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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의 영을 주소서
본 문 : 에베소서 1 : 15 ∼ 19
‘기본으로 돌아가자’ 하는 이름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요새 유행하는 말입니다. ‘탱크주의’로 유명한 MIT 공대의 박사인 배순훈 교수가 쓴 책입니다. 이 책 중에서 그는 창의력 개발을 위한 다섯가지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현대를 살아가려면, 현대에 살아남으려면 결코 자본이나 지식이나 기술이나 흔히 말하는 정보, 이것가지고 살지 못합니다. 이제는 창의력이 있어야 삽니다. ‘정보시대’란 말을 합니다. 그것도 과거에 속한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지식이 정보입니다. 그러나 창의력은 미래로 향하는 것입니다. 미래로 향하는 지식이 아니면 결코 이 세대에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조그만 사업을 하나 해도 남 하는 대로 했다가는 끝나는 거예요. 남 그거해서 돈 벌었다, 하는 순간 벌써 이젠 그건 끝나는 거예요. 그걸 따라가다가는 아주 다 원자본까지 다 망치는 거예요. 결국은 작은 일도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일이 아니고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는 것이에요. 그런고로 창의력 개발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먼 얘기가 아니고 아주 현실적인 절박한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창의력을 개발하려면 첫째로 ‘프라블럼 데피니션(Problem definition)’ 문제를 정의하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뭔가? 도대체 내가 추구하는 문제가 뭔가? 적어도 why 라고 하는 말을 세 번 이상 물으라는 거예요. 왜?, 왜?, 왜? 이 일을 해야 되느냐? 목적 의식이 분명해야 되요.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느냐? 그리고 왜 나는 이 일을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분명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것이 분명치 않게 허우적거리듯이 이것도 한번 해보고 저것도 한번 해보고 이생각도 한번 해보고 저 생각도 해보고 이래가지고는 안되는 것이에요.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분명히 해야 된다. 두 번째는 ‘프레퍼레이션(Preparation)’이올시다. 철저하게 공부하라는 것이죠. 내가 정한 이 일, 이 사업, 이 아이디어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야돼요. 많이 연구를 해야돼요. 얼마나요? 꿈을 꾸어도 그 꿈을 꿀 정도로. 자나깨나 집중적으로 그 연구를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인큐베이션(Incubation)’이올시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이미 연구했지만은 많이 연구하고는 까맣게 잊어버리라는 거지요. 여기서 여유를 가져야 되는 거예요. 이것이 중요한 시간이에요. 인큐베이트(incubate) 라고 하는 말은 원래가 ‘닭이 알을 품고 부화를 기다리는 과정’을 말합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닭이 알을 품고 있어요. 뜨뜻하게 자기 체온으로 계란을 데우면서 계속 부시럭거리고 계란을 굴리더라고요. 자, 이래서 속에서 병아리가 되어 나오는데, 병아리가 되어나올 때까지는 여전히 계란이에요. 동그란 계란 뿐이요. 그러나 그 속에서는 지금 신비로운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그런 과정이란 말이에요. 이런 인큐베이션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공부한 그 마음, 이제 그 아이디어를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해요. 숙성시키는 과정. 그러기 때문에 이제는 그 일에 너무 집중하면 안돼요. 너무 집착하면 정신병자가 되요. 다른 아무생각을 할 수가 없고, 더 귀한 생각을 할 수가 없는 사람이 되요. 그러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잠깐 까맣게 잊어버려야 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빙산이라는 것은 수면 위에 나타나는 것이 그 전체의 8.3%라고 합니다. 수면 아래에 있는 그 빙산이 91.7%입니다. 인간의 능력도 지금 생각하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내가 가진 능력 그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내가 가진 기억력, 그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인간은 적어도 자기가 최대한도의 능력을 발휘하고 지식을 얻었다 한들 자기가 가진 잠재력의 10분의 1 밖에는 사용하지 못합니다. 이걸 아셔야 됩니다. 특별한 계기가 올 때 이 엄청난 능력이 작용하는 거예요. 그런고로 그 큰 능력을 위해서 잠깐 우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요 조용하게 생각을 숙성시키는 그런 과정을 가져야 됩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 이 올시다. 조명이라고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번쩍하는 것이,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것을 포착해야 됩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살아오는 과정에도 번쩍 좋은 생각이 있었지요. 그런데 놓쳤지. 그만 놓쳐버렸단 말이에요. 번쩍 번쩍 생각이 나는데 이것을 잘 붙잡아야 되는데 100가지를 붙잡으면 그중에 하나가 진짜에요. 아흔아홉가지는 공상이에요. 그건 잘못된 거예요. 기가막힌 아이디어가 번쩍하는데 우리가 그것을 영감이라고도 하고 성경에서는 계시라고도 하겠지만 어쨌든 번쩍하는 생각을 포착해야됩니다. 그리고 ‘팔로우-업(Follow-up)’ 이제는 거기에 계속 집중적으로 생각해서 붙잡은 생각을 완전히 성숙시켜야 됩니다. 거기서 성과를 맞아야 되는 것이죠. 자, 이렇게 과학적으로 주장합니다.
여러분, 지식이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계시적 지식이요, 하나는 실증적 지식입니다. 합리성과 귀납성, 이걸 따라서 증명되지 않는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경험’ 하면 꼭 몸으로 경험하는 것만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아니올시다. 생각으로 경험하는 것도 경험이에요. 그런데 전혀 실증될 수 없는, 전에 생각지도 못했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그러한 특별한 경험이 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잘 붙들어야 되는 거예요. 잘 받아들여야 되고 잘 소화해야 되는 겁니다. 또 하나의 지식은 실증되는 지식이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우리 경험에서 검증될 수 있는 지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막의 교부로서 영성의 대가이기도 했던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라는 사람은 인간의 감정에 잘못될 수 있는 방향, 그리고 극복해야할, 잘못되기 쉬운 습관을 세가지를 지적합니다. 이것이 있는 동안은 새로운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다시 말하면 계시적 지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올시다. 첫째가 비탄입니다. 나는 쓸모없다. 이미 과거에 실패했다. 그런고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너무 비탄하는 것이에요. 이미 자기자신을 포기해버렸어요. 이러한 사람에게는 영감이 없습니다. 두 번째는 분노올시다. 너무 억울하고 분한 일들이 있었어요. 여기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러는 동안에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그 마음에는 번쩍 지나가는 것도 없어요. ‘CEO가 되는 길’ 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Running from the Top’ 이라고 하는 책에 보면 50명의 CEO를 연구해 보니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어요. 누구를 미워하고 억울하고 분하고 원수를 갚고, 이런 마음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어요. 창의력이 없다는 것이에요.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또 하나는 ‘나태’ 올시다. 게을러빠진 사람에게는 영감이 없어요. 부지런해야 되요.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주 부지런한 성격의 사람에게 새로운, 번쩍하는 아이디어가 함께 하는 것이에요. 다시 말씀을 드리면 지식이란, 아는 지식이 있고 알려지는 지식이 있습니다. 내가 내 생각, 내 경험을 통해서 공부해서 알 수 있는 지식이 있어요. 그런 때는 내가 주체고 내가 공부하는 내용이 객체가 됩니다. 그러나 그 객체가 인격인 경우에는 얘기가 다릅니다.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아셔야 됩니다. 그가 내게 알게 하는 것이올시다. 이게 물건이 아니에요. 사람이요 혹은 때로 인격인 경우에는 이제는 그가 나에게 알게 해줄때만 압니다. 그가 내게 알게 해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물건인 때는 두드려보고 알고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알 수 있지만, 이 사람이 사람이에요. 인격이에요. 울면 슬픈가 보다, 웃으면 기쁜가보다 할 것이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이거 두드려 본다고 압니까? 이거는 저분이 나에게 자기 자신을 알려줌으로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두가지 지식을 분명히 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내게 알려주셔야만 내가 아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계시의 영, 계시의 지혜를 말합니다.
여기에 ‘영’이라고 제가 번역을 했는데, 우리 본, 지금 읽은 성경책에는 ‘계시의 정신’ 그랬습니다만은 그 밑에 ‘영’이라고 다시 번역을 고쳐놓았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고 영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확실히 ‘프뉴마’ 라고 하는 것은 ‘영’이라는 뜻입니다. 프뉴마 소피아스 카이 아포칼루프세오스, 라고 하는 말은 프뉴마, ‘영’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식적으로 중요한 인식론적 진리가 있습니다. 적어도 무엇을 알려면은 절대 3요소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대상이요 하나는 주체인 나요 그 다음에는 빛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무엇을 ‘본다’ 할 때 보려고 하는 물체와 볼 수 있는 ‘눈’과 그리고 ‘빛’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객체와 주체와 조명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죠. 여러분, 아무리 귀한 것이 여기 있어도 내가 눈을 감고 있으면 볼 수가 없어요. 내 눈을 뜰 때만 볼 수 있지. 그런데도 내 눈이 뜨여졌고, 보았다 하더라도 빛이 없으면 못봐요. 지금 여기서 환하게 다 보고 있지만은 깜깜한 시간이 오면은 앞에 무엇이 있던 없던 알 수가 없고, 내 눈을 아무리 떴다 하더라도 내 눈은 말짱 헛것이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이 인식론의 근본이에요. 조명이 없으면 안되는 거예요. 바로 몇주일 전에 제가 ‘요로결석’이 생겨가지고 참 되게 아픈 시간에 밑에서 진통제를 맞고 기다렸다가 또 맞고 세 번을 맞고 올라와서 설교를 하는데요 몽롱하더라고요. 아무것도 안보여요. 그야말로 뿌연걸 그걸 놓고 그런 가운데서 설교한 일이 한번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잘 보이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내가 보려고 해도 내 눈이 흐려지면 안되고요. 내 눈이 아무리 밝아도 빛이 없으면 못 봅니다. 빛을 주는 것만큼만 보는 거예요. 이걸 잊지 말아야 되요.
그런고로 오늘 성경말씀은 계시의 영을 주십시오, 이렇게 말합니다. 계시의 영을 주십시오. 아무리 똑똑하고, 지식이 있고 능력이 있다한들 계시의 영이 어두워지면 아무 소용없어요. 오늘 우리는 그런 것을 많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합니다. 있을 수 없는 상식이하의 실수를 합니다. 왜요? 어두워졌어요. 마음이 어두워졌어요. 조명이 없어요. 이게 얼마나 불행한 일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가진 모든 능력이 다 아무 소용없어지고 마는 거예요.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신앙을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고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 즉각적으로 해설을 하십니다. ‘그건 네 혈육이 안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네게 알게 한 것이니라. 그런고로 너는 복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계시의 영을 주어서 하나님을 알게 하고 나 자신을 알게하고 세상을 알게하는 것, 그 사람은 복된 사람이올시다. 그런고로 오늘 본문에 ‘계시의 영을 주시사 하나님을 알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을 알 때 나를 알고 나를 알 때 세상을 알게 되는 거죠.
또한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세요.’ 주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부름받은 자의 미래, 소망에 대해서 알게 해주십시오. 여러분, 과거가 문제가 아닙니다. 미래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우리 앞에 어떤 운명이 있는지, 이걸 똑바로 알고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이죠. 계시의 영을 밝혀 줄 때 비로소 미래를 내다 볼 수가 있어요. 또한 성도의 기업이 어떠함을 알게 해주십시오. 궁극적으로 예수믿는 사람의 마지막 종착점, 마지막 기업,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십시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서 광야를 통과할 때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만은 문제는 저 가나안 땅에 대한 확신만 있으면, 가나안 땅에 약속에 대한 확실한 믿음만 있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어떤 고난이라도 다 이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결국은 마지막 성도의 기업에 대해서 당신은 얼마나 알고 있느냐, 이것이 문제올시다.
또한 베푸신 능력, 이 귀한 약속에 대한 믿음이 내게 능력을 줍니다. 현재적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 죄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허영을 이기고 방종함을 이기고 죽음을 이깁니다. 원수를 사랑합니다. 사랑의 능력, 엄청난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깊은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유명한 아인슈타인 박사의 말입니다. “What I Belive” 라고 하는, ‘나의 신념’이라고 하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이다. 신비야말로 모든 과학과 예술의 진정한 원천이다. ‘신비’ 바로 계시의 영, 영감, 그것이 과학과 예술의 원천이라는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현상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섭리, 그것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보다 더 멀리 봐야 됩니다. 오늘이 아니라 멀리. 저는 오래 전에 읽은 글을 생각합니다. 우리 정치가들을 생각할 때마다 그 생각이 나요. 처칠경에게 물어보았어요. “정치가에게 가장 갖추어야할 자격이 뭡니까?” 하고 물었어요. 그는 딱 한마디로 대답하는데 “최소한 2년을 앞서 볼 수 있어야지. 좀더 멀리 볼 수 있어야지.” 다른 사람보다 멀리, 최소한 2년을 내다 봐야돼요. 발등의 것도 못보면 되겠어요? 백성들은 못봐요. 그래도 지도자들은 보다 먼 것을 봐야 되요.
요새 이런 재미있는 우스갯 소리가 있어요. ‘평등 시리즈’라고. 들어 보셨을 겁니다. 요새 몇 일 전에 들었는데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뭐냐면 40대가 되면 지식의 평등이 온다는 거예요. 뭐 옛날에 공부한 거 다 말짱 헛것이에요. 뭘 알긴 뭘 알아요. 컴퓨터를 압니까, 뭘 알아요. 그래서 40이 되면 옛날에 대학을 나왔던 안나왔던 몽땅 똑같습니다. 그래서 ‘지식의 평등화가 온다’ 그러고요. 50이 되면 외모의 평등화가 온데요. 아, 거 맞더만요. 젊었을때는 예쁜 사람도 있고, 좀 덜 예쁜 사람도 있습니다, 확실히. 그러나 50이 넘으면 똑같아요. 그것만은 잊지 마세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감자같이 생겨가지고 50이 되면 모조리 다 똑같아요. 같습니다. 괜히 뭐, 이제 가서 두들기고 맛사지 해봐야 별거 없습니다. 똑같습니다. 그 다음에 60이 되면은 성의 평등이 와요. 도대체 남녀가 다 섞여버려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가 없어요. 주책이 없다, 이거지요 뭐. 그리고 70이 되면요 건강의 평등이 와요. 건강한 사람도 그만, 건강 못한 사람도 그만, 어차피 다 그만큼 그만큼 늙어가는 거예요. 다 평등해요. 80이 되면 80대가 되면 재물의 평등이에요. 돈이 있으면 뭐해요, 먹지 못하는 거. 집이 좋으면 뭘하고 못하면 뭘해요. 재산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걸 알아야 되요. 평등이요. 90이 넘으면요 생사의 평등이요. 살았으나 사는 것이 아니고 죽으나 사나 그게 그거예요. 그 참 재미있는 얘기예요. 이게 뭡니까? 내다봐야돼요. 오늘 여러분 아이가 그대로 있습니까? 10년후 20년 후 그 앞을 훤하게 보세요. 평등한 거예요.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어요. 이걸 알아야지요.
그리고 우리의 종말을 내다볼 수 있어야 됩니다. 마지막 종말이 어디입니까? 호세아 4장 6절은 말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그래요. 참 지식, 바른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거예요. 왜 모르게 되었느냐고요? 죄가 있고 증오가 있고 시기가 있고 끝없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에요. 욕심 때문에 눈이 어두워졌어요. 마음이 흐려졌어요. 계시의 영이 떠났어요. 그 마음에는 번쩍 하는 것이 없어요. 참 의욕이 없어요. 이래서 세상은 어지러워지는 것이올시다. 그런고로 계시와 지혜의 영, 계시의 영을 주십시오, 기도해야겠어요. 경제의 문제도 정치의 문제도 아닙니다. 세상, 국제적인 문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여, 계시의 영을 주십시오. 저 미래가 밝게 보일 때 현재를 알 수 있고 나의 나됨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계시의 영을 주십시오”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끝없는 욕심과 허영과 세상적 욕망에 사로잡혀 우리 마음이 어두워진 지 오래됐습니다. 주여, 우리 눈을 밝히시고 계시의 영을 주시사 우리 앞에 있는 소망도 알고, 우리 앞에 있는 기업도 알고, 내가 가고 있는 운명의 길을 바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계시의 영을 주시사 어려운 세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주의 음성을 조용히 들을 수 있게 하시며 바로 응답하며 늘 승리생활 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곽선희 목사
예화포커스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 태 완 목사 편저, 좋은 땅 전화:386-8660, 각 권 값3,800원
http://truthway.ce.ro
http://je333.ce.ro, http://sermonhouse.ce.ro
본 문 : 에베소서 1 : 15 ∼ 19
‘기본으로 돌아가자’ 하는 이름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요새 유행하는 말입니다. ‘탱크주의’로 유명한 MIT 공대의 박사인 배순훈 교수가 쓴 책입니다. 이 책 중에서 그는 창의력 개발을 위한 다섯가지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현대를 살아가려면, 현대에 살아남으려면 결코 자본이나 지식이나 기술이나 흔히 말하는 정보, 이것가지고 살지 못합니다. 이제는 창의력이 있어야 삽니다. ‘정보시대’란 말을 합니다. 그것도 과거에 속한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지식이 정보입니다. 그러나 창의력은 미래로 향하는 것입니다. 미래로 향하는 지식이 아니면 결코 이 세대에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조그만 사업을 하나 해도 남 하는 대로 했다가는 끝나는 거예요. 남 그거해서 돈 벌었다, 하는 순간 벌써 이젠 그건 끝나는 거예요. 그걸 따라가다가는 아주 다 원자본까지 다 망치는 거예요. 결국은 작은 일도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일이 아니고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는 것이에요. 그런고로 창의력 개발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먼 얘기가 아니고 아주 현실적인 절박한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창의력을 개발하려면 첫째로 ‘프라블럼 데피니션(Problem definition)’ 문제를 정의하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뭔가? 도대체 내가 추구하는 문제가 뭔가? 적어도 why 라고 하는 말을 세 번 이상 물으라는 거예요. 왜?, 왜?, 왜? 이 일을 해야 되느냐? 목적 의식이 분명해야 되요.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느냐? 그리고 왜 나는 이 일을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분명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것이 분명치 않게 허우적거리듯이 이것도 한번 해보고 저것도 한번 해보고 이생각도 한번 해보고 저 생각도 해보고 이래가지고는 안되는 것이에요.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분명히 해야 된다. 두 번째는 ‘프레퍼레이션(Preparation)’이올시다. 철저하게 공부하라는 것이죠. 내가 정한 이 일, 이 사업, 이 아이디어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야돼요. 많이 연구를 해야돼요. 얼마나요? 꿈을 꾸어도 그 꿈을 꿀 정도로. 자나깨나 집중적으로 그 연구를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인큐베이션(Incubation)’이올시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이미 연구했지만은 많이 연구하고는 까맣게 잊어버리라는 거지요. 여기서 여유를 가져야 되는 거예요. 이것이 중요한 시간이에요. 인큐베이트(incubate) 라고 하는 말은 원래가 ‘닭이 알을 품고 부화를 기다리는 과정’을 말합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닭이 알을 품고 있어요. 뜨뜻하게 자기 체온으로 계란을 데우면서 계속 부시럭거리고 계란을 굴리더라고요. 자, 이래서 속에서 병아리가 되어 나오는데, 병아리가 되어나올 때까지는 여전히 계란이에요. 동그란 계란 뿐이요. 그러나 그 속에서는 지금 신비로운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그런 과정이란 말이에요. 이런 인큐베이션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공부한 그 마음, 이제 그 아이디어를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해요. 숙성시키는 과정. 그러기 때문에 이제는 그 일에 너무 집중하면 안돼요. 너무 집착하면 정신병자가 되요. 다른 아무생각을 할 수가 없고, 더 귀한 생각을 할 수가 없는 사람이 되요. 그러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잠깐 까맣게 잊어버려야 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빙산이라는 것은 수면 위에 나타나는 것이 그 전체의 8.3%라고 합니다. 수면 아래에 있는 그 빙산이 91.7%입니다. 인간의 능력도 지금 생각하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내가 가진 능력 그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내가 가진 기억력, 그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인간은 적어도 자기가 최대한도의 능력을 발휘하고 지식을 얻었다 한들 자기가 가진 잠재력의 10분의 1 밖에는 사용하지 못합니다. 이걸 아셔야 됩니다. 특별한 계기가 올 때 이 엄청난 능력이 작용하는 거예요. 그런고로 그 큰 능력을 위해서 잠깐 우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요 조용하게 생각을 숙성시키는 그런 과정을 가져야 됩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 이 올시다. 조명이라고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번쩍하는 것이,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것을 포착해야 됩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살아오는 과정에도 번쩍 좋은 생각이 있었지요. 그런데 놓쳤지. 그만 놓쳐버렸단 말이에요. 번쩍 번쩍 생각이 나는데 이것을 잘 붙잡아야 되는데 100가지를 붙잡으면 그중에 하나가 진짜에요. 아흔아홉가지는 공상이에요. 그건 잘못된 거예요. 기가막힌 아이디어가 번쩍하는데 우리가 그것을 영감이라고도 하고 성경에서는 계시라고도 하겠지만 어쨌든 번쩍하는 생각을 포착해야됩니다. 그리고 ‘팔로우-업(Follow-up)’ 이제는 거기에 계속 집중적으로 생각해서 붙잡은 생각을 완전히 성숙시켜야 됩니다. 거기서 성과를 맞아야 되는 것이죠. 자, 이렇게 과학적으로 주장합니다.
여러분, 지식이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계시적 지식이요, 하나는 실증적 지식입니다. 합리성과 귀납성, 이걸 따라서 증명되지 않는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경험’ 하면 꼭 몸으로 경험하는 것만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아니올시다. 생각으로 경험하는 것도 경험이에요. 그런데 전혀 실증될 수 없는, 전에 생각지도 못했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그러한 특별한 경험이 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잘 붙들어야 되는 거예요. 잘 받아들여야 되고 잘 소화해야 되는 겁니다. 또 하나의 지식은 실증되는 지식이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우리 경험에서 검증될 수 있는 지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막의 교부로서 영성의 대가이기도 했던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라는 사람은 인간의 감정에 잘못될 수 있는 방향, 그리고 극복해야할, 잘못되기 쉬운 습관을 세가지를 지적합니다. 이것이 있는 동안은 새로운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다시 말하면 계시적 지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올시다. 첫째가 비탄입니다. 나는 쓸모없다. 이미 과거에 실패했다. 그런고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너무 비탄하는 것이에요. 이미 자기자신을 포기해버렸어요. 이러한 사람에게는 영감이 없습니다. 두 번째는 분노올시다. 너무 억울하고 분한 일들이 있었어요. 여기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러는 동안에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그 마음에는 번쩍 지나가는 것도 없어요. ‘CEO가 되는 길’ 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Running from the Top’ 이라고 하는 책에 보면 50명의 CEO를 연구해 보니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어요. 누구를 미워하고 억울하고 분하고 원수를 갚고, 이런 마음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어요. 창의력이 없다는 것이에요.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또 하나는 ‘나태’ 올시다. 게을러빠진 사람에게는 영감이 없어요. 부지런해야 되요.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주 부지런한 성격의 사람에게 새로운, 번쩍하는 아이디어가 함께 하는 것이에요. 다시 말씀을 드리면 지식이란, 아는 지식이 있고 알려지는 지식이 있습니다. 내가 내 생각, 내 경험을 통해서 공부해서 알 수 있는 지식이 있어요. 그런 때는 내가 주체고 내가 공부하는 내용이 객체가 됩니다. 그러나 그 객체가 인격인 경우에는 얘기가 다릅니다.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아셔야 됩니다. 그가 내게 알게 하는 것이올시다. 이게 물건이 아니에요. 사람이요 혹은 때로 인격인 경우에는 이제는 그가 나에게 알게 해줄때만 압니다. 그가 내게 알게 해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물건인 때는 두드려보고 알고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알 수 있지만, 이 사람이 사람이에요. 인격이에요. 울면 슬픈가 보다, 웃으면 기쁜가보다 할 것이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이거 두드려 본다고 압니까? 이거는 저분이 나에게 자기 자신을 알려줌으로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두가지 지식을 분명히 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내게 알려주셔야만 내가 아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계시의 영, 계시의 지혜를 말합니다.
여기에 ‘영’이라고 제가 번역을 했는데, 우리 본, 지금 읽은 성경책에는 ‘계시의 정신’ 그랬습니다만은 그 밑에 ‘영’이라고 다시 번역을 고쳐놓았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고 영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확실히 ‘프뉴마’ 라고 하는 것은 ‘영’이라는 뜻입니다. 프뉴마 소피아스 카이 아포칼루프세오스, 라고 하는 말은 프뉴마, ‘영’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식적으로 중요한 인식론적 진리가 있습니다. 적어도 무엇을 알려면은 절대 3요소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대상이요 하나는 주체인 나요 그 다음에는 빛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무엇을 ‘본다’ 할 때 보려고 하는 물체와 볼 수 있는 ‘눈’과 그리고 ‘빛’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객체와 주체와 조명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죠. 여러분, 아무리 귀한 것이 여기 있어도 내가 눈을 감고 있으면 볼 수가 없어요. 내 눈을 뜰 때만 볼 수 있지. 그런데도 내 눈이 뜨여졌고, 보았다 하더라도 빛이 없으면 못봐요. 지금 여기서 환하게 다 보고 있지만은 깜깜한 시간이 오면은 앞에 무엇이 있던 없던 알 수가 없고, 내 눈을 아무리 떴다 하더라도 내 눈은 말짱 헛것이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이 인식론의 근본이에요. 조명이 없으면 안되는 거예요. 바로 몇주일 전에 제가 ‘요로결석’이 생겨가지고 참 되게 아픈 시간에 밑에서 진통제를 맞고 기다렸다가 또 맞고 세 번을 맞고 올라와서 설교를 하는데요 몽롱하더라고요. 아무것도 안보여요. 그야말로 뿌연걸 그걸 놓고 그런 가운데서 설교한 일이 한번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잘 보이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내가 보려고 해도 내 눈이 흐려지면 안되고요. 내 눈이 아무리 밝아도 빛이 없으면 못 봅니다. 빛을 주는 것만큼만 보는 거예요. 이걸 잊지 말아야 되요.
그런고로 오늘 성경말씀은 계시의 영을 주십시오, 이렇게 말합니다. 계시의 영을 주십시오. 아무리 똑똑하고, 지식이 있고 능력이 있다한들 계시의 영이 어두워지면 아무 소용없어요. 오늘 우리는 그런 것을 많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합니다. 있을 수 없는 상식이하의 실수를 합니다. 왜요? 어두워졌어요. 마음이 어두워졌어요. 조명이 없어요. 이게 얼마나 불행한 일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가진 모든 능력이 다 아무 소용없어지고 마는 거예요.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신앙을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고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 즉각적으로 해설을 하십니다. ‘그건 네 혈육이 안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네게 알게 한 것이니라. 그런고로 너는 복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계시의 영을 주어서 하나님을 알게 하고 나 자신을 알게하고 세상을 알게하는 것, 그 사람은 복된 사람이올시다. 그런고로 오늘 본문에 ‘계시의 영을 주시사 하나님을 알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을 알 때 나를 알고 나를 알 때 세상을 알게 되는 거죠.
또한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세요.’ 주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부름받은 자의 미래, 소망에 대해서 알게 해주십시오. 여러분, 과거가 문제가 아닙니다. 미래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우리 앞에 어떤 운명이 있는지, 이걸 똑바로 알고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이죠. 계시의 영을 밝혀 줄 때 비로소 미래를 내다 볼 수가 있어요. 또한 성도의 기업이 어떠함을 알게 해주십시오. 궁극적으로 예수믿는 사람의 마지막 종착점, 마지막 기업,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십시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서 광야를 통과할 때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만은 문제는 저 가나안 땅에 대한 확신만 있으면, 가나안 땅에 약속에 대한 확실한 믿음만 있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어떤 고난이라도 다 이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결국은 마지막 성도의 기업에 대해서 당신은 얼마나 알고 있느냐, 이것이 문제올시다.
또한 베푸신 능력, 이 귀한 약속에 대한 믿음이 내게 능력을 줍니다. 현재적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 죄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허영을 이기고 방종함을 이기고 죽음을 이깁니다. 원수를 사랑합니다. 사랑의 능력, 엄청난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깊은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유명한 아인슈타인 박사의 말입니다. “What I Belive” 라고 하는, ‘나의 신념’이라고 하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이다. 신비야말로 모든 과학과 예술의 진정한 원천이다. ‘신비’ 바로 계시의 영, 영감, 그것이 과학과 예술의 원천이라는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현상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섭리, 그것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보다 더 멀리 봐야 됩니다. 오늘이 아니라 멀리. 저는 오래 전에 읽은 글을 생각합니다. 우리 정치가들을 생각할 때마다 그 생각이 나요. 처칠경에게 물어보았어요. “정치가에게 가장 갖추어야할 자격이 뭡니까?” 하고 물었어요. 그는 딱 한마디로 대답하는데 “최소한 2년을 앞서 볼 수 있어야지. 좀더 멀리 볼 수 있어야지.” 다른 사람보다 멀리, 최소한 2년을 내다 봐야돼요. 발등의 것도 못보면 되겠어요? 백성들은 못봐요. 그래도 지도자들은 보다 먼 것을 봐야 되요.
요새 이런 재미있는 우스갯 소리가 있어요. ‘평등 시리즈’라고. 들어 보셨을 겁니다. 요새 몇 일 전에 들었는데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뭐냐면 40대가 되면 지식의 평등이 온다는 거예요. 뭐 옛날에 공부한 거 다 말짱 헛것이에요. 뭘 알긴 뭘 알아요. 컴퓨터를 압니까, 뭘 알아요. 그래서 40이 되면 옛날에 대학을 나왔던 안나왔던 몽땅 똑같습니다. 그래서 ‘지식의 평등화가 온다’ 그러고요. 50이 되면 외모의 평등화가 온데요. 아, 거 맞더만요. 젊었을때는 예쁜 사람도 있고, 좀 덜 예쁜 사람도 있습니다, 확실히. 그러나 50이 넘으면 똑같아요. 그것만은 잊지 마세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감자같이 생겨가지고 50이 되면 모조리 다 똑같아요. 같습니다. 괜히 뭐, 이제 가서 두들기고 맛사지 해봐야 별거 없습니다. 똑같습니다. 그 다음에 60이 되면은 성의 평등이 와요. 도대체 남녀가 다 섞여버려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가 없어요. 주책이 없다, 이거지요 뭐. 그리고 70이 되면요 건강의 평등이 와요. 건강한 사람도 그만, 건강 못한 사람도 그만, 어차피 다 그만큼 그만큼 늙어가는 거예요. 다 평등해요. 80이 되면 80대가 되면 재물의 평등이에요. 돈이 있으면 뭐해요, 먹지 못하는 거. 집이 좋으면 뭘하고 못하면 뭘해요. 재산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걸 알아야 되요. 평등이요. 90이 넘으면요 생사의 평등이요. 살았으나 사는 것이 아니고 죽으나 사나 그게 그거예요. 그 참 재미있는 얘기예요. 이게 뭡니까? 내다봐야돼요. 오늘 여러분 아이가 그대로 있습니까? 10년후 20년 후 그 앞을 훤하게 보세요. 평등한 거예요.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어요. 이걸 알아야지요.
그리고 우리의 종말을 내다볼 수 있어야 됩니다. 마지막 종말이 어디입니까? 호세아 4장 6절은 말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그래요. 참 지식, 바른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거예요. 왜 모르게 되었느냐고요? 죄가 있고 증오가 있고 시기가 있고 끝없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에요. 욕심 때문에 눈이 어두워졌어요. 마음이 흐려졌어요. 계시의 영이 떠났어요. 그 마음에는 번쩍 하는 것이 없어요. 참 의욕이 없어요. 이래서 세상은 어지러워지는 것이올시다. 그런고로 계시와 지혜의 영, 계시의 영을 주십시오, 기도해야겠어요. 경제의 문제도 정치의 문제도 아닙니다. 세상, 국제적인 문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여, 계시의 영을 주십시오. 저 미래가 밝게 보일 때 현재를 알 수 있고 나의 나됨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계시의 영을 주십시오”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끝없는 욕심과 허영과 세상적 욕망에 사로잡혀 우리 마음이 어두워진 지 오래됐습니다. 주여, 우리 눈을 밝히시고 계시의 영을 주시사 우리 앞에 있는 소망도 알고, 우리 앞에 있는 기업도 알고, 내가 가고 있는 운명의 길을 바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계시의 영을 주시사 어려운 세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주의 음성을 조용히 들을 수 있게 하시며 바로 응답하며 늘 승리생활 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곽선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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