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소명

한승지............... 조회 수 1023 추천 수 0 2003.03.31 11:29:37
.........
세상을 향한 소명

본문: 사도행전 26장 1절~23절

우리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온전히 수행하도록 우리를 다듬고 계십니다. 우리의 사명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울이 받은 사명과 같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고, 복음전파의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죽이는 핍박자였습니다. 사울은 자신을 가리켜 스스로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는 진리에 헌신한 사람이 아니라, 종파나 규율에 헌신한 사람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반대자들을 숙청하는 두목이었습니다.
사울은 용감한 사람 같았으나 사실은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권력과 결탁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비열한 기회주의자였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아는 지식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던 편협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출생 성분을 과시하는 교만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26장 12절 말씀에서 밝히는 것처럼 유대 대제사장들에게 요구해 그들의 권세를 위임받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사도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메섹으로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명을 띠고 가던 도중에 그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사울은 바울로 완전히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도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 변명대신 복음을
사울에게 권세를 위임했던 대제사장들은 완전히 변해 버린 바울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을 배신한 바울을 어떻게든 잡아들여 죽이려 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바울에게 많은 매를 때리고 능욕하고 모함까지 했습니다. 마침내 대제사장들은 바울을 고소해 법정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오늘 법정이 다섯 번째 정식 재판입니다. 이제 바울은 법 앞에 서 있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모든 송사하는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옵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드디어 바울은 자신의 처지를 변명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지에 몰리면 자신을 변명할 기회를 찾게 마련입니다. 더러 그런 기회가 종종 주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변명할 기회를 얻게 되면 그것을 십분 활용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오해와 박해 중에서 얼마나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왔는지, 자신을 모함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 말하지 않더라도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증명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자신을 변명할 기회가 있었지만, 구구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변명의 기회를 복음 전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전도할 수 있습니까?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건강한 자가 병든 자에게 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전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까?
우리는 건강한 사람보다 병든 사람에게 전도할 때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병든 사람이 자신을 방문하러 온 사람들에게 웃으며 전도할 때 건강한 사람들이 쉽게 감동을 받게 됩니다.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장에 서 있습니다. 그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재판장에선 오직 바울만이 전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좀더 넓게 생각하면 가해자나 피해자 아무나 전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용서하는 자만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죄인이 전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직 구원받은 사람만이 전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복음의 능력
본문에서 전도의 주체는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조차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이들보다 더욱 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아그립바 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그런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죄로 인해 수치를 당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결코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바울을 과거에 묶어 두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너 같은 것이 예수의 사도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때로 사도 바울이 설교하다가 간질병이 발작해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은 비웃으며 그가 자신의 죄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 때마다 사도 바울은 ‘내 은혜가 내게 족합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자유함을 얻기 위해 담대히 주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사도행전을 통해 똑같은 신앙 고백을 세 번이나 합니다.
이런 사도 바울의 태도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 하고, 다른 사람의 과거를 끊임없이 이야기 거리로 올리려는 현대의 그리스도인과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브라운 노우스라는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예수님을 알기 전에 많은 악을 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집회를 준비하던 중에 배달된 쪽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 자리에서 설교한다면 나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 집회를 중단시키고 당신이 과거에 저지른 죄악을 고발하고 말겠다. 그러니 조용히 떠나라.”
노우스는 그 쪽지를 들고 강단에 올랐습니다. 그는 쪽지에 쓰인 내용을 그대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에서 죄악 된 것들을 낱낱이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죄인이었음에도 그것을 감추며 거룩한 사람인 양 살았습니다.
나는 갈등하며 살아왔습니다. 내가 허탈감에 빠져있을 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나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 후 반복되는 죄악은 끊어졌고, 죄가 드러날 때마다 십자가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위대함은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바꾸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부활의 복음은 윤리가 아닙니다.
도덕의 계율, 지식의 유희는 더욱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오직 죽음, 부활, 구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인간의 영혼을 찾아 오셔서 죄와 죽음에 갇힌 우리의 영혼에 참된 자유와 생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죄로부터 진정한 해방을 주십니다.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 바울의 증거
진리란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려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복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진리를 받아들일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쉽게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는 사람의 이성으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 가지 사실을 통해 아그립바 왕에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믿기를 간절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 사람의 이성으로 판단하지 말고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믿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능력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만큼 하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는 것만큼 나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 유대인인 것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6절부터 8절까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제도 여기 서서 신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을 인하여 내가 유대인들에게 송사를 받는 것이니이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믿으면서 어찌하여 나사렛 예수가 부활하신 것을 믿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믿으려 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사실을 믿어야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여,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부활을 믿으십시오. 그래도 못 믿겠다면 나를 보십시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죽였던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3절 부터 15절까지 말씀입니다.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둘, 바울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 드러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 요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정오라는 때이고, 둘째는 자신과 함께 있었던 동행자이고, 셋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사람들은 정오에 길을 다니지 않습니다. 그 시각엔 햇볕이 너무 뜨거워 주로 낮잠을 즐기는 편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뙤약볕 아래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몽사몽간에 본 것이 아니라 햇빛이 비출 때 보았고, 걸어가던 중에 보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보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께서 히브리 방언으로 사울을 부르셨습니다. 동행한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자신의 몸 안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갈망하던 하나님과의 만남, 영광과 감격으로 가득해야 할 만남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순간에 사울에겐 염려와 근심이 되어 버렸습니다. 고통의 부르짖음 가운데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 믿음의 축복은 주님의 능력
사울은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님께 묻습니다. 태양보다 더 밝은 빛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주여, 누구이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울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이 바로 내가 핍박하던 예수’라니 사울은 이해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에 대해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사람인 사실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진리를 믿는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울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는 이유는 빛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사실이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꿈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환상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가 있는 실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통해 받아들일 수 없었던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예수님의 사도로 변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인간은 결코 개입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자격이나 인물을 보시지 않고 강권하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께서 바울을 생포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
왕이시여,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주님께 생포된 나는 오직 나를 붙잡아 주시는 부활의 주님 앞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이시여, 당신이 나의 입장이라면 복음의 증인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삶과 죽음 사이에 있지만,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오직 나의 사명 때문입니다. 비록 나는 죄수이지만, 당신에게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오직 나의 묶인 것 외에 당신이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사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 사명 때문에 오늘 여기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네 가지 사명
바울이 빛 가운데 예수님을 만난 사건으로 받은 사명은 16절부터 18절까지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빛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께서 바울에게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고난과 권세 앞에서도 주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상황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 안에 불타는 사명이 없을 때 무너지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목표가 분명하다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명이 있으면 길이 있습니다. 목표가 있으면 방법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목표는 자신이 다메섹에서 겪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는 것이요, 복음 전파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의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여러분은 땀 흘려 일하는 이유가 분명합니까? 이 자리에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합니까? 무엇이든 의미를 알고 나면 깨닫기가 쉽습니다. 그런 이치를 깨닫게 되면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송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온전히 수행하도록 때로 우리를 다듬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그 사명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울이 받은 사명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활을 믿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향해 가져야 할 네 가지 사명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어둠 가운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참된 생명의 빛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변하게 하는 것입니다.
넷째,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기업을 누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는 이 사명 때문입니다. 전쟁이 발발하고 경제는 점점 어려워진다며 온 세계가 두려움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이 그런 절망감이 다가올 때마다 십자가로 나아가 더욱 성결하고 찬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다메섹에서 사울을 만나신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순간에 주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어려울 때마다 우리의 거듭났던 그 순간을 기억하면서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동국 목사(온누리 교회)

예화포커스 (시리즈1-50권)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육, 교회, 믿음,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효도, 행복 등 각 주제별로 한권씩 책이 이루어져 있고, 책마다 주제의 성경 말씀들과 그에 맞는 예화(80여개), 묵상자료, 금언, 기도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 태 완 목사 편저, 좋은 땅, 각 권 값3,800원
주문: 전화: (02) 386-8660, 팩스(02)386-2961
좋은땅 인터넷 http://www.g-world.co.kr
좋은땅 이메일 gworld@g-world.co.kr
편저자 홈페이지: http://allcome.ce.ro, http://bigjoy.ce.ro
http://allcome.wo.to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835 기다림 한승지 2003-03-31 834
17834 기다림 한승지 2003-03-31 382
17833 여행의 기쁨 한승지 2003-03-31 326
17832 여행의 기쁨 한승지 2003-03-31 313
17831 사랑 고백 한승지 2003-03-31 467
17830 사랑 고백 한승지 2003-03-31 615
17829 용서에 관한 말씀 한승지 2003-03-31 1106
17828 강철왕 백영중 한승지 2003-03-31 721
» 세상을 향한 소명 한승지 2003-03-31 1023
17826 세상을 향한 소명 한승지 2003-03-31 822
17825 교만심 테스트 한승지 2003-03-31 1178
17824 미국―이라크 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 한승지 2003-03-31 516
17823 좋은 물―맑은 공기를 마셔라 한승지 2003-03-31 391
17822 개나리는 염려하지 않는다 한승지 2003-04-01 407
17821 기다림의 자세 한승지 2003-04-01 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