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만이 (82)

복음............... 조회 수 378 추천 수 0 2005.06.01 09:19:14
.........
예수님만이 (82)

본문: 요14: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탈리아의 한 화가가 도자기에 ‘최후의 만찬’을 그렸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최후의 만찬을 그려서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도하고자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온갖 정성을 들여 예수님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정말 영감 있는 주님의 모습, 빛나는 주님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이 그려진 도자기를 본 친구는 그녀가 그린 예수님의 모습은 본 척도 않고 도자기의 아름다움만을 칭찬했습니다. 그 화가는 친구의 말을 듣고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려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은 가리워지고 도자기만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친구가 떠난 뒤, 그림을 붓으로 다 지워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도자기만 아름답게 보여,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예수님 외에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것, 예수님 외에 찬란하게 빛나 보이는 것, 예수 외에 앞장서 나타나 보이는 모든 것을 지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삶에 처음 되시고 먼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따르고 전해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중심의 뜨거운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돌이키는 단호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1.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십니다
세상에 살면서 길을 잃은 경험을 한 두 번쯤은 누구나 겪었을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연합군들이 중동 사막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사막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뜨거운 태양 아래서 타는 목마름으로 신기루를 보았습니다.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아 물이 없는데도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출렁이는 호수가 보입니다. 군인들은 그것이 진짜 물인줄 알고 첨벙첨벙 들어가서 물을 마셨는데 실상, 물을 마신 것이 아니라 뜨거운 모래를 잔뜩 먹고 기도가 막혀 죽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을 찾아온 후속부대가 보니 모두 입 안 가득 모래를 물고 죽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길을 잃는다는 것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길을 잃어버린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버림을 받고 에덴의 낙원에서 쫓겨 사람들의 영이 죽고 그들은 방향을 잃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인생길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서 무덤으로 들어갈 때까지 정체불명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고 그저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다가 그냥 죽습니다. 인생의 길을 안내한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실상은 그들 자신도 길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모든 성인들과 교주들 역시 올바른 길을 찾는 사람에 불과할 뿐입니다. 길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공자는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자와 같은 위대한 성인도 평생 도를 찾는 자일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자기가 길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우리나라 신흥종교는 500여 개이며 이에 속해 있는 신도들은 200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단 교주들은 거의 모두가 공통적으로 자신을 신격화하고 우상화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20여 명이나 되고 재림주라 주장하는 사람도 50여 명 있습니다. 이 외에도 자신을 보혜사 성령, 엘리야, 다윗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구원으로 가는 길의 안내자 혹은 길 자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사람들 자체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불쌍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만이 길이다’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신 것을 우리는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올라갈 목적지인 천국에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천국으로 돌아갈 길을 알고 계십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천국에 올라간 경험을 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길로 돌아갈 수 있으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오셨기 때문에 그 길로 돌아가는 길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강림하심이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어두움에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빛을 주셨습니다. 죄인에게는 용서의 빛을, 마귀에게 잡힌 자에게는 해방의 빛을, 병든 자에게는 치료의 빛을 주셨습니다. 절망자에게는 소망의 빛으로 죽은 자에게는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 자체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빛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아무리 어두워도 빛이 비추이면 어두움은 곧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님 자체가 바로 길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만이 길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죽고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나 우리는 길을 잃었습니다. 이 죄를 누가 청산해 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청산해 주시지 않고는 우리 영이 살아날 수 없습니다. 죽은 영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수양을 쌓고 도덕과 고행을 해도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슨 도를 전하고 수양과 도덕의 길을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의 모든 죄의 빚을 청산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 영혼이 살아나고 그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예수님만이 길이 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그리스도만이 진리와 생명의 길이신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3∼15절에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만이 돌아갈 길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우리 죄를 청산하시고 부활하셔서 당신이 계신 곳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인해 우리를 하늘에서 인도하여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용서받고 의인이 되는 길이 되십니다. 거룩하고 성령 충만을 받는 길, 병에서 고침 받고 건강을 얻게 되는 길, 우리가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는 길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장차 부활하여 천국 영생으로 들어가는 길 역시 예수님입니다. 공자는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했고, 석가는 길을 찾기 위해 집을 나와 10년간을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길을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길을 찾으신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바로 길이요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용서와 의를 얻는 길을 찾으며 거룩함과 성령 충만의 길을 찾고, 치료와 건강의 길, 축복과 형통의 길을 찾으며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길을 찾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만이 절대 진리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전해야 되는 것은 예수님만이 절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비슷한 상대적 진리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절대 진리로 그와 비교하여 동등하게 취할 수 있는 상대적인 진리는 없습니다. 상대적 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은 마귀의 거짓말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마귀는 자기가 진리라고 말하지만 거짓 투성입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속여 선악과를 따먹도록 하여 하나님을 배반토록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처럼 된다고 거짓을 말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마귀의 거짓말을 믿었다가 그 영이 죽고 하나님께 버림받아 에덴의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길 되시고 진리 되시는 주님을 속이지는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40주야를 금식하고 나왔을 때 마귀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들어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가 길이요 진리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떠한 마귀의 꾀임에도 유혹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러한 마귀를 말씀으로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온 세상은 마귀에게 속아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마귀가 온 세상을 점령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해 모든 것은 물질 밖에 없다는 유물론을 주장합니다. 또한 인간은 원시 생물체인 아메바에서 진화됐다는 진화론,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며 역사의 주인 역시 인간이라는 인본주의와 물질만이 삶의 목적이라는 물질만능주의,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는 쾌락주의 등의 잘못된 사상으로 인간을 미혹합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자유를 선포하고 이성과 과학을 무한 발전시켜서 인간의 힘으로 지상에 천국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 이후로 인간의 이성과 과학이 발전시킨 것은 인류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살상무기 밖에 없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온 세계가 초토화되고 겨우 이에서 회복되자마자 다시 2차 세계대전으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이후, 전세계는 냉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고 죽었으며 오늘날은 전 세계를 수십 번이라도 폭파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소위 인간이 말하는, 인간이 자랑하는 이성과 과학의 결과입니다.
대구에서 있었던 일인데 한 엄청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재산이 너무 많아 밤마다 새벽이 가깝도록 수판을 놓고 다닥 거리는 소리를 내어 건너 방에서 자는 며느리의 잠을 설치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쓸 줄은 모르고 모으는 데만 온 신경을 쏟아 부었습니다. 굉장한 거부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재산이 축이 날까 겁나서 자녀와의 사이에도 좋지 못한 얘기들이 오고 가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으고 또 모았습니다. 그러는 중에 그의 인생도 늙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멀리 미국으로 가버렸습니다. 이 늙은 아버지는 그 아내를 잃게 되었습니다. 젊은 여인을 다시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쌀독의 열쇠까지 자기가 쥐고 때마다 쌀을 자신이 퍼내 주었습니다. 그가 죽자 그 동안 그 많던 재산이 이리 저리 쏟아지며 줄어들더니 세상을 떠난 그의 시신마저 둘만한 장소가 없어서 그가 다니던 교회 일 층 한방에다 관을 두고 있었습니다.
마치 솔로몬의 전도서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물질 만능주의와 쾌락주의가 가져온 것은 파멸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만이 참되십니다. 마귀는 현재 달콤한 것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하지만 후에 다가올 쓰디쓴 고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이가 만물을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우주를 만들고 그 모든 내용을 일일이 아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진실을 알고 진리이십니다.
사도행전 14장 15절에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는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이사야 44장 6절에는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공산주의가 얼마나 인정도 없고 무서운가를 잘 압니다. 그들을 동족이란 이름으로 같은 민족을 처참하게 죽인 살인집단일 뿐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한 세대는 이를 잘 압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을 하지 못한 요즘의 젊은이들은 쉽게 그들과 우리를 동족이라는 말로 무조건 얼싸안으려 합니다. 공산주의에게는 동족이란 없습니다. 그들에게 동족이란 것은 하나의 가면에 불과합니다. 공산주의는 오직 혁명적 통일만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도 거기에 속으면 안되는데 공산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이러한 공산주의의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진리는 경험해야 알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진리입니까? 예수님은 알파요 오메가로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우주를 지을 때부터 시작해서 우주를 완성하고,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우주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으므로 우리가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죽음의 문제도 확실히 알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는 죽음도 알고 삶도 아십니다. 진리는 두 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과 버금가는 다른 진리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철학과 윤리, 도덕, 사상 등은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그러나 진리가 진리인 것은 영원불변하기 때문입니다. 천상천하에 변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남아있는 진리는 예수님 오직 한 분이십니다.
오늘날은 종교도 많고 진리도 많고 가르침도 많습니다. 그러나 모두 죽음 저 건너편에 갔다온 사람은 없습니다. 상상할 뿐입니다. 마호메트는 60세에 한 여인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크라테스는 70세에 사약을 먹고 죽었습니다. 석가모니는 8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플라톤도 80세까지 살다가 죽었습니다. 세계 성인이요 종교의 창시자였던 이들이었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는 모두 무릎을 꿇고 죽고 난 다음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3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 저 건너편에서 돌아왔습니다. 죄악의 빚을 잔뜩 짊어지고 무덤으로 들어간 사람은 그 빚을 갚아야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성인군자나 종교의 창시자들은 모두 죽음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 다시는 나오지 못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죄를 갚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그 죄의 값을 갚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감옥으로 들어갔으나 사흘만에 모두 청산하고 너끈히 살아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이 진리되십니다.

3.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페터 사로라는 해군장교가 태평양에서 PT보트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바다는 무섭게 표효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눈을 떠보니 그의 몸은 캄캄한 망망대해에 판자 조각을 의지하고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다리에 통증이 왔습니다. 어느덧 여명이 비취고 있었는데, 그는 그만 너무도 무서운 광경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그의 주위에 온통 상어떼가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다리에서 흐르는 피 때문이었습니다. 페터는 어릴 때 주일학교에 다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마음이 순간적으로 20년 전 어릴 때에 다녔던 주일학교의 교실로 가 있었습니다. 그 교실 벽에는 예수님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그 초상화의 예수님이 실제로 바다를 건너 팔을 뻗쳐 그를 향해 오시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페터는 부푼 가슴으로 예수님을 향하여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헤엄쳐 나갈 때 상어떼들이 물러서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그 때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미군 군함이 수평선 저쪽에서 나타났던 것입니다. 망대에서 물이 튀는 것을 보고 조난당한 병사가 있음을 직감하고는 전속력으로 달려와 그를 구조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죽지 않게 지어졌습니다. 오늘날 인간이 죽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버림받고 죄를 지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생하시는 분이십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처음 지음받았을 때는 죽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원래 죽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으므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고통과 괴로움, 슬픔을 가지고 죽음에 대해 반발합니다. 죽음을 원치 않습니다. 죽음을 싫어합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명하신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그 죄값으로 이제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도 죽고 육도 죽는 것은 죄값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죄값으로 죽었기 때문에 우리보다 먼저 죽은 마귀가 이 세상 임금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서 먼저 영적으로 죽은 존재입니다. 사망의 장자입니다. 그 마귀가 이제 우리가 죄 짓고 죽으니까 우리를 점령하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사망의 세력을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를 청산하고 사망을 멸해 버리면 마귀는 무장해제됩니다. 그 때문에 마귀가 제일 무서워 하는 것이 십자가요, 제일 두려워 하는 것이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마귀는 무장해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어찌하든지 절대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죄 없는 예수님은 죽을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생명의 대왕입니다. 그 증거로 회당장의 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은 “달리다굼” 한마디로 살리셨습니다. 나인성의 과부 아들이 죽어 관을 메고 가는데 관뚜껑을 열고 “청년아 일어나라”하시자 그가 일어났습니다.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날 때 “나사로야 나오너라”는 말씀으로 나사로가 살아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대왕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을 필요가 없으신 분이신데 우리를 위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인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죄인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이처럼 부르짖으셨습니다. 처참한 죄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고 보혈로 우리 죄를 청산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죽어서 죄를 다 갚으셨으므로 사흘만에 사망을 철폐하고 부활하셨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는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죄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구세주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유일한 생명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25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도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예수님만이 나의 삶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한 토인이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추장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추장은 화가 치밀어 죄인을 사형시킬 것을 명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선교사는 비싼 보화를 싸 가지고 가서 추장에게 주면서 죄인의 생명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추장은 보기보다 완고하고 냉담했습니다. "저런 물건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상아나 금, 은, 노예 따위는 부럽지 않소. 그런 것들은 저쪽 부락에 가면 얼마든지 빼앗아올 수 있소. 더구나 백인의 물건은 갖지 않겠소. 내가 오직 필요로 하는 것은 피요. 다른 것은 소용없소." 추장은 다시 부하에게 죄인을 죽일 것을 명했습니다. 화살이 시위에서 떠나려는 순간 선교사의 가슴에는 연민의 정이 가득하여 자신도 모르게 죄인 앞을 가로막고는 자기가 화살에 맞았습니다. 순간 선교사는 쓰러졌다가 이내 몸을 일으켜 화살을 뽑아 땅에 던졌습니다. 선교사의 몸에서는 피가 솟구쳤습니다. 그는 이러한 몸으로 추장에게 다가갔습니다. "자, 당신이 구하고 있는 피요. 받으시오. 그리고 그를 살려 주시오." 선교사의 행동에 감동한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소. 당신은 당신의 피를 가지고 그를 샀소. 그는 당신의 것이오." 그 때에 죄인은 선교사의 발밑에 엎드려 감격에 떨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은 피로 저를 사셨습니다. 아무쪼록 오늘부터 어디를 가시든지 제가 모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후 선교사가 가는 곳마다 그 토인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에도 결코 싫은 기색을 하지 않았습니다.(피로 산 죄인)
꽤 큰 부자로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이제 고령의 할머니가 되어서야 예수님을 믿게 된 분이 있습니다. 이 할머니가 예수님 믿고 중생한 후 어느 날 손녀의 손목을 잡고 장거리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불쌍한 사람이 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밉니다. 그에게 얼마를 주고 가다 보니 또 누군가가 도움을 청합니다. 물론 이 할머니는 그에게도 동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구세군의 자선남비에도 얼마를 집어넣고 --- 이런 식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동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손녀가 말합니다. "할머니, 오늘 참 손해 많이 보시네요 ?" 할머니는 그 어린 손녀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이렇게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내가 예수님 믿은 후에 급한 성격도 버렸고, 남 흉보던 말도 버렸단다. 세상 쾌락도, 욕심도, 이기심도, 질투도, 남을 비판하는 마음도 다 버렸단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오직 예수님뿐이란다" 우리도 예수님 믿고 다 잃어버렸다고 고백합시다. 오직 예수님뿐이라고 고백합시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라고 한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합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우리들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고 섬기는 자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길입니다. 무능한 사람을 유능한 사람으로, 우둔한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쓸모없는 사람을 꼭 필요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는 능력의 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섬기는 자들로 하여금 행복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받들어 섬기는 사람들을 풍요로운 곳으로 인도하시는 길이십니다. 이토록 존귀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 기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사랑되신 주님, 귀한 주님의 이름을 찬양드립니다.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주님만이 나의 기쁨이요 전부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내게는 주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나는, 가장 행복한 자요, 부요한 자인 것을 또한 믿습니다. 그러나 가끔 세상의 정욕과 교만으로 주님을 잊어버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보지 않은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바른 관점을 얻으려면

어느 날 '해'가 말했습니다. "나뭇잎은 초록색이야."
그런데 '달'이 나뭇잎은 은색이라고 우겼습니다. 다시 '달'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늘 잠만 잔다."
그러자 '해'가 "아니야, 그들은 언제나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단다." '달'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그 때 '바람'이 지나가다가 그들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둘 다 쓸데없는 논쟁들을 하고 있구나!"하고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하늘에 해가 떠 있을 때도 불고 달이 떠 있을 때도 불지. 해가 빛을 비추는 낮에는 해가 말한 대로 땅이 시끄럽고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나뭇잎은 초록색이 된단다. 그러나 달이 빛을 비추는 밤이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지지. 사람들은 잠을 자고 온 땅이 고요해지며 나뭇잎은 은빛이 된단다. 너희들은 진실을 모두 알고 있지 못한 거야." 이처럼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제한된 경험을 토대로 각각의 관점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진리를 다 아시며 주님의 말씀과 판단은 언제나 올바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염려, 고통스런 짐, 장래의 일 등 삶의 모든 것을 맡기고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과연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하나님만을 더 사랑할 수 있겠는가?
0 나는 신앙 제일주의의 삶을 살고 있는가?
0 나는 총칼 앞에서도 신앙의 정조를 지킬 수 있겠는가?
0 나는 이 세상 무엇보다 하나님만을 사랑하는가?

3. 예화(1) : 죄의 짐과 그리스도안에서의 해결

'도스토예프스키' 라는 유명한 작가를 아실 것입니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학가입니다. 그가 쓴 소설 중에 '죄와 벌'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어느날 주인공이 자기철학과 관념 속에 빠져 고리대금업자를 살해합니다. 악덕한 사람, 부당한 사람은 죽여도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위는 뜻밖에도 그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괴로워하는 비참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결국 자기 이론의 추악한 투영을 보고 마침내 자수하여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강조하려는 것은 바로 죄의 짐과 그리스도안에서의 해결입니다. 작가는 젊은 시절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사람입니다.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지내는 동안 그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은혜를 알기까지 그를 편치 않게 했던 것이 바로 '죄'였습니다. 그는 죄가 가장 큰짐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그것을 풀 수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절대적인 진리 위에 죄와 벌이 쓰여진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무겁고 비참한 것은 죄요, 그 짐을 풀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만이 가능함을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입니다.

* 예화(2) : 해바라기 신앙

교회 현관 앞에 해바라기가 익은 씨를 주체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서있습니다. 이 해바라기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고개를 숙여가더니 이제는 허리까지 숙이고 있습니다. 저는 이 해바라기를 볼 때 마다 이 해바라기로부터 진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해바라기는 꽃이 해가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움직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해바라기처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오직 예수님만을 따라 살아가는 해바라기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해바라기는 그 키가 다른 꽃들에 비해 엄청나게 클 뿐만아니라 그 씨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조그만 해바라기 씨 한 개가 싹이 나고 자라서 수많은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는 열매맺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벼이삭이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이 해바라기도 익어 갈수록 더욱 고개를 숙여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이 점점 자라고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더욱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겸손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일수록 목에 힘을 주고 잘난체합니다. 머리에 든 것이 많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고개를 숙일 줄 알고 겸손합니다

4. 찬송: (95장) 온 세상이 어두워 캄캄하나

1. 온 세상이 어두워 캄캄하나 이 세상의 빛은 예수 주 예수의 영광이 햇빛 같아 이 세상의 빛은 예수
2. 주 예수를 믿으면 어둠 없네 이 세상의 빛은 예수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리 이 세상의 빛은 예수
3. 죄 가운데 눈멀어 사는 자여 이 세상의 빛은 예수 주 이름을 믿으면 눈 밝으리 이 세상의 빛은 예수
4. 저 천국엔 햇빛이 쓸데 없네 저 세상의 빛도 예수 그 높으신 곳에도 빛이시라 저 세상의 빛도 예수

[후렴]
이 빛으로 다 나아오라 밝은 그빛 날 비춰주어 어둡던 눈 곧 밝았도다 이 세상의 빛은 예수

* 영국 캐임브리지 대학의 교수이자 종교 개혁자였던 찰스 킹슬리는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생애를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그 비결을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제게는 한 친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한 한 사람의 친구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귀한 친구이며, 자애심이 깊은 친구이며, 또한 이해심이 많은 친구입니다. 지혜로운 친구와 교제하면 더욱 지혜로워지고, 악한 친구와 어울리면 악해집니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친구와 교제하면 더욱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친구, 지혜로운 친구, 선한 친구 등과 교제함으로 믿음과 지혜를 더하고, 의롭고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교회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교회의 비전
1. 365일 예배드리는 교회(히10: 25, 행17:11)
오늘날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매일 말씀을 읽고, 듣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말씀의 거울을 통해 매일 마음을 바르고 깨끗이 하여서 예수와 복음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막8:35)
2. 더불어 사는 공동체 (행2:42- 47)
하나님은 영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육신까지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교회는 예수님이 주인이신 예수공동체이며,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안에서 한 가족이 되고, 교회 직영 사업을 통해 청장년의 일자리 마련, 노후생활 보장 등의 꿈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교회(롬14: 17)
정의롭고(선행에 힘쓰고), 근심, 걱정, 두려움이 없고(기도에 힘쓰고), 기쁨과 찬송이 넘치는 교회
4.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마22:37- 39)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이러한 꿈과 비전이 있는 교회를 개척하고자 합니다. 연락바랍니다.

하나 교회 한 태 완 목사
전화: 010-7676-3049, 자택: (02) 959-3049
이메일: jesuskorea@naver.com

성경의 인물
성경에 나오는 왕에서 노예, 예언자, 거짓 선지자에 이르기까지 약 400명의 인물들을 정렬하고, 관계 성구, 배경해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되새기도록 구성한 인물 백과사전.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살고, 투쟁하고, 실패하고 성취하며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부록: 성경에 나오는 전 인물<약2500명> 수록)
한 태 완 목사 著, 좋은 땅 (주문전화:386-8660), 정가 40,000원
좋은땅 인터넷 http://www.g-world.co.kr
좋은땅 이메일 gworld@g-world.co.kr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350 부정부패와 싸운 초기 기독교인 복음 2005-06-01 446
7349 부정부패와 싸운 초기 기독교인 복음 2005-06-01 564
7348 온전한 헌신 (112) 복음 2005-06-01 2585
7347 온전한 헌신 (91) 복음 2005-06-01 301
» 예수님만이 (82) 복음 2005-06-01 378
7345 하나님께 맡기라 (24) 복음 2005-06-01 395
7344 우리의 고향, 하나님 나라(8) 복음 2005-06-01 298
7343 자랑하지 말라(10) 복음 2005-06-01 321
7342 부흥이 일어나는 때 복음 2005-06-01 1182
7341 늦기 전에 해야 할 일(44) 복음 2005-06-02 498
7340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 복음 2005-06-02 697
7339 마음을 낮추어라 복음 2005-06-02 528
7338 만성 신장염 복음 2005-06-02 577
7337 학교 폭력 복음 2005-06-02 552
7336 멋 있는 성도,맛 있는 삶 복음 2005-06-02 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