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나사로

복음............... 조회 수 418 추천 수 0 2004.12.24 00:5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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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나사로

본문: 누가복음 16:19- 31, 2001. 4. 1일 중고등부 예배설교

오늘은 예수님의 비유로 하신 말씀 중에서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어느 곳에 한 부자가 있어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를 베풀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는 거지가 헌데 투성이가 되어 누워 있으면서 부잣집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 하였습니다. 나사로는 상처가 심했으나 싸맬 형편도 못되어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심지어 개들까지도 와서 헌데를 핥았습니다. 개는 주인이 싫어하는 사람을 내쫓는데 개까지도 불쌍하게 여길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처참한 광경입니다. 어느 날 이 거지는 죽어 천사들에게 이끌려 아브라함의 품으로 가게 되었고, 부자도 죽어서 땅에 묻혔습니다.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부자는 음부 하데스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보니 멀리 아브라함의 품에 세상에서는 자기 집 문 앞에서 빌어먹고 살던 거지 나사로가 있지 않겠어요? 우리는 이 비유 속에서 먼저 심술궂은 부자와 경건한 거지를 발견합니다. 여기서 부자의 이름은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목사는 " 심술궂은 부자는 사실 이름을 붙일만한 가치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름이 없다"고 하였습니
다만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우리도 셍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를 베풀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자색 옷은 왕자가 입는 옷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심문 받으실 때에도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왕자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심문을 받아 보라'는 비꼬는 태도에서 입힌 것이었습니다. 이 부자는 매일 사치스러운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그의 식탁에는 매일 이름 모를 고급요리들로 가득 채웠고 각종 술로 기분을 돋구었습니다. 자, 그러면 이 부자가 좋은 옷을 입고 값진 음식으로 식탁을 채운 것이 이 부자의 죄입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은 이 세상의 허영과 이 세상의 쾌락이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것임을 말씀해 줍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 쾌락에 빠져 있는 동안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재물은 하나님을 잊게 하고 이웃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세상의 풍요와 쾌락은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호화로운 생활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시험이 따라 다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육신의 쾌락과 안락, 그리고 방종은 영혼의 파멸을 가져옵니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 그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교만과 사치에 빠지고, 결국 범죄에 이르게 되기 쉬우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부자는 날마다 잔치를 베풀었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오직 자신을 위해서였습니다. 20절에 "그런데 그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 하는 거지가 헌데 투성이가 되어 누워 있었습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은 라틴어 이름인데 히브리어로는 엘리아살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도우심" 또는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입니다. 그러면 나사로는 어떤 형편에 있었습니까? 조금 전에 말한 부자하고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그의 몸에는 자색 옷이나 아름다운 베옷이 아니라 헌데 투성이었습니다. 전에 욥의 환란 때와도 같았습니다. 욥은 재산만 잃은 게 아니고, 자식도 다 죽고, 아내도 욥을 등지고, 친구까지도 조롱했습니다. 나사로는 몸은 약하고 병들어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음식은 부잣집에서 먹다 상에 떨어진 부스러기 그것을 구걸해 먹어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혼자 걸어다니기도 어려운 형편이어서 부잣집 대문 밖에서 누워 있으면서 동정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주인이 불쌍히 여겨서 먹다 남은 것이라도 좀 먹으라고 갖다준 것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부스러기를 개에게 주는데 아마 그것 먹고 배를 채우려 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는 가난한 중에서도 만족스럽게 살아갔습니다. 그는 부잣집 대문밖에 누워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시비하지 않았습니다. 시끄럽게 굴지도 않았습니다. 조용히 그리고 점잖게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했습니다. 이 가난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많은 고통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악한 사람이 성공하고 번영하는 동안에 말입니다. 시편 73:3-14에 보면 "악인이 형통하고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잔에 가득한 물을 마시며 하나님이 어찌 알랴 하도다. 오히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와 세상 자녀와의 대조를 봅니다.
그런데 이 부자가 거지 나사로에 대한 태도를 보세요. 이 부자가 나사로를 학대하지 않았습니다. 대문 앞에 앉지 못하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나사로를 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으로 나사로를 경멸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대하여 아무런 관심을 표하지 않았습니다. 무관심은 반대보다 더한 것이라는 말도 의미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를 위해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비록 적은 것이지만 거지 나사로에게는 큰 친절이 될 수 있었으나 그는 적은 친절도 베풀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할 줄을 알면서도, 더구나 도와줄 힘이 있고도 남으면서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1- 46절에 보세요. 주님께서 무서운 형벌 받을 사람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으로 "내가 주
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다"(마25:42) 한 것입니다. 무엇이 죄입니까? 선을 행할 줄 알고 행치 아니한 것이 죄입니다.(약4:17) 그래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 6장 17절-19절에서 이런 권면을 하였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 가운데 가난하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나의 적은 친절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겐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이 나사로의 형편은 어떠했습니까? 심지어 개들까지도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습니다. 집을 지키기 위해 또는 취미로 키우는 개들은 배불리 먹었지만 인간 나사로는 부스러기로도 제대로 배를 채우지 못했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집에 가르는 개는 돌보면서도 가난한 사람은 모른 척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내 취미나 오락을 위해서는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쓰면서도 가난하고 병들어 죽게 된 사람을 위하여 돈을 쓰려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이 부자같은 사람은 없습니까? 전도서 7장 4절에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대조적인 상황 가운데 있던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세상의 다른 것은 불공평한 것이 있지만 죽음만은 공평합니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사람도 죽습니다. 나쁜 사람도 죽고 좋은 사람도 죽습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이끌려 아브라함의 품(유대인들의 개념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품은 '낙원'으로 으로 인식되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으로 묘사될 뿐 아니라<약2:23>, 낙원의 중심인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즉 나사로의 영혼은 천국에 간 것입니다. 반면에 부자는 죽어 음부에 가서 견디기 어려운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고통 중에 눈을 들어보니 멀리 아브라함 품에 나사로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아브라함과 나사로를 멀리서 보았습니다. 이 부자가 경멸하던 나사로가 이제는 쳐다보아야 보일 정도요,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나사로는 이런 양의 잔치에 참예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43절- 50절에 보면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무서운 곳이므로 죄를 짖는 지체를 찍어버리고라도 절대로 지옥에 가서는 안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부자였던 사람은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시원하게 해주십시오." 그는 어느 부분보다도 혀가 말라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혀는 말하는 기관입니다. 이 혀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악한 말을 합니다. 그래서 혀가 가장 큰 형벌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혀는 맛보는 기관입니다. 세상에서 부자로 살면서 매일 잔치로 고급음식을 먹으면서 거지 나사로에게 밥 한끼 대접해 본적이 없이 자기 혀만 즐겁게 하던 그 혀가 가장 큰 형벌을 받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부자처럼 가난한 자에게 무관심하고, 남을 위해서는 한 일이 없이 오직 자기를 위해 먹고, 자기를 위해 입고 자기를 위해 산 사람은 언젠가 이와 같은 고통을 받습니다. 가난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 채 자신의 많은 재산을 오로지 자기 한 몸을
위하여 사용하는 욕심을 부리는 것이 죄이며 이 죄로 음부에 갑니다. 부자였던 사람은 또 한가지 청원을 했습니다. "아버지, 소원입니다. 나사로를 내 집에 보내주십시오. 세상에는 제 다섯 형제가 있는 데 그들에게 경고하여 고통받는 이곳에 그들이 오지 않게 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는 견디기 어려운 형벌 속에서 고통당하게 되니까 땅 위에 있는 형제들 생각이 났습니다. 인간본연의 사랑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돈이 눈을 가리워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불쌍한 거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형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었습니다. 생각되는 것은 내일은 무슨 옷을 입을까? 무슨 음식을 해 먹을까? 어떻게 하루를 즐길까? 이런 것들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고통 속에 빠지게 되니 세상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형제들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두 가지 청원을 다 거절했습니다. 음부에서 기도하는 기도는 그 기도가 아무리 간절하다고 하여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우리는 흔히 기적이 일어나면 예수 믿겠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고 할지라도 모세와 선지자들(주의 종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여전히 못 믿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수많은 기적들이 있었고 예수님 자신이 죽음 가운데 부활하셨지만 못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못 믿고 안 믿을 사람은 안 믿었습니다. 따라서 기적은 신앙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불신자들에게 기적을 보여주지 못해서 안타까와 하기보다는 진실된 자세로 복음을 깨닫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회개도 이 땅위에 사는 동안만 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것도 세상에 있을 동안에 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죽을 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선행도 해야 하고, 회개도 해야 합니다. 기회를 놓치면 큰일납니다. 때가 늦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기억하시지요?(눅12:16-21) 어떤 부자의 밭에 곡식이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궁리한 끝에 속으로 말했습니다. "내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그는 내 곡간을 헐어 더 크게 짓고 곡식과 물건들을 거기 쌓아두겠다.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리라.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쓰기에 넉넉한 물건들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너는 안심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 어리석은 사람아, 바로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재물을 나 자신만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사용하면 안됩니다. 헐벗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도 사용해야 합니다. 아울러 영적으로 병들고 죽어 가는 심령을 도와줄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신 말씀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즉 낙원과 음부는 분명히 있습니다. 또한 이 부자처럼 한 번 음부로 내려간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합니다. (욥7:9) 여러분은 오늘 저녁 내 영혼을 부르신다면 하나님의 품에 안길 확신이 있습니까? 하루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면류관과 상을 받기 위해 주의 일에 더욱 열성을 다 하세요. 주안에서 수고한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도 죄인인 사람, 사람에게는 의인이나 하나님께는 죄인인 사람, 사람에게는 죄인이나 하나님께는 의인인 사람입니다.
첫째 사람은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사람에게와 하나님께 죄인으로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두번째 사람은 도덕적으로는 모든 사람의 본이 되지만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를 부인하거나 믿으려 하지않는 사람으로, 이를테면 세상적인 선행자를 가리킵니다
세번째 사람은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세상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이었으나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죄사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천국에 가서 세 번 놀란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천국에 꼭 와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보이지 않아 놀라고, 두번째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오지 못할 것으로 알았던 사람이 당당히 있는 것을 보고 놀라며, 세번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곳에 왔다는 사실에 더욱 놀란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인간의 눈에는 모두 선하게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없고 오직 예수님이 자기 죄를 지고 돌아가시고 다시 살으신 것을 믿을 때에 그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3 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오래 믿지 아니하였어도 오늘 예수를 시인하고 예수 믿으세요.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두 사람의 강도가 같이 못박여 죽임을 당합니다. 한 사람은 끝까지 예수를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우편 강도는 예수를 시인하였습니다.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주세요. 몇 시간 믿지 아니하였어도 예수께서는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구원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천국 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이 시간에 "주여 믿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십니다. 앞으로는 주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즉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여야 합니다.(요 1:12) 믿는다는 것은 바로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접 하는 자 곧 나의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라고 하였습니다. 자녀의 권세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신분이 달라집니다. 죄의 사람이 의의 사람이 되고 세상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을 오늘 영접하십시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분은 아멘하십시다. 그렇다면 이 시간에 영접기도를 같이 합시다. "내 주여 나는 죄인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시인하고 주님을 내 마음 속에 주님으로 영접합니다. 주여 내 마음에 오시옵소서."
구원의 은총과 축복을 받으시고 영원한 행복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 오늘 말씀하신 부자처럼 썩어 없어질 이 세상의 향락과 물질로써 만족을 얻으려는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영원하신 기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예수님 한 분만 으로 만족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는 가정과 부모와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무엇보다도 주님을 마음껏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우리들처럼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거지 나사로 처럼 고통받고, 가정이 없이 방황하는 자들과 신앙이 박해받는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학대당하고, 병원에 입원한 사람, 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푸시옵소서. 이들의 고통에 무관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청량고등학교 교사 (등대교회 협동목사) 한 태 완

* 묵상 및 토의
0 나는 천국을 사모하고 있는가?
0 나는 부자처럼 이 세상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0 나는 내가 가진 것이 많음으로 인해 시험에 들어 있지는 않은가?
0 나는 돈에 눈이 어두워 신앙을 저버리는 자가 아닌가?

* 천국구경

한 권사님이 하늘 나라에 갔다 오셨습니다. 그 분은 세상적으로 이름이 있는 분이었고 또 신유의 은사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분을 능가할 분이 없을 정도로 큰 은사를 받았다고 일컬어지는 분이었습니다. 기도도 많이 한 분이고 주님 앞에 외견적으로는 충성을 다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 나라에 가 보니 그 분에게 배당된 집은 개집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나를 아시느냐고 했더니 모른다고 하시더랍니다. 또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목사님을 아시느냐고 물었더니 그 분은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분이 그런 일을 경험한 후에는 자기 재산을 전부 정리해서 북한 선교원에 몇십억을 기증했다고 합니다.

* 찬송: (232장) 아름다운 본향
1. 아름다운 본향 천국 바라보며 한 찬송을 다 부르세 거기 무궁한 세월이 흘러갈 때 고난 풍파가 일지 않네 고난 풍파가 일지 않네 거기 무궁한 세월이 흘러갈 때 고난 풍파가 일지 않네
2. 맑은 수정같은 아름다운 본향 밤마다 꿈속에 보니 이 눈 앞에 저 묘하고 명랑한 성 가리우는 것 별로 없네 가리우는 것 별로 없네 이 눈 앞에 저 묘하고 명랑한 성 가리우는 것 별로 없네
3. 우리들을 위해 예비하신 내집 주 예수님이 계신 곳 만국왕 되신 주 우리 쓸 면류관 손에 들고 기다리시네 손에 들고 기다리시네 만국왕 되신 주 우리 쓸 면류관 손에 들고 기다리시네
4. 모든 슬픔 고통 벗어버린 후에 영원토록 거하겠네 손에 거문고 들고 늘 찬송할 때 우리가 서로 만나겠네 우리가 서로 만나겠네 손에 거문고 들고 늘 찬송할 때 우리가 서로 만나겠네 아멘

* 사람들은 보통 상식을 벗어난 일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에 새로운 일이나 새로운 꿈에 도전하는 것을 망설이고 쉽게 포기합니다. 전화, 비행기, 잠수함 등 모두 지금은 당연한 상식으로 통하고 이용하고 있지만 처음 그 일을 생각하고 그것을 시험할 때는 정신병자로 취급당하여 정신병원에 실려간 일도 있다 하니 상식을 뛰어넘는 꿈을 갖고 그 일을 실제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문화나 인류의 발전은 그런 꿈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남도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해..., 많은 사람들이 꿈조차 꾸지 않는 일을 내가 어떻게 해..." 하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라도 걸어가는 용기를 내십시오. 첫 걸음을 내딛고 나면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교회의 비전
1. 365일 예배드리는 교회(히10: 25, 행17:11)
오늘날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매일 말씀을 읽고, 듣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말씀의 거울을 통해 매일 마음을 바르고 깨끗이 하여서 예수와 복음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막8:35)
2. 더불어 사는 공동체 (행2:42- 47)
하나님은 영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육신까지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교회는 예수님이 주인이신 예수 공동체이며,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안에서 한 가족이 되고, 교회 직영 사업을 통해 청장년의 일자리 마련, 노후생활 보장 등의 꿈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교회(롬14: 17)
정의롭고(선행에 힘쓰고), 근심, 걱정, 두려움이 없고(기도에 힘쓰고), 기쁨과 찬송이 넘치는 교회
4.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마22:37- 39)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이러한 꿈과 비전이 있는 교회를 개척하고자 합니다. 연락바랍니다.
/한 태 완 목사

전화: 010-7676-3049, 자택: (02) 959-3049
홈페이지: http://allcome.ce.ro, allcome.wo.to
이메일: jesu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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