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사람답게 사십시오

복음............... 조회 수 619 추천 수 0 2005.12.19 09: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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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사람답게 사십시오

본문: 마태복음 1장 1-17절

< 평화를 위해 힘쓰십시오 >

어느 날, 한분이 천국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그는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천사님! 천국에 장로교인들이 얼마나 있지요?” 천사가 천국을 수소문한 끝에 말했습니다. “천국에는 장로교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가 깜짝 놀라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천국에는 순복음 교인들만 있나요?” 천사가 다시 수소문한 끝에 말했습니다. “천국에는 순복음 교인도 없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 천국에는 누가 있습니까?”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천국에는 예수 믿는 사람만 있습니다.”

천국에는 교단과 나라와 인종과 신분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없습니다. 성도는 모든 차별과 편견과 싸움을 멀리 해야 합니다. 내 입장과 의견만 고집하면 승자는 없고, 온통 상처투성이의 패자만 생깁니다. 결국 제 3자만 어부지리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내부적으로 싸우면 일본의 극우파들만 좋아할 것이고, 성도들끼리 싸우면 마귀들만 좋아할 것입니다.

성도는 평화를 위해 애써야 하고, 억울한 희생양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희생을 묵과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에게 억울하게 죽은 아벨의 피가 하나님께 호소해서 가인에게 벌이 내려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 지켜보고 계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기 본분과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산을 끝까지 지키는 못생긴 나무가 결국 거목이 됩니다.

우리는 혼자 성공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혼자 성공하면 상처뿐인 영광만 얻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추구하며 성공의 길을 가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유를 원하면 책임도 지고, 권리를 원하면 먼저 의무를 이행하고, 확신과 독선을 분별하며, 편견을 버리고 상식을 존중하고, 은혜를 원하면 먼저 헌신할 줄 알아야 합니다.

< 복음에 담긴 4대 교훈 >

오늘 본문은 신약 성경의 첫 장인데 처음부터 지루한 족보가 나옵니다. 이 족보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이 족보 속에는 놀라운 교훈이 숨어 있습니다. 신학교 들어가서 말씀을 연구하면서 가장 감동이 되었던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었습니다. 본문을 계속 보니까 시간이 가면서 그 지루한 족보 속에서 ‘복음의 진수’를 발견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복음에 관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남녀평등의 정신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남녀 차별이 아주 심했습니다. 남자들은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여자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공문서에는 여자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고, 족보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 첫 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는 4명의 여자 이름을 기록되어 있습니다. 3절의 다말, 5절의 라합과 룻, 6절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나옵니다. 이 기록은 복음 안에서는 남녀 차별이 없음을 잘 보여줍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도 유대인만큼 남녀차별이 심했습니다. 여권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개화기에 여자들의 숨통을 열어준 것은 복음이었습니다. 여자가 학교를 다니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을 때 기독교는 여학교를 만들었고, 교회는 여성들을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하며 여성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었습니다. 그처럼 복음은 사람을 개화시키고 인간답게 만듭니다. 지금도 복음이 없는 나라들은 대개 여자들이 구속되어 삽니다. 심지어는 천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여성의 지위를 높여 주었고, 그곳에 진정한 행복과 축복이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 잘 사는 나라들을 보면 다 여성들을 높여 주는 나라입니다. 못 사는 나라들은 여성들의 지위도 형편없습니다.
가정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존중하면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고 복이 없는 가정을 보면 대개 남편들이 아내를 무시합니다. 요새는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가정도 잘될 수가 없습니다. 행복을 원하면 복음 안에서 누구도 차별하지 말고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없는 사람’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있는 사람’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있는 사람’이 된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있는 사람 중에 좋은 일에 자기가 가진 것을 잘 쓸 줄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만약 내가 가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속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더욱 노력하고 더욱 바르게 살면 됩니다. 반대로 가진 것이 있을 때에는 지나친 특권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갈 때는 다 똑같이 갑니다. 그 사실을 일찍 깨닫고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남을 무시하면 언젠가는 꼭 자신이 무시 받는 비참한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반대로 남을 존중하면 언젠가는 꼭 자신이 존중받는 위치에 올라서게 됩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겸손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의 삶과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고, 세리와 창기들과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경시해서가 그들에게 주어진 차가운 차별의 사슬을 끊으신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도 차별의 아픔을 끊고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려고 힘써야 합니다.

2. 과거용납의 정신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경멸했던 대상이 둘 있었습니다. 하나는 세리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친일파처럼 경멸했습니다. 그러나 세리보다 더 경멸했던 사람이 창녀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족보에는 라합이라는 이방인 창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말은 창녀로 변장해 시아버지인 유다와 관계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는 남편이 전장에 나갔을 때 다윗과 정을 통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런 여인들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자기 족보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슬그머니 빼거나, 최대한 감추든지 미화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그들을 집어넣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창녀도 용납하고 세리도 용납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음은 출신지역도 용납하고, 직업도 용납하고, 과거도 용납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위대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꾸 과거를 들춥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과거보다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쓴 기억과 상처도 복음 안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과거의 수치스런 사건을 용납하고, 그 사건에서 나에게 큰 상처와 피해를 입혔던 가해자를 용납해야 합니다.
요즘 신문과 인터넷을 보면 부정적인 말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비판을 조심하고, 남의 얘기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고 지켜봐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남의 죄와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과제는 내 죄와 잘못을 성찰하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편견을 깨고 반대편 사람까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힘든 일이지만 성도는 힘써 용서하고 힘써 대화해야 합니다.
진짜 사랑은 부족해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허물과 약점과 내가 싫어하는 점은 있습니다. 바로 그때가 진짜 사랑을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좋은 점 때문이 아니라 싫은 점이 있어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조건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싫은 점과 부족한 점이 있다면 나의 사랑으로 그것을 보충해주고 덮어주는 것이 진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남을 용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용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음 안에서 우리를 용납하셨으면 우리도 우리를 용납해야 합니다. 그처럼 복음 안에서 자신을 용납할 때 과거의 상처도 잊을 수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는 오히려 과거의 상처가 희망의 표징입니다.

주님이 돌아가신 후에 절망과 두려움에 젖은 제자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자신의 몸의 상처를 보여주셨을 때 그들의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때 주님의 상처는 패배의 증표가 아니라 승리의 증표였습니다. 그처럼 상처를 희망으로 증표로 만드신 주님처럼 우리도 상처를 희망의 증표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주님의 상처를 보고 제자들의 절망이 사라진 것처럼 우리도 영적인 눈으로 주님의 상처를 바라보며 절망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과거의 상처를 승리의 증언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 영혼의 연금술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상처가 아닌 희망을 붙잡고 살아야 하고, 항상 슬픔보다는 기쁨을 선택하며, 감정보다는 믿음을 삶의 토대로 삼아야 합니다.
가끔 나의 선한 마음과 선한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상처 받지 말고, 바로 그때 주님의 상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때 주님의 옆구리에서 나온 물과 피가 희망의 샘물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상처를 승리의 흔적으로 만들 수 있고, 사도 바울처럼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갈6:17)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남도 잘 용납해야 하지만 자신도 잘 용납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주권 의식
마태복음 1장의 족보를 보면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임을 보여줍니다. 이 족보에는 이스라엘의 흥망성쇠가 다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솔로몬처럼 강성하던 때에도 함께하셨고 이스라엘이 몰락했을 때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이 족보에는 수많은 고난의 흔적이 새겨져 있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 고난 중에서 예수님을 탄생시켰습니다.
그처럼 고난 중에 모든 희망이 없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개입해서 다시 회복시키는 역사가 바로 족보가 말하는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미래를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역사를 사단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믿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지배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나가야 합니다. 에스더서의 남자 주인공은 모르드개입니다. 그 이름이 마치 “모르더라도 드세게 밀고 나가자!”는 이름 같습니다. 실제로 에스더서의 주제는 “고난의 이유를 잘 몰라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이유를 알 필요가 없습니다. 고난의 이유를 몰라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나가면 사는 길은 열립니다. 고난의 장벽이 있으면 그때 통곡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새 일을 행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성도가 ‘새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으면 그때 일어서야 합니다. 사실 어려움은 새로운 땅에서 새 일을 도모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고난과 실패를 잘 요리하고, 상처를 믿음으로 잘 극복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 삶에서 놀라운 향기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고래가 상처를 입었을 때 그 상처를 치유하려고 분비하는 액체가 최고의 향수인 용연향의 재료라고 합니다. 우리도 상처와 실패를 잘 극복하면 우리 삶에서 최고의 영적 용연향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의 현장에 정직하게 서야 합니다. 그 현장을 자꾸 회피하려고 하면 악취가 나오지만 그 현장에 정직하게 서면 용연향이 나옵니다. 삶에서 실패하지 않는 것이나 실패를 무시하며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의 현장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입니까? 자녀를 실패하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실패의 현장에서 잘 일어서게 하고 실패를 요리하는 법을 잘 알려주는 것입니다. 자녀에게도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실패를 경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믿음을 키워주면 됩니다. 우리는 실패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 하에 이루어진 것이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재료가 됨을 확고히 믿어야 합니다.

4. 박애의 선교정신
당시 유대인들의 교만과 우월감은 아주 심했습니다. 이방인을 멸시하고, 인종차별, 지역차별, 직업차별 등 각종 차별이 심했습니다. 소경도 세리가 준 동전은 그냥 내던졌습니다.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세리의 동전을 받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처럼 여겼습니다. 그런 때에 마태는 이방 사람을 주님의 족보에 기록했습니다. 라합은 가나안 출신이고, 룻은 모압 여인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인종문제와 지역문제로 생긴 증오와 적대감입니다. 그런 증오와 적대감으로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대량학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증오는 오직 복음으로만 치유될 수 있습니다. 복음에는 인종과 지역을 초월하는 선교정신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선교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자기 안에만 머물면 힘이 없습니다. 사랑은 세상에서 그 힘이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교입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입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선교정신이 없으면 그 인생은 결코 향기 나는 인생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기만 위해 살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기쁨은 봉사하고 헌신할 때 주어집니다. 요즘 독신자들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헌신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헌신하지 않고 얻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결혼 생활의 고독, 인생의 무의미, 참된 사랑을 모르는 불행, 그리고 활기참 속에 있는 공허함뿐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죽이고 사랑의 폭을 넓혀 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누가 내 이웃인가? 내 편인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주어야 하는가?”입니다. 참다운 이웃이 되려면 종교와 인종, 그리고 지역과 장애의 편견을 초월한 선교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이번 주에 중국 농아선교를 하는 저희 CMA 소속 이진구 목사님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농아선교에 평생을 보낸 목사님입니다. 현재 중국에는 약 2700만 명이 농아라고 하는데, 이 목사님은 중국에서 농아사역자를 기르는 작은 지하신학교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지금 학교운영에 가장 큰 문제는 중국 공안의 감시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농아교회를 중국 당국이 인정하는 삼자교회로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단독교회 건물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건물을 구입하는데 10만 불(1억원) 정도 든다고 하면서 간절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이번 한번만 건축비를 도와주세요! 염치없는 부탁인 줄 알지만 이번에 도와주시면 중국 땅에 세계 최초의 농아신학교가 세워질 수 있습니다.”
환갑이 훨씬 넘으신 목사님이 그렇게 간절히 부탁을 하는데 돕고 싶어도 너무 액수가 커서 어떻게 도와야할지 고민이 됩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그런 요청이 있을 때마다 금방 “선교사님! 알았습니다. 이번 일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힘을 드릴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 드신 목사님도 그렇게 선교를 위해서 전방에서 뛰는데 젊은 우리가 후방에서 편하게 자기만 위해서 산다면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연약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처럼 살기 힘든 때일수록 더욱 어려운 사람을 살피고, 사랑의 폭을 넓혀 세계선교의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이 위태롭게 느껴질 때에도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선교에 힘쓰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많은 사람들을 덮어줄 수 있는 큰 우산이 되게 하시고, 많은 영혼들이 깃들 수 있는 큰 겨자나무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 썩어가는 세상의 소금이 되십시오 >
지금 세상은 이기주의로 넘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런 이기적인 가치관을 거부하고, 교회의 물량화와 세속화를 경계하고, 선교정신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커졌다고 자랑하지만 선교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약 100여 년 전의 영국 교회는 한국교회 이상으로 엄청난 전성기였지만 지금은 텅텅 비었다고 합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선교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새롭게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의 개혁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자기 개혁입니다.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나의 잘못을 회개하고 고쳐야 합니다. 나로부터 시작된 개혁이 진짜 개혁입니다. 내가 변해야 가정도 변하고 교회도 변하고 나라도 변합니다. 남을 개혁하려고 하면 소리만 커집니다. 그러나 내가 변하려고 하면 세상도 조금씩 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죄부터 살피고, 자기 허물부터 보고,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자기 개혁의 몸부림이 세상 변화의 씨앗입니다. 개혁은 시스템이나 제도로 되지 않고, 지속적인 자기 갱신으로 됩니다. 내가 변해야 합니다. 나를 돌아보지 않고 남만 손가락질하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작은 죄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요새 운동으로 수영을 합니다. 어느 날, 작은 샴푸 병을 잃어버려서 찾아보니까 어떤 분 가방 안에 그 샴푸 병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이거 제 것인데요.”라고 하니까 그분은 “주인이 없는 줄 알아서 자기 가방에 넣었다!”고 변명했습니다. 얼굴도 점잖게 생기고, 분당에 살고, 점심시간에 수영하러 올 정도라면 여유도 있는 분 같은데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고 참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며칠 후에 제가 새로 산 검정색 수경을 수영장에 놓고 왔습니다. 다음날 수경을 찾으니까 라커 관리자가 저에게 검정색 수경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쓰고 수영하니까 전보다 훨씬 서리가 덜 꼈습니다. 그래서 “이게 정말 내 것이었나?”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래도 관리자가 준 것이니까 그냥 그 수경을 가지고 다녔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남의 좋은 수경을 가지고 모른 척 하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네가 치사한 목사다!”라는 생각으로 양심이 찔렸습니다.
계속 그 문제로 찜찜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경도 점차 서리가 껴서, 며칠 전에 관리인에게 수경에 서리가 덜 끼게 하는 방법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관리인이 샴푸를 렌즈부분에 약간만 바르면 서리가 안 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정말 50분 내내 서리가 끼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나쁜 것 잃어버리고 좋은 것을 얻은 것이 아니라 관리방법이 틀렸었구나!”하는 생각에 “내 영혼 평안해!”를 외치며 얼마나 마음이 자유해졌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작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큰 죄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작은 죄 때문에 사람이 더 치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 죄를 전염시키는 자가 아니라 맛을 내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가끔 번화가를 가면 ‘미시족 100명 항시 대기’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결혼한 여자가 그렇게 많이 술집에 나가는 것을 보면 살맛이 떨어집니다. 그런 살맛 떨어지는 세상에서 우리들은 이웃을 살맛나게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살맛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교인 많은 게 자랑이 아닙니다. 바르게 사는 교인이 많아야 합니다. 기도원에서 구국기도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을 실제로 돕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힘이 없다고 그 사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초대 크리스천들은 대부분 사회 저층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치력도 없었고, 사회적인 지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동하는 지도자도 없었고, 강력한 조직도 없었고, 캠페인을 벌인 적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의에 굶주려있었고 성령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존재라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사랑매거진 사역에 이메일 추천을 많이 하는 것도 호별 방문을 하며 전도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전혀 믿지 않던 사람들이 ‘이한규의 사랑칼럼’이란 이름의 편지를 받고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받을 수도 있습니다. 평생 몇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고 천국에 갈 뻔한 사람도 있을 텐데 이렇게라도 전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은밀하게 사랑하고, 은밀하게 섬기고, 은밀하게 헌신해야 합니다. 소금이 중요해도 녹지 않는 소금은 소용없습니다. 소금은 형체까지 없어져야 진짜 소금 맛을 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녹아 없어지면서도 원래의 소금 맛은 항상 지킵니다. 그처럼 믿는 사람들은 형체는 없어져도 본질은 살아있어야 합니다. 요새 맛을 잃어버린 교인들이 많아서 그들로부터 예수 맛과 예수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요새 믿는 사람으로서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믿는 사람들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상사에게 잘못 보이면 길이 막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도 복음을 위해서라면 출세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하위직은 좀 고달파도 수명은 길 수 있습니다. 고위직에 오르면 오래 못가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높은 자리보다 낮은 자리가 반드시 불행만은 아닙니다.
이제는 세상에서 출세를 못해도 사표 낼 각오를 하고 믿는 사람답게 떳떳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비겁하고 옹졸하게 살지 말고 멋있게 살려고 힘써서 어디에 가든지 변질되지 않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길거리에 버려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믿는 사람답게 잘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형제들끼리 더욱 이해하고 사랑하고, 가정에서는 가족들끼리 서로 위해주고, 어디에 가든지 사랑과 평화를 전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 주님과 복음만이 유일한 인생의 대안임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항상 세상 속에서 믿는 사람답게 주님의 빛을 비추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한규 목사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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