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소망(7)

복음............... 조회 수 391 추천 수 0 2004.12.05 1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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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소망(7)

본문: 롬8: 17- 18, 24- 25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손등에 까만 구두약이 묻었어도 눈에는 희망이 반짝거리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남에게 진 빚 때문에 아버지가 투옥되었기에 소년은 구두를 닦으면서 어렵게 지내야 했지만 밤하늘에 박혀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별을 보며 탄식 대신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길 한 모퉁이에서 밤늦게 구두를 닦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소년을 본 사람들이 "구두 닦는 일이 좋으냐?" 하고 물을 때마다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저는 희망을 닦고 있는걸요."
희망을 닦던 소년은 후에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올리버 트위스트'를 쓴 찰스 디킨스 이야기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
기독교 신앙은 고난과 소망이 교차하는 종교입니다. 바울 선생은 고린도후서 6장 8∼10절에서 신앙생활에서의 체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난과 소망은 이처럼 역설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당하는 고난은 그 안에 놀라운 소망의 씨앗이 심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고난을 통할 때마다 예수님을 그 마음의 구주로 모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의 씨앗이 심겨져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하였고,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는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성경 가운데 가장 대표적으로 증명된 것이 요셉의 생애입니다.

1. 요셉이 당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요셉은 다른 형제들보다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중 열한 번째인 요셉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들에서 양치기를 했지만 요셉은 채색 옷을 입고 집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37장 3∼4절에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당시 채색 옷을 입는 것은 아버지의 후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며 미워했습니다. 하루는 요셉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형들과 들로 추수를 나갔는데 요셉의 단이 가운데 서고 형들의 단이 자기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그 꿈을 형들에게 그대로 전하자 형들의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를 향해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요셉은 그 꿈을 형들과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향한 불평과 미움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런데 이 꿈은 바로 요셉이 장차 받을 고난 속에 심겨진 소망의 씨앗이었습니다. 장차 요셉은 형언할 수 없는 큰 고통을 겪을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고난을 견딜 수 있는 소망의 씨앗을 요셉의 마음속에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요셉의 마음 가운데 심겨진 소망의 씨앗은 위대한 힘을 발휘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꿈 이야기 때문에 형들에게 큰 불평과 미움을 받았지만 그 꿈이야말로 요셉에게 장차 다가올 엄청난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 된 것입니다. 하루는 야곱이 요셉을 불러 들에서 양치는 형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음식도 전해주도록 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찾아서 들판으로 나갔는데, 형들은 멀리서 요셉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창세기 37장 19∼20절에는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형들이 평소 요셉을 얼마나 미워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자신들이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제어하려 하지만, 꿈은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사람이 꿈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꿈이 사람을 지배합니다. 사람이 꿈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꿈이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들은 들판을 가로질러오는 요셉에게 달려들어 그의 채색 옷을 벗기고 마른 우물에 던져 놓고 요셉이 가져온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꿈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고자 했습니다. 요셉은 캄캄한 마른 우물에 던져졌습니다. 그곳은 사람의 인적이 없는 들판이었습니다. 형들은 음식을 먹고 곧장 양무리를 이끌고 다른 들판으로 갔습니다.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요셉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 마음속에 심겨진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른 우물 속에서 좌절과 절망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생각했습니다. 형들이 자기에게 엎드려 절하는 그 꿈은 자신이 어떠한 고통 가운데에서라도 넉넉히 이길 힘을 주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절망뿐이었지만, 사람이 꿈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꿈이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기에 요셉은 자신의 꿈을 간직하며 그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그 때 미디안 상고들이 이스라엘의 길르앗에서 향품을 사서 애굽에 팔려고 그곳을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형들 가운데 유다는 “동생을 저 마른 우물에서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 종으로 팔면 돈을 얻을 수 있으니 죽이지 말고 대상들에게 팔자”고 말했습니다. 이는 벌써 꿈이 사람을 다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꿈을 통해 모든 환경을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7장 28절에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꿈을 품으면 꿈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갑니다. 꿈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갑니다. 요셉이 그 마음속에 꿈을 품고 있었으므로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마른 우물에 던져 넣었지만 꿈이 그 모든 환경을 제압하고 승리하여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고, 미디안 대상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내려가게 만든 것입니다. 그는 종으로 끌려가면서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절망과 형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마음에 고통을 당하고 몸서리를 쳤을 것입니다. 요셉은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실까? 이 꿈을 주신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신가?”라는 공포와 불안에 떨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17∼18절에 “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 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체험을 종종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마음속에 꿈을 품었지만 현실이 너무나 처참하고 어려우면 ‘하나님이 과연 나를 도우실까? 혹 나를 버리시지는 않으셨는가?’라는 마음으로 절망을 느낄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역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꿈을 통해 희망의 씨앗을 심어 놓으십니다. 아무리 우리의 환경과 주변이 어둡고 캄캄해도 그 가운데 희망의 씨앗이 이미 심겨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시험과 환난, 고통의 캄캄한 밤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사람은 캄캄한 절망의 밤일지라도 희망의 씨앗이 이미 심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고 견디며 기다리면, 때가 되면 그 씨앗은 반드시 싹이 나고 잎이 나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의 절망과 그 절망 안에 심겨진 부활의 소망은 우리에게 영원한 가르침이 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자신을 모두 버리고 도망쳐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나님조차도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예수님은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절망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은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부활의 소망과 희망을 안고 계셨던 것입니다. 가장 큰 절망 속에서도 예수님이 그것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마음속에 가진 희망 때문이었고, 과연 예수님은 죽으셨으나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극복하시고 영원한 희망의 불길이 되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처럼 절망의 칠흑 같은 상황 속에서도 소망의 빛이 심겨져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위대한 것은 십자가의 죽음 속에서도 부활의 희망이 심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십자가가 다가올지라도 그 안에는 이미 부활의 씨앗이 있으니, 그 씨앗은 반드시 싹이 나고 잎이 나며 꽃 피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곧 부활의 새 출발로 일어나는 것을 말해줍니다. 혹독한 겨울의 추위 속에도 이미 희망의 봄이 심어져 있습니다. 아무리 눈보라가 몰아치고 혹독한 겨울의 추위로 온 땅이 얼어 다시는 희망이 없는 것 같이 보일 지라고 그 혹독한 겨울의 추위 한 복판에 이미 봄의 희망이 심겨져 있습니다. 때가 이르면 씨앗은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언제 어느 때나 절망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떠한 절망 가운데서 고통 당한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는 이미 예수님의 부활의 씨앗이 심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의 씨앗이 이미 우리에게 심겨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죽음의 선을 건너 영원한 부활을 바라보며 소망하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절망을 되씹지 말고 소망을 가슴속에 품어 나가면 소망은 우리에게 내일의 위대한 희망의 씨앗을 꽃피울 것입니다. 요셉은 좌절과 절망적인 환경에 처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두 번의 꿈을 통해 그에게 희망을 심어주셨습니다. 어떤 일이 다가와도 요셉에게는 희망의 싹이 트는 날이 다가올 것이라는 소망 가운데 그는 그러한 소망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않고 뒤로 물러가지 않았으며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2. 요셉의 고난 속에 동행하신 하나님
요셉은 애굽으로 내려가 보디발 장군의 집에 종으로 팔렸습니다. 당시 종에게 인권이란 없었습니다. 종은 짐승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계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볼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셔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을 형통케 하셨습니다. 종으로 요셉은 하는 일마다 성실히 잘 수행하므로 보디발은 감동하여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희망을 주신 요셉에게 왜 고난을 겪게 하셨을까요? 이는 토기장이와 진흙의 관계를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토기장이는 진흙을 가지고 그대로 토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흙덩어리나 뭉쳐진 흙으로는 그릇을 만들 수 없습니다. 잘게 부숴 흙이 부드럽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보디발 집에서 종살이 10년, 감옥살이 3년의 세월동안 그를 부드러운 찰떡같이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귀한 그릇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사야 64장 8절에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요셉을 깨뜨리시어 하나님 손에서 애굽의 국무총리라는 위대한 그릇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모든 고난의 과정 속에는 언제나 희망의 씨앗이 심겨져 있습니다. 요셉의 고난 과정 속에도 이미 고난 당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두 번의 꿈을 통해 희망의 씨앗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우리 삶의 모든 고난은 그 과정 속에 이미 부활의 씨앗이 심겨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역경이 극복되고 희망의 씨앗이 싹트며 꽃피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칼,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어제에 대한 죽음이면 희망은 내일에 대한 새 출발입니다.
요셉은 계속 고난을 당했지만 그 가운데 그는 깨어지고 짓이겨져 하나님 손에서 더욱 아름답고 새로운 그릇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요셉이 가정 총무가 되었을 때 보디발 아내가 그를 마음속으로 사모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그 어떠한 유혹에도 무너지지 않고 “나는 이런 큰 죄를 지을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보디발 아내는 누명을 씌워 요셉을 고난 당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요셉은 가정 총무이지만 종이었으므로 그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요셉은 자신의 꿈을 생각했습니다. 그의 꿈은 그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그 자리에서 벌주지 않고 정치범 수용소인 시위대 뜰 감방에 가두었습니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은 과거 마른 우물에 빠질 때도, 애굽의 종으로 팔려갈 때에도 하나님께서 늘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그와 함께 계시고 요셉의 삶을 승리하고 번창하게 하셨습니다. 어떠한 환경과 운명에 처할지라도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우리의 삶은 성공이요 승리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외롭게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신명기 31장 8절에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희망과 꿈을 가슴에 품고 그를 버리지 않으면 그 희망의 씨앗은 반드시 싹이 틉니다. 영국의 탐험가들이 이집트 피라미드 속에서 꽃씨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3천 년이나 되는 꽃씨입니다. 탐험가들은 그 꽃씨를 영국으로 가져와 심어 정성 들여 가꾸었더니 싹이 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영국 탐험가들은 그 꽃 이름을 ‘다알리아’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3천 년 된 마른 씨앗 속에도 생명이 있어서 꽃을 피웠습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역경이 오더라도 우리가 참고 견디면 꽃 피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승리의 꽃을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체험한 것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 꿈을 이루셨습니다. 하루는 술장관과 떡장관이 임금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하루 한 날 밤에 똑같이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해 괴로워할 때,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요셉이 해석해 준 그대로 그들의 운명은 갈리워져 술장관은 복직되었고 떡장관은 처형되었습니다. 술장관은 요셉에게 매우 고마워했으나 출감 이후 요셉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요셉은 이후 2년을 더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로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드디어 요셉이 품은 희망의 씨앗이 싹틀 때가 왔습니다. 바로는 연속하여 두 번 꿈을 꾸었는데, 그 꿈으로 그의 마음은 매우 번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왕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그 꿈을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꿈에 매우 살진 일곱 이삭이 나온 후 쭉정이와 동풍에 메마른 이삭이 나와 살진 일곱 이삭을 다 잡아 먹고도 쭈뼛하게 남은 꿈을 꾸었습니다. 잠에서 깨어 번민하다가 다시 잠들어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나일강 가에 살진 소 일곱 마리가 와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데 바로 뒤에 흉악하게 마른 소가 와서 살진 소를 다 잡아 먹고도 말라 있었습니다. 바로가 연속해서 꾼 이 꿈을 해석하기 위해 애굽의 모든 술사와 박사들을 불렀지만 그 누구도 이 꿈을 올바로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술장관은 자신이 감옥에 있을 때 꿈을 해석해 주었던 요셉을 떠올리고 왕에게 그를 청하도록 권했습니다. 요셉이 가슴속에 담은 꿈이 이제 싹이 올라 잎이 나고 꽃피어 열매 맺을 때가 온 것입니다. 꿈을 품고 있으면 반드시 좋은 날이 다가옵니다. 우리가 꿈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품고 있으면 그 꿈이 우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버리시는 사람이나 민족에게는 꿈을 빼앗아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 주는 사람이나 민족에게는 그 마음에 먼저 꿈을 심어주십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무려 60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어느 유대인 강제 수용소 벽에는 ‘나는 믿노라 해가 비치지 않더라도 구름 위에 해가 있다는 것을, 나는 믿노라 사랑을 느낄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믿노라 하나님께서 침묵하실지라도 그 침묵 뒤에는 여전히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글은 누군가 나치 독일에 사형 당하기 직전의 절대절망의 순간에 새겨놓은 것입니다. 그들은 소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처절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이러한 소망이 오늘날 유대인들을 재기시켜 오늘날의 이스라엘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리고자 하는 민족과 개인에게는 이처럼 꿈을 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절망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소망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꿈을 가질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좌절하고 절망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떠난 것으로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고통과 좌절이 생기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셨다고, 버리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비록 볼 수 없을지라도 주님은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우리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눈동자같이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상시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눈동자같이 우리를 덮어주시고 감싸주시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5)

3. 요셉에게 베푸신 잔이 넘치는 삶
때가 되면 결국 희망의 씨앗은 싹이 터 꿈은 이루어집니다. 요셉에게도 잔이 넘치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고난의 텃밭에 심어놓은 희망의 씨앗은 반드시 싹이 납니다. 아무리 삶의 고난이 어려울지라도 그 속에 예수님의 소망을 심어 놓으면 싹이 납니다. 생명인 그리스도께서 우리 생애 가운데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도다”(롬8:2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23편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요셉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고 일어날 문제를 해결할 방도까지 말해 7년의 풍작동안 곡식을 거두어 전국 도마다 곡식 창고를 짓고 곡식을 저장토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7년 흉년 때 저장한 곡식을 풀어 모든 백성이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에 바로 왕은 감탄하여 그 자리에서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임명한 것입니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 그늘에 볕들 날이 있고 음지가 양지 될 날이 있습니다. 순식간에 요셉은 그가 품고 있던 꿈을 이루었습니다. 때가 오매 희망의 씨앗이 꽃을 피운 것입니다. 창세기 41장 38∼39절에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10년 동안의 종살이로 요셉은 깨어지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왕 바로조차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지혜와 명철의 그릇을 만드셨습니다. 이는 요셉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깨어지고 짓이겨졌지만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부드러운 진흙이 된 요셉을 지혜 있고 총명한 그릇으로 만들어 바로 왕조차 감탄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요셉은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나머지 삶은 잔이 넘칩니다. 그는 온 애굽 국민들을 살리고 중동 지역을 가뭄의 고통으로부터 살렸습니다. 가나안 땅에 있던 형들과 그의 70인 가족들도 모두 애굽으로 불러 고센 땅에서 살도록 했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요셉이 자신들이 과거에 요셉에게 지은 죄로 인해 요셉이 복수를 하게 될 것을 근심하였습니다. 창세기 50장 17절에는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형들은 자신들이 과거 요셉에게 지은 죄로 인해 이러한 말을 지어 요셉에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을 아는 요셉은 형들이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 말을 듣고는 울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그 마음이 부드럽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창세기 50장 19∼22절에서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말하며 그들을 위로하였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형들의 모함을 오히려 선으로 바꾸시어 성공하게 만드셨습니다. 이는 요셉이 그 마음에 하나님의 꿈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14:32)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꿈이 없는 민족은 망하리라”는 말도 있습니다. 꿈이 없었다면 요셉의 삶은 실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이 흑암의 골짜기에 던져질지라도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꿈을 잡고 있었으므로 그처럼 심한 비바람을 견디고 흑암을 뛰어 넘어 꿈의 씨앗이 꽃피고 열매 맺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은 항상 십자가와 부활의 연속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있으면 다음에는 부활이 다가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 이것은 오직 기독교에만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는 언제나 사망이 다가오지만 그에 따라 부활 역시 뒤따라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망과 부활의 씨앗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은 빛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절망은 소망으로, 죽음은 삶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의 씨앗이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은 용서와 의와 영광과 평안의 씨앗이요 거룩함과 성령 충만의 씨앗입니다. 또한 치료와 건강, 축복과 형통,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씨앗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아무리 절망의 캄캄한 곳을 다닐지라도 이 씨앗으로 인해 참고 견디면 희망의 씨앗은 싹이 나고 잎이 나 꽃 피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고난의 십자가에서 우리 자신이 죽으면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부활의 새로운 희망이 솟아납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모든 고난은 이미 그 안에 그리스도의 희망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어떠한 고난과 절망도 이 희망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떠한 절망도 그 속에 있는 희망을 짓밟을 수 없습니다. 사망이 우리 주변을 둘러 진쳐 우리의 삶이 아무리 좌절과 절망으로만 보일지라도 우리 속에 예수님이 계시면 희망의 싹이 돋아 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속에 희망의 삶이 있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의 부활로 우리에게 삶 가운데 반드시 싹트고 잎이 나며 꽃을 피우고 열매맺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좌절할 수 없습니다. 결코 절망할 수 없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1:17, 합2:4)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감옥에 죄도 없이 두 사람이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언제 그곳을 나갈지 기약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감옥의 바닥을 내려다 보면서 항상 괴로워하였고, 또 한 사람은 감옥의 조그만 창살 사이로 별을 보며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결국 바닥을 보며 살던 사람은 홧병으로 죽었고, 별을 보고 웃으며 기다리던 사람은 살아 나갔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앎이로다"(롬5: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 마음에 모셨으므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우리 삶 가운데 희망의 씨앗이 되셔서 우리에게 끝없는 희망을 주십니다.
루스 렌켈은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림자는 그 가까운 곳에 빛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 가운데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의 씨앗으로 심고 있는 이상 넉넉히 그 모든 것을 이기는 날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고난 중에 기도하고 소망을 바라보고 즐거워하고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나를 위해 고난 당하신 주님, 절망의 죽음을 헤치고 희망의 부활을 가져오신 예수님은 영원한 희망의 씨앗이 되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언제나 그리스도를 모시고 희망을 보며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환경을 바라보고 좌절하거나 절망하여 부정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우리 속에 심겨진 희망의 씨앗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꿈을 갖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사람으로 삶을 일구도록 도와주옵소서. 마음이 상할 때, 어려움이 있을 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기억하며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출산 10분 전

출산 10분 전은 엄마와 아기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그래서 엄마는 순간 출산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고통 다음 순간에는 항상 새로운 탄생이 기다리고 있다.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완성은 항상 혼돈 가까이에 있다. 인생에도 출산 10분전과 같은 극심한 고통의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이 최고조로 달했을 때가 바로 해산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절대 무너지지 말고, 포기하지도 말고, 그 고통의 10분만 참고 넘기면 새로운 생명, 새로운 희망의 문이 열립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주를 위해 어떠한 고난도 기뻐하는가?
0 나는 곤고 할 때 더욱 기도하는가?
0 나는 고통 속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합니까?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까?
0 나도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을 자랑할 수 있겠는가?
0 나는 극한적인 고난 중에라도 결단코 절망하지 않는가?
0 나는 고난 당할 때 주를 원망한 적은 없는가?
0 이 어려움을 통해 나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0 제자들의 고난에 주님은 언제나 함께 하셨습니다. 그처럼 내가 함께해야 할 고난 당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0 바울은 복음을 위해 많은 고난과 위험을 겪었습니다. 나는 부활의 믿음 안에서 고난까지도 능히 감당합니까
0 일상 생활 속에서 나를 목마르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0 십자가가 나에게는 부끄러움입니까? 자랑입니까?
0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방법으로 도우셨는지 묵상해 봅시다.
0 지금은 핍박과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최후에는 승리의 미소를 짓게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까?

3. 예화(1): 오늘 우리 삶이 힘겹다 할지라도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만드는 나무는 오동나무입니다. 오동나무는 가볍고 부드러울 뿐 아니라 물에 쉽게 젖지 않고 불에 쉽게 타지 않아 가구를 만들기에 적합한 나무입니다. 그래 옛 어른들은 딸을 낳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지요. 딸이 시집을 갈 때쯤 오동을 베어 가구를 만들기 위한 혼수용 나무였습니다. 딸아이가 시집을 갈 만한 나이에 가구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자랐으니 그만큼 오동은 빨리 자라기도 했습니다. 오동나무로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만들 때 오동나무를 켜서 바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나무를 켠 뒤 5년 동안을 비와 바람과 눈에 말렸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먹어야 비로소 악기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5년 여 세월 동안 자연에 풍화하며 자신의 몸 속에 박힌 진을 모두 빼내야 제대로 소리를 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동나무라 해서 다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오동이 따로 있었는데 모진 세월을 견딘 오동일수록 소리가 아름답습니다. 오동 가운데서 석상오동(石上梧桐)을 최고로 치는데, 석상오동이라 함은 바위에서 자라 고사한 오동을 말합니다. 기름진 밭둑에서 뒤뜰에서 키 자랑하듯 쑥쑥 자란 오동이 아니라,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겨우 겨우 자라다가 끝내는 말라죽은 오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나온다는 것입니다. 힘겨운 세월을 이긴 촘촘한 나무 결에서 울려나오는 그윽하고 아름다운 소리, 고통이 컸던 만큼 그가 내는 소리가 아름답다는 사실이 귀하게 다가옵니다. 비록 오늘 우리 삶이 힘겹다 할지라도 바위틈에서 자라 고사한 석상고동이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처럼, 밑동이 까지는 감나무에 많은 열매가 달리는 것처럼, 고난을 통해 우리 삶이 더욱 그윽해지기를, 더 귀한 열매를 맺는 삶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약5:13)

* 예화(2): 명암

어떤 화가가 햇볕이 찬란하게 비치는 들판에서 열심히 대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완성된 그림에는 어찌된 일인지 전혀 생동감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캔버스에다 같은 장면을 다시 한번 그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번째 완성된 그림에서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가 두 그림을 한참 동안 비교하여 살핀 끝에 그 원인을 알아냈는데, 그것은 바로 명암의 차이였다. 즉, 첫 번째 그림에는 햇볕에 드러난 자연의 밝은 모습만이 그려져 있는데 반해서 두 번째 그림에는 그늘에 가려진 어두운 부분까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우리 삶에 활력이 있는 이유도 고난이 있기 때문이다. 더러운 물에서 연꽃이 피고, 거무죽죽한 나뭇가지에서 형형색색의 과일이 열리듯 고통으로부터 건강의 기쁨이 오고, 잃어버린 슬픔에서부터 성취의 만족을 맛보며, 갈등의 쓰라림을 딛고 화해와 일치의 감격을 맛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일만 생기기를 기대하지 말라. 그늘이 없는 햇볕 아래의 삶은 권태롭기만 하다

* 예화(3): 희망의 온도

음식에는 종류에 따라 각자 맛있게 느껴지는 온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물 맛은 섭씨 13도 일 때가 가장 맛있다고 합니다. 깊은 우물의 물이 시원하고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그 온도가 13도에서 15도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물이 가장 맛이 없는 온도는 35도에서 40도 사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체온(37도)을 중심으로 하는 온도일 때 가장 맛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커피의 온도는 63도에서 64도가 될 때 가장 맛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인간이 가장 삶의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온도는 몇도 일까요? 풍성한 물질과 좋은 환경일까요? 아닙니다. 인간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가장 좋은때는 "고난"을 받을 때 입니다. 고난 때문에 인간은 삶의 희망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너무 평안하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평안하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는 그렇게 고생하면서 살던 사람이 좀 살만하면 죽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원양어선을 타고 멀리가서 고기 잡는 사람들이 고기를 죽이지 않고 살려서 갖고 오는 방법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고급스러운 배를 만들고 먹을 것을 넉넉히 주고 그런줄 아세요? 아닙니다. 고기들이 있는곳에 메기를 같이 넣어줍니다. 그러면 이 메기란 놈은 다른 고기를 잡아 먹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고기들은 잡혀먹지 않을려고 이리피하고 저리피하고 긴장의 연속가운데 죽을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고기를 살리는 방법은 좋은 환경도 풍성한 먹거리도 아닌 바로 "고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 인간을 살리시기 위하여 이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고난은 인간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온도입니다. 고난은 삶의 희망입니다. 고난 있음을 감사 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의 표현입니다.

4. 찬송: (539장) 이 몸의 소망 무엔가

1. 이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이 아주 없도다
2. 무섭게 바람 부는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3.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4.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전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앞에 서리라

[후렴]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성경의 인물
성경에 나오는 왕에서 노예, 예언자, 거짓 선지자에 이르기까지 약 400명의 인물들을 정렬하고, 관계 성구, 배경해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되새기도록 구성한 인물 백과사전.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살고, 투쟁하고, 실패하고 성취하며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부록: 성경에 나오는 전 인물<약2500명> 수록)
한 태 완 목사 著, 좋은 땅 (주문전화:386-8660), 정가 40,000원
좋은땅 인터넷 http://www.g-world.co.kr
좋은땅 이메일 gworld@g-world.co.kr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주문: 전화: (02) 386-8660, 팩스(02)386-2961
교보문고, 영풍문고, 기독교 서점에서도 판매함
좋은땅 인터넷 http://www.g-world.co.kr
좋은땅 이메일 gworld@g-world.co.kr
전국서점총판/하늘유통(02)959-6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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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 협조 및 후원자를 찾습니다

저의 삶의 목표는 많은 사람을 옳은 길, 의로운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교사와 목사가 되었고, 예화포커스(전 50권), 성경의 인물, 사랑의 빛 (전 20권), 기쁨의 샘(전 4권), 사랑덩어리, 당신을 사랑하오 등 기독교 서적을 100권 가까이 저술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저의 설교집을 출판하고자 합니다. 출판에 협조하실 분은 꼭 연락바랍니다. 아울러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한태완 목사 배상
(HP) 010- 7676- 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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