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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
처음 믿기 시작한 초신자들이 다 그러하듯 나 역시 전도하고 싶어 견딜 수
가 없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나 가족들 앞에서 주책스러울 만큼 나는 늘 하
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Newjersey. Mantua 라는 곳은 한
국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자연히 전도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미국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면 큰길거리 한복판에 서서 큰소리로 전도할 수
있었겠지만 내가 섬기는 교회가 한인교회다 보니 늘 아쉬움만 가지고 지냈
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웃보다 더 급한 사람들은 바로 우리
가족이었습니다. 대단한 열성으로 남묘호랑계교를 믿고 계시는 우리 어머니
를 비롯해서 믿는 사람이라면 괜히 치를 떨었던 우리 형제들에게 먼저 전도
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가족들과 인연을 끊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렇
지만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우리 가족을 구원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 무렵 어머님은 40년 동안 앓아 온 지병인 당뇨병이 무척 심해져서 숨쉬
기조차 힘들어하셨고 눈도 실명직전이었고 거기다 합병증으로 신부전증까지
앓게 되어 일주일에 3번을 투석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집
에는 매일같이 남묘호랑계교를 믿는 사람들로 붐볐고 어머니는 여전히 본전
님께 매달리며 치성을 드렸습니다. 아마도 그 길이 당신께서 낫는 길이라 믿
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어머님 앞에서 예수는 입에도 담을 수 없어서 나는
어머니가 얼마 남지 않은 생애를 예수를 믿고 천당가게 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생동안 어머님을 지배해 온 사탄이 어
머님을 쉽게 놓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본전님을 믿었
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뵈올 때마다 다급해졌습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
기에 목사님과 상의를 한 후 어머니에게 맞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먼
저 아버님을 설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철저하게 어머니 편이시며, 예수 믿
는 사람 핍박이라면 어머니 못지 않게 완강하신 아버님은 그래도 아들이 예
수 믿고 잘됐다니까 조금은 누그러지신 편 이셨기에 나는 아버님부터 설득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께서 참으로 놀라운 고백을 하셨습니다. 벌써 오래
전 그러니까 50-60년 전에 아버지는 이미 세례를 받으셨고, 아버님 외할아
버님이 장로님이어서 그 영향으로 교회에 열심히 다녔노라고 고백하셨습니
다. 더 놀라운 것은 어머니도 결혼 초에 아버님과 몇 년간 교회에 다니셨는
데 그 때 내 위의 두 형이 죽고 누나가 죽자 어머니는 당신께서 교회를 다
녀서 자식이 죽었다면서 그때부터 교회를 증오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이
흉이 될까봐 말씀을 안 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버님 고백을 들으면서 다
시 한번 하나님께서 한번 자녀 삼은 영혼은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깨
달았습니다.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다가 이제 때가 됨에 나를 도구로 삼으
셔서 아버님, 어머님을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
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 저 예수 믿고 얼마나 잘 됐습니까, 예수 믿고 얼
마나 평안한지 아시지요. 그러니까 아버님도 예수 믿으세요. 이제는 예수 믿
고 나중에 천당가시면 그곳에서 만나야 하잖아요. 아버님이 예수 믿어야 자
식들도 잘 살수 있어요. 재물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평안하
면 만사형통이 됩니다. 아버님이 예수를 믿어야 어머니도 믿을 것 같습니
다” 하고 생전 처음 아버님께 예수 믿는답시고 설교를 했습니다. 부모님들
의 가장 약한 것은 자식 잘 된다는 것이기에 그렇게 해서라도 우선은 아버
님 마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님께서 ‘그래, 내가 예수 믿어서
모두가 편하다면, 자식들이 잘 된다면 예수 믿자”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
습니다. 그때부터 오래 동안 떠나있던 아버님이 하나님께 돌아와 다시 믿음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날부터 남묘호랑계교에서 오는 사람들은 무조건 아버님 명령 하에 내쫓
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식들까지 나와서 본전님께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어머님이 돌아가시는데 식구들이 저러면 더 빨리 돌아가신다고, 빨리 어머니
를 모시고 본전님께 나오라면서 자식들이 어머니를 죽이고 있다고, 악을 악
을 쓰며 악담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악담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
습니다. 다만 어머님만이 여전히 못마땅해 하셨지만 그래도 세례까지 받으신
아버님의 설득이 많이 통했던지 예전과는 달랐습니다.
하루는 나는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다는 마음으로 어머님 앞에 무릎을 꿇
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나 예수 믿는 것 아시지요? 그리고 예수 믿어서
잘 된 것도 아시지요? 어머니도 이 좋은 예수 믿읍시다. 예수 믿어보니까 참
좋습디다, 그리고 나중에 어머니 돌아가셔서 천당 가시면 우리 거기서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어머니 지금 예수 안 믿으시면 천당 못 가요, 그러면 어머
니 저희들 다시 보실 수 없습니다” 하고 간곡히 말씀드리면서 혹시 어머니
께서 화를 내시고 쓰러지면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을 하며 살폈습니다. 그런
데 뜻밖에 어머님이 눈에 눈물을 글썽이시며 “그래 네가 믿어서 잘되었으
면 그 예수는 진짜 예수인가 보다. 네가 믿는 예수 나도 믿자, 내가 예수 믿
어서 너희들도 편하고 나도 편하면 믿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멘” 하고 큰소리를 치고는 내친 걸음에 어머니 방에 있는 불당
을 치워야 할 것 같아서 “어머니 제일 먼저 저 불당을 치우셔야 할 것 같
습니다. 제가 치울테니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여쭈어 보았더니. 어머님은
“그래 그렇게 해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님은 몇 십 년을 당신의 신
으로 모시고 매일 빌던 불당을 하루아침에 버린다니 어머님이 무척 힘드셨
으리라 나는 생각되었지만 강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 방에
들어가 불당을 치우려고 하는데 그 순간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 왔습
니다. 두려움이 한순간 기분 나쁘게 스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목사님께 전화 드렸더니 목사님께서 큰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다면서 불당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은 전지 전능하십니다”고
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그 불당을 모조리 치우시고는 “이것은 내가 가져가
겠습니다. 이것 아무 것도 아닌 나무 상자지만 그래도 두려워 하실 것 같아
서 제가 가지고 가겠습니다”하시며 우리 마음을 잘 알고 계신 목사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가셨습니다. 그렇게 불당을 치우고 그 자리에 십자가를 걸어
놓았습니다. 할렐루야!
어머님의 건강이 날로 쇠약해지셨고, 날마다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와 말씀을
주시며 어머님을 위로하셨습니다. 하루는 목사님께서 “어머님이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면 세례를 받을 준비를 하셔야 되겠
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세례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세례를 주시
는 날 “어머니, 예수님 믿으시지요?” 하고 목사님께서 물으시니까 어머님
은 기력이 없는 힘든 목소리로 그러나 힘을 다하여 “예” 하셨습니다. 순간
나도 울고 아내도 울고 우리 모두는 울었습니다. 목사님은 목이 메이시어 말
씀을 제대로 못하시며 세례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세례를 받으신 후 목사님
은 오실 적마다 “어머님 오래 못사십니다. 마음에 준비를 하십시오” 하셨
는데. 조금은 기분도 나쁘고 한편으로는 ‘설마’ 또 한편으로는 그럴까, 하
며 지내고 있었지만 아무도 어머니가 그렇게 일찍 가시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투석을 하시는 과정에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고 목사님이 기도하시
고 가신 그 다음날 어머님은 돌아가신 것입니다. 새벽에 나는 어머님이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가서 얼굴을 보았습니다. 주무시는 듯이
평안한 모습 그대로 가셨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사람은 가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죽는다고 했는데 어머님은 천국 가는 것이 기쁘셨는지 너무도 평안
했습니다.
어머님 장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독교식으로 치루어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모두들 “어머님이 언제 예수 믿으셨어요?” 하고 물어
보셨고, 목사님께서 그 동안 어머님께서 예수 믿게 된 경로를 말씀하시면서
우셨고 나도 울고 듣는 모든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다만 한 무리 울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남묘호랑계교를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후, 우리 형제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아버님도 예수 믿고 보는 사
람들마다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시고 다니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핍박하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던 우리 집안이 몽땅 예수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
다 할렐루야!
옛날에는 조상 제사 안 지내는 예수쟁이들은 사람도 아니라고 하시던 우리
아버님이 어머님 돌아가신 지 1년 첫 번째 제사로 목사님을 모셔다가 추모
예배를 드렸고, 1년에 서너 번 있었던 제사는 가족이 모두 모여 추모예배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버님은, 보는 사람마다 “예수 믿어 보시오, 우리 아들 예수 믿고
그 못된 성격 고치고 복 받고 사는 것 보시오, 예수 믿으면 참 좋대요”하며
전도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우리 부부가 믿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도록 많은 축복을 받았
습니다. 사업은 날로 날로 번창해서, 남들은 일이 없어서 문을 닫는데 우리
는 일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받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감사한 일은 우리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타운은 한국사람이 우리밖에는 없는 동네입니다. 처음에
우리가 이 동네로 이사를 왔을 때 우리는 어디를 가나 구경거리였습니다. 가
까운 필라델피아나 근처 딴 동네는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유
독 우리 동네는 한국 사람은커녕 타민족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
르게 차별도 심했고, Shopping을 해도 어디를 가도 구경거리였습니다. 이사
를 할까?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사업터도 있고 또 한국 사람이 없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 교육에 더 나을 듯 싶어 주저앉았던 것입니다. 사실 한국 사
람들이 있는 동네에는 아이들이 몰려다니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야기되었습니다. 아시안을 처음 보는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을 놀리는 거였습
니다.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아이들이 받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내 아이들이 놀림감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이 뒤집혀서 날이면 날마다 학
교 교장에게 찾아가 책상을 치며 항의도 해보고 별 짓을 다해보았지만 학교
장에게 사과문만 받았지 정작 아이들이 달라지는 것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놀리는 아이들 집에 쫓아가 따지고, 엄포를 놓고, 학교에 찾아가 항의를 하
고 말 그대로 전쟁이었습니다. 그 즈음 우리가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기 시
작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항의도 엄포도 모두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아이들
을 학교로 보내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민 온
부모 때문에 죄 없는 우리 아이들이 희생물이 되고 있다면서 어른도 견디기
힘든 저 스트레스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뭐든지 긍정적인 사
고 방식을 가지도록 가르쳤고, 또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와 아이들에게 지혜
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기었습니다. 지금은 세월 탓도 있겠지만 어
쩌다 학교 모임에라도 가면 모두가 우리를 압니다. Hi! Mr. Mrs Lee! 하며
반갑게 맞이합니다. 우리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림을 받던 아이들이 모든 면에서 뛰어나 칭찬을 받게
해 주신 것입니다. 공부도 잘하고 학교활동도 잘하고 그래서 지금은 모두들
대환영을 해줍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여기를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계속)
처음 믿기 시작한 초신자들이 다 그러하듯 나 역시 전도하고 싶어 견딜 수
가 없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나 가족들 앞에서 주책스러울 만큼 나는 늘 하
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Newjersey. Mantua 라는 곳은 한
국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자연히 전도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미국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면 큰길거리 한복판에 서서 큰소리로 전도할 수
있었겠지만 내가 섬기는 교회가 한인교회다 보니 늘 아쉬움만 가지고 지냈
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웃보다 더 급한 사람들은 바로 우리
가족이었습니다. 대단한 열성으로 남묘호랑계교를 믿고 계시는 우리 어머니
를 비롯해서 믿는 사람이라면 괜히 치를 떨었던 우리 형제들에게 먼저 전도
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가족들과 인연을 끊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렇
지만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우리 가족을 구원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 무렵 어머님은 40년 동안 앓아 온 지병인 당뇨병이 무척 심해져서 숨쉬
기조차 힘들어하셨고 눈도 실명직전이었고 거기다 합병증으로 신부전증까지
앓게 되어 일주일에 3번을 투석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집
에는 매일같이 남묘호랑계교를 믿는 사람들로 붐볐고 어머니는 여전히 본전
님께 매달리며 치성을 드렸습니다. 아마도 그 길이 당신께서 낫는 길이라 믿
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어머님 앞에서 예수는 입에도 담을 수 없어서 나는
어머니가 얼마 남지 않은 생애를 예수를 믿고 천당가게 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생동안 어머님을 지배해 온 사탄이 어
머님을 쉽게 놓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본전님을 믿었
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뵈올 때마다 다급해졌습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
기에 목사님과 상의를 한 후 어머니에게 맞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먼
저 아버님을 설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철저하게 어머니 편이시며, 예수 믿
는 사람 핍박이라면 어머니 못지 않게 완강하신 아버님은 그래도 아들이 예
수 믿고 잘됐다니까 조금은 누그러지신 편 이셨기에 나는 아버님부터 설득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께서 참으로 놀라운 고백을 하셨습니다. 벌써 오래
전 그러니까 50-60년 전에 아버지는 이미 세례를 받으셨고, 아버님 외할아
버님이 장로님이어서 그 영향으로 교회에 열심히 다녔노라고 고백하셨습니
다. 더 놀라운 것은 어머니도 결혼 초에 아버님과 몇 년간 교회에 다니셨는
데 그 때 내 위의 두 형이 죽고 누나가 죽자 어머니는 당신께서 교회를 다
녀서 자식이 죽었다면서 그때부터 교회를 증오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이
흉이 될까봐 말씀을 안 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버님 고백을 들으면서 다
시 한번 하나님께서 한번 자녀 삼은 영혼은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깨
달았습니다.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다가 이제 때가 됨에 나를 도구로 삼으
셔서 아버님, 어머님을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
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 저 예수 믿고 얼마나 잘 됐습니까, 예수 믿고 얼
마나 평안한지 아시지요. 그러니까 아버님도 예수 믿으세요. 이제는 예수 믿
고 나중에 천당가시면 그곳에서 만나야 하잖아요. 아버님이 예수 믿어야 자
식들도 잘 살수 있어요. 재물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평안하
면 만사형통이 됩니다. 아버님이 예수를 믿어야 어머니도 믿을 것 같습니
다” 하고 생전 처음 아버님께 예수 믿는답시고 설교를 했습니다. 부모님들
의 가장 약한 것은 자식 잘 된다는 것이기에 그렇게 해서라도 우선은 아버
님 마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님께서 ‘그래, 내가 예수 믿어서
모두가 편하다면, 자식들이 잘 된다면 예수 믿자”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
습니다. 그때부터 오래 동안 떠나있던 아버님이 하나님께 돌아와 다시 믿음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날부터 남묘호랑계교에서 오는 사람들은 무조건 아버님 명령 하에 내쫓
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식들까지 나와서 본전님께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어머님이 돌아가시는데 식구들이 저러면 더 빨리 돌아가신다고, 빨리 어머니
를 모시고 본전님께 나오라면서 자식들이 어머니를 죽이고 있다고, 악을 악
을 쓰며 악담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악담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
습니다. 다만 어머님만이 여전히 못마땅해 하셨지만 그래도 세례까지 받으신
아버님의 설득이 많이 통했던지 예전과는 달랐습니다.
하루는 나는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다는 마음으로 어머님 앞에 무릎을 꿇
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나 예수 믿는 것 아시지요? 그리고 예수 믿어서
잘 된 것도 아시지요? 어머니도 이 좋은 예수 믿읍시다. 예수 믿어보니까 참
좋습디다, 그리고 나중에 어머니 돌아가셔서 천당 가시면 우리 거기서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어머니 지금 예수 안 믿으시면 천당 못 가요, 그러면 어머
니 저희들 다시 보실 수 없습니다” 하고 간곡히 말씀드리면서 혹시 어머니
께서 화를 내시고 쓰러지면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을 하며 살폈습니다. 그런
데 뜻밖에 어머님이 눈에 눈물을 글썽이시며 “그래 네가 믿어서 잘되었으
면 그 예수는 진짜 예수인가 보다. 네가 믿는 예수 나도 믿자, 내가 예수 믿
어서 너희들도 편하고 나도 편하면 믿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멘” 하고 큰소리를 치고는 내친 걸음에 어머니 방에 있는 불당
을 치워야 할 것 같아서 “어머니 제일 먼저 저 불당을 치우셔야 할 것 같
습니다. 제가 치울테니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여쭈어 보았더니. 어머님은
“그래 그렇게 해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님은 몇 십 년을 당신의 신
으로 모시고 매일 빌던 불당을 하루아침에 버린다니 어머님이 무척 힘드셨
으리라 나는 생각되었지만 강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 방에
들어가 불당을 치우려고 하는데 그 순간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 왔습
니다. 두려움이 한순간 기분 나쁘게 스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목사님께 전화 드렸더니 목사님께서 큰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다면서 불당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은 전지 전능하십니다”고
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그 불당을 모조리 치우시고는 “이것은 내가 가져가
겠습니다. 이것 아무 것도 아닌 나무 상자지만 그래도 두려워 하실 것 같아
서 제가 가지고 가겠습니다”하시며 우리 마음을 잘 알고 계신 목사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가셨습니다. 그렇게 불당을 치우고 그 자리에 십자가를 걸어
놓았습니다. 할렐루야!
어머님의 건강이 날로 쇠약해지셨고, 날마다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와 말씀을
주시며 어머님을 위로하셨습니다. 하루는 목사님께서 “어머님이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면 세례를 받을 준비를 하셔야 되겠
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세례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세례를 주시
는 날 “어머니, 예수님 믿으시지요?” 하고 목사님께서 물으시니까 어머님
은 기력이 없는 힘든 목소리로 그러나 힘을 다하여 “예” 하셨습니다. 순간
나도 울고 아내도 울고 우리 모두는 울었습니다. 목사님은 목이 메이시어 말
씀을 제대로 못하시며 세례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세례를 받으신 후 목사님
은 오실 적마다 “어머님 오래 못사십니다. 마음에 준비를 하십시오” 하셨
는데. 조금은 기분도 나쁘고 한편으로는 ‘설마’ 또 한편으로는 그럴까, 하
며 지내고 있었지만 아무도 어머니가 그렇게 일찍 가시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투석을 하시는 과정에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고 목사님이 기도하시
고 가신 그 다음날 어머님은 돌아가신 것입니다. 새벽에 나는 어머님이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가서 얼굴을 보았습니다. 주무시는 듯이
평안한 모습 그대로 가셨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사람은 가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죽는다고 했는데 어머님은 천국 가는 것이 기쁘셨는지 너무도 평안
했습니다.
어머님 장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독교식으로 치루어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모두들 “어머님이 언제 예수 믿으셨어요?” 하고 물어
보셨고, 목사님께서 그 동안 어머님께서 예수 믿게 된 경로를 말씀하시면서
우셨고 나도 울고 듣는 모든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다만 한 무리 울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남묘호랑계교를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후, 우리 형제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아버님도 예수 믿고 보는 사
람들마다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시고 다니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핍박하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던 우리 집안이 몽땅 예수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
다 할렐루야!
옛날에는 조상 제사 안 지내는 예수쟁이들은 사람도 아니라고 하시던 우리
아버님이 어머님 돌아가신 지 1년 첫 번째 제사로 목사님을 모셔다가 추모
예배를 드렸고, 1년에 서너 번 있었던 제사는 가족이 모두 모여 추모예배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버님은, 보는 사람마다 “예수 믿어 보시오, 우리 아들 예수 믿고
그 못된 성격 고치고 복 받고 사는 것 보시오, 예수 믿으면 참 좋대요”하며
전도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우리 부부가 믿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도록 많은 축복을 받았
습니다. 사업은 날로 날로 번창해서, 남들은 일이 없어서 문을 닫는데 우리
는 일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받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감사한 일은 우리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타운은 한국사람이 우리밖에는 없는 동네입니다. 처음에
우리가 이 동네로 이사를 왔을 때 우리는 어디를 가나 구경거리였습니다. 가
까운 필라델피아나 근처 딴 동네는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유
독 우리 동네는 한국 사람은커녕 타민족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
르게 차별도 심했고, Shopping을 해도 어디를 가도 구경거리였습니다. 이사
를 할까?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사업터도 있고 또 한국 사람이 없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 교육에 더 나을 듯 싶어 주저앉았던 것입니다. 사실 한국 사
람들이 있는 동네에는 아이들이 몰려다니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야기되었습니다. 아시안을 처음 보는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을 놀리는 거였습
니다.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아이들이 받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내 아이들이 놀림감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이 뒤집혀서 날이면 날마다 학
교 교장에게 찾아가 책상을 치며 항의도 해보고 별 짓을 다해보았지만 학교
장에게 사과문만 받았지 정작 아이들이 달라지는 것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놀리는 아이들 집에 쫓아가 따지고, 엄포를 놓고, 학교에 찾아가 항의를 하
고 말 그대로 전쟁이었습니다. 그 즈음 우리가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기 시
작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항의도 엄포도 모두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아이들
을 학교로 보내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민 온
부모 때문에 죄 없는 우리 아이들이 희생물이 되고 있다면서 어른도 견디기
힘든 저 스트레스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뭐든지 긍정적인 사
고 방식을 가지도록 가르쳤고, 또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와 아이들에게 지혜
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기었습니다. 지금은 세월 탓도 있겠지만 어
쩌다 학교 모임에라도 가면 모두가 우리를 압니다. Hi! Mr. Mrs Lee! 하며
반갑게 맞이합니다. 우리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림을 받던 아이들이 모든 면에서 뛰어나 칭찬을 받게
해 주신 것입니다. 공부도 잘하고 학교활동도 잘하고 그래서 지금은 모두들
대환영을 해줍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여기를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