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백조(강수진)의 발

이정수 목사 | 2009.12.19 22:00:1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고전예화512. 백조(강수진)의 발

장로회 신학대학원 신대원 77기 홈 페이지에 우리 동기 김춘근 목사님이 올려놓은 사진 두 장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지난 한 겨울 2월 6일 우리나라 금강에 날아와 겨울을 나고 있는 새하얀 고니 일가족(13마리)이 강물 위를 고고하고 우아하게 줄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발레리나 강수진의 엉망진창으로 상처 난 발과 헤어진 토슈즈 사진입니다.

강수진(1967년 서울 생)은 1975년 발레 입문-선화 여중-선화 예고 1학년 때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1985년 스위스 로잔 발레 국제대회에서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그랑프리 획득-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최연소 입단-1993년 군무, 솔로 과정을 거쳐 줄리엣 역으로 프리마 발레리나로 데뷔-1995년 발레리나 최고의 영예인 시즌 오프닝 공연 주역-1999년 모스크바 국제무용협회 주최 “브누아 드 랑스(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해당)”에서 최고 여성 무용수로 선정-동양인으로서 서양인들이 구축해 놓은 문화 체계인 발레계의 여왕으로 등극한 것입니다.

강수진이 발레계의 여왕이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 보니 신데렐라가 된 경우가 아닙니다. 앞에 경력에서 보았듯 그녀는 198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말단 군무 댄서로 출발하여 1년 후 1987년 솔리스트가 되었고 다시 6년이 지난 1993년 주역 무용수가 되었고 다시 3년이 지난 1996년 프리마 발레리나로 올라섰고 그 후 3년이 지난 1999년 세계 최고의 무용수로 등극한 것입니다.

강수진은 장장 15년 동안 문자 그대로 피나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하루 10시간 어떤 때는 19시간 연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 씨즌에 헤어져 버린 토슈즈가 150여 개에 이릅니다. 강수진의 발을 보면 발톱이 갈라졌고 벌어졌고 파랗다 못해 새까맣게 멍들고 곪아 있습니다. 다음은 어느 인터뷰에서 강수진이 한 말입니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면 어딘가가 아파요. 아픈 것도 무용수 생활의 일부분이죠. 아무 데도 아프지 않은 날은 ‘내가 어제 뭘 잘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나는 할 만큼 했는데 왜 안 되는 걸까?’ 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 때 나는 ‘과연 저 사람이 최선을 다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80% 정도 하고 나머지 20%는 자신과 적당히 타협하는 것 같아요. 만약 그 사람이 자신으로서는 최선을 다하였다면 그 어떤 결과가 나왔더라도 그 결과에 승복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봐요....똑 같은 것은 예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요즈음은 교육 시스템이 좋기 때문에 학생들이 테크닉은 너무나 잘 배웁니다. 하지만 그 기초 위에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었을 때만이 비로소 예술이 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현란하게 빠르게 도는 무용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가 5분간 계속 빠르게 돌기만 한다면 더 이상 감동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만의 독창성이죠. 독창성 말이예요.”

금강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고니의 물 속 발이 쉴 새 없이 움직이듯 백조보다 더 환상적인 사람 백조 프리마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도 성할 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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