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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기 원장 | 2010.05.20 00:13:36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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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자녀교육은 무엇이 문제인가?

장만기원장 한국인간개발원

 

인류 역사의 시작은 가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 중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에는 인간이 요구하고 있는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불만이 있을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생활은 즐거운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난 후에는 감시하는 대상으로 바뀌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에덴동산은 인간을 축출하고,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에는 에덴 동산을 탈출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를 멀리 떠난 자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인류의 역사는 에덴에서 시작되었고 이것은 곧 가정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가정교육은 무엇이 문제인가?하는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매우 급변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에는 다이아몬드로 가치 있었던 것이 내일은 먼지로 화해버리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간의 변화를 새롭게 연구하고 이런 고민스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그런 시기에 있습니다.

최근에 [제3의 파동]을 지은 앨빈 토플러는 책에서 말하길 인류가 겪은 제1의 파동은 B.C.8,000년에서 A.D. 1,650년까지 약 1만년에 걸쳐서 있었습니다. 인류는 농업혁명을 일으킴으로써 현대에 살고 있는 형태의 인간으로 성장 되었다는 것입니다. 1,650년부터 1,950년까지 300년의 기간을 앨빈 토플러는 제2의 파동이 일어난 시기라고 했습니다. 1만년이 300년으로 줄어들어서 그에 특별히 18세기에 영국에서 일어났던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공업화를 통해서 인간이 노동을 덜 하고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공업사회를 이룩했습니다. 그후 1,950년 중엽부터 컴퓨터와 대형제트기,인공위성을 비롯한 문명의 이기들이 등장 되면서 인류는 놀라운 변화가운데 1,980년을 맞았으니 1,950년에서 1,980년은 30년입니다. 이 30년간에 선진국은 물론 모든 개발도상국가까지도 인공위성과 컴퓨터등 모든 문명의 혜택을 입어서 고도의 공업국가로 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1만년 동안 서서히 변화되었던 농업시대의 사고방식이 지금은 불과 30여년만에 전 세계가 고도의 공업화를 이루려는 그런 사고를 가지고 살려고 할 때, 우리는 정신병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싸움은 더 심각해지며 부모오 아이들의 세대간의 차이는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을 이유 없는 반항기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그들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여기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현대의 가정을 한 시인은 이렇게 풍자하였습니다.
[즐거운 나의 집이라고 옛 시인은 노래했으나 지금은 정류장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오. 먹기 위해서,잠자기 위해서 그리고 달리기 위해서 정류장에 잠시 들르게 되었네.사무실도 영화도 클럽도 데이트도 더 이상 가족과 즐길 수 없게 되었다오]

이린 詩는 오늘날 현대가정이 정거장화,하숙집화 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을 지켜야 할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은 잃어버리고 한갖 나그네들이 잠시 머물러 가는 정류장으로 화하고 있는 그런 실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단란하게 살았던 풍요한 에덴의 생활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오늘과 같은 가정의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바벨탑을 쌓아 보았으나 거기엔 혼란만이 있었습니다. 인공위성을 만들고 전자회로를 사용해서 에너지를 공급하고 합성식품을 만들어서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인류의 진정한 문제는 에너지나 식량, 인구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포드의 재단 책임자인 하친스 총제가 말하기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큰 문제는 도덕적인 문제이며, 지적인 문제이며,정신적인 문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도의 공업화로 말미암아 상품이 홍수와 같이 범람하여 냉장고,세탁기 외에도 기발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가전제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점점 가난 속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과거에 논밭을 갈며 살았던 선조들이 누리던 그 행복을 전혀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의료산업과 의학약품의 발명에 의하여 사망률이 점점 줄어듬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 긴 생을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전쟁을 싫어하면서도 전쟁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 문제나 경제개발,공업화 문제가 아니고 도덕적이며 지적이며 영혼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대개 경제문제가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아담과 이브의 가정이 파산된 것처럼 마땅히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가정이 하나님을 내쫓고 살겠다고 하니까 가정의 붕괴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말하기를 [가정에는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 사랑은 사닥다리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닥다리는 긴 두 개의 장대와 장대를 연결하는 작은 가로 막대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개의 장대는 사랑하는 두 연인의 관계이며 가로 막대기는 두 연인의 사랑의 관계를 말합니다. 가장 낮은 막대기는 육체적인 사랑이며 가장 높은데 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고차원적인 것으로 그 안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국가와 사회를 사랑하는 마음 등 모든 것들이 전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 수많은 가로 막대기를 거쳐야 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간직하고 있는 사랑이 하나로 연결되어 모든 사건들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요즘은 아버지와 어머니,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끊어짐으로 그 사이에 있는 많은 문제들이 전부 아이들의 문제로 화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좋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러한 문제를 제기 시키면서 하나님이 인류를 이 땅위에 보내신 역사와 그 경륜을 통해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문제들을 중심으로 인간개발이라고 하는 차원에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서구의 문명이 몰락되어 가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얼마 전 신문지상에 미국은 가정생활을 떠나 비가정생활을 하는 인구가 23%에 육박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건국 초기의 미국은 500쌍이 결혼을 하면 1쌍이 이혼을 했는데 1,810년경에 와서는 약 110:1로 가속화 되었으며 최근 통계에 의하면 두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이 이혼한다는 심각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아무리 방대한 자원과 청교도들이 깨끗한 나라로 건설하였지만 가정이 파괴당하는 한 미국은 건전할 수 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베트남 전쟁 때 그 막대한 군비를 투입하고도 패배했으며 최근에는 미국이 세계의 지휘권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카터의 도덕 정치도 빛을 보지 못한 채 백악관의 무대에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과거 200년간의 찬란했던 문화와 위력은 사라지고 많은 나라들이 반미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서 그 지도력이 상실과 함께 도전받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두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이 이혼하는 이들의 파괴적인 가정현상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민소득이 2,000불을 육박하고 있어 경제개발이 이룩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나 문제의 발단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가정들은 과거의 전통적인 가정을 상실했으며 출세와 권력,명예를 위주로 자식들을 교육시켜 부모 자신이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영광을 자식을 통해 해결해 보겠다는 이기주의에 의해 청소년들이 범죄의 집단으로 화하고 있으며 국가는 이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볼때 우리의 가정문제를 선진국에 비교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가정이 파탄되고 그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무너진 가정을 생각케 하며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은 타락하기 이전의 건전한 가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의견충돌이 생기고 예의를 벗너나 불만이 싹틀지라도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고 서로의 의견을 조정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신 가정은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면 아담과 이브가 먹지 말라고 명령한 실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축출되고 그 죄의 댓가로 아담에게는 종신토록 수고하어야 그 소산을 먹으며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이브에게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시므로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남편을 사모해야 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린 저주이며 비극적인 일이지만 더 큰 하나님의 경륜에서 생각한다면 인간이 자식을 낳아 같이 살다가 독립된 인격을 갖추게 되면 결혼을 시켜 분가하는 것처럼, 인간이 에덴동산의 요람에서 사는 것도 좋지만 참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 모진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신 성숙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귀중한 것을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구체적인 실체는 어머니가 아기를 낳고 완전히 성장해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때까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아버지의 보살핌이 없으면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 인간이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특별히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해산의 고통을 주셨고 이 고통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지극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영국의 문호 세익스피어는 말하기를 [여성은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여성이 사랑을 하기 때문에 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인류의 문명은 어머니 때문에 지탱되고 있으며 또한 가정의 건전화도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세의 어머니나 사무엘의 어머니,한나의 어머니 그리고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등에 헤아일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이 인류의 위대한 인물들을 낳아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능히 이해가 가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가치있는 한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하는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버를 주실 때,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으라고 분명히 성경에 말씀하셨는데 인간은 땀을 흘리지 않고 댓가를 받으려 하는데서 비극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산업현장에서는 고용자와 피교용자의 항쟁이 그치지 않고 있으며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업에서는 인력이 남아 돌고 있어 심각한 국가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아담과 이브의 가정은 파괴되고 땀을 흘려야 한다고 하신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어긴 인간에게는 이처럼 어려운 문제에 당명하게 되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얼굴에 땀을 흘린 댓가로 먹고 살아야 된다고 하셨는데 땀 흘리지 않고 수고하지 않으며 편하게 돈 벌어서 으시대며 살겠다는 인간들 때문에 사회는 혼란의 소용돌이 가운데 맴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땀을 흘러야 살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은 위대한 교훈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어머니의 해산하는 고통에서 이미 증명된 그 숭고한 사랑과 아버지의 땀 흘리는 수고와 노력이 결합되어 하나님을 모시는가운데 자녀들의 교육이 이루어 질때 그 아이는 국가의 재원이 되며 평화의 사도가 되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역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를 자기의 소유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으나 성경 말씀중 시편 127:3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식물도 씨앗 속에서 싹이 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 목적이라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태어나 자기 자신을 살려야겠다는 것은 기본적인 인간의 욕망인 동시에 권리며 의무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런 중대한 책임이 어머니에게 주어졌는데 이것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못할 때 청소년 자녀들의 범죄는 엄청난 속도로 가속화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국가가 정한 법의 범법행위를 하지 않아서 교도소에 가지 않았을 뿐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두 이 사회를 산란하게 만들고 병들게 하는 공범자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그 숭고한 사명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녀들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자녀 한 사람을 맡았으면 자기의 최선을 다해서 키워야 합니다. 성경의 달란트를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 가진 자가 장사를 잘해서 열 달란트를 남겨 주인에게 갖다 주었을 때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큰 일을 맡기겠다]고 하였습니다.자녀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거나 과거에 자신이 못다한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 청순한 청소년들의 가슴에 못을 박아 아프게 만들어 놓으니 병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녀를 교육할 때에는 진실된 사랑과 따뜻한 훈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어머니는 한 아들을 낳아 흑인노예 해방을 시켰으며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보잘것 없는 유랑민족인 모세의 어머니는 아들을 잘 키워서 민족의 영도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품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세계의 평화와 인류를 위해, 풍전등화격인 국가를 위해,혼란과 흑암 속에 있는 사회의 질서를 위해 그 세대가 부를 때 보내야 할 사람을 기르고 있다는 것을 부모는 새롭게 각성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자녀를 위대하고 훌륭한 인물로 키우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공통된 심정입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눈이 밝아져 선악을 분별하는 문제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낳고 땀 흘리는 수고를 해야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그 일이 잘 수행될 때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사랑함으로써 참 인간을 만들 수 있는데 나는 못 배우고 나쁜 사람이었지만 너만은 훌륭하게 되라고 할때 자녀들에게는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청소년의 모든 문제의 공범자는 다름아닌 부모들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든,자녀든 한 생활의 일원이며,가정이라는 인류 최초의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각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생활습성과 인격을 갖출 때만이 올바른 인간구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시한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고 하시면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인간에게 말씀하셨으며 참 인간이 되는 길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기 때문에 참다운 인간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부모는 분명히 모범적으로 보여줘야 되는 것입니다.아이들에게 부모의 인격을 완전히 보여서 외모뿐만 아니라 부모의 성격과 인생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닮게 할 때,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에게 보여주는 참된 인간성이며 올바른 교육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인간의 조건을 요약해서 말씀드린다면

첫째,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입니다. 나의 정신력이 약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으며 미래에 다가올 영광도 볼 수가 없으므로 인내력이 약해집니다. 기쁜 일을 당하거나 슬픈 일을 당했을 때, 그후에 올 여러가지 영광스러운 일을 내 눈으로 볼 수 있을 때, 오랫동안 참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신력을 통해서 당신께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만큼 정신력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인간은 지적인 존재입니다. 현대사회는 너무나도 급변하고 컴퓨터의 등장과 더불어 지식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 지식을 어떻게 흡수해야 되겠습니까? 이것은 영어,수학시험 잘 받아서 일류대학에 입학한다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면서부터 미치기까지 계속 연구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부모,자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째,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갖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로 태어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사회 속에서만이 성장할 수 있고 사회 속에서만이 인간으로서 자기 실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대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7-39)는 이 사회적인 명령에 순종하여 살 때 하나님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이웃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이들을 위한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베풀어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새롭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네째,인간은 건강을 가진 존재입니다. 과거에는 머리카락이나 손톱 하나 상해도 부모에게 불효라 생각하여 소중히 다루었는데 요즘은 자살하는 사람도 많고 자기 몸에 해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마약,몰핀 등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를 미워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든 최고의 걸작품을 아낄 줄 모르는 현대인은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이며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나다운 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을 사랑하고 아끼며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온유한 심정으로 살아갈 때 형성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살려고 할 때, 영적인 건강뿐 아니라 육적인 건강도 더욱 좋아지는 것입니다.

다섯째, 인간은 가정적인 존재입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서 으시대던 사람도 가정이 파탄되면 이 모두가 허물어지고 맙니다. 인류의 역사가 가정에서 시작되었듯 인간의 모든 출발은 가정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머물러 계셔서 가족상호간에 화목하고 인격을 존중해 주며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지상낙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뜻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바지하며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뜻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역할에 있어 특히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권위와 어머니의 자애로운 사랑입니다. 가족이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서로를 키워주며,아껴주고 양보할 때,하나님의 나라가 형성되고 교회가 형성되며 가정이 형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일류학교를 가고 좋은 옷을 입으며 혹은 명예를 얻어서 사는 것이 잘 되는데 아니라 어떤 세파가 불어와도,누구에게 내 놓아도,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지적,경제적,건강에 있어 빠짐이 없는 온전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챤의 삶에 대한 자세입니다. 해산하는 고통과 땀 흘리는 수고를 통하여 정말 즐거운 나의 집을 만들며 하나님을 모신 새로운 에덴동산을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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