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보지 말라

복음............... 조회 수 843 추천 수 0 2005.01.26 10: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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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보지 말라



본문: 창세기 19: 15∼26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창19:17)



어떤 사람이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밤에 배를 저어 강 건너편으로 건너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30분이면 건널 수 있는 강인데 몇 시간 노를 저어도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술도 깨고 동이 훤하게 튼 다음에 자세히 보니까 거룻줄을 육지에 묶어 둔 채로 밤새도록 노를 저었습니다.

우리가 전진하며 새로운 발전을 가져오려면 과거를 청산하고 잊어버릴 것은 잊어 버려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18~19절에도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엄청난 새 일을 행하시고 나타내시려고 하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도 하지말고 옛적 일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장 13~14절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잘했든 못했든 잊어버리고 푯대만을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불필요한 쓰레기들을 깨끗이 청산하고 앞을 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아무도 원치 않는 배가 한 척 있었습니다. 1986년 펠리카노호는 공해상에 떠도는 배가되었습니다.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버뮤다 제도, 도미니카 공화국, 네덜란드, 온두라스 이 모든 나라가 이 배를 거절했습니다. 문제는 이 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배는 비록 녹이 슬고, 때는 끼었지만 화물선으로 아직 쓸만한 배입니다. 배의 주인도 문제가 없습니다. 배의 소유증서도 이상이 없습니다. 배의 세금 영수증도 다 첨부되어 있습니다. 선원들도 모두 자격이 있습니다. 이 배는 이런 모두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수년동안 이 배가 공해상에 떠돈 이유는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배에는 자그마치 1만5천 톤의 쓰레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1986년 여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수거한 쓰레기입니다. 이 때 시의 직원들이 파업을 하였습니다. 도시의 쓰레기는 날이 갈수록 쌓여갑니다. 펠리카노호는 쉽게 돈벌 궁리를 하였습니다. 쓰레기를 소각하고 남은 재를 처리해주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쓰레기 때문에 이 배는 오랫동안 공해상에 떠 있어야 했고 이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보았습니다. 쓰레기를 실은 채로 다른 사람에게 가지 못합니다. 쓰레기를 실은 배는 누구 하나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쓰레기 때문입니다. 옛 것을 버리기 전에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옛 것을 버리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용지물입니다. 아무리 외모가 그럴듯해도 속이 더러워져 있으면 누구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속에 가득 차 있는 쓰레기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공적이고 승리적인 생활을 하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전진하는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은 지난날의 실수, 지난날의 잘못, 지난날의 죄 악, 지난날의 실패를 잊지 못하고 거기에 붙들려 있는데 있습니다.

어떤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폭풍우가 심해서 과수원 한 복판에 수천 알이 달려 있던 사과나무 하나가 그만 뿌리째 뽑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과수원 주인의 친구가 왔다가 그것을 보고 주인을 향해서 아니, 이렇게 많은 사과가 달려 있는 좋은 나무가 그만 뿌리째 뽑혀 버렸으니. 이 말을 들은 주인이 예, 어젯밤 그만 폭풍에 이렇게 나무가 쓰러졌습니다. 친구말이 그러면 이 나무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주인은 예, 이 나무에 보시다시피 훌륭하게 익은 사과들이 많이 있는데 지금 다 딸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이 뿌리째 뽑힌 나무는 불살라 버리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생활의 철학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번 우리 삶이 뿌리째 뽑혀서 쓰러진 것 같은 상황에 처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실패 가운데서도 남은 것이 있고 거둔 열매가 있고, 태울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진리를 실패한 사람은 알게 됩니다.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저는 수없이 많은 분을 만나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하나님께 보내고 땅 위에서 슬퍼하는 사람, 사업의 실패로 말미암아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 어려운 병으로 신음하는 사람 이렇게 삶의 뿌리가 뽑혀 있는 것과 같은 우리의 삶의 체험 속에서 우리가 거두어들일 수 있는 열매가 담겨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과수원 주인의 말은 성공적인 삶의 중요한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사과를 따고 난 뒤에 쓰러져 버린 나무는 불태워 버리는 게 좋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과거에 체험해서 유익이 되는 것은 거두어들인 다음 이제는 썩어질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마음을 두지 말라는 말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에 우리는 이미 여러 가지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우리가 얻은 것은 다 따고 나무는 태워 버리셔야 합니다. 인생 행로는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이미 우리의 지난날에 생긴 것이지 지금 생겨나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어제 지은 죄에 매여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시편 103편 12절에 분명히 말했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한 죄를 용서하신 다음에는 기억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뿌리 뽑혀 말라 버리고만 나무를 부둥켜안고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지난날의 잘못이 아무리 큰 죄라고 할지라도 거기서 우리가 거둘 열매, 값진 교훈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죄뿐만 아니라 과거의 후회스런 일 역시 잊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날을 되돌아 볼 때 내가 만일 이렇게 했 다면 좋았을걸. 내가 그 일은 저렇게 했었으면 됐을 터인데 하는 말을 저절로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지난날의 실수는 몰라서 그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날의 실수를 통해서 열매를 거둘 수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배우고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기회는 또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뿌리가 뽑혀 쓰러져 소망이 없게 된 나무는 과감하게 태워버려야 합니다. 지나간 과거는 우리의 삶의 이정표이지 앞으로의 갈길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목표는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운전을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마는 차를 운전하게 되면 자연히 백밀러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백밀러를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또 가끔 보아서 뒤에서 오는 차가 접근해서 충돌하지 않을까 조심해야만 하는 겁니다. 그러나 백밀러만 보고 운전하게 되면 길 아래로 떨어지든지 다른 차와의 충돌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종종 잠깐, 잠깐 뒷거울을 보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앞을 잘 보고 나가야 운전을 바로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제 한 일이 죄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오늘 갈 길이 있습니다. 또 가야만 할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이 있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수시로 과거의 나무를 태워 버리려야 합니다. 지나간 과거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많습니다. 아랍 속담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대에게 잘못 한 일의 생각이 떠오르거든 모래 위에 적어 두시오. 그러나 그대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대리석 위에 이를 조각하시오.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손해를 주는 분노, 적개심, 복수심 같은 것을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나에게 손해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두 없애 버리고 마음 속에 감사와 기쁨 같은 다시 말하면 우리의 심령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들로 마음 속을 가득히 채우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뒤엣 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앞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열매를 거두고 나무를 불태워 버려야 합니다. 사실 오늘도 내일이 되면 어제로 변하고 맙니다. 우리가 어제의 일에 집착하지 아니 하고 내일 일을 근심하지 아니하며 오직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갈 때 우리는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이 땅 위에 사 는 동안 절대로 내일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내일은 언제나 내일이지 내일을 살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오늘에 삽니다. 시편 118편 2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우리는 오늘을 기뻐하고 오늘을 의미 있게, 오늘을 보람되게 하셔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동네 이발소에 내일은 이발 무료라고 큰 종이에다가 세 일 광고를 출입문에 내붙였습니다. 어느 청년이 이발을 하러 갔다가 그 광고를 보고 아, 내일은 이발무료니까 이왕 하루 더 참았다가 내일 공짜로 이발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 고 하루 더 기다렸다가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 기분 좋게 잘했습니다. 그리고 옷을 입고 이발사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드리고 난 후 뭐 공짜니까 그냥 나오려고 하는데 이발사가 청년을 불렀습니다. 청년 이발료를 내셔야죠. 그래서 이 청년이 아니, 저는 오늘은 이발료가 무료라는 광고를 보고 와서 이발을 했는데요. 그러자 이 이발사가 그래요. 나가 보시지요. 언제부터 이발료가 무료인지 보십시다. 언제부터 이발 무료요? 내일, 언제나 내일은 내일이지 오늘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분명히 소유하고 있는 날은 오직 오늘입니다. 우리는 이 날 즐거움과 기쁨을 얻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분명히 소유하고 있는 날은 오직 오늘입니다. 우리는 이 날 즐거움과 기쁨을 얻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어제의 회한에 묻혀 내일을 근심하며 보낸 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물론 때로는 과거를 되새기며 미래를 꿈꿀 때가 있습니다. 늘 그러면서 살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 여기서 삶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시간에 성실한 자세로 임하게 되면 엄청난 능력을 얻을 수가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을 트집 잡아 올무에 빠뜨려 죽이려는 바리새인들이 마침 간음죄를 범하고 있는 여자를 현장에서 붙들어 예수님께 끌고 왔습니다. “이 여자를 돌로 치리이까 말리이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만일 율법대로 “돌로 치라”고 하면 메시아란 사람이 어찌 사람을 죽이라고 하느냐고 할 것이고 “용서해 주라”고 하면 율법을 어긴 자라고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땅에다 무슨 글을 쓰시면서 그들의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더니 그들이 양심에 가책을 받아 하나 둘 가버리고 끌려온 여자만 엎드린 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할 때 “주여 없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고 하시며 돌려보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의 추한 과거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고난 당하실 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한 베드로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먼저 찾아가서 과거의 잘못을 한마디도 묻거나 책망하시지 않았습니다. “네가 수제자로서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해?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등 베드로의 잘못을 묻지 않으시고 단지 앞으로의 큰 사명을 감당케 하시려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신 후에 “내 양을 먹이라”(요21:15)고 세 번 부탁하셨습니다. 그 후 베드로는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과거를 들추며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한 편 강도가 회개하며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고 구원을 요청할 때 예수님은 “강도짓만 하던 놈이 무슨 낯으로 구원받겠다고 하느냐?” 하시지 않고 일체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시며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과거를 묻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립보서 3:13절에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하였습니다. 뒤에 것 잊어야 앞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앞을 향해 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 뒤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로리 베스 존스는 “정신질환이란 과거와 동일한 행동을 하면서 전혀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고 동일한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정신질환이란 말입니다.

과거는 잘했건 못했건 이미 지나가 버리고 지금 없는 것입니다. 잘했으면 한번 자축하고 지워 버릴 일이요 잘못했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한번 명심하고 불에 태워 버릴 일입니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인생의 여정에 어떠한 집착도 금기입니다. 지나간 영광의 시간에 너무 오래 취해 있거나 흘러간 고통의 시간에 너무 오래 갇혀 있으면, 미래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과거는 지나갔으며, 지나간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교훈뿐입니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과거에 집착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간에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며 이것이 습관적으로 굳어버리면 영적으로 발전하는 데 치명적인 어려움을 가져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뒤를 돌아보는 문제 중에서 특별히 이 세상의 것에 연연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서 '뒤를 돌아본다'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롯의 아내입니다. 롯의 아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여인입니다. 소돔성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창19:29) 롯의 가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도망하여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소돔이라는 세상을 빠져나와 이제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성산을 향해서 믿음으로 달음질하는 과정에 와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는 아브라함 때문에 구원받은 롯의 가족처럼 믿음의 식구 때문에 억지로 예수 믿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예수를 믿었으면 이제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향해서 힘껏 달려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는 길입니다.

롯의 아내는 왜 어리석게 뒤를 돌아보았을까요? 롯의 아내는 소돔성에서 즐겼던 화려한 생활, 재산, 정다운 친구들에 대해 연연하는 마음을 떼어버리고 앞만 향해 달음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롯의 아내처럼 과거의 재미를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예수 때문에 포기한 세상의 것들을 은근히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들, 예수를 믿지만 반드시 단념해야 할 것인 줄 알면서도 미련이 남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은 롯의 아내로부터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됩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눅9:62)고 했습니다. 우리는 쟁기 잡는 사람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고도 뒤만 돌아보다가 막상 들어가야 할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가면 얼마나 불쌍합니까? 또한 우리가 뒤돌아보면 자연히 하나님과 마음이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적 간음죄’(약4:4)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편45:10을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와 결혼한 사람은 과거에 즐겼던 세상 것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롯의 아내가 당한 비극을 피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고 예수를 위하여 과거에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은 다 해로 여기고 그것을 배설물처럼 던져버렸다’(빌3:7-8)고 고백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정과 욕심에 사로잡힌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것을 다시 돌이켜 보면 안됩니다. 마음으로 연연하며 사랑해서 안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우리는 위엣 것을 찾아야 합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아라"(골3:1-2). 이 말씀이 능력이 되어 여러분 삶 가운데 역사하셔서 여러분의 힘으로 끊을 수 없었던 과거에 연연하던 마음들을 끊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훌륭하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이건, 의사건, 농부건, 기술자건 모두 자신의 일에서 시선을 떼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인생을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주어진 사역을 수행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또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가 없이는 아무리 눈부신 은총으로도 사람들을 하늘 나라로 인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시험과 어려움은 발걸음을 재촉하는 자극은 될 수 있어도, 목표를 희석시키거나 앞길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를 섬기면서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최선의 삶을 사십시오. 그러면 결과는 능력의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본문 말씀에는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죄악을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죄인들 뿐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땅까지 함께 심판을 하신다는 사실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 중에도 롯과 가족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물론 롯의 신앙과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17절 말씀을 보면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6절을 보면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고로 소금기둥이 되었더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악의 땅을 다시 보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처음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죄악의 땅을 떠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해주신 다음에도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애굽생활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예수님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9:62)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이 자꾸 뒤를 돌아보고 옛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도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뒤로 물러가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생각은 내일의 행동을 낳는다. 오늘의 고집은 내일의 증오를 낳는다. 오늘의 질투는 내일의 분노를 낳는다. 오늘의 분노는 내일의 학대를 낳는다. 오늘의 욕망은 내일의 간음을 낳는다. 오늘의 욕심은 내일의 횡령을 낳는다. 오늘의 죄책감은 내일의 두려움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일을 위하여 과거를 벗어버리십시오.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충실하게 사십시오. 현재 눈앞에 있는 작은 어려움 때문에 큰 구원을 망각하지 마십시오. 현재의 작은 어려움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는 비교도 안됩니다. 이미 시작된 구원의 역사는 마침내 하늘나라에 다다르게 합니다. 우여곡절이 있지만 가나안에 무사히 도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나의 것이 아닌 과거에 집착하거나 돌아가려고 하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보장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뒤를 돌아보거나 세상 유혹에 빠지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천국 가는 그 날까지 믿음으로 승리하기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롯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며 천국까지 이르는 가족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최후의 순간까지 하나님 나라를 향해 전진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묵상 및 토의

0 나는 과거에 매여있는 과거의 사람은 아닌가?

0 나는 롯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아닌가?

0 나는 과거의 불필요한 쓰레기들을 깨끗이 청산하였는가?



* 독일의 바이츠체커라고 하는 대통령이 세계 제 2차대전 패전 40주년 기념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거에 대하여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도 눈을 멀게된다." 역사는 인간의 실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그 전쟁 속에서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매이면 미래가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잊으면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됩니다. 과거를 떠날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과거를 떠나라는 말은 모든 과거를 잊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과거를 온전히 잊을 만큼 전능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과거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어리석음이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거듭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실패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과거의 실패로부터 배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변화시킬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입니다. 또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지혜입니다. 과거에 시도해본 일 가운데 잘 되지 않은 일은 과감하게 버리세요. 죽은 말 위에서는 빨리 내려오는 것이 지혜입니다. 죽은 말을 타고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이 타본 말 가운데 죽은 말이 있을 것입니다. 가능한 한 빨리 그 죽은 말에서 내려오세요. 과거는 죽은 말과 같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는 죽은 말과 같습니다. 죽은 말에는 머무를수록 손해입니다. 과거에 시도해본 일 가운데 잘 되었던 일에 집중하세요. 잘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장점을 강화하십시오. 새해를 맞이하면서 과거를 잠시 돌아보며 과거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배우세요. 그 배움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십시오. 우리 모두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거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배울 수는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로부터 배우고 과거의 성공으로부터 배우세요. 그러나 과거의 성공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과거의 성공에 오래 안주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머지않아 실패의 쓴 잔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 과거의 승리에 집착하거나 몰입하지 않도록 하세요. 과거의 승리에 집착하는 사람은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배움이 멈출 때 성장도 멈춥니다. 성장이 멈추면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더 이상의 승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집착하여 사는 사람은 항구에 매여 있는 배와 같은 사람입니다. 배가 존재하는 이유는 항구에 매여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망망대해로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과거로부터 배우되 과거로부터 과감하게 떠나세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 계획을 세우십시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함께 새해를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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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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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자를 찾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10:17) 말씀의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져야 백 배, 천 배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매일 말씀을 읽고, 듣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말씀의 거울을 통해 매일 마음을 바르고 깨끗이 하여야만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행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시1:1- 2)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365일 예배드리는 교회를 개척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훌륭한 목사님들(김삼환 목사, 김홍도 목사, 조용기 목사, 하용조 목사 등)의 설교를 동영상으로든 비디오를 통해서든 매일 함께 모여 시청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교회를 세우고 싶습니다. 지금 출석하시는 교회는 주일날은 그냥 다니셔도 됩니다. 저와 뜻을 같이 하시는 분은 꼭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태완 목사(Hp: 010- 7676- 3049. (자택)02- 959-3049

이메일: jesu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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