 어머니가 홀로 돌아가게 하신 그 죄를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벌을 받았습니다. 지금 당신이 당신을 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벌을 받고,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었으니. 이제는 그 십자가를 끌어안고 당신도 당신죄를 용서해주십시오. 하나님이 용서해 준 것을 당신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면 하나님에 대한 불충한일이므로 십자가를 끌어안으십시오.” 그래서 이 자매님은 울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끌어않고 “주님, 나 때문에 나의 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흘려 죽으셨나이까? 주께서 날 대신 벌을 받으셨습니다. 내가 벌을 받는 것은 잊을수 없지 않습니까? 나를 용서했으니 주님, 저도 저를 용서합니다.” 라고 기도한 결과 희한하게 그 마음속에 죄책이 다 사라지고 용서와 의와 영광이 단물로 변화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이후로 명량하고 쾌활해지고 남편을 잘 받들고 자녀들을 돌보는 훌륭한 아내와 자녀들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죄의 쓴물을 달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종교도 할수 없습니다. 아무리 여러분 수양을 닦고 도덕을 닦아도 쓴물은 달아지지 않습니다. 쓴물에는 나무를 던져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몸찢고 피흘려 대속한 그 피묻은 나무를 끌어 않을 때 마음속의 쓴물은 용서와 의와 영광으로 달아지게 되는것입니다.

2. 미움과 분노의 쓴물

둘째로, 사람들은 마음속에 태어난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미움과 분노의 쓴 연못물을 품고 그 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사망의 독중에 미움과 분노가 있습니다. 미움과 분노는 자기를 파괴하고 남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담, 하와 이후로 타락한 그 연고로 미움과 분노의 쓴물이 마음속에 있어 항상 그 미움과 분노의 쓴물을 토해내고, 그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미움과 분노의 쓴 물 때문에 자기를 파괴되고, 남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잠언 27장 4절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잠언 14장 29절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분노는 인생을 파괴하는 병적인 요소란 것을 영국의 유명한 해부학자인 존 헌튼씨가 말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분을 내는 자는 자살하는 사람이다. 분과 노는 남을 괴롭히기 전에 자기를 죽인다고 그는 늘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는 해부학회의에 참석했다가 다른 의사가 존헌튼박사를 비평하고 비난하매, 그가 분노해서 일어나서 저항하다가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가 걸려서 죽었습니다. 자기는 분을 내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말했었으나 스스로는 분을 품다가 심장마비로 죽고 만 것입니다. 미움과 분노는 이와 같은 치명적인 파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린 역사를 통해서볼 때 공산주의는 있는자와 없는자간에 미움과 분노를 충동하여일으킨 폭력적인 혁명을 가지고 세운 정치 단체입니다. 그 미움의 결과로 권력을 잡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파멸시켰습니까. 소련의 스탈린은 2000만명을 죽였습니다. 대대적인 숙청을 통해서 반혁명적 재판을 통해서 기아 등으로 2000만명을 죽었습니다. 있는자와 없는 자간의 일으킨 분노와 미움을 통해서 세운 정권이 결국 가져온 것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모택동은 정치 혁명, 경제실책, 대기근으로 자기 동족 5000만명을 죽였습니다. 공산화 한다고 그 미움의 정책을 통해서 5000만명이 죽었습니다.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6.25 남침으로 총1500만명이 넘은 인명의 피해를 내고 북한의 지난 10년동안 300만명이 기아로 숨졌으며, 오늘날도 4~500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고, 탈북난민, 정치적인 박해, 기독교 탄압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미움이란 것이 결국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입니다. 미움의 입각한 정치 공산주의는 결국 지상에서 사라졌고, 지금도 사라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라고 말합니다. 미움은 살인을 가져오는데 마귀는 처음부터 미움과 살인의 원인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오사카 이과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개 한 마리를 4시간동안 결박하여 화를 내게 만든후에 잡아서 그 내장을 검사해 보니까 이 내장속에서 독소가 다량 검출 됐는데, 그것으로 개 80마리는 능히 죽일수 있었다고 합니다. 미움과 분노는 생명을 죽이는 독극물을 뇌속에서 산출해내었습니다. 개 한 마리의 머리 속에서 분노를 통해서 생긴 독소는 80마리의 다른 개에 주사하면 죽일만한 양이 생기는데, 여러분 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키면, 그게 얼마나 무서운 독이겠습니까? 어떤 부인이 남편하고 심히 다툰 후에 어린아이가 우니까 어린아이가 젖꼭지를 물린 결과 그 어린아이는 젖을 먹다가 직사하고 말았습니다. 미움과 분노는 우리속에 무시무시한 파괴적인 독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미움과 분노를 덮을 수 있는 것은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미움을 십자가에서 극복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원수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놓고, 머리를 흔들며 욕을 했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짓는자여,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그리하면 믿겠노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 도다. 온갖 조롱을하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미워해야만 마땅할것인데. 미움과 분노를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극복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새" 주님의 그 놀라운 능력이 십자가에서 미움과 분노를 다 사라지게 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스데반 집사도 미움을 극복했습니다. 사람들이 스데반을 잡아서 동네 밖으로 끌고 나가 그를 돌로서 쳐 죽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 59절-60절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아니하고,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용서와 복을 빌고 죽을수 있는 것은 그 마음속에 놀라운 치료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증거인것입니다. 마음의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옵니다. 마음의 치료받지 못했는데 밖으로 용서와 복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마음의 가득한 것으로 입으로 나오는데, 아무리 예수 잘 믿는다고 해도 그 입에서 분노와 시기와 질투와 욕이 나오면 그 마음에 아직 쓴 물을 가지고 있어요, 쓴물이 달아지지 않은 것입니다. 쓴물이 달아졌으면, 그 입으로 나오는 말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쓴물을 어떻게 달게 합니까? 십자가를 가슴에 품을때에 미움과 분노의 쓴물이 사라지게 됩니다. 즉 사랑과 화해의 단물인것입니다. 십자가가 들어와서 쓴물을 달게 만들어주어야 되겠지만. 우리의 힘으로 달게 안 돼요. 십자가 십자가. 그 십자가를 끌어 않고 울어야 됩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라고 말씀하였는데, 그것이 사람의 힘으로 어디 됩니까?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엘림성전 김용문 집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니까 남편이 도박에 빠져있고, 늘 술에 취해서 생활을 돌보지 않아 부인이 행상을 하면서 연명하다가 18년 전 앉았다가 장사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몸이 홱 돌아가더니만 골반이 삐뚤어져서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골반뼈가 옆으로 손바닥만큼 튀어나왔습니다. 일어나니까 왼쪽다리가 끌려서 발을 절게 되었습니다. 다리를 끌면서 머리에 바구니를 일고 장사를 하니까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육신도 고통이 심했지만, 남편에 대한 원한과 미움으로 눈물속에 살다가 그 미움과 분노 때문에 심신이 병들어 버렸습니다. 그런 삶을 18년동안 살다가 견디다 못해서 나도 교회에 나가야 되겠다 생각하고 수소문해서 우리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중에 남편에 대한 모든 원한을 예수님 십자가 밑에서 다 회개하고 용서하고 미움을 청산하니 병들었던 속사람이 시원해지고 그동안의 소화가 되지 않고 신물이 늘 가슴속에서 솟구쳐 올라서 속앓이 많던 것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성령받고, 은혜받고, 기뻐하며 신앙생활하는중에 하루는 잠을 자고 일어나니. 18년간 튀어나왔던 골반뼈가 싹 들어가 버리고 다리도 깨끗하게 나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미움과 원한과 분노가 그 영혼을 병들게 하고 그 위장을 병들게 하고 속앓이를 가져오고, 골반뼈가 튀어나오게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끌어않고 그 남편을 용서하고 미움과 분노를 삭이고, 사랑하자 마음도 몸도 고침을 받게 된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쓴 연못물을 달게할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끌어않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성자도 아닙니다. 위대한 인물들도 아닙니다. 우린 보통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쓴 연못물을 우리의 수양과 도덕과 노력과 결심으로는 달게 만들수가 없습니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변화 안되는데 생활이 변화될 턱이 있어요? 지킬만한것보다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했는데 마음의 쓴물이 솟아오르는데 어떻게 바깥으로 의롭고 거룩하게살며 평안과 기쁨으로살수 있겠습니까? 마음은 나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고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3. 불안과 공포의 쓴물

셋째로, 불안과 공포의 쓴물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범죄하고 난 이후로 가지고 있는 것은 마음의 불안과 공포의 쓴물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숨었을 때 처음으로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었을 때 두려움 없이 지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하고 난 다음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창세기 3장 8-10절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범죄하고 난 다음에 비로서 하나님을 피하여 숨고 두려워했던것입니다. 오늘 인간의 삶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또 자연 환경의 변화등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그 결과 마음속의 끊임 없는 불안과 공포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사회는 IMF 때보다 더 어려운 경제적인 손실로 우린 매일같이 불안하고 내일을 두려워합니다. 북한의 핵 문제로 말미암아 언제 한국의 무서운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그러한 불안이 우리의 잠재의식속에 깔려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한계가 있으므로, 별수 없이 자기 힘으로 해결할없는 문제에 부딪히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존재적인 불안과 공포의 쓴물을 가슴에 품고있습니다. 태어날때부터 가슴속에 불안과 공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가 태어날때부터 울며 태어나지 웃으면서 태어나는 어린 아이 봤습니까? 태어날 때 웃고 태어나는 아기 없습니다. 모두 울면서 태어납니다. 벌써 존재적으로 그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욥기 3장 25절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은 그렇게 잘 살지만 항상 불안하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죽은 미국의 청년의 수가 30만명인데, 그런데 그 아들과 남편을 전쟁터에 내보내구 염려 불안 공포 때문에 심장마비로 죽은 미국 시민은 백만명이 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불안과 공포는 살인자입니다. 전쟁에 나가 총에 맞아 죽은 군인수보다 그들을 보낸 가족들이 염려과 불안으로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이 세배나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염려와 불안을 평범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염려와 불안은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무시무시한 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염려와 불안의 쓴 연못물을 우리가 무엇으로 달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품으면 불안과 공포의 쓴물이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고 평안과 확신으로 달아지는 것입니다. 십자가 밖에 없어요. 왜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비로서 정말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인것입니다. 불안과 공포는 사랑으로서 치료할수 있습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감싸준다고 깨닫게 되고 믿을 때 불안과 공포는 사라집니다. 어린 아이다 두려워서 울다가도 부모품에 안기면 울지 않잖아요, 어린 아이들 데라고 나가보십시오. 개가 달라들면 얼마나 고함을 치고 놀랩니까? 어머니가 품으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개보다 강하다고 어린아이는 믿고 있기 때문인것입니다, 오늘날 미군이 철수한다고 하니까 우리들이 전부다 미군이 철수하지 말라고 하지 않했습니까? 우리의 현재의 병력으로선 우리를 지킬수가 없습니다. 누구나 북한이 원자탄을 가지고 있는 이 마당에 완전히 전력이 기울여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불안하고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고 미군이 우리뒤에 있으면 우리는 그 품에 기대어서 마음의 안심을 할 수가 있습니다. 강한자가 붙들어주면 약한자가 마음의 평안을 가질수가 있는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강한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강한자 이지만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갑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보혈을 의지해서 하나님 품에 안길수 있으므로, 십자가를 끌어 안으면 불안과 공포의 물이 달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말한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품에 안으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가슴에 품어야 선택을 받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안계시면, 불안하고 공포에 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끌어 안으면 우린 택한 족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서 생명아래서 왕 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9-10절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
십자가를 통하여 불안과 공포를 다스리는 왕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은 불안과 공포의 종이 되었으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난 다음 우리로 하여금 불안과 공포를 할 수 있는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여 주신것입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다스립니다. 요한일서 4장 4절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하나님이 우리속에 같이 계시므로 세상에서 다가오는 불안과 공포보다 위대한 하나님이 계시므로 이길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5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이 친히 챙기시는 소유물이 되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릴 값주고 사셨으므로, 하나님이 친히 챙기시는 소유물이 됩니다. 얼마나 값비싼 댓가로 우리를 사지 않았습니까?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몸찢고 피흘려 우리를 값주고 사시니 댓가가 얼마나 큽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 품안에 안길수가 있습니다. 우리 다 같이 시편 91편 1-7절을 읽으십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그러니 마음속에 평안과 안심을 가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이외에는 우리 마음속에 이 불안과 공포의 쓴물을 평안과 확신으로 달게 할 아무런 힘도 없는 것입니다.

4. 좌절과 절망의 쓴물

넷째로, 우리는 태어나자 마자 마음속에 좌절과 절망의 쓴 연못물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좌절과 쓴 연못물을 마시고 우리 마음속에 항상 좌절하고 항상 낙심하고 정말합니다.아담이 에덴을 쫒겨났을 때 느낀 좌절과 절망을 생각해보십시오. 에덴동산에 있을때는 좌절과 절망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쫒겨났기 때문에 좌절과 정말을 느낀것입니다. 창세기 3장 16-19절을 우리 다 같이 읽어보십시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얼마나 암담하고 절망적인 선언입니까? 인류의 문학작품가운데 이 구절만큼 암담하고 절망에 처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심판하신 심판이신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은 이땅에 태어날때부터 벌써 버림받은 자식들이요 길잃은 자식들이요, 저주 받은 자식들이요, 고통을 걸머지고 가야 할 자식들로 태어나기 때문에, 인간의 앞길에 좌절과 절망의 쓴물이 항상 솟구쳐 오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땅이 저주를 받았지요, 가는 곳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죠, 부부간에 갈등과 시련이 있을 것은 예언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다스리고, 아내는 남편의 지배를 받고,고통과 괴로움을 당할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몸은 병들고 죽을것이라고 말하고, 가족간의 미움과 살인이 있어 가인이 아벨을 쳐죽이죠, 이 쓴물은 자손대대로 유전시켰습니다. 인간은 존재적으로 절망적입니다. 절망적인 죄인이요, 절망적인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가 없고 죽음의 절망에 부딫쳐서 좌절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절망과 좌절의 쓴물을 가슴에 품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일보 7월 1일자 기사를 보니까 요즘 너무 쉽게 생명을 버리는 자살이 많은데 생활고, 성적하락,우울증,가정폭력등으로 자살했습니다. 작년에 자살한 수만 해도 13055명입니다. 그중에 생활고로 자살한 사람이 968건이요, 지난 10일 경북 포항시에 32세된 한 주부는 남편이 시어머니 살림솜씨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자주 야단을 맞자, 갓돌이 지난 아들과 세 살배기 아들은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메어 숨졌습니다. 주부의 유서에는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당신은 집에만 들어오면 고함을 치니 시어머니 빈자리를 채우기에 너무 부족한 사람 먼저갑니다.’ 라고 하고 자살했습니다. 사람은 좌절하면 자살합니다. 어떤 17살 고등학생은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자살했다고 어제 신문에 나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택시 기사하며, 세탁을 하면서 자기를 돌보아 주는데 자기 성적이 안올라가는데 어머니가 꾸짖으니까 어머니의 그 말 한마디에 좌절해서 그만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심한 충격을 받으면, 자살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꾸짖는 것, 남을 헐뜯는 것, 남을 흉보는 것은 굉장한 좌절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가족들간에 흉보지 마십시오. 남편은 아내를 , 남편은 아내를 흉보지 마십시오. 부모는 자식을 칭친하는 것이 흉보는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좌절을 하고 절망을 가져오면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음식이 없이는 40일밖에 살수 없고, 물이 없이는 8일밖에 살수가 없고 공기 없이는 4분밖에 살수 없지만, 희망이 없이는 단 몇초도 살지 못합니다. 희망이 없이는 그 자리에서 벌써 죽은 것입니다. 이 절망을 어떻게 처리할 수가 있습니까? 절망을 이기신 분을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 죽으심을 절망으로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땅위에 오셔서 이 세상사람들 구원할려고 하나 세상 사람들이 도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고난 당할때에 주님이 얼마나 절망하셨던지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는 몸부림 쳤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죽음을 극복하고 삼일만에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는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3-4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라고 말한것입니다. 주님의 죽음이란 가장 처절한 정말을 짊어지고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사흘만에 사망과 음부를 극복하시고 부활하시므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영원한 희망의 등불이 되어 주신것입니다. 독인의 유명한 신학자인 위르게 몰트만 박사가 저와 함께 여의도에 있는 63빌딩에서 신학토론을 하게 되었을 때 그가 내게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자기가 희망의 신학을 주창하게된 계기는, 그가 17세 때 2차대전때 독일의 군인으로 징집되어서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어서 영국에 포로 수용소에 있게 되었는데, 포로 수용소에서 당한 좌절과 모욕과 고통에서 절망했는데 소식을 들으니까 자기가 태어난 함부르크가 완전히 폭격으로 다 망해버리고 가족들이 폭격을 당해 다 죽었다는 말을. 그는 절망했습니다. 이제는 나라도 망하고 자기가 태어난 도시도 다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형제들이 다 죽고, 자기는 포로수용소에서 날마다 버림받은 인생으로 멸시와 모욕을 당하고 살필요 있겠는가 목을 메어 자살해야되겠다. 죽을려고 하는 그 순간에 목사님의 성경책 한권을 갔다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 성경을 읽는중에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왔는데, 세상이 하나님의 아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선을 베푸는데 선을 받은자, 치료받은자, 은혜를 입은 자들이 일어나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몰아쳐서 제자들도 다 도망쳐 버리고 가장 외롭고 쳐절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장면을보고 자기의 절망과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얼마나 정말합니까? 누구나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는데 사흘만에 그리스도가 사망과 음부를 이기고 부활한 그 장면이 몰트만 박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어둡고 캄캄한 절망에서 부활의 광명한 승리를 가지고 일어나는 예수를 볼 때 나에게도 부활이 있을수가 있구나, 나의 가슴속에 그리스도를 모시면 이 절망에서 부활이 일어나고, 그 파멸된 우리 독일이 다시 부활할 수 있고 함부르크가 부활할 수가 있고, 나의 잃어버린 가족이 다시 나를 통하여 새로운 부활의 생명을 얻어 나도 가족을 이룰 수 있겠구나! 가장 어둡고 캄캄한 절망의 그리스도만이 부활을 갔다줄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프로수용소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그 어둡고 캄캄한 절망에 광명한 빛으로 변화되고 그는 저보고 하는 말이 이제 지옥이란 예수믿는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지옥의 구석구석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광명한 불빛이 비쳐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어두움은 없습니다. 여러분 희망,이 희망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었다가 부활하심을 통해서 희망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좌절과 절망의 가슴속에 십자가를 끌어 안으면 사망과 음부도 다 물러가고 부활과 영광이 비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한 모든 좌절과 절망의 쓴물을 완전히 달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3-39절 우리 다같이 소리내어 읽으십시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러니 얼마나 희망이 넘칩니까? 너무나 끈질긴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 마음을 점령했으니, 마음의 좌절과 절망은 다 사라지고 쓴 물은 달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 있으면 가슴의 물이 달아지고 변화받게 만들어 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의 쓴 물을 달게 합니다. 사흘동안 길을 걸어가며 자기는 태양빛 밑에서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갈증에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이 쓴 연못물을 먹어봐서 좌절하고 절망했으나 나뭇가지를 던져 놓으니 달아졌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문제는 해결됩니다.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갈보리 십자가 그 능력의 힘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품으십시오. 십자가를 가슴에 안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십자가 속에서는 여러분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태어날때부터 울면서 태어나서 마음속에 쓴물을 마시며 좌절과 고통가운데 평생을 살다가 죽게 됩니다.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없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겸허하게 주님앞에 나와서 십자가를 끌어 안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 쓴물이 달아지고 마음의 변화를 받고, 그 역사를 통해서 생활이 변화받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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