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고린도후 › 고난과 신앙생활

조용기 목사 | 2010.01.04 23:45:21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고후4:17~18
설교자
조용기 목사
참고
2008. 8. 31. 주일 4부 설교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고난과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고난이나 고생을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저도 고생하고 싶지 않아요. 고난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 평안과 안락한 삶을 원합니다. 또 하나님도 할 수만 있으면 평안과 안락한 삶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다 아시다시피 원만한 인간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난을 당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기를 때도 너무 오냐 오냐 하고 길러 놓으면 행실이 없는 고약한 자식들이 되고 말 때가 많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변화를 받아야 훌륭한 인격자로써 성장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장성한 천국인이 되기 위해서는 고난은 필요 불가결 합니다. 어느 정도의 고난을 당해야 영적으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로써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우리 조상 아담 하와로부터 전해 받은 교만과 오만이 마음에 꽉 들어차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보통 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다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아담으로부터 받은 교만과 오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해서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자손들은 똑같은 유전을 받아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DNA가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나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살겠다는 그러한 습관이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허약과 무력과 절망적인 존재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고난이 다가와서 그 허위의 가면을 벗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가면 만드는 것이 발달이 되어서 고무로써 얼굴을 잘 덮어씌우고 가발을 쓰면은 다른 사람이 되 버리고 맙니다. 제가 텔레비전에 보니까 남자 아들이 여자로 가면을 쓰고 어머니 찾아 왔는데 어머니가 몰라봐요. 내내 다른 사람인줄 알고 있다가 나중에 가면을 벗어 버리니까 어머니가 기절초풍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과 오만의 가면을 쓰고 있는데 이 가면을 무엇으로도 벗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와야 가면이 벗겨지고 자기의 진실한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 자신의 참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고난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시편 31편 23절에 야훼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이 교만인 것입니다. 교만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에덴을 떠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교만이 마귀를 만들었고 마귀가 들어가면 영락없이 교만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께 등을 돌리게 만드는 원인자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교만한가를 주님께서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이 드러난 이후에도 고난을 깨뜨리는 망치로써 고난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고집과 자기중심과 자기 의지를 무엇으로 깨뜨립니까? 교육을 해서 깨뜨려지지 않습니다. 좋은 환경을 통해서 인간의 고집과 자기중심과 자기 의지가 깨어지지 않습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깨어지는 것입니다. 고난의 망치로써 때리고 몽둥이로 때리면 교만이 깨어지고 자기 중심이 깨어지고 자기를 의지하던 것이 깨어지고 두손들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고 주님께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만큼 우리를 깨뜨리는 힘을 가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욥기 33장 16절로 17절에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고 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도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바로 고난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는 방망이가 되고 우리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라고 유명한 신학자가 있었는데요. 한 사람이 C. S. 루이스에게 왜 인간에게 고난이 주어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루이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잖아도 타락한 인간이 고난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교만하겠는가?" 그러면서 "인간은 어려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는 습성이 있다. 고통은 귀머거리와 같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확성기와 같다." 고 말한 것입니다.
저는 요번이 부산에 가서 성회를 했는데 저의 마음속에 감회가 깊었습니다. 17살 때 폐병 걸려서 고난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하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폐병 들려 죽게 되고 병원에 의사들이 살 가망이 없다는 선언을 내리고 난 다음부터 시작해서 나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고 구원을 생각하게 된 것이고 그럴 때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 와서 믿음의 씨앗을 뿌리니까 마음에 완전히 믿음의 씨앗을 받아들여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제가 부산에 내려가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 때 폐병 걸리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목사가 되어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부산에 내려와서 대성회를 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감개무량한 것입니다. 고난은 그당시에 괴로우나 그것이 와서 교만을 깨뜨리고 눈에 꺼풀을 벗겨 주고 가면을 벗겨 주고 자기가 얼마나 허무하고 무의미하고 절망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만들어 주는 안내자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2.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함
고린도후서 1장 8절로 10절에 "형제들아 우리가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나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바울선생과 그 일행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증거 하다가 엄청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언도를 받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들을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지팡이 하나라도 의지할 수 있으면 그것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의지할 수 없으면 하나님께 나와서 손들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력함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고난인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와야 내가 얼마나 힘이 없고 무능력하고 내 힘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보통 때 자기 생명이 안개라고 생각합니까? 아니지요. 천년만년 살 것으로 생각하지요. 고난이 다가와서 건강을 잃고 의지하던 생활에 낭패를 당하게 되면은 인간이 허무맹랑하고 안개와 같은 것을 깨닫게 되고 회개하고 두손 들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찾고 구하게 하고 기도하게 만드는 큰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 받기 전에는 하나님 이름을 부르지도 아니하고 교회도 나오지 아니하고 기도는 절대로 안 하던 사람이 고난당하면 하나님을 찾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별도리 없이 고통스러우니까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그 길을 찾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편 34장 17절로 19절에 의인이 부르짖으매 야훼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 하시는 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야훼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환난에서 건져 주시고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셔서 부르짖을 때 통회하는 자를 구원해 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고난이 아무리 많아도 회개하고 주님을 찾고 부르짖고 깨어지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손길은 지금도 나타나서 건져 주시고 도와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라고 말한 것입니다.
평소에 새벽기도 안 나온 사람도 고난당하면 새벽기도 하고 더 괴로우면 산기도 하고 철야기도 하고 금식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고난을 통해서 체험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동리 아이들에게 얻어맞고 울고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가 부엌에서 뛰어 나와서 치마로 눈물을 닦아 주시고 품에 품으시고 등허리를 쓰다듬어 주는데 얻어맞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더라구요. 우리 어머니가 치마폭으로 나를 감싸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나를 쓰다듬어 주던 그 기억이 오늘날도 남아 있는 것은 내가 동리 애들에게 얻어맞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안 얻어 맞았으면 어머니가 그렇게 해주지 않아요. 얻어맞아 울고 오니까 그렇게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은 고난을 당할 때 그렇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넘어지고 고통당하고 괴롭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절망해서 주님께 울고 나오면 주님의 위로가 하늘에서 성령으로 임하여서 마음을 푸근하게 하고 사랑을 느끼게 하고 큰 힘과 용기를 얻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해야 주님의 위로를 체험할 수 있게 되고 위로를 받아야 신앙에 깊이를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절로 5절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이 넘치면 위로도 넘친다는 것입니다. 환난이 넘치면 하나님의 위로도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해서 주님께 부르짖고 깨어져서 기도하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온다고 나올 때 하나님은 와서 우리를 품어 주시고 하나님은 그 옷자락으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 등허리를 두들겨 주시고 어루만져 주셔서 위로하여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체험하게 하는 길은 고난 받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세상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함
그러나 고난이 또한 육체를 따라 세상의 노예가 되지 못하게 우리를 도와주는 큰 역할도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하였으므로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악한 자의 손아귀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에게 와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잔뜩 넣어 주고 하나님을 생각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 근처에 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원수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진을 물리치고 마귀가 친 그물을 잘라내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또한 고난인 것입니다. 육체를 따라서 사람은 살게 되어 있어요. 영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육체로 만드시고 그 속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른 영혼을 만들어 주었는데 영혼은 영원이 살든지 영원히 지옥가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세상에 고난당하기 전에는 영혼의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만 생각하고 먹고, 입고, 마시고, 쾌락을 누리는 것만 생각하고 속에 있는 영혼이야 죽든, 살든, 무관심한 것입니다. 육체가 깨어지고 허물어지고 고난을 당해야 우리는 비로소 육체를 바라보던 눈을 돌이켜 우리 속에 있는 영원한 영혼을 바라보고 영혼을 찾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들어오면 하늘나라는 멀어지고 하늘나라가 들어오면 세상이 멀어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에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이 세상 자랑은 육체를 꽉 들어 잡고서 절대로 영혼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영혼과 분리시키고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분리 시켜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쫓아내고 우리 영혼이 살아 일어나서 하나님을 보게 하는 것은 고난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우리가 육체를 떠나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매가 정신을 차리게 하지요. 정신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죄 있는 사람에게 고난의 매가 와서 때리면 세상이 허무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어릴 때는 원족 가는 것을 좋아해서 원족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선생님이 원족 가는 날을 발표하면 점심 도시락 싸서 애들 다 함께 줄을 지어서 산으로 들로 바닷가로 원족을 가는 것입니다. 한 학생들이 선생님을 따라서 바닷가에 원족을 가서 그들이 너무나 기뻐해서 노래를 부르고 점심을 잘 나눠 먹고 자유시간이 되자 모래 가에서 땅 따먹기를 한 것입니다. 너 땅, 내 땅 그래서 가위, 바위, 보해서 땅을 따먹고, 땅을 따먹고 서로 밀고 당기고 하다가 나중에는 니 땅, 내 땅 싸움이 나서 그냥 밀고 당기고 단추가 떨어지고 옷고름이 떨어지고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갑자기 호루라기를 호루루루 부니까 싸움을 하다가 말고 전부 선생님을 보니까 "얘들아 돌아갈 시간이 있다. 다 모여라!" 다 모였습니다. 줄을 딱 세워서 "앞으로 갓! 하나 둘 하나 둘.." 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너 땅 내 땅은 다 사라지고 모래땅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우리가 사는 것이 땅따먹기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영광을 얻기 위해서 밀치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싸우고 할퀴고 하다가 주님께서 호루라기 한번 부시면 모든 것 다 버리고 이 땅을 등지고 떠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인 것입니다. 우리가 잠시 잠깐 후에 이 땅에서 떠나가서 주님 만나야 될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이 땅에 붙어서 이 땅만 바라보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눈을 돌이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려고 고난을 보내어서 고난이 우리를 징계해 주는 것입니다. 고난의 매가 때리면 정신을 차려요.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정신이 빠져 있어요. 고난의 매가 들어오면 정신을 버쩍 차리고 그 때야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옛날에는 성경 창세기부터 계시록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내게 아무 가치가 없어요. 성경 갖다 놓아도 보지도 않아요. 그러나 고난당하여 괴로워지면 성경을 찾아서 읽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와이에서 집회할 때 나를 집회 장소에 왔다 갔다 운전하던 부목사 한 사람이 차 안에서 내게 이야기를 합니다. " 목사님, 나는 정말 죽음의 문턱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학생 시절에 아편을 맞아 가지고서 아편 중독자가 되어서 대학을 졸업 맞고는 전문적으로 아편 장사를 했습니다. 하루는 길거리를 걸어가는데 목사님이 길거리에서 예수 믿고 천당 가자고 고함치기에 콧방귀을 끼었는데 전도지를 전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전도지를 받아서 포켓트에 구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아편 장사를 했는데 하루는 내 스스로가 아편을 너무 많이 맞아서 정신이 아뜩하고 숨이 턱이 작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완전히 죽음의 공포가 꽉 들어찼습니다. 의지할 곳 없고 당장 죽게 되어서 이리이리 살펴 보니까 방구석에 내가 전도지를 내 던졌는데 그 전도지가 구겨져 있길래 그것을 가서 조금씩 치워서 읽어 보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주의 말씀에 기록되어서 "주님, 주님 내가 주를 믿겠사오니 나를 중독에서 살려 주시고 지금 심장이 멎을 것 같은데 살려 주십시오. 주님 나를 살려 주십시오 " 고함을 치니까 몸 속에 팡 하는 소리가 나더랍니다. 그래서 쳐다 보니까 마귀 세놈이 천장에 올라가서 딱 달라 붙더랍니다. 몸에서 마귀 세 놈이 터져 나가서 천당에 들어왔다가 새까만 눈으로 자기를 두리번 두리번 살피는데 도로 들어 오려고 만발의 자세를 취하고 있더랍니다. 노무나 고통스럽고 놀라워서.. 주님이시여 살려 주십시오. 예수 이름으로 고함 고함을 치니까 얼마 있지 않다가 휙 하고 마귀 세 마리가 떠나 가더랍니다. 그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편 중독에서 해방을 얻고 그는 세 사람이 되어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그 때로부터 회개하고 신학교 들어가서 공부를 해서 목사가 되어 하와이에 복음 증거 하러 왔다가 그 교회 부목사가 되어서 일하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말로 다할 수 없는데 자기가 당하는 고난이 아니었으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지 아니했다는 그런 말을 들은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보면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온전하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를 더 굳세게 만들어 주시고 강하게 만들어 주시고 터가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완전히 나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고난은 우리에게 큰 축복도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요. 고난이 없을 때는 세상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을 따라서 마귀를 닮아 가다가 고난을 당해서 내 깝질이 벗겨지고 내가 깨어지고 변화 받으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를 닮게 함
조각가가 돌이나 나무를 찍어내어서 형상을 만드는 것처럼 고난이 끌이 우리를 찍어 내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9절로 10절에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어떻게 벗습니까? 고난이 다가와서 옛사람의 껍질을 벗겨내고 옛사람의 낡은 의복을 벗겨 내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신앙생활 하는 동안에 예수 보혈을 믿고 구원 받으면 성령이 오셔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변화시키고 고난이 와서 고난의 능력으로 우리를 변화시켜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살면서 고난을 안당하고 살면 참 좋겠지요. 그러나 고난이 와야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생명으로 살지 않고 예수님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얻고 예수님의 믿음, 소망, 사랑을 얻고, 예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우리가 마음속에 얻기 위해서는 고난을 통해야 예수님을 끌어 안고 예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끌어안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 지낸바 되고 함께 부활한 신앙의 체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고통을 우리고 같이 걸머지면 예수의 부활한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내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예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
그냥 하나님의 영광을 주면 좋겠는데 예수와 같이 고난을 받으면 예수와 같이 영광을 얻게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 가는데 고난은 반드시 필요 불가결하게 통과 되야 될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 나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포도나무인데 우리는 접붙인 가지입니다. 고난이 와서 우리를 세상에서 찍어 내어서 예수님에게 접붙여 주는 것입니다. 나무가 다 죽어가더라도 좋은 나무에 접붙이면 곧 생기가 나서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다 죽어가는 우리들을 고난이 와서 찍어 내어서 예수님에게 접붙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부르짖고 끌어안고 의지하게 만들어 주어서 예수의 생명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가 들어오고 예수님의 거룩함이 들어오고, 예수님의 치료가 들어오고, 예수님의 축복이 들어오고, 예수님의 부활, 영생이 들어와서 우리가 예수께 접붙임을 받아 영원히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행복과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접붙여지지 않아요. 고난이 와서 우리를 세상에서 찍어 내어야 예수님께 접붙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약하고 병들고 힘없고 낭패와 실망을 당해서 우리에게 새 생명이 주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접붙이기 위하여 여러분을 세상에서 잘라 내어서 예수님께 접붙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여러분을 받아들일 준비를 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접붙일 때 보면 날카로운 칼로써 나무를 잘라 가지고서 접을 붙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여러분에게 접붙임을 받기 위해서 피를 흘리고 몸을 찢고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난을 통해서 깨어지고 주님께 나와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 들이고 끌어안으면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이 되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고난을 통해서 회개하고 자복하면 날로 여러분 속사람이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속사람은 잠들게 되고 죽게 되지 않습니까? 고난이 오니까 자꾸 하나님을 찾게 되고 부르짖어 기도하게 되니까 속사람이 살아나고 새로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게 많은 고난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 잘 믿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데 저런 고난이 다가 오느냐. 하나님은 더 새롭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채워주기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하고 회개하고 주님께 의지하게 만들려고 하니 고난의 채찍을 때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버려 놓으면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냥 평안하고 배부르고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기도하는 것 그치고 성경 읽는 것 그치고 주님 찾는 것 그치고 세상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늘 고난이 있어야 회개하고 부르짖고 기도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고난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다고 하는데 나는 그 은혜를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옛날에 종로에서 큰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6.25사변 난 이후로 서울이 불타고 아직 복구 안 되었을 때 종로 네거리에 불탄 자리가 많은데 거기에 천막을 치고 부흥회를 열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왔고 회개하고 병든 자들이 나아서 간증을 하고 뛰고 구르고 좋아하니까 목사님이 한 분 설교를 마쳤는데 나를 찾아 왔어요. 날보고 "목사님, 안수 좀 해주십시오."그래서 무슨 안수냐고 하니까 "나도 목사님처럼 폐병 걸리도록 안수 좀 해주십시오. 폐병은 걸려서 피를 토하되 죽지는 않도록 안수해 주십시오." "무슨 그런 망발된 소리를 합니까?" "목사님, 저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서 우리 아버지 어머님이 예수를 잘 믿어서 나는 아무 고생함이 없이 자라서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돈을 대어서 교회를 지어 주어서 목사가 되었는데 목사가 되고 난 다음에 이론만 알지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도 모르고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한 적도 없고 마음이 뜨거워 진 것도 없고 기도하려고 해도 기도도 안 나오고 눈물도 흘려 본적이 없고 나는 예수님의 은혜를 모릅니다. 그런데 목사님 가만히 보니까 폐병 걸려서 피를 토하고 죽게 되었으니까 하나님을 찾다가 불도 받고, 성령도 받고 병도 고침 받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체험도 얻게 되니 얼마나 설교가 힘이 있는지 몰라요. 나도 힘있는 설교가 되기 위해서 폐병 걸리게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 고난이 있어야 영광도 체험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배가 고파 봐야 밥이 좋은 줄 알고 추워 봐야 옷이 좋은지 알고, 고생을 해봐야 평안이 좋은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고난 안 당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병들어 봐야 신유를 체험하고 사업을 망해봐야 하나님이 복 주시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외로워 봐야 하나님의 위로를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항상 죽음에 넘기우면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 위해서 병들고 예수 위해서 가난해지고 예수 위해서 고난당하는 것은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어두워져야 빛이 영광이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옷이 얼마나 좋은 것을 깨닫게 해주려면 추울 때 옷을 벗겨서 밖에 내보내야 옷이 얼마나 좋은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밥이 얼마나 좋은 것 알기를 원하면 여러분 굶어봐야 밥이 얼마나 좋은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애들이 어릴 때 우리가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를 하는데 사흘 되니까 우리 둘째 애가 하는 말이 엉엉 울면서 "밥 줘. 밥 줘." 그래서 "금식하는데 밥을 주냐?" 그러니까 "그러면 나 죽어서 밥 될래. 밥 될래." 배가 얼마나 고팠던지 죽어서 밥 되겠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밥이 귀한 줄 알아요. 저는 요사이도 밥을 먹으면 조그마한 밥풀도 다 주워 먹습니다. 그것 왜 그러느냐. 6.25때 하도 배가 고파 고생을 했기 때문에 지금 잘 먹고 잘 입어도 그 옛날에 체험한 것이 뼈 속에 사무쳐서 잊어지지 않아요. 언제나 밥상만 받으면 6.25가 생각나고 그 때 헐벗고 굶주리던 것이 생각나서 밥풀 하나도 너무나 아까워요. 그러나 6.25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이들은 한 숟가락도 그냥 내버려요. 밥을 그냥 흩어 놔요. 아깝게 생각하지 않아요. 배고픈 적이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이 있어야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난은 반드시 원수가 아닙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허락하셔서 여러분의 하나님의 축복과 위로를 체험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로 18절 우리 다같이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인데 영원한 것을 우리가 어떻게 찾아가는 것입니까? 보이는 세상 것이 고난으로 말미암아 떨어져 나갈 때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이 우리 눈에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은 고난은 우리에게 적은 신앙을 허락해 주는 것입니다. 큰 고난은 큰 신앙과 헌신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죽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은혜 받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적은 은혜 받기 위한 사람은 적은 고난 체험하고 큰 은혜 받기 위한 사람은 큰 고난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크게 들어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고난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적은 그릇은 적은 고난을 큰 그릇은 큰 고난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야 하나님의 은혜가 그곳에 채워질 수 있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이 너무나 너무나 고난이 심하고 고통스러워서 고난을 면해 달라고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네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네가 약할 때 네가 강하여 진다고 말한 것입니다. 약해져야 의지하지요. 내가 강하면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습니다. 내가 약하니까 하나님께 의지하지요. 내가 강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약하니까 기도하지요. 내가 답답하면 기도하지 마음이 평안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내가 슬프니까 기도하지 기쁘면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고난은 우리에게 나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되다는 것을 알고 고난당할 때 원망하고 탄식하고 불평하지 말고 기도하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주께 기도하라. 기도하면 반드시 주님께서는 고난의 반대 급부로써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 보다 더 깊은 영광을 얻게 되고 신앙이 깊어지고 더 행복해지고 더 놀라운 영광을 얻게 되고 세상을 이기게 되고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특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론>
현세는 눈에 보이나 천국은 우리 안에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 유혹을 받고 끌려갑니다. 그러나 고난은 눈에 보이는 세계가 허물어지고, 허무한 것을 깨닫게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주목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잠깐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영원한 것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영혼은 영원하고 육체는 잠깐입니다. 7~80이면 허물어지는 것입니다. 영원히 천국에 가든지 지옥에 가는 것은 여러분 눈에 안 보이는 속에 있는 영혼인 것입니다. 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깊어지기 위해서는 깊이 기도해야 되고 깊이 믿어야 하고 깊이 헌신해야 되는데 이렇게 하는데 도와주는 것이 고난의 손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아무도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고난은 육체가 괴롭기 때문에 다 싫어하고 피하지만 고난을 통해야 육체가 깨어지고 육체 속에 있는 영혼이 살아나고 하나님 찾아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당할 만한 고난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너무 고난이 심하면 낙심해서 무너질 수도 있사오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정도를 따라서 고난을 감당할 만하게 허락하여 주셔서 신앙이 성장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적은 고난 밖에 감당하지 못할 사람은 적은 고난만 주시옵소서. 큰 고난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큰 고난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고난의 끝은 향상한 신앙이요, 헌신이요. 영광이요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위로요, 은혜의 체험이 되는 것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적을 허락하여 주신 아버지 하나님, 고난 받을 때 구하면 기적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고난당하는 형제, 자매들이 많이 왔는데 우리 아버지 앞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서 고난에서 건져 주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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