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창세기 ›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

조용기 목사 | 2009.06.11 16:34:16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창22:15~18
설교자
조용기 목사
참고
2004년 12월 26일 주일 2부 설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마음의 감동은 일을 성취하는 놀라운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고 했습니다. 고래도 칭찬해서 감동을 시켜주면 춤을 춰요. 장사하는 사람은 손님의 마음을 감동시켜야만 장사를 잘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한때 동경에 있는 어느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갔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제가 원하는 물건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 상점 보는 아가씨가 이웃 백화점에 전화를 걸더니만 이웃 백화점에 그 물건이 있다고 하면서 나를 안내해서 길거리를 건너서 이웃 백화점까지 데리고 갑니다. 연신 제게 늘 고개를 숙이면서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하기는 내가 미안해야 될 것인데 자기가 “미안합니다.” “쓰미마셍, 쓰미마셍” 그러면서 이웃 백화점에 가서 점포를 찾아서 저를 소개해 주고 물건을 사게 해주고 잘 돌아가라고 인사하고 떠났습니다. 저는 굉장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냥 갈수가 없었어요. 되돌아갔습니다. 그 백화점에 가서 내가 필요 없는 물건을 샀습니다. 왜요? 너무 그 친절에 감동을 했기 때문에 제가 물건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면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본론]
1. 하나님을 감동시킨 구약의 대표적 인물

하나님을 감동시킨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 몇 사람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 대표적인 인물 중에 한사람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85살에도 자식이 없어서 하나님께 자식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밤에 밖에 나와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리라고 하시면서 내 자손이 이와 같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00살이 될 때까지 자손이 없었다가 100세에 90살이 되는 아내에게서 이삭이라는 귀한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이제는 10대가 되어서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아버지의 친구가 되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께로부터 청천벽력같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게 웬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도 100살에 주신 자식인 것을 알고 아브라함이 목숨처럼 사랑하는 자식인줄 알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들을 모리아산에 데려가서 그냥 제사가 아닙니다. 잡아서 각을떠서 태워드리는 제사로 드려라. 보통 사람으로써는 감당할 수 없는 시험입니다. 아마 평범한 사람들은 이 하나님 말씀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목숨이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아무하고도 의논하지 아니하고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사흘 길을 걸어서 모리아산에 올라가서 제단을 쌓고 장작을 펼쳐놓고 아들을 묶어서 발로 목을 밟고 칼을 들어서 그 경동맥을 꺽으려고 한 것입니다. 간단한 기사에 불과한 것 같지만 실제로 아브라함의 가슴속에 일어났던 그 마음에 번뇌와 고통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함이 그 자식을 사랑함보다 더 컸습니다. 바로 그때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신앙과 경외에 크게 감동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이 감동 안할 수 없습니다. 그 외독자를 서슴치 않고 하나님 뜻을 따라 사흘 길을 걸어가서 모리아산에 제물로 드리려고 하는 그 아브라함의 신앙에 어찌 하나님이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상급으로 거대한 축복을 약속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고 그 후손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시고 그를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얻게 하신 것은 아브라함의 신앙이 하나님을 감동시켰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감동시킨 한 사람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이스라엘 해방과 광야여행을 감행했습니다. 430년 동안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모아서 그들을 데리고 애굽을 떠나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향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서 그는 오직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양식도 없습니다. 물도 없습니다. 그들을 지키는 군대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백만 이스라엘을 이끌고 홍해에 나와서 그들은 모였습니다. 홍해에 창열한 물이 앞을 가로막아도 모세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환경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뒤에서 애굽군대가 습격해 와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혼비백산해도 모세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절대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너고 난 다음 광야에 들어와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책임이 얼마나 큽니까? 3백만을 아침, 점심, 저녁을 먹여야 되고 물을 마셔야 되고 그들이 거할 곳을 마련해 주어야 되는데 어마어마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그는 인간적으로 준비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양식도 물도 준비한 것이 없고 약품도 준비한 것이 없습니다. 거할 곳을 예비한 곳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고 살든지 죽든지 주님만 바라보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나갔다는 그 담대한 믿음에 하나님은 감동한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용기와 인내와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하나님을 믿고서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모세를 굉장히 사랑하셨습니다. 한때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해서 아내로 삼으니까 그의 형 아론과 누나 미리암이 모세를 비난했습니다. “어찌하여 이제 80이 넘은 노인이 또 무슨 구스 여인을 취해서 아내를 삼느냐? 더구나 이스라엘에 수많은 처녀가 있는데 이스라엘 처녀는 제켜 놓고 얼굴을 새까만 구스 여인을 택해서 이방여인과 결혼하느뇨?” 비난했습니다. 사실 비난받을 만한 일을 했습니다. 80이 되었으면 그만 혼자 살지 뭘 또 결혼을 합니까? 그것도 얼굴이 새까만 구스여인을 취해서 아내를 삼았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미리암이 형님이요, 누님이니까 비난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민수기 12장 5절로 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서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모세가 잘못했어도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을 감동시켜서 하나님이 극히 충성된 사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친형님과, 친누나도 모세를 비난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미리암을 치매 미리암이 문둥병 환자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나중에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매 미리암이 문둥병에서 놓여남 받았지만은 이만큼 모세는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을 깊이 감동시킨 사람으로써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 또 우리가 성경 구약에 보면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질투한 다윗입니다.
다윗이 불과 17살 되는 소년인데 사울 왕이 블레셋군대와 대적하여 싸우는데 형 두 사람이 전투에 나간지라 아버지가 형들을 위문하고 오라고 음식을 당나귀에 싣고 갔다 오라고 했습니다. 그가 형들과 형의 상관들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시내에 나가니 그때 마침 골리앗이 나와서 이스라엘 대적하고 만군의 야웨 하나님을 모욕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골리앗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나무 뒤에나 언덕 뒤에 숨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다윗은 분노했습니다. 어떻게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 만군의 야웨를 저렇게 모욕하는데 이스라엘이 도망을 치느냐? 저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을 보고 왜 두려워 하느냐? 그래서 그가 사울왕에게 나가서 “제가 가서 싸우겠습니다.” 사울이 “너는 17살쯤 되는 초립동이요, 저 골리앗은 어릴 때부터 대장군이라 네가 절대로 그와 같이 싸우지 못한다.” 골리앗의 키는 2미터 90센티였습니다. 그러니 저가 1미터 73센치니 이렇게 쳐다보아도 까맣습니다. 거기에다가 골리앗이 무장을 했는데 그 무장한 무게가 57킬로그램이나 되었습니다. 쌀 한가마니 되는 투구와 갑옷을 입고 있습니다. 도저히 그와 대항해서 싸울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말하기를 “어찌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이 만군의 야웨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합니까? 나는 그냥 볼 수가 없습니다. 내가 우리 아버지 양을 칠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을 물고 가면 빼앗고 달라들면 그 수염을 잡아쳐서 죽였는데 사자와 곰도 내가 죽였는데 저 이방인을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내가 가서 칠터이고 사자와 곰처럼 내 손에 죽을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불같은 질투심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그 거대한 장군 골리앗을 그냥 보고 둘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는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서 목자의 제복 그대로 입고 나갔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로 47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그렇게 말하고 나가서 물맷돌로 치매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매 그대로 쓰러진대 가서 골리앗이 칼을 뽑아서 그 목을 베어 들었습니다. 다윗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골리앗을 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욕한 것에 대한 분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질투심으로 그는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정말로 사랑하고 다윗에 대해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꼭 합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켰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다윗은 선택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감동시킨 신약의 대표적 인물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 중에 한사람인 것입니다. 오순절 날 이후로 베드로가 이곳저곳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 할 때 그가 욥바에 내려가서 복음을 증거하며 욥바의 피장 시몬의 집에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점심 먹기 전에 다락에 올라가서 기도하는데 환상 중에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오는데 보니 그 속에 여러 가지 들짐승과 날짐승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베드로야 잡아서 먹어라.”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부정한 짐승을 어릴 때부터 먹지도 않고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어찌 이 부정한 것을 먹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하기를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부정하다고 하지 말라” 세 번 그 말을 하고 보자기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잠시 후에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하인과 군대들이 와서 베드로를 찾습니다. 왜냐 “우리 주인 고넬료는 착실한 신앙인이라 그가 정오 기도 시간에 천사가 나타나서 욥바의 해변가 피장 시몬의 집에 가서 베드로를 청하라. 구원의 말씀을 전하겠다고 하니 와서 복음을 전하여 주십시오.” 여러분 그때 유대인으로써 이방인에게 절대 못갑니다. 유대인이 이방인 집에 들어가거나 함께 먹으면 부정한 자가 되어서 유대인 사회에서 쫓겨납니다. 더구나 베드로는 사도 중에 지도자인데 만일 그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음식을 같이 먹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다고 생각하면 완전히 쫓겨납니다. 그 당시에는 복음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는 것이지 이방인에게는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보았습니다. 각종 짐승과 날짐승 부정한 짐승들을 잡아먹으라는 것이 이방인에게 나가서 복음을 증거 하라는 하나님의 지시인줄 알고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고 공격하고 손가락질하고 그를 짓밟을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담대하게 하나님께 순종해서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갔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요사이 생각할 때 쉽게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사실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지위와 명예나 권세를 다 저버리고 자기를 비워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한 것입니다. 아주 세상에 버림받고 교회에 버림받을 각오를 하고 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드로의 그 순종에 감동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행전 10장 44절로 48절에 보면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처음으로 베드로가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유대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베드로가 순종하므로 증명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감동시켰기에 베드로가 말씀 할 때에 성령이 임하셔서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분이 바울입니다.
바울은 원래 사울인데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죽이고 스데반 집사를 죽일 때는 총책임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교회를 열렬히 핍박하고 율법을 뜨겁게 준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으로 행했습니다. 제사장의 허락을 받고 다멕섹에 있는 예수교인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고 또 죽이기도 하려고 가다가 다멕섹이 보이는 근처에 갔을 때 대낮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비취면서 하늘에서 음성이 일어나서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말했습니다.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그때에 사도행전 26장 16절로 18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사울을 불렀습니다. 그는 나중에 자기 이름을 바울이라고 계명하고 난 다음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꿈을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그가 어지간하면 피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도로망도 확충되지 않고 여행을 하는데 얼마나 어려움도 많고 위험도 많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3절로 33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이만한 고통과 수고를 당하면서도 절대 뒤로 물러가지 않고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하늘의 환상을 따라 일생을 달렸습니다.
그가 디모데후서 4장 6절로 8절에 로마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그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그는 이제 죽음을 앞두고 그가 구라파 여행을 세 번이나 하면서 복음을 증거한 과거를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바울 선생의 선교 열정에 깊이 감동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신약성경의 반을 적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없는 놀라운 계시와 하나님의 묵시를 받아서 신약성경 태반을 바울의 손을 통해서 적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충성이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미국의 스탠다드 석유회사에 있던 일입니다. 그 회사의 직원 중에는 아치볼드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호텔에 가면 숙박계에 자신의 이름대신 한통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회사의 석유 가격과 이름을 적었습니다. 말할 기회만 주어도 그는 자기를 소개할 때 “한통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합니다.” 그렇게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한통 4달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그는 유명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아치볼드만 보면 스탠다드 석유 한통 4달러. 그는 이것을 입에 붙이고 다녔었습니다. 이 소문이 당시 사장이었던 록펠러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청년을 기특하게 여긴 록펠러는 그를 불러 함께 식사를 했는데 청년에게 회사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과 충성심이 있음을 발견하고 록펠러 회장이 크게 마음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세월이 흘러 록펠러는 퇴임하고 차기 사장이 선출되는데 그 차기 사장의 이름이 바로 아치볼드였습니다. 그는 스탠다드 회사 역사상 가장 유능한 회사에 공헌한 인물로 평가된 사장이 되었습니다. 평사원에 불과하던 아치볼드가 어떻게 사장자리에 올라갔습니까? 회사에 대한 그의 충성심이 록펠러 회장의 감동을 주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사람이 살면서 감동을 받고 감동을 주므로 인생에 성공을 가져옵니다. 남편도 아내에게 감동을 주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요. 아내도 남편을 감동시키면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요. 오늘 장사하는 사람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에게 감동을 파는 것입니다. 손님을 감동시키면 손님들이 그 물건을 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삶을 살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안할 리가 없고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지 않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시대에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의 생활을 본받아 우리도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감동시킬까요?
첫째로, 꿈이 있어야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꿈이 없는 청년은 될 대로 되라고 허랑방탕하지 않습니까?
꿈이 없는 가정은 사분오열되지 않습니까? 꿈이 없는 나라는 서로 물고 찢고 싸우다가 망하지 않습니까?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나 분명한 나아갈 꿈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이 꿈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430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내실 때 어떻게 끌어냈습니까? 다른 아무 말씀도 안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라. 꿈을 주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쌀가마니를 내려 주시지 않았었습니다. 꿈을 주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라. 그 꿈을 마음속에 받아 들여서 끝까지 간 사람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신명기 11장 8절로 9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젖과 꿀이 흐른다는 마음에 비젼을 가져야 하나님이 인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부활하사 제자들을 모아 놓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그때 여러분 온 천하라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때 비행기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배도 돛단배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갈릴리를 떠나본 적이 없는 소수의 제자들을 불러놓고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으니 엄청난 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아마 인간적으로 들었을 때 도저히 불가능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땅을 떠나본 적도 없고 그렇게 여행할만한 돈도 없고 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온 천하 만국이란 꿈을 제시해 놓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명령은 땅끝까지 나가는 꿈과 환상인 것입니다. 제자들과 성령받은 사람에게 주님은 입을 넓게 열되 온 천하 만민에게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땅끝까지 가는 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이 없으면 주님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꿈이야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들이 가지는 것이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이 무슨 꿈을 가지느냐?”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근대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암 캐리는 원래 구두수선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복음을 듣고 성령으로 거듭났을 때 그의 안에 위대한 비젼이 생겼습니다. 그는 자신이 일하는 구둣가게 안에 세계 지도를 그려놓고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큰 비젼을 갖자. 큰 기도를 하자. 큰 기대를 걸자.” 이 세 가지의 표어를 걸어놓고 지도를 바라보고 매일 기도했습니다. 보통 우리는 구두 수선공의 성공은 구둣가게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캐리는 달랐습니다. 그는 온 천하에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비젼을 품었던 것입니다. 당시 외국에 선교사로 나간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윌리암 캐리는 선교사로 나가기로 지원했습니다. 후원자도 없었고 심지어 아내까지도 말렸지만 그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인도 땅에 뛰어든 것이 선교의 시작인 것입니다. 그의 불타는 비젼은 하나님까지 감동시켰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 복을 받아 인도에 위대한 부흥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수많은 선교사를 일으켜서 선교에 새로운 획을 그었던 것입니다. 교육도 없고 사회적인 지위도 없고 명망도 없는 평범한 구두 수선공이 런던에 한 구석에 앉아서 구두 수선을 하면서도 그 마음속에 인도를 복음화 할 꿈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마음속에 꿈을 품고 있으면 꿈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꿈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꿈이 여러분을 이끌어 갑니다. 나는 아무 힘도 없다. 돈도 없다. 능력도 없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모두 다 꿈은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동서남북의 가나안 땅을 바라본 것처럼 아브라함이 하늘의 별들을 바라본 것처럼 꿈을 바라보고 품고 있으면 꿈이 여러분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꿈이 여러분을 지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꿈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둘째로, 담대한 믿음과 순종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담대히 믿고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버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3장 18절로 19절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애굽에서 나와서 40년 광야를 방황한 이스라엘 백성들, 그 초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워하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담대한 믿음과 순종이 있어야 하나님을 감동시킵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로 38절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물러가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주의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라고 말했습니다. 믿고 순종하고 순종하고 믿어야 주님의 마음을 감동 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였던 스펄젼 목사님이 하루는 자신이 돌보는 고아들을 위해 한 도시에서 3백파운드의 금화를 모금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해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기도 중에 하나님 성령이 말씀하기를 “그 돈을 조지 뮬러 목사에게 갖다 주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스펄젼은 자신이 돌보는 고아들에게 급하게 필요한 돈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성령이 조지 뮬러 목사에게 그 돈을 갖다 주라고 말씀했습니다. 굉장한 믿음의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내가 지금 그 돈이 필요한데... 겨우 그 돈을 모았는데 어떻게 갖다 주느냐? 그러나 그는 담대하게 믿음으로 결정을 내리고 뮬러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뮬러 목사님을 찾아가니 마침 기도실에서 뮬러 목사님이 나왔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이 3백파운드를 내밀며 “하나님께서 내가 모금한 3백파운드를 목사님께 드리라고 하셔서 이렇게 가져왔습니다.”하고 내놓으니까 스펄젼 목사님의 손을 잡고 뮬러 목사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긴급하게 필요하니 3백파운드를 보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나오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죠지 뮬러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스펄젼 목사님이 모은 돈 3백파운드를 주라고 할 때 그는 담대한 믿음으로 순종해서 자기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돈을 내놓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것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뮬러 목사님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자기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의 책상위에 웬 봉투가 하나 놓여져 있었습니다. 열어보니 315파운드의 헌금이 들어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감격했습니다.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주여 3백파운드 주라고 해서 제가 죠지 뮬러 목사님에게 주었는데 이자까지 보태어가지고서 315파운드를 보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감동하고 죠지 뮬러 목사님도 감동하고 스펄젼 목사님도 감동했습니다. 담대한 믿음과 순종은 큰 감동을 하나님께 가져오는 것입니다.
셋째로, 희생적인 하나님 사랑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희생해서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이 감동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제일주의로 나가는 것 말입니다. 내가 만사를 제켜 놓고라도 주일날 교회에 나온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꼭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십일조와 헌금을 주님께 드린다.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위대하고 큰일을 안 해도 지극히 적은 일에도 먼저 하나님을 대접할 때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것이 하나님을 감동시켜서 큰 은혜를 받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요한복음 14장 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시편 91편 14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크게 감동시킨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베다니의 문둥이 시몬의 집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옥합을 깨뜨려서 그 기름을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 바르고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을 풀어서 예수님 발을 닦았습니다. 그 당시에 처녀가 옥합을 깨뜨린다는 것은 일생을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옥합에 기름이 시집갈 때 지참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옥합에 기름을 많이 가져가면 시집에서 크게 환영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시집가기 위해서 모아놓은 그 기름을 옥합채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것은 시집가는 것을 포기한 것입니다. 일생을 주님에게 쏟아 버린 것입니다. 그 기름을 머리에 바르고 발에 붓고 여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머리털 아닙니까? 머리털을 풀어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머리가 산발이고 기름이 뚝뚝 흐르고 온방에 기름 냄새가 가득 했습니다. 그때 가룟유다가 고함을 쳤습니다. “이 무슨 망령된 일인고 왜 이렇게 허비를 하느냐? 이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이 여인이 하는 것을 꾸짖지 말아라.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했다. 내 죽음을 위해서 미리 기름을 발라 주었다. 이 여인이 행한 일은 온 천하에 복음이 증거하는 곳에 다 말해질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킨 것이 마리아의 희생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옥합을 깨뜨리고 머리를 풀어서 그 발을 닦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헌신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은 감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래전 영국의 한 시골교회에서 아프리카 선교와 의료사업을 위해 헌금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헌금 바구니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처럼 주머니가 아니고 세숫대야처럼 큼직한 바구니입니다. 이 바구니를 돌리면서 사람들이 헌금을 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 헌금을 거두고 있는데 한 소년이 오더니 헌금 바구니에 올라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웃고 헌금 안내원이 “내려가거라! 이 무슨 일이냐? 헌금을 걷는데 왜 헌금 바구니에 올라앉았느냐?” “저는 돈이 없어요. 그러나 내 일생을 주님께 헌금으로 바칩니다.” 그래서 헌금바구니에 올라가 앉은 것은 자기 몸을 주님께 내어 바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 소년이 누구냐, 바로 아프리카 선교사로 이름을 떨친 리빙스톤 박사였습니다. 그는 그 일생을 바쳐서 아프리카를 위해서 희생하고 복음을 증거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리빙스톤의 헌신에 감동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에릭 레델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지요? 유명한 영화입니다. 영국의 육상선수였던 에릭 레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19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에 참가했는데 참가 당시 그는 100미터 세계 신기록 보유자였습니다. 그러나 레델은 100미터 경주가 주일에 열린다는 말을 듣고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영국의 올림픽 대표 선수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주일날은 주님을 섬겨야지 주일날 올림픽에 나가서 100미터 경주 못한다.” 온 영국 신문이 떠들어 제키고 욕을 하고 광신자, 미친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영국 올림픽촌에서 그는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다 당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단호했습니다. “나는 주일날은 경기 못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날은 뛰지 못한다.”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일날이 지나고 난 다음에 그가 뛸 수 있는 기회는 400미터 경주입니다. 100미터를 뛰었지 400미터를 뛰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에릭 레델은 기도하고 400미터에 출전해서 뛰었는데 처음으로 400미터 경주에 나간 그날 47.6초라는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하나님이 감동했던 것입니다. 평소에 400미터를 못 뛰는 그가 하나님이 질풍처럼 뛰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후에 그는 영국 선교사로써 중국에 나가서 평생을 복음 증거에 바쳤습니다. 그의 생애가 너무나도 전설적이었기 때문에 영화로 제작되어서 온 세계 사람이 그 영화를 보고 감동했습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 그렇지 않습니다. 영국의 올림픽 대표 선수로써 모두다 그가 100미터를 뛰어 금메달을 목에 달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주일날이어서 저는 안 뜁니다. 단호하게 거부한 용기와 그 희생은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짜릿하게 감동을 느끼신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에 한번도 안 뛰어 본 400미터를 질풍같이 달려 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목에 달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인간도 상대를 폭력으로 굴복시키려 하면 결국 실패합니다. 상대를 감동시켜야만 인간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떼쓰고 고집 부린다고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삶의 조건을 구비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합니다. 사람도 감동을 시켜야지요. 어떤 가정에 남편이 너무너무 고집을 부리고 부인 말을 안 들어 줍니다. 부인이 무슨 말을 해도 고집을 부리고 그 말을 안 들어 줍니다. 그런데 부인이 작전을 바꿨습니다. 어떻게 바꿨느냐, 돼지 사육자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돼지를 붙잡으려고 할 때 몽둥이로 때리면 자꾸 달아나요. 자꾸 달아나요. 그런데 긴 꼬챙이로 돼지를 살살살 긁어주면 돼지가 그만 드러누워 버려요. 그러면 쉽게 돼지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남편을 자꾸 채찍질 할 것이 아니라 꼬챙이로 긁어줘야 되겠다. 그래서 남편을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위로해주고 감동을 시키니까 그 다음부터 남편이 하라는데로 다 하더랍니다. 일어서라면 일어서고 앉으라면 안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사람도 감동을 시키면 따라옵니다. 채찍을 때리면 반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희생 봉사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하여 주셔서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다윗처럼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하나님이 오늘날도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사용하시고 여러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 우리 세계는 너무나 감동이 없습니다. 모두 다 메마르고 상막하고 시기하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싸움밖에 없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여 부부가 서로 감동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감동시키고 이웃과 이웃끼리 서로 감동을 시키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전능하신 아버지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감동한 위대한 선열들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 같이 모세같이 다윗같이 베드로같이 바울같이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사랑으로써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우리들에게 복을 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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