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1,157
.........
허무의식과 탕자의 비극
쇼펜하우어는 잃어 버린 탕자의 집에서 태어난 하나의 전도자입니다. 구약의 솔로몬의 전도서가 쇼펜하우어의 염세 철학과 맞먹을 수가 있읍니다. 만일에 솔로몬에게서 하나님을 뽑아 버린다면 '헛되고 헛되며 헛 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시작한 전도서가 쇼펜하우어의 (생의 의지)의 비유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현대의 청년들로 하여금 하루속히 쇼펜하우어 같은 허무 의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로 전환한 사랑의 추적을 하도록 해야 하겠읍니다. 이 허무 의식이 없을 때에는 한 번도 인생에 대한 반성을 해보게 되지 않습니다. 지하도를 가다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그 층층대 위에서 갑자기 자기에게 덮쳐 오는 허무에 사로잡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로 갈 것인가'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쇼펜하우어적인 허무를 깊이 체험하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부르지 못할 것입니다.
이 쇼펜하우어는 현대의 교만과 현대인의 착각과 현대인의 허위와 현대인의 값싼 낙관주의를 철창으로 질그룻을 때려 부수듯이 산산이 깨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생의 의지의 비유 속에 이런 이야기가 있읍니다. 자바섬의 해변가에는 거북이가 해마다 돌아와서 모래 사장 깊숙이 알을 수십 개씩 낳습니다. 이때 숨어 있던 들개들이 달려들어 거북이를 뒤집어서 꼼짝 못하게 해놓고 거북이의 창자를 내어 먹습니다. 등에 두꺼운 딱지가 붙어 있으니까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모래 사장에는 거북이들의 시체가 에스겔서 골짜기의 해골 떼처럼 가득하게 됩니다. 이 비유를 들어서 쇼펜하우어는 묻고 있읍니다. '삶의 의지는 누가 만들었는가? 잡아먹기 위해서 있는 것인가? 잡아먹히기 위해서 있는 것인가? 저러한 일이 삶의 의지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들개도 먹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며,이 거북이도 삶의 의지 속에서 그런 것이라면 생의 의지의 비극이 아닌가? 먹히기 위해서 태어난 것, 또한 잡아먹기 위해서 태어난 것, 이 살육과 전쟁, 무서운 생존 경쟁, 이것이 인류의 역사가 아닌가?' 하고 그는 반문합니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 이 모든 생(生)의 현상 원동력은 맹목적인 삶의 의지, 비극의 의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적인 지옥의 탄식이 나옵니다. 쇼펜하우어는 단테의 지옥보다 더 창백합니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밑바닥 속에 흐르고 있는 탕자의 비극과 탕자의 절규를, 탕자의 깊은 탄식과 탕자의 비애를, 탕자의 불행과 탕자의 지옥을 발견해야 될 것입니다. (전 12:13∼14)
허무한 인생(21)
본문: 야고보서 4: 14- 16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태리 밀라노의 대성당에는 문이 3중으로 되어 있는데, 첫째 문은 아치로 되어 있으며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둘째 문은 “모든 고통도 잠깐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셋째 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이나 고통은 다 잠깐입니다. 전광석화와 같이 금방 지나갑니다. 인간은 영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생을 얻기 전에는 진정한 평안도, 행복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TV 연속사극을 보면 피바람을 일으키며 권력을 잡고 왕이 되고 정승이 되지만 잠깐 동안에 승자나 패자나 다 죽어 한줌의 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얼마 전 사극에 나온 궁예도, 견훤도, 왕건도, 그리고 대원군도 다 한줌의 흙이 되고 마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천하를 호령하던 이승만 대통령도, 박정희 대통령도, 돈 많던 이병철씨도, 정주영씨도 천 년, 만 년 살 것 같았지만 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시편 39편 6~7절에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린 전무후무한 사람입니다. 그는 눈으로 보는 것을 다 가졌고,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었고, 입고 싶은 것은 다 입고, 갖고 싶은 것은 다 가져본 사람입니다. 이런 삶을 살았음에도 그의 생애 마지막 고백은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는 어느 것도 든든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인간이란 바람처럼 흔들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청춘의 아름다움도 때가되면 들꽃처럼 시듭니다. 권력도, 명예도, 돈도, 건강도 세월의 위력 앞에서는 허무한 본질을 드러냅니다. 다윗은, 인생이 지혜롭게 살려면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종말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삶이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사실을 알고 산다는 것은 놀라운 지혜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나이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헤아려보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셋째로는 나의 연약함을 아는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안다는 것은 인생의 허무함을 안다는 것입니다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라는 책에는 바다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바다에서 많은 날들을 기다리다가 천신만고 끝에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그 물고기를 배에 매달고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건져보니 오직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상어떼들이 습격하여 물고기를 다 뜯어먹어 버렸던 것입니다. 노인은 심한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헛된 목표를 정하여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허무한 삶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가 일생을 바쳐 헌신한 일의 결과는 앙상한 물고기의 뼈와 같이 아무런 유익이 없을 뿐더러 허무하기까지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목숨을 걸고 직장과 사업터에서 생존 경쟁을 치르지만 그 결과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이런 헛된 세상적 목표를 향해 줄달음질 치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애씁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기 뜻과 자신의 목적대로 사는 인생은 결국 노인처럼 후회와 실망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삼상12:21)
셰익스피어가 말한 것처럼 삶은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다가 퇴장하는 시시한 배우입니다. 어떤 분이 인생을 계산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삶을 마칠 때까지 정지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는데 6개월, 광고 우편물을 열어보는데 8개월, 잃어버린 물건을 찾느라 이것저것을 뒤적이는데 1년반, 그리고 갖가지 이유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5년을 허비합니다.
창세기 5장에는 10고조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산(900세 이상)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낳고 낳았으며 죽었더라' 입니다. 900년을 살아도 이게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 중국의 한 현인은 우리의 삶을 다음의 세 가지 낱말로 요약했습니다.
서두름(hurry), 걱정(worry), 묻힘(bury)입니다. 시간은 쉬 지나고 인생에는 황혼이 닥칩니다. 아무 낙이 없다고 하기 전 하나님을 기억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추구하지 말고 영원한 길을 찾으세요.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시144:4)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에서 15년을 왕위에 있던 네로 황제. 그가 살던 왕궁은 복도의 길이만도 1마일이나 되는 호화찬란한 궁성이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었고 천정은 특별한 샤워장치가 붙어있어서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향수가 이슬처럼 포근히 뿌려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은 오늘날의 미국 돈으로 10만 달러가 넘는 것이었고, 그가 사용하던 노새와 조롱 말은 은으로 장식된 신발을 신겼습니다. 그가 한 번 정식으로 출타할 때면 천명 정도의 군사와 마차와 말들이 뒤따랐으며, 네로 임금이 낚시질을 할 때에는 금으로 만든 낚시 바늘을 썼다고 합니다. 값비싸고 좋은 옷이 너무나 즐비하게 많았기 때문에 한 번 입었던 옷은 두 번 다시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극치의 부귀영화를 다 누렸지만 네로 황제는 결코 행복하거나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네로 임금은 허무와 공포 가운데서 스스로의 생명을 끊는 자살로 일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생이란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잠21:6)
화무십일홍(化無十日紅)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 이상 그 자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네 인생의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절세가인일지라도 그 아름다움은 젊은 날의 순간이며 그 어떤 영웅호걸도 한때일 뿐입니다. 인생의 영광은 떨어지는 꽃과 같으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벧전 1:24)과 그 말씀대로 사는 성도(요일 2:17)입니다. 잠시 머무를 세상사람들과는 달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삶을 살며 그 가치를 지닌 존재들입니다. 순간의 즐거움을 떠나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영원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인생의 모습을 바르게 보고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나그네 길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저의 육신의 안락과 평안과 쾌락을 위해서만 물질과 시간을 들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죽음 이후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기억하고 지금 고통 당하고 있는 친척과 가까운 친구를 돌아보며 천국에 보화를 쌓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나의 입술을 정케하사 허탄한 자랑을 말게 하소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지 않기 원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이 땅의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등대교회 목사, 태릉고등학교 교사)
* 등대교회 주소: 서울시 중구 중림동 삼성 아파트 상가 2동(전철 2, 5 호선 충정역 하차 5번 출구)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주문: 전화: (02) 386-8660, 팩스(02)386-2961
교보문고, 영풍문고, 기독교 서점에서도 판매함
좋은땅 인터넷 http://www.g-world.co.kr
좋은땅 이메일 gworld@g-world.co.kr
전국서점총판/하늘유통(02)959-6478
인터넷 주문/http://www.lifebook.co.kr
쇼펜하우어는 잃어 버린 탕자의 집에서 태어난 하나의 전도자입니다. 구약의 솔로몬의 전도서가 쇼펜하우어의 염세 철학과 맞먹을 수가 있읍니다. 만일에 솔로몬에게서 하나님을 뽑아 버린다면 '헛되고 헛되며 헛 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시작한 전도서가 쇼펜하우어의 (생의 의지)의 비유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현대의 청년들로 하여금 하루속히 쇼펜하우어 같은 허무 의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로 전환한 사랑의 추적을 하도록 해야 하겠읍니다. 이 허무 의식이 없을 때에는 한 번도 인생에 대한 반성을 해보게 되지 않습니다. 지하도를 가다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그 층층대 위에서 갑자기 자기에게 덮쳐 오는 허무에 사로잡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로 갈 것인가'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쇼펜하우어적인 허무를 깊이 체험하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부르지 못할 것입니다.
이 쇼펜하우어는 현대의 교만과 현대인의 착각과 현대인의 허위와 현대인의 값싼 낙관주의를 철창으로 질그룻을 때려 부수듯이 산산이 깨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생의 의지의 비유 속에 이런 이야기가 있읍니다. 자바섬의 해변가에는 거북이가 해마다 돌아와서 모래 사장 깊숙이 알을 수십 개씩 낳습니다. 이때 숨어 있던 들개들이 달려들어 거북이를 뒤집어서 꼼짝 못하게 해놓고 거북이의 창자를 내어 먹습니다. 등에 두꺼운 딱지가 붙어 있으니까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모래 사장에는 거북이들의 시체가 에스겔서 골짜기의 해골 떼처럼 가득하게 됩니다. 이 비유를 들어서 쇼펜하우어는 묻고 있읍니다. '삶의 의지는 누가 만들었는가? 잡아먹기 위해서 있는 것인가? 잡아먹히기 위해서 있는 것인가? 저러한 일이 삶의 의지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들개도 먹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며,이 거북이도 삶의 의지 속에서 그런 것이라면 생의 의지의 비극이 아닌가? 먹히기 위해서 태어난 것, 또한 잡아먹기 위해서 태어난 것, 이 살육과 전쟁, 무서운 생존 경쟁, 이것이 인류의 역사가 아닌가?' 하고 그는 반문합니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 이 모든 생(生)의 현상 원동력은 맹목적인 삶의 의지, 비극의 의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적인 지옥의 탄식이 나옵니다. 쇼펜하우어는 단테의 지옥보다 더 창백합니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밑바닥 속에 흐르고 있는 탕자의 비극과 탕자의 절규를, 탕자의 깊은 탄식과 탕자의 비애를, 탕자의 불행과 탕자의 지옥을 발견해야 될 것입니다. (전 12:13∼14)
허무한 인생(21)
본문: 야고보서 4: 14- 16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태리 밀라노의 대성당에는 문이 3중으로 되어 있는데, 첫째 문은 아치로 되어 있으며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둘째 문은 “모든 고통도 잠깐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셋째 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이나 고통은 다 잠깐입니다. 전광석화와 같이 금방 지나갑니다. 인간은 영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생을 얻기 전에는 진정한 평안도, 행복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TV 연속사극을 보면 피바람을 일으키며 권력을 잡고 왕이 되고 정승이 되지만 잠깐 동안에 승자나 패자나 다 죽어 한줌의 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얼마 전 사극에 나온 궁예도, 견훤도, 왕건도, 그리고 대원군도 다 한줌의 흙이 되고 마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천하를 호령하던 이승만 대통령도, 박정희 대통령도, 돈 많던 이병철씨도, 정주영씨도 천 년, 만 년 살 것 같았지만 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시편 39편 6~7절에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린 전무후무한 사람입니다. 그는 눈으로 보는 것을 다 가졌고,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었고, 입고 싶은 것은 다 입고, 갖고 싶은 것은 다 가져본 사람입니다. 이런 삶을 살았음에도 그의 생애 마지막 고백은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는 어느 것도 든든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인간이란 바람처럼 흔들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청춘의 아름다움도 때가되면 들꽃처럼 시듭니다. 권력도, 명예도, 돈도, 건강도 세월의 위력 앞에서는 허무한 본질을 드러냅니다. 다윗은, 인생이 지혜롭게 살려면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종말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삶이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사실을 알고 산다는 것은 놀라운 지혜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나이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헤아려보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셋째로는 나의 연약함을 아는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안다는 것은 인생의 허무함을 안다는 것입니다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라는 책에는 바다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바다에서 많은 날들을 기다리다가 천신만고 끝에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그 물고기를 배에 매달고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건져보니 오직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상어떼들이 습격하여 물고기를 다 뜯어먹어 버렸던 것입니다. 노인은 심한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헛된 목표를 정하여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허무한 삶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가 일생을 바쳐 헌신한 일의 결과는 앙상한 물고기의 뼈와 같이 아무런 유익이 없을 뿐더러 허무하기까지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목숨을 걸고 직장과 사업터에서 생존 경쟁을 치르지만 그 결과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이런 헛된 세상적 목표를 향해 줄달음질 치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애씁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기 뜻과 자신의 목적대로 사는 인생은 결국 노인처럼 후회와 실망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삼상12:21)
셰익스피어가 말한 것처럼 삶은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다가 퇴장하는 시시한 배우입니다. 어떤 분이 인생을 계산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삶을 마칠 때까지 정지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는데 6개월, 광고 우편물을 열어보는데 8개월, 잃어버린 물건을 찾느라 이것저것을 뒤적이는데 1년반, 그리고 갖가지 이유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5년을 허비합니다.
창세기 5장에는 10고조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산(900세 이상)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낳고 낳았으며 죽었더라' 입니다. 900년을 살아도 이게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 중국의 한 현인은 우리의 삶을 다음의 세 가지 낱말로 요약했습니다.
서두름(hurry), 걱정(worry), 묻힘(bury)입니다. 시간은 쉬 지나고 인생에는 황혼이 닥칩니다. 아무 낙이 없다고 하기 전 하나님을 기억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추구하지 말고 영원한 길을 찾으세요.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시144:4)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에서 15년을 왕위에 있던 네로 황제. 그가 살던 왕궁은 복도의 길이만도 1마일이나 되는 호화찬란한 궁성이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었고 천정은 특별한 샤워장치가 붙어있어서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향수가 이슬처럼 포근히 뿌려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은 오늘날의 미국 돈으로 10만 달러가 넘는 것이었고, 그가 사용하던 노새와 조롱 말은 은으로 장식된 신발을 신겼습니다. 그가 한 번 정식으로 출타할 때면 천명 정도의 군사와 마차와 말들이 뒤따랐으며, 네로 임금이 낚시질을 할 때에는 금으로 만든 낚시 바늘을 썼다고 합니다. 값비싸고 좋은 옷이 너무나 즐비하게 많았기 때문에 한 번 입었던 옷은 두 번 다시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극치의 부귀영화를 다 누렸지만 네로 황제는 결코 행복하거나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네로 임금은 허무와 공포 가운데서 스스로의 생명을 끊는 자살로 일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생이란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잠21:6)
화무십일홍(化無十日紅)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 이상 그 자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네 인생의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절세가인일지라도 그 아름다움은 젊은 날의 순간이며 그 어떤 영웅호걸도 한때일 뿐입니다. 인생의 영광은 떨어지는 꽃과 같으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벧전 1:24)과 그 말씀대로 사는 성도(요일 2:17)입니다. 잠시 머무를 세상사람들과는 달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삶을 살며 그 가치를 지닌 존재들입니다. 순간의 즐거움을 떠나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영원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인생의 모습을 바르게 보고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나그네 길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저의 육신의 안락과 평안과 쾌락을 위해서만 물질과 시간을 들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죽음 이후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기억하고 지금 고통 당하고 있는 친척과 가까운 친구를 돌아보며 천국에 보화를 쌓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나의 입술을 정케하사 허탄한 자랑을 말게 하소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지 않기 원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이 땅의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등대교회 목사, 태릉고등학교 교사)
* 등대교회 주소: 서울시 중구 중림동 삼성 아파트 상가 2동(전철 2, 5 호선 충정역 하차 5번 출구)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주문: 전화: (02) 386-8660, 팩스(02)386-2961
교보문고, 영풍문고, 기독교 서점에서도 판매함
좋은땅 인터넷 http://www.g-world.co.kr
좋은땅 이메일 gworld@g-world.co.kr
전국서점총판/하늘유통(02)959-6478
인터넷 주문/http://www.lifeboo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