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갈라디아 › 주님 안에 사는 자

최장환목사 | 2010.01.23 05:47:4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갈2:11-21
설교자
최장환 목사
참고
http://cafe.daum.net/smbible/5JQI/252
갈2:11-21 주님 안에 사는 자

미국의 최초의 국무장관이 된 사람이 흑인 클린파월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언제나 흑인이라는 헨디켑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항상 긍정적인 사고방식 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불우한 환경 속에서 살다 보니까
젊었을 때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고 노동자로 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공장에 또랑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어떤 한 사람은 임금을 조금 준다고 계속 불평을 하면서
일을 했다 안했다 그렇게 하더랍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계속해서 열심히 일을 하더랍니다.
그리고는 몇년 후 그곳에 가서 또 일을 하는데
전에 불평했던 그 사람은 불평만 하고 또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만 계속 하더랍니다.
그런데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사람은 그 때 가니까
지게차 운전을 하고 있더랍니다.
그리고 다시 2, 3년 후 다시 또 그곳을 아르바이트 하려고 갔었는데 그 때 가서 봤더니
전에 불평했던 사람은 어떤 원인 모르는 병이 들어 해고 되어 없었고
전에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사람은 사장이 되어 있더라고 하면서
그것을 자기가 인생의 본보기로 삼았다고 합니다.
어떤 환경이라도 불평하지 않고 그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 안에서 그 일을 감당할 때 어느 때인가는 저런 사장 되는구나 라는 그런 속에서
늘 환경 탓하지 않고 흑인이 왜 되었는가 그것도 탓하지 않고
어느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 해서 일을 했더니 별 네 개도 달고
합참 의장도 되었고 국무장관까지 올라가서
아주 성공의 본보기로 미국에서 인정해 준 사람이 클린파월 흑인 국무장관 이였습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우리 앞에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앞길이 전혀 달라집니다.
그래서 그 일에 불평만 계속하고 있으면 아무 것도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올 것이 왔구만! 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것을 받아드리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주님 안에서 일을 할 때
어느 때인가는 귀한 열매가 맺어질 줄 믿습니다.
히랍의 철학자 키케로는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최고의 미덕일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미덕의 어버이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그런 일이다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우리 앞에 있는 여러 가지 현실 속에서
 그것을 감사로 그냥 받아들이고
주님 안에 머물면서 주님이 나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하는가 라는 속으로 가다 보면
결국 가장 크고 귀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하면서 복음에 귀한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설명을 하고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먼저 베드로가 여기에는 게바라고 나와 있는데
베드로가 수리아 안디옥에 가서 이방인들과 같이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야고보가 예루살렘교회에 감독이었는데
그 쪽에서 오는 사람들이 오니까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같이 있었다고 할까 싶어서
밥을 먹다가 슬그머니 나가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베드로를 따라 나가 버렸는데
그것을 바울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책망을 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라고 설명을 하면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모양내는 것이다.
그것은 모순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그리스도를 믿는 그때부터 율법에 대해서는 나는 죽었다.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래서 율법은 다 지킬 수는 없지만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려고
지금까지 애를 쓰고 있다고 이 바울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오늘 본문에 내용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예수 믿습니다라고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또 모양을 내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형식을 갖추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에게 우리 주님께서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우리 주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주님이 원하시는 그 안에 살면서 주님에게 정말로 헌신하고
주님에게 충성을 다하며 사는 그 사람은
나중에 보면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 밖에서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는 것하고
주 안에서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내가 이루려고 하는 것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로 큰 차이가 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본문을 통해서 어떻게 주 안에 사는 자가 되어야 되는지
오는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12절 13절입니다.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어떻게 주님 안에 살아야 되느냐면
첫 번째는 주님께 인정받으려고 애를 써서 주님 안에 사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지금 1절에 보면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었을 때 이 안디옥은 수리아 안디옥입니다.
책망할 일이 있기고 저를 면책했다.
면전에서 책망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설명을 합니다.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예루살렘교회에서 그곳에 왔는가 봐요.
그런데 그때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오니까 그들을 두려워해서 떠나서
이방인과 같이 안 먹었다고 하려고 슬그머니 빠져 나가니까
13절 보면 남은 유대인들도 외식했다고 그랬습니다.
베드로를 따라가고 거기에 또 누가 있었느냐 하면은
바나바도 그곳에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외식하므로 유혹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14절에 그러므로 나는 이 바울은 게바에게 책망을 합니다.
뭐라고 책망을 하느냐 하면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쫓고
유대인답게 살지 않으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고 그려느냐 라고 책망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 여기에 이 베드로는 누구를 의식했습니까?
사람을 의식했습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 슬그머니 밥 먹다가 유대인들이 오니까
그렇지 않는 사람이라고 보이려고 슬그머니 빠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인정받으려고 애를 써서 주님 안에 사는 자가 되어야 하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 할 때에 우리는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모습을 보이고
거룩한 형상으로 거룩한 어떤 모습으로 거룩한 어떤 말로 거룩한 어떤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것
그것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한 것 우리가 행동하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
우리 주님은 다 보시고 비디오를 다 찍는다고 우리는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다 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무시지도 않고 다 보시고 계신다란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을 의식해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어떤 외형적인 모습을 보여도

하나님은 그것은 하나도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인정받으려고 애를 애를 써서 주 안에서 사는 자가 되어야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여기서 바로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 주님에게 마음도 드리고 몸도 드리고 우리의 삶도 다 드리고
정성도 드리고 믿음도 드려서 우리 주님에게 인정받으려고 애를 써서
주님 안에서 사는 자가 되어야지
모습으로 보이고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하려고 대접받으려고 하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오늘 여기서 애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식해서
바로 그 주님에게 인정받으려고 애를 써서 주님 안에 사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로 여기서 바울은 그렇게 말을 합니다.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려느냐? 하나님에게 좋게 보이려고 그려 하느냐?
자기가 만약 사람에게 좋게 보이려고 했다면 자기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지금 애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주님께 인정받으려고 애를 써서 주님 안에 사는 자가 되었듯이

우리도 날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주님에게 드려져서 주님에게 인정받으려고 애를 써서
주님 안에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비느하스라고 하는 사람은 엘르아살의 아들인데요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민수기 25장에 보면 싯딤에서 두 남녀가 간음하며
또 염병이 들어서 사람들이 많이 죽고 있는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서
간음하는 두 사람의 배를 뚫어 죽여서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제사장 직분을 주겠다고 비느하스를 하나님이 칭찬을 하십니다.
비너하스는 주님께 인정받으려고 애를 써서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이였습니다.

우리도 살아 갈 때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주님이 뭘 기뻐 하시는가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므로
우리가 주님 안에 살아서 주님이 우리를 보실 때
정말로 대견스럽고 우리 주님이 보실 때에 우리를 칭찬할 만한
주님께 인정받으려고 애를 써서 주님 안에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16절 17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두 번째는 주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기억해서 주님 안에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바울은 그렇게 말합니다.
16절에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율법을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16절 하반부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되는 것은 창세기 15장에서 의롭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해서 의롭게 되질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하는 것은 그 다음에
17장에 할례를 받는 것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출애굽기 20장에 아브라함 이후에 몇백년 있다가 율법이 나옵니다.
그려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느냐 아닙니다.
행동을 해서 네기 의롭게 되느냐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행위로서 의로움을 받으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해서 내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주님이 벌써 우리가 전에 과거에 지은 죄
또 지금 지은 죄 앞으로 지을 죄까지도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시므로 그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내가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의롭게 되려고 내가 무엇인가를 자꾸 지켜서 할려고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요.
우리가 아무리 율법을 다 지키려고 해도 율법을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죄인 자체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그 죄 때문에
우리 대신 그 죄 값을 짊어지고 죽으셨다는 것을
내가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 내가 열심히 내가 주님의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나에게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고
내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전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기억하는 주님 안에 사는 자
그 사람은 정말로 하나님 가슴에 기억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먼저 율법을 이해하고 그 다음에 복음으로 갔다가
그 다음에 율법으로 가서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에게 내가 죽어 주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했는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써
우리 주님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려 내 죄 값을 받으시고
죽으신 것을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이것을 기억하므로 우리 주님 안에 살아서
그렇게 우리가 신앙생활 하므로 그 다음에는 그것이 내가 깨달아지고
이해가 되어 지면은 그 다음에는 내가 열심히 하나님이 원하는 그런 삶을
우리가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베풀어 준 그 은혜를 믿음으로 기억하지 못하고
그것을 내가 깨달지 못하고 내가 율법을 지키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기억해서 주님 안에 사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께서 나 같은 자에게 베푸신 은혜는
나는 지혜가 없지만 그 분은 지혜가 되셨고
나는 불의 하지만 그 분은 의로움이 되셨고
내가 영원히 죽어아 할 자리에 그 분이 대신 죽으시고 나를 살리셨다는
그 사실을 깨달을 때 그것이 내 안에서 이해가 되어 지면
주님을 위해서 일 하지 말라 해도 일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날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 속에서 우리 주님이 나에게 베풀어 준
그 은혜를 믿음으로 늘 기억해서
주 안에 사는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이 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
내가 무엇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을 하고
바로 그 주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기억해서
주님 안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은 창세기 45장에 형들에게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형들이여 내가 이리로 온 것은 형들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어요.
요셉은 형들에게 팔릴 때만 해도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엄청나게 힘들어 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런다고 형들이 나를 팔어!
채색옷 입고 아버지로부터 가장 대접을 많이 받고 있는 요셉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종 살이로 하고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고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쳤습니까
13년 후에 국무총리가 되고 나중에 형들을 만났습니다.
그때에 요셉이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형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전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요셉이 날마다 살아가며 감옥 속에 억울함 속에 있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 것입니다.
떡 맡은 관원장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났을 때
그것을 통해서 바로를 만날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전혀 전혀 상상도 못한 그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해서 펼쳐졌거든요.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고 그 사람을 통해서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고 국무총리가 될 줄을 누가 알았어요!
이것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바로 이 요셉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든 삶에서 일어난 일 들을
또 우리 주님의 그 은혜를 믿음으로 기억해서 주님 안에 살아서
정말로 주님의 기쁨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19절 20절입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어떻게 주님 안에 사는 자가 되어야 되느냐면
세 번째는 옛 생활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서 주님 안에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바울은 그렇게 말합니다.
19절에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
전에는 스스로 의롭게 되려고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율법으로부터 그것을 지키려고 하지 않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율법을 지킬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깨닫고 나는 율법을 지키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나는 살려고 할 꺼야.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기 때문이다.
그런즉 내가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내가 사는 거야.
내가 율법을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죄인을 만드는 법입니다.
율법이 있어야 예수가 필요하고 예수가 있어야 의롭게 되고
의롭게 된 그 사람은 날마다 성화 되어져 가며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봉사하는데
옛 생활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옛 생활이란 것은 내가 주님을 제대로 알기 전에 내 고정관념이요
내 생각이요 내 삶 그 자체를 이야기 합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것 그것을 옛 생활이라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를 깨달고 나면은 그 옛 생활은 다 뒤로 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우리 주님을 위해서 우리 주님 것이 되어서
이렇게 주님 안에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될 것을
우리에게 지금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 생활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우리 주님이 원하는 그 일을 하다가
주님 안에서 사는 귀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우리 주님의 제자가 되려고 하면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쫓아오라고요.
자기를 향해서 살지 않고 주님을 향해 살아라고요
주님 것이 되어서 살라고요.
주님을 위해서 살라고요.
옛 생활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살라고 그렇게 여기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든 삶에서도 나의 옛 생각을 다 못 박아 버리고
내 생각을 다 한강물에 다 내쳐 버리고 나의 옛 삶을 나의 옛 행동을
내가 지금까지 나를 위해 살아 왔던 모든 것들을 다 청산하고
새롭게 내가 살아가는 주님 안에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가라고 하는 사람은 바울하고 1차 전도여행에 동행했던 그런 사람 이였습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 입니다.
마가와 바나바와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을 갔는데
버가 쪽에 가다가 마가는 너무나 힘들어서 그냥 돌아와 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가 목표이니까 그래요.
주님의 목표라면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가 힘드니까 그냥 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마가는 나중에 디모데후서 4;11에 보면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나에게 유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2차전도 여행 때 마가를 데리고 가지 않았던 바울이였는데
바울이 죽음 직전에 말할 때는 바울이 인정을 했습니다.
바로 이 마가는 옛 생활을 다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주님 안에 살아서 바울에게 인정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인정받지 못하다가 나중에 인정받은 사람이 바로 이 마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옛 생활을 십자가에 박지 못하고
내가 목표가 되고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내가 무엇인가를 되려고 하는
옛 생활을 다 청산하지 못했다고 하면
오늘이라도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서 나의 생각도
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듯이 다 박고
우리의 생각 삶 모든 생활을 우리 주님 십자가에 다 못을 박고
2010년도에 새롭게 우리가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정말로 귀한 사람이 되어서 귀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 밖에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 안에서 살아야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첫 번째는 주님께 인정받으려고 애를 써서
두 번째는 주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기억해서
세 번째는 옛 생활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서 주님 안에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즉 날마다 우리 주님에게 인정받으려고 애를 쓰고
주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기억하며
옛 생활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서
주님 안에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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