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시편 › 요동하지 않는 신앙

복음 | 2007.11.11 06:22:1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시125:1-5
설교자
한태완 목사
참고
http://je333.com
19세기의 영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2차 세계대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때의 영국의 정신적 상황에 대해 토머스 칼라일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영국인이 손대는 곳은 모두가 황금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증거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의 영국은 유물론이 발흥, 자본주의의 발달에 힘입어 엄청난 부의 축적을 성취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자랑하던 성서는 물질의 기세에 눌려버렸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영국의 태양은 서서히 빛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셰익스피어 전집을 쓴 것은 영국인이지만 영국인을 만들어낸 것은 성경이다’라는 이야기는 하나의 전설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정권이나 나라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역사에 수없이 명멸했던 국가와 민족들의 흥망성쇠가 이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공평을 실현하는 사람은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요동치 않게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편 팔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섭리하고 계시는 영원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시15:5)

우리는 돈이나 권력이나 사람을 의지하지 맙시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때 요동치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너무 남편, 아내, 자식, 부모를 믿지 마세요. 믿은 만큼 실망할 것입니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신뢰의 대상입니다.
옛날 중세기에 수도사들이 늘 강조했던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만 신뢰할 대상은 아니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가져야 할 생각은 끊임 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신뢰할 대상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인간은 보편적으로 은혜를 모르고 배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 있는 신뢰의 대상입니다.

다윗은 시편 62: 1- 6절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라고 합니다. 아들, 신하, 나라가 배신합니다. 그렇게 믿었던 대상들이 자기를 배신할 때에 너무 기가 막힙니다. 신뢰할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왜 상처를 받습니까? 왜 시험에 듭니까? 성도 여러분, 사람은 신뢰할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떡하나 주면 안잡아 먹지..." 호랑이는 이 말로 불쌍한 떡장사 어머니를 속이고 떡과 함께 어머니를 잡아 먹었습니다. 욕심이 생긴 호랑이는 집에 남겨진 어린 남매도 잡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후 언덕을 넘어 남매의 집으로 접근했습니다. 날카로운 호랑이의 이빨에 사랑하는 어머니가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남매는 필사적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어린 남매의 실력으로는 호랑이의 위협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절망이었습니다. 이제 어머니를 따라 죽는 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때 하늘 어디선가 동앗줄이 내려왔습니다. 남매는 있는 힘을 다해 이 줄에 매달렸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은 어린 남매를 매어 달고 어머니가 계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를 본 호랑이는 먹이를 놓친 것을 억울해 하며 안타까와했습니다. 이때, 호랑이에게도 하늘 어디선가 줄이 내려왔습니다. 호랑이도 올다꾸나 하고 얼른 줄을 잡았습니다. 줄은 호랑이를 매어단 채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만큼 올라가던 줄은 갑자기 툭 끊어져 버렸습니다. 호랑이를 매단 줄은 썩은 줄이었기 때문입니다. 썩은 줄을 붙잡은 호랑이는 그 줄과 함께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다윗의 시편을 묵상하면 마치 다윗이 동앗줄에 매달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는 정말이지 죽음의 직전까지 갔습니다. 이미 왕으로 세움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나긴 세월을 도망 다녀야 하는 신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러운 것은, 다윗이 그렇게도 힘든 삶의 여정 속에서 여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편 62:1,2)
다윗이 역경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튼튼한 동앗줄, 움직이지 않는 동앗줄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튼튼한 동앗줄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은 그저 사랑의 대상일 뿐이지, 의지의 대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일찍이 이 사실을 깨닫고 다만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도울 힘이 없는 사람들을 의지하거나, 사람들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재물" 역시 움직이지 않는 줄이 되지 못합니다. 재물은 영원히 있을 수도 없고, 영원히 없을 수도 없습니다.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게되는 것이 재물입니다. 재물은 하나님께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지 의지하라고 주신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사용할 재물이 없으면 불편할 뿐이지 불행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재물이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은 불행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재물이 없이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명예"도 움직이지 않는 튼튼한 줄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높아진 사람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먼지에 불과하다고 다윗이 노래한 바 있습니다. 사람들은 별 것 아닌 지위를 취하고서도 자랑하며 우쭐합니다. 동시에 별 것 아닌 지위가 없기 때문에 위축되고 작아집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튼튼한 동앗줄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화목하게 하신다고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있으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재물을 주신 하나님만이 튼튼한 동앗줄입니다.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붙잡는 길입니다. 재물은 마치 이미 타서 재가 되어버린 줄과 같습니다. 잡으려해도 잡아지지 않고, 잡고보면 재와 같습니다.
명예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시 75:6,7)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위로 올라가려고 애를 쓸수록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히려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 들어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감옥의 죄수에서 애굽의 재상이 되었던 요셉과 같이 말입니다.
움직이지 않은 것을 붙잡으면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썩지 아니할 줄을 붙잡으십시오. 아무리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을 하고 있다해도 하늘에 맞닿아 있지 않은 줄은 붙잡지 않는 지혜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16:8)

우리는 모두 너나 없는 나그네 인생들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생이 나그네 인생이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은 이 땅을 지나는 순례자요 나그네로 살았던 신앙선배들의 순례의 노래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소제목으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붙여졌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붙여진 시편들은 이스라엘이 외부의 지배를 받았을 때 지어진 시들입니다. 이 시편을 읽어보면 그 정황들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평화롭게 살고 있던 우리 동네에 어느 날 갑자기 전쟁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무자비한 사람들과 전쟁하는 가운데 남자인 아버지, 남편, 아들들은 다 죽어버리고 전쟁에서도 졌습니다. 적군들도 많이 죽었기 때문에, 그들은 수많은 분풀이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버립니다. 이런 배경을 생각하며, 시편 125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여러분, 일제시대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6.25때 공산당이 우리 남한을 거의 다 점령했을 때, 그때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저는 일제시대에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일제시대에 대해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저희 장인 어른은 일제 징용으로 끌려가 강제로 전쟁에 이용당하다가 탈출하셨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재산을 다 빼앗겼습니다. 자유도 없고 인권도 없습니다. 어디를 가도 통제를 받아야 되고, 내 마음대로 말할 자유조차 없어요. 내 나라말을 쓸 권리도 다 빼앗겼습니다. 우리의 전통이 완전히 무시되고, 그들의 언어와 그들이 섬기는 신(神)을 섬겨야 하는 아픔을 상상해 보세요. 매일 매일을 불안 속에서 보내야 했던 암울한 시절! 그들은 그 속에서 얼마나 외로워하며, 불안해하며 요동했겠습니까? 이렇듯 다른 민족에게 지배를 받는 요동하는 사회,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사회, 불안한 사회,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격동의 사회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서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시편 125편은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외국의 지배하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독립국가로서 당당한 위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 이시대 역시 격동과 혼돈의 사회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지는 않지만, 북한의 핵으로 인하여 온 국민이 불안에 휩싸여 있습니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부도덕이 이 사회를 흔들고 있습니까? 사회 전반에 걸쳐서 거의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격동하는 사회 속에서 요동치 않는 신앙의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죄악과 불의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의를 위하여 굳건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을까요?

오늘 읽은 본문에서 몇 가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5절로 된 이 시편은 세 문단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1절에서 3절까지는 '의인의 안전'에 대한 시편기자의 확신입니다. 아무리 사회가 어려워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는 굳건하게 설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4절은 이 의인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간절한 기도문입니다. 5절은 우리가 비록 구원은 받았을지라도 세상의 악을 따라갈 때, 하나님 좇기를 포기하고 세상을 좇아갈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 그 비극의 결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요동치지 않는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1. 하나님을 의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자들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바다는 예측할 수 없는 위험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에 따라서 그 위험은 작아질 수도 있고, 이겨나갈 수도 있습니다. 조그만 배를 타면, 너무 많이 흔들립니다. 멀미가 나고 어지러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항공모함과 같이 큰 배를 타면, 바다가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생각할 때, 배를 믿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배가 크면 클수록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다라는 환경이 두렵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는 길을 유유히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가 작으면, 바다라는 환경의 지배를 확실히 받습니다. 또 즉각적으로 환경의 지배를 느낍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도 가기 힘듭니다. 우리의 믿음이 크면 클수록 바다와 같이 험난한 환경이 이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사회가 흔들리고 불안해질 때, 순례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그 방법을 시편기자는 1절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우리의 사회가 불안해지면 불안해 질수록,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우리는 어떻게 견고하게 살 수 있는가? 하나님을 의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절에 나오는 '의뢰'라는 단어가 가장 중요합니다. '의뢰'라는 단어는 '자신을 완전히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을 완전히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 단어는 장사가 활을 당긴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장사가 팽팽하게 당긴 활에 장전된 화살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이 단어를 여기에 썼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장사가 활을 막 쏘려고 최대한 활시위를 당겨 가지고 막 놓으려고 합니다. 그 활시위에 놓여있는 화살! 그 화살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순간, 그 화살은 활시위와 장사에게 자신의 방향을 100% 의뢰하는 겁니다. 그저 맡겨야 되는 겁니다.
"에이~ 난 그쪽으로 날아가기 싫어!"하면서 화살이 악을 쓴다면 말이 됩니까? 모든 것을 그 줄 위에 맡겨버리는 겁니다. 이제 장사가 놓기만 하면,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활시위가 앞으로 나가면서 그 화살을 밀어낼 것입니다. 그 순간에 이 단어를 썼어요. 문자적인 의미는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주로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아이를 묘사할 때 이 단어를 썼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아이의 생명이 어머니에 의해 유지되고 보호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어머니 품속에 있는 갓난아기에게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부는가 안 부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날씨가 따뜻한가, 추운가가 전혀 문제되지 않아요. 먹을 것을 있는가 없는가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 아이 때에 양식이 떨어질까 걱정해 보신 분 계십니까? 갓난아기가 부모님의 고민을 알겠습니까? 어머니 품에 있는 갓난아기가 아버지가 부도를 만나건, 사업이 흔들리건, 전쟁이 일어나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이 시편에서 그 상태를 가리켜서 '의뢰'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한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캐나다에 선교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에 캐나다의 로렌스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넓은 강입니다. 얼음이 얼긴 얼었지만 건너가도 될 것인지 진단을 내리기 위해 막대기로 툭툭 쳐보고, 괜찮으면 네 발로 기었습니다. 앞발로(손이겠죠) 탕탕 쳐보고 괜찮으면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갔습니다. 왜냐하면, 강의 가장자리에는 얼음이 두껍게 얼어도 물이 흐르는 가운데로 갈수록 얼음이 얇아지거나 얼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골 사람은 아마 다 알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 모르고 걸어갔다가 많이 빠져 봤습니다. 그렇게 선교사님이 조심조심 가고 있는데, 강 중간쯤 왔을 때 갑자기 뒤에서 큰소리가 들렸습니다. 돌아봤더니 마차와 말들이 수없이 달려왔습니다. 그 선교사가 그것을 바라보면서, 강 중간쯤 오면 나처럼 진단하겠지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냥 강 위로 마차를 몰고 그 선교사 옆을 지나가는 겁니다. 그것을 본 이 선교사는 꼼짝 않고 생각을 했습니다. 의뢰하며 사는 삶과 의뢰하지 못하고 사는 삶의 차이가 이렇게 크구나! 나는 개처럼 기어가는데 저들은 말을 타고 건너가는구나! 그 날 이후 선교사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가 그 강물을 의뢰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과연 하나님을 이렇게 의뢰하고 살았던가! 저들처럼 정말 하나님을 의뢰하며 내 인생을 폭풍같이 내 목표를 향해 질주하며 살았던가! 아니면 당당히 걸어가야 할 내가 네 발로 기면서 이 세상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지는 않았던가! 그래서 그는 주님을 의뢰하는 삶에 대해 수많은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시30: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뢰가 무엇인가요? 우리가 의뢰하는 분이 누구인가요? '의뢰'란 무엇이냐?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믿고 맡기듯이, 내 인생을 하나님의 손안에 맡기는 것입니다. 내 건강, 사업, 자녀문제, 모든 미래를 하나님에게 내어 던지는 것입니다. 장사의 활에 있는 화살처럼...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분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1절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우리가 누구를 믿고 있다고요? 여호와입니다. 우리는 어떤 의식(儀式)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교회에 나와 의식(儀式)을 행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오늘 내가 예배드렸으니 한 주일은 괜찮겠지!" 그런데 어쩌다 예배를 빠뜨렸어요. "오늘 내가 다니다가 자동차 사고 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운전대를 붙잡고 "주여!" 하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운전대 잡고 기도하는 건 좋아요. 그런데 불안해서 두려워서 기도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되 믿음을 가지고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 오늘 하루 주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해 주소서!"
그렇게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주여, 다른 사람은 다른 차와 부딪쳐서 다리가 부러져도 나는 다치지 않게 하옵소서!" 이런 식으로 기도를 하면 안 되겠죠? 우리는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를 의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에 있는 성물(聖物)을 의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염주를 걸고 다니며 위안을 삼듯이 목에 십자가, 차안에 십자가를 걸고 다니면서 그것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의뢰하는 것은 그런 물건이 아닙니다. 이 땅을 지으시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이 천하를 지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이 단어는 현재형입니다. 과거에 의뢰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내가 과거에 예수님 믿었습니다. 내가 과거에 하나님을 의뢰해서 내 사업을 일으켰습니다. 내가 과거에 예수님 믿어서 내 병을 고쳤습니다." 그런 과거 시제가 아니라, 문제는 오늘입니다. 지금입니다. 지금 나의 삶에 함께하시고 역사하는 것을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의뢰라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내가 앞으로 죽으면 천국 갈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어서 천국 갈 것을 믿지만, 매 순간의 삶을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불신앙인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격동의 사회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수많은 문제 속에서도 요동치 않으며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과거에 의뢰했던 자가 아니라, 미래의 구원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오늘 하루 아니 매순간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않음과 같이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평안을 얻기 원하십니까? 이 격동의 사회에서 기쁨을 가지고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직 여호와를 의뢰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의뢰'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을 의뢰하고 사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래서 시편기자는 1절에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의 특징을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의 삶의 특징은 “요동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요동치 않는다'는 말은 폭풍이 불 때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말합니다. 태풍이 불면 유리가 흔들립니다. 태풍이 강하게 불면 아파트의 유리도 떨어져 내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어도 남산이 흔들립니까? 지리산 그리고 한라산이 흔들립니까? 아닙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폭풍이 불어서 시온산이 끄떡없는 것 같이 서 있는도다!” 할렐루야! 이것이 요동치 않음의 특징입니다.

(2)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의 삶의 특징은 “환경을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말하는 시온산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시온산의 보좌에 앉으셔서 만물을 다스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뢰하고 사는 자는 환경을 다스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의 종류가 굉장히 많아 보이지만 그러나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즉 신앙 지향적인 사람과 환경 지향적인 사람입니다. 환경 지향적인 사람을 Other orientation 이라고 합니다. 다른 것에 자꾸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내 주위의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즉, 외적 조건에 지배되어 사는 사람입니다. 행복과 불행을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고 환경에서 찾는 사람, 나의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조금만 칭찬하면 힘이 솟아나고, 반대로 조금만 헐뜯어도 기가 죽습니다. 그러므로 기쁨도 슬픔도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항상 기쁨과 슬픔을 남에게서 빌려 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웃는 사람 속에서는 웃고, 우는 사람 속에서는 우는 겁니다. 칭찬 받으면 좋아하고 미움 받으면 분노합니다. 건강하면 웃고 병들면 웁니다. 사업이 잘되면 너무나 좋고 사업이 안되면 신경질을 부립니다. 이런 사람을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Faith orientation, 신앙 지향적입니다. 내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병들고 사업이 흔들려도, 중요한 것은 내가 믿는 그분입니다. 그분을 바라보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환경이 나에게 영향은 미치지만, 내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난 한 달간에 요동하셨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의뢰하고 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기쁨과 슬픔의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돈이 많으면 기쁘고, 돈이 없어지면 기분이 나빴습니까? 그랬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의뢰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흔들리지 않음과 같이 굳건히 서리로다.” 할렐루야! 우리가 왜 하나님을 의뢰해야 합니까? 그 이유를 2절에서 말씀합니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산과 도봉산 북한산이 이 서울을 두르고 있듯이 말입니다. 시온산이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듯이, 하나님이 구원받은 자들을 두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것의 의미는,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완전히 다른 겁니다. 무엇이 다른가요? 가장 큰 축복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두르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만 하면. 그 순간부터 천군천사가 옹위하고 보호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천군 천사가 믿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가르치기위해, 신앙의 선배들에게 보이지 않는 그 손길을 보여 주었습니다.
다니엘은 메대 왕 다리오 재위 기간에 세 명의 총리 중 한 사람으로 세워졌습니다. 총리들과 방백들은 다니엘을 시기하여 그를 모함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 왕에게 한 법령을 세워 삼십 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간구하는 자는 누구든지 사자 굴속에 던져 넣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니엘은 법령이 적힌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예루살렘을 향해 열린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끓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는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기도했고, 어떤 것도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하는 그의 기도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반대자들은 다니엘을 사자굴속에 던져 넣었지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사자의 입을 봉하셨습니다. 또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야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지우겠다고 하였으나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거절함으로 풀무불에 던지워졌으나 불 속에서 하나님은 건지셨습니다.(다니엘 3장)
"의로운 사람의 길을 보호하시고 주께 충실한 사람들의 길을 지켜 주신다"(잠2:8)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렘17:7)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자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 주십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의지하기에 결코 요동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대적들을 멸하시며 악한 자들의 계획을 수포로 돌리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요동치 않는 축복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나의 반석,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가 되신 주님, 하나님 아버지! 제가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어떤 세파가 몰아쳐도 요동치 않을 줄 확신합니다. 제가 더욱 하나님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기대게 해 주세요 오늘도 저를 둘러싸서 지켜주옵소서! 견고한 반석되신 주님을 의지함으로 늘 평강이 넘치는 삶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개인의 이익보다 하나님 나라와 유익을 위해 살게 하소서. 나의 믿음과 용기가 부족해 넘어질 때마다 그 삶의 본이 되신 주님을 늘 기억하며 충성하게 하소서. 어떤 환경에서도 요동치 않는 신앙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세상 것을 의지하지 말라

(1) 자기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언 3장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하면 안 됩니다.

(2) 군대를 의지하지 말라
다윗이 하나님보다 군대를 의지했다가 크게 매를 맞은 일이 있습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하나님이 기드온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실 때 지원병이 32,000명이나 모여들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추리고 추려서 300명을 데리고 미디안을 쳐부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대의 힘을 더 의지할까봐 그리하셨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14장 6절에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셨고, 시편 44편 6~7절에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전쟁의 승리와 패배, 국가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만 의지해야 합니다.

(3) 재물을 의지하지 말라
예레미야 9장 23~24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한 부자가 농사를 잘 지어서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고 하는 말이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19절)라고 할 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20절)라고 하시며 그 영혼을 불러가셨습니다. 행, 불행이 재물에 있지 않습니다. 열심히 돈 벌고 저축도 하되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의지하면 안 됩니다. 있어도 없는 것같이 여기고 하늘에 보화를 쌓도록 하고 하나님만 의지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사야 2장 22절에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했습니다. 본문 17장 5절에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가의 권력자도 의지하지 말고 부모, 형제, 친구도 의지해선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을 의지함으로 갈대처럼 믿음이 요동하고 흔들리지 말고, 강풍이 불고, 폭풍이 밀려와도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요동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 있는 승리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요동치 않는 굳건한 신앙의 소유자인가?
0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주로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0 최근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0 힘들게 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0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처해 있을지라도 주를 의지하고 담대할 수 있는가?
0 나는 세상에 속한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가?
0 나는 내 생애를 하나님의 장 중에 맡기고 사는가?
0 나는 주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느끼며 살고 있는가? 나는 나의 짐을 주께 맡기는가? 나는 나의 연약함을 주님께 맡기는가?
0 나는 어린아이가 부모를 의지하듯이 주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이 있는가?
0 가장 실패하기 쉬운 때는 성공 직후입니다. 이러한 때에 내가 의지하는 것은 나의 의지입니까 아니면 기도입니까?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 요동치 아니하는 충성된 종

나는 외아들과 말 한 마리를 가지고 있던 중국 농부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느 날 말이 산 속으로 도망가자 사람들이 몰려와 말했다. "아끼던 말을 잃으셨으니 불행입니다."
"그것이 불행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시죠?"
농부의 말처럼, 그날 밤 잃었던 한 마리의 말이 야생마 12마리를 데리고 돌아와, 그는 13마리의 말을 소유하는 행운을 얻었다. 사람들이 몰려와 다시 그 농부에게 말했다.
"행운입니다."
"당신은 그것이 불행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아시죠?"
그러던 어느 날 외아들이 야생마 한 마리를 길들이려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그때 이웃 사람들이 모여와 농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행입니다."
"그것이 불행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시죠?"
얼마 후에 이 지역에 군대장관이 나타나 몸이 성한 남자들은 모두 데리고 가서 싸움터로 보냈다. 그들은 싸움터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농부의 아들은 부러진 다리로 인해 편안하게 오래 살았다. 환란이 닥쳤다고 해서 낙심해서는 절대 안된다. 하나님은 환란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환경이 어떠하든 간에 주님을 의지하라. 주님은 환란 가운데서 항상 함께 하시며, 그 속에서 당신의 믿음을 확인하신다. 그가 인정하시는 충성된 종이 되도록 노력하라.

* 예화(2):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수록

'사랑할 때와 죽을 때'라는 영화에 보면, 한 사병이 일선에서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전쟁으로 지친 피곤을 풀고 온 가족과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나눌 것을 생각할 때 기쁨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폭격으로 건물은 다 파괴되었고 가족은 행방 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는 일선에서 남의 생명을 죽이기도 했고, 남의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자살해 버린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했으며, 전쟁으로 지금까지 자기가 믿고 있던 모든 질서와 가치와 도덕이 와해돼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뼈저리게 느낀 그는 어느 날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옛 스승 풀만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교수님, 아직도 우리가 믿을 만한 그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 때 교수는 "아무렴 남아 있고 말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사병은 "그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고 풀만 교수는 엄숙한 태도로 "그것은 하나님이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교수님은 아직도 신을 믿습니까?"라고 묻자 "이러한 위기와 부조리에 처해 있기 때문에 더 믿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 예화(3) : 백화점 왕 페니

미국의 백화점 왕인 페니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에 투신했으나 심한 재정난으로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미시간 주 배틀 크릭에 있는 격리 병원에 수용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낙망하고 좌절한 그에게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맥없이 그곳을 찾아갔더니, 어떤 건물 특별실에서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뒷자리에 앉아 있을 때 매우 친숙한 찬송 "너 근심 걱정 말아라" 가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 찬송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에서 좌절감이 사라지고 큰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는 주님께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를 좀 돌봐 주시옵소서."
그 후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무한한 어두운 공간에서 찬란한 태양빛으로 옮겨지는 느낌이었고 마음속의 무거운 짐이 옮겨져서 그 방을 나올 때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마비된 심령으로 풀이 죽어서 그곳에 들어갔으나 해방되어 기쁜 마음으로 나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건강을 돌보아 주셔서 건강이 회복되었으며 다시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선하신 주님께서는 주님을 섬기고 의지하는 사람을 보호하시며 후손에게까지 복을 주십니다.

* 예화(4): 안개에 약한 항공기

미국 워싱톤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한국으로 오기 위해서는 J F 케네디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기 때문이다. 1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인데 2시간30분 동안 비행을 계속했다. 안개 때문에 뉴욕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을 못하고 공중을 선회한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결국 연료가 떨어졌고 기내는 추워졌다. 비행기는 매사추세츠와 콜로라도주 중간 지점에 있는 브래들리 공항에 비상착륙했다. 천재지변에 의한 불가피한 일이었다. 최첨단의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항공기와 베테랑 기장도 짙은 안개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물론 바람 구름, 안개, 이슬, 비 등 자연을 조종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하더라도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다(잠 16:9).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하며, 허약한 인간과 과학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 예화(5): 400퍼센트로 갚아 주시다

어떤 어려움이온다 해도 하나님만 의지하겠노라 결심한 허드슨 테일러에게 하나님은 물질적인 궁핍을 통해 시험하셨다. 그는 석 달에 한 번 나오는 봉급 날이 훨씬 지나도록 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전도와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테일러에게 가난한 남자 한 명이 찾아와 죽어 가는 자기 아내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다. 이때 호주머니에 당장 식비로 쓸 반 크라운짜리 은화 한 개밖에 없음을 알게 된 테일러는 ‘이 반 크라운짜리 은화 대신에 잔돈이 있다면 1실링을 줄 수 있을 텐데…’ 하며 그를 따라갔다.(당시 영국에서 1크라운은 5실링에 해당했다.)
초라한 방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고, 냄새 나는 돗자리 위에는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죽어 가고 있었다. 감히 그들에게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만 간신히 꺼냈다. 그때 ‘이 위선자야, 날마다 사랑과 봉사를 운운하면서 네 주머니 속의 은화는 그들에게 통째로 줄 수 없단 말이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비수처럼 그의 가슴에 꽂혔다.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은화를 그들에게 주면서 하나님을 증거했다. 테일러의 마음속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다음날 아침, 집 주인이 소포 꾸러미를 하나 건네 주었다. 놀랍게도 그 속에는 10실링짜리 금화가 들어 있었다.

* 예화(6): 의지(意志)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주먹의 힘을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높은 지위를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통장에 입금된 많은 돈을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배운 것을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직장을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를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동역자를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을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배짱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나는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시20:7)

4. 찬송(1): (464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1. 곤한 내 영혼 편히 쉴곳과 풍랑 일어도 안전한 포구 폭풍까지도 다스리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2. 세상 친구들 나를 버려도 예수 늘 함꼐 동행하므로 주의 은혜가 충만하리니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3.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리 예비한 힘을 주시며 위태할 때도 안보하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4.능치 못한 것 주께 없으니 나의 일생을 주께 맡기면 나의 모든 짐 대신 지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후렴] 주의 영원하신 팔 함께 하사 항상 나를 붙드시니 어느곳에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함이라

* 찬송(2): (342장) 어려운 일 당할 때

1)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2) 성령께서 내맘에 밝히 비춰주시네 인도하신 따라서 주만 의지합니다

3) 밝을때에 노래며 어둘때에 기도와 위태할때 도움을 주께 간구합니다

4) 생명있을 동안에 예수 의지합니다 천국 올라가도록 의지할 것 뿐일세

[후렴]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아무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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