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1,157
신발 속의 모래
아주 먼 거리를 걸어온 사람들에게 신문기자들은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뜨거운 태양과 함께 물없는 광야를 외롭게 혼자서 걷는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가장 가파르고 험한 길을 고생하며 올라가던 길이었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발을 헛디뎌 진흙길로 빠졌을 때였습니까?"
"아닙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추운 밤이었나요?"
그러자 그 여행자는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를 가장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내 신발 속에 들어 있는 조그마한 모래였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는 큰 것이라기보다는 내 안에 해결되지 않고 계속 남아 있는 작은 찌꺼일 수 있다. 시간을 내어 그것이 무엇이지 생각해보고 말끔히 씻어버리라.
작은 여우를 잡으라
본문: 아2:15
“작은 여우를 잡으라”는 제목입니다. 평생을 함께 한 노부부가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프로그램에 나갔습니다. 사회자가 문제를 내면 할아버지가 문제를 설명해주고 할머니가 재치 있게 대답하는 그런 식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첫 번째 문제를 받아서 할머니에게 설명합니다. “우리처럼 만나서 평생을 함께 사는 관계를 무어라 하지?” 그러자 할머니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가 재촉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네 글자로 있잖아” 그때서야 답이 틀린 것을 알아차린 할머니가 크게 소리 지릅니다. "평생 웬수!" 그러나 정답은 평생 웬수가 아니라 '천생연분'이었습니다. 가정은 우리의 포도원입니다. 우리 마음도 신앙도 교회도 우리의 포도원입니다. 이곳에 하나님은 사랑과 행복이 깃들도록 하셨습니다. 아름다움과 풍성함이 넘치는 포도원이 되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순간 우리의 잘못으로 갈등과 원망과 두려움과 염려로 가득 찬 포도원이 되고, 웬수로 평생 웬수의 관계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무엇이 우리의 행복의 포도원을 이렇게 만들어버리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말씀은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작은 여우"라고 말씀합니다. 큰 여우도 아니에요. 큰 사자도 곰도 코끼리도 아닌 여우 그 중에서도 작은 여우라는 말입니다. 작은 여우란 포도원에 굴을 파고 살면서 포도나무의 뿌리와 줄기와 싹과 꽃 등을 갉아 먹어 헤치고 망치는 주범이 바로 작은 여우입니다. 우리 영적 생활에도 우리 신앙을 망치는 주범이 이 작은 여우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작은 여우가 무엇일까요?
1. 길들이지 못한 혀입니다.
약3:5~7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는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했습니다.
혀는 작은 지체입니다. 그러나 그 혀의 잠깐 잘못 사용이 우리 인생을 망가뜨립니다. 가정과 교회와 공동체를 허는 것이 바로 이 작은 혀입니다. 부정적인 말, 나쁜 말, 비판하는 말, 비난하는 말, 다른 말, 이상한 말, 거짓말 등 이런 것들이 포도원을 허물어뜨리는 것입니다. 말이 술술 나온다고 말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깊이 생각하고 말해야 말 잘하는 것입니다.
최근 학생 수가 많아 통폐합 대상이 아닌데 통폐합한다는 헛소문이 나돈 뒤 정말로 폐교돼버린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전북 정읍에 있는 오봉초등학교인데 학부모들이 소문을 믿고 자녀들을 인근 큰 학교로 전학시키는 바람에 학생 수가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헛소문이 엉뚱한 일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 잠깐만이라도 생각하고 말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회나 교회나 언제나 문제가 말 때문에 생깁니다. 그래서 배움이란 것이 중요하더군요. 배움이 부족할수록 언제나 말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3초 만에 행복한 세상 만들기라는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닫기를 누르기 전 3초만 기다리자. 정말 누군가 급하게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출발신호가 떨어져 앞차가 서 있어도 클랙슨을 누르지 말고 3초만 기다려 주자. 그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갈등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차 앞으로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3초만 서서 기다리자. 그 사람 아내가 정말 아플지도 모른다. 친구와 헤어질 때 그의 뒷모습을 3초만 보고 있어주자. 혹시 그가 가다가 뒤돌아 봤을 때 웃어 줄 수 있도록, 길을 가다가 아침 뉴스에서 불행을 맞은 사람들을 보면 잠시 눈을 감고 3초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 언젠가는 그들이 나를 위해 기꺼이 그리할 것이다.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는 때라도 3초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내가 화낼 일이 보잘 것 없지는 않은가. 죄짓고 감옥 가는 사람을 볼 때 욕하기 전 3초만 생각하자. 내가 그 사람의 환경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 울상하고 있을 때 3초만 말없이 웃어주자. 잘못을 뉘우치면 내 품으로 달려올지도 모른다. 아내가 화가 나서 소나기처럼 퍼부어도 3초만 미소 짓고 들어주자. 그녀가 저녁엔 넉넉한 웃음으로 한잔 차를 부어줄지 모른다.” 이처럼 몇 초만 더 생각하고 말하는 아름다운 언어의 소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작은 여우는 방심이며 자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포도원에 꽃이 피었다고 했습니다. 그 꽃이 화려하게 피었습니다. 향기가 진동합니다. 포도원의 농부는 생각합니다. 금년에 포도 농사가 풍년이 들겠구나. 그러나 포도의 꽃이 아무리 좋아도 아직 방심하기에는 이릅니다. 포도원에 꽃이 피었다고 다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우가 들어와 갉아먹으면 농사는 망치게 됩니다. 여기서 생각 되는 교훈은 방심과 자만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위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언제 넘어졌습니까? 약할 때 넘어졌습니까? 아닙니다. 약할 때는 오히려 주를 의지하여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강할 때 넘어졌습니다. 다윗도 강할 때 넘어졌습니다. 솔로몬도 강할 때 넘어졌습니다. 히스기야도 강할 때 넘어졌습니다. 섰다 할 때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순간에 들어오는 신앙생활의 자만과 방심 이것이 우리의 신앙을 망치는 주범이라는 말씀입니다.
3. 작은 여우는 곧 작은 의심이나 욕심입니다.
약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의심이나 욕심은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방치하면 커서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죄는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합니다. 죄는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더럽고 추한 것을 싫어하십니다. 죄를 어느 정도 싫어하신가? 미워하고 원수로 아실만큼 싫어합니다. 이 모든 원인이 작은 의심과 욕심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조그마한 생각이 들어올 때 그 때 물리쳐야 합니다.
미국 펜실바니아주에 큰 댐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홍수가 나서 전문가들이 점검한 결과 댐에 조그만 금이 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쥐 한 마리가 구멍을 판 것이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온 마을에 경고하였습니다. 이 경고를 듣고 많은 이들이 대피하였지만 이 경고를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렇게 단단한 댐이 그런 작은 균열에 무너지겠느냐?” 그러나 얼마 후 굉장한 굉음과 함께 댐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피하지 못한 이들은 그 물에 휩쓸려 죽고 말았습니다. 작은 쥐 한 마리가 거대한 댐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야생동물의 피해가 크다고 합니다. 조용히 와서 먹으면 피해가 크지 않겠지만 뛰어다니며 놀다 가기 때문에 다 망쳐놓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포도원을 망치는 작은 여우를 잡으십시다. 작은 불이 큰 산을 태우며, 작은 물이 바다를 덮습니다. 작은 것이라고 만만하게 보면 안 됩니다. 작은 것을 원칙 없이 조금씩 양보하다가는 결국에는 신앙마저 잃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의 동산 우리의 포도원에 사탄이 틈타지 않도록 우리의 입술을 지키고, 우리의 자만과 방심을 지키고, 의심과 죄악을 지켜서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으로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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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거리를 걸어온 사람들에게 신문기자들은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뜨거운 태양과 함께 물없는 광야를 외롭게 혼자서 걷는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가장 가파르고 험한 길을 고생하며 올라가던 길이었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발을 헛디뎌 진흙길로 빠졌을 때였습니까?"
"아닙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추운 밤이었나요?"
그러자 그 여행자는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를 가장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내 신발 속에 들어 있는 조그마한 모래였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는 큰 것이라기보다는 내 안에 해결되지 않고 계속 남아 있는 작은 찌꺼일 수 있다. 시간을 내어 그것이 무엇이지 생각해보고 말끔히 씻어버리라.
작은 여우를 잡으라
본문: 아2:15
“작은 여우를 잡으라”는 제목입니다. 평생을 함께 한 노부부가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프로그램에 나갔습니다. 사회자가 문제를 내면 할아버지가 문제를 설명해주고 할머니가 재치 있게 대답하는 그런 식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첫 번째 문제를 받아서 할머니에게 설명합니다. “우리처럼 만나서 평생을 함께 사는 관계를 무어라 하지?” 그러자 할머니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가 재촉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네 글자로 있잖아” 그때서야 답이 틀린 것을 알아차린 할머니가 크게 소리 지릅니다. "평생 웬수!" 그러나 정답은 평생 웬수가 아니라 '천생연분'이었습니다. 가정은 우리의 포도원입니다. 우리 마음도 신앙도 교회도 우리의 포도원입니다. 이곳에 하나님은 사랑과 행복이 깃들도록 하셨습니다. 아름다움과 풍성함이 넘치는 포도원이 되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순간 우리의 잘못으로 갈등과 원망과 두려움과 염려로 가득 찬 포도원이 되고, 웬수로 평생 웬수의 관계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무엇이 우리의 행복의 포도원을 이렇게 만들어버리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말씀은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작은 여우"라고 말씀합니다. 큰 여우도 아니에요. 큰 사자도 곰도 코끼리도 아닌 여우 그 중에서도 작은 여우라는 말입니다. 작은 여우란 포도원에 굴을 파고 살면서 포도나무의 뿌리와 줄기와 싹과 꽃 등을 갉아 먹어 헤치고 망치는 주범이 바로 작은 여우입니다. 우리 영적 생활에도 우리 신앙을 망치는 주범이 이 작은 여우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작은 여우가 무엇일까요?
1. 길들이지 못한 혀입니다.
약3:5~7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는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했습니다.
혀는 작은 지체입니다. 그러나 그 혀의 잠깐 잘못 사용이 우리 인생을 망가뜨립니다. 가정과 교회와 공동체를 허는 것이 바로 이 작은 혀입니다. 부정적인 말, 나쁜 말, 비판하는 말, 비난하는 말, 다른 말, 이상한 말, 거짓말 등 이런 것들이 포도원을 허물어뜨리는 것입니다. 말이 술술 나온다고 말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깊이 생각하고 말해야 말 잘하는 것입니다.
최근 학생 수가 많아 통폐합 대상이 아닌데 통폐합한다는 헛소문이 나돈 뒤 정말로 폐교돼버린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전북 정읍에 있는 오봉초등학교인데 학부모들이 소문을 믿고 자녀들을 인근 큰 학교로 전학시키는 바람에 학생 수가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헛소문이 엉뚱한 일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 잠깐만이라도 생각하고 말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회나 교회나 언제나 문제가 말 때문에 생깁니다. 그래서 배움이란 것이 중요하더군요. 배움이 부족할수록 언제나 말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3초 만에 행복한 세상 만들기라는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닫기를 누르기 전 3초만 기다리자. 정말 누군가 급하게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출발신호가 떨어져 앞차가 서 있어도 클랙슨을 누르지 말고 3초만 기다려 주자. 그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갈등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차 앞으로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3초만 서서 기다리자. 그 사람 아내가 정말 아플지도 모른다. 친구와 헤어질 때 그의 뒷모습을 3초만 보고 있어주자. 혹시 그가 가다가 뒤돌아 봤을 때 웃어 줄 수 있도록, 길을 가다가 아침 뉴스에서 불행을 맞은 사람들을 보면 잠시 눈을 감고 3초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 언젠가는 그들이 나를 위해 기꺼이 그리할 것이다.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는 때라도 3초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내가 화낼 일이 보잘 것 없지는 않은가. 죄짓고 감옥 가는 사람을 볼 때 욕하기 전 3초만 생각하자. 내가 그 사람의 환경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 울상하고 있을 때 3초만 말없이 웃어주자. 잘못을 뉘우치면 내 품으로 달려올지도 모른다. 아내가 화가 나서 소나기처럼 퍼부어도 3초만 미소 짓고 들어주자. 그녀가 저녁엔 넉넉한 웃음으로 한잔 차를 부어줄지 모른다.” 이처럼 몇 초만 더 생각하고 말하는 아름다운 언어의 소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작은 여우는 방심이며 자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포도원에 꽃이 피었다고 했습니다. 그 꽃이 화려하게 피었습니다. 향기가 진동합니다. 포도원의 농부는 생각합니다. 금년에 포도 농사가 풍년이 들겠구나. 그러나 포도의 꽃이 아무리 좋아도 아직 방심하기에는 이릅니다. 포도원에 꽃이 피었다고 다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우가 들어와 갉아먹으면 농사는 망치게 됩니다. 여기서 생각 되는 교훈은 방심과 자만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위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언제 넘어졌습니까? 약할 때 넘어졌습니까? 아닙니다. 약할 때는 오히려 주를 의지하여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강할 때 넘어졌습니다. 다윗도 강할 때 넘어졌습니다. 솔로몬도 강할 때 넘어졌습니다. 히스기야도 강할 때 넘어졌습니다. 섰다 할 때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순간에 들어오는 신앙생활의 자만과 방심 이것이 우리의 신앙을 망치는 주범이라는 말씀입니다.
3. 작은 여우는 곧 작은 의심이나 욕심입니다.
약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의심이나 욕심은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방치하면 커서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죄는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합니다. 죄는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더럽고 추한 것을 싫어하십니다. 죄를 어느 정도 싫어하신가? 미워하고 원수로 아실만큼 싫어합니다. 이 모든 원인이 작은 의심과 욕심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조그마한 생각이 들어올 때 그 때 물리쳐야 합니다.
미국 펜실바니아주에 큰 댐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홍수가 나서 전문가들이 점검한 결과 댐에 조그만 금이 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쥐 한 마리가 구멍을 판 것이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온 마을에 경고하였습니다. 이 경고를 듣고 많은 이들이 대피하였지만 이 경고를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렇게 단단한 댐이 그런 작은 균열에 무너지겠느냐?” 그러나 얼마 후 굉장한 굉음과 함께 댐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피하지 못한 이들은 그 물에 휩쓸려 죽고 말았습니다. 작은 쥐 한 마리가 거대한 댐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야생동물의 피해가 크다고 합니다. 조용히 와서 먹으면 피해가 크지 않겠지만 뛰어다니며 놀다 가기 때문에 다 망쳐놓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포도원을 망치는 작은 여우를 잡으십시다. 작은 불이 큰 산을 태우며, 작은 물이 바다를 덮습니다. 작은 것이라고 만만하게 보면 안 됩니다. 작은 것을 원칙 없이 조금씩 양보하다가는 결국에는 신앙마저 잃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의 동산 우리의 포도원에 사탄이 틈타지 않도록 우리의 입술을 지키고, 우리의 자만과 방심을 지키고, 의심과 죄악을 지켜서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으로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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