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와 선행의 사람 도르가(99)

복음............... 조회 수 1004 추천 수 0 2005.11.28 1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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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와 선행의 사람 도르가(99)

본문: 행9: 36 - 43

오늘은 이웃을 위하여 많은 구제와 선행을 하였고, 베드로를 통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여인 도르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도르가라는 이름의 뜻은 '영양' '사슴' 또는 '아름다운 눈을 가진 영양'이란 의미입니다. 도르가는 '다비다'라고도 불리는데, 다비다는 헬라어 도르가를 아람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도르가는 항구도시인 욥바 출신의 신실한 여신도로 복음전도 초기에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선행과 구제를 통해 그리스도적 사랑을 몸소 실천한 따뜻한 사랑과 희생적인 봉사를 한 인물로서 병으로 죽었다가 베드로의 기도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러한 도르가의 소생소식이 욥바 전체에 퍼짐으로써 처음 살아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생명 가운데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도르가는 어려운 이웃 사람들을 위하여 많은 구제와 선행을 하였습니다.(행9:36-42) 그래서 그가 죽었을 때 많은 과부들이 도르가가 만들어준 겉옷과 속옷을 내어 보이며 울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녀의 생전의 삶의 모습을 웅변적으로 반증해 줍니다. 성경에 과부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사람들입니다.(출22:22, 신10:18) 우리 예수님도 과부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눅7:13) 도르가가 과부들을 특별히 돌보아주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을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선행을 베풀되 많은 재산이 있어서가 아니라 손수 시간과 정성을 들여 그들의 옷을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도르가를 본받아 구제와 선행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제를 할 때 어떤 대가를 받기 위해 하여서는 안됩니다.(마6:1-4) 도르가 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일평생을 통하여 자기 쓸 것 다 쓰지 않고 먹을 것 다 먹지 않고 아끼고 절약해서 이웃에게 마음과 정성과 사랑을 가지고 선행과 구제의 손길을 펴야 하겠습니다.

도르가에 대하여 좀 더 정리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히브리말로 다비다라고 불리는 도르가는, 이웃을 위해 많은 구제를 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일평생을 통하여 구제와 선행으로 헌신하다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간 이 여인을 통하여 큰 은혜와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1. 욥바의 신실한 여제자
욥바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56km 지점인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팔레스타인의 유명한 항구 도시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이름도 여전히 ‘야파(욥바)’입니다. 그 옛날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소아시아 지역에 활발하게 전파되던 초기 사도 시대에(주후 34∼37년께) 이곳에 진실한 믿음을 가진 여 제자 한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도르가’였습니다. 도르가라는 이름은 헬라어 이름이고 당시에 보다 널리 사용하던 아람어 이름은 ‘다비다’였습니다.
초대교회 때 도르가 말고도 구제하기를 힘쓴 사람이 있습니다. 고넬료라는 백부장입니다. (행10:2) 하나님은 구제하기를 힘쓰는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

2. 도르가의 성품
선행과 구제에 전념한 나머지 병들어 죽게될 정도로 헌신적인 봉사자이며, 재봉으로 손수 옷을 만들어 과부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등 여러 가지 재능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녀는 풍족한 생활이 아니었으나 어려운 이웃을 몸소 돌아본 것으로 실천적 사랑을 소유한 자였습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요일3:17)
우리가 아무리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하더라도 도르가처럼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3)

3. 구제와 선행의 향기로운 삶
도르가는 구제와 선행하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었을 때 많은 과부들이 도르가가 만들어 준 겉옷과 속옷을 내어 보이며 울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도르가는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는 참된 신앙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기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고 힘껏 도움을 베풀었습니다. 이에 성경은 그녀에 대해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9:36). 이 말은 도르가가 적당히 구제와 선행의 시늉을 한 것이 아니라 아주 헌신적인 태도로 최선을 다해 구제와 선행을 베풀었다는 의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형편이 어려운 과부들을 위해 손수 옷을 지어 입힌 일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큰 애정과 수고 없이는 하기 힘든 선행이었습니다. 도르가는 이와 같은 일을 힘닿는 데까지 기꺼이 했습니다. 정녕 그녀는 하나님께 구제와 선행의 은사를 받은, 초대 교회에서 꼭 필요한 아름다운 존재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이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

4. 아름다운 여인, 도르가
성경 속에 수많은 인물들이 기록되어 있는 가운데 여성들의 이름도 간간이 기록되어 있음을 봅니다. 그 중에 헬라어로 '도르가'라고 부르는 '다비다'라는 여성도가 있습니다. 도르가라는 이름은 '귀엽다, 아름답다'는 뜻으로 특히 눈이 아름답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해석한 주석가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름이 그 당시에 이 사람 외에도 많이 있었겠지만 그 이름처럼 산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도르가만은 그 이름처럼 아름답게 산 사람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첫째, 도르가의 눈은 작은 자를 찾아보는 눈입니다. 사람의 눈이란 심히 교묘한 것이어서 세로 1cm, 가로 2cm에 불과한 조그마한 물체지만 큰 것만 보이지 작은 것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리도 큰 자리, 사람도 거물, 교회도 대 교회, 감투도 큰 것이라야 눈에 보이고 작고 미미한 것은 시시해서 눈에 차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대영제국, 대 일본제국 등 모두 '대'자를 붙이기를 좋아합니다. 심지어 부흥회까지도 대부흥회라고 써 붙여야 속이 후련해 합니다. 정말 모두 '대'자 병에 걸렸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이 그를 몰라본 것은 저들의 눈이 작아서가 아니라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위대하고 영웅적인 데가 있어야 메시아라고 생각하는 저들의 눈에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사람들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라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겸비하고 과묵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으신 시골뜨기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로 보여졌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도르가는 지극히 작은 자들을 잘 찾아내었습니다. 고아와 과부, 병자와 빈민은 너무 그 존재가 미미해서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잘 뜨이지도 않는 인생 부스러기들이었지만 그의 눈은 이 작은 부스러기들을 찾아낸 것입니다. 실로 아름다운 눈입니다. 아름다운 눈을 가져보기 위해서 쌍꺼풀 수술을 하고 속눈썹을 달고 눈 화장을 하면서도 이웃집의 불행에조차 눈을 감아버리는 현대여성들은 송장의 고기에만 눈이 팔린 홍수 후의 까마귀들처럼 허영에만 물들어 있는 천박한 족속들입니다. 그러한 품성으로는 비록 미스코리아에 당선된다 해도 그것은 까마귀 눈에 불과합니다. 심판 날 주님의 우편에 둘러선 사람들은 작은 선(善)에 유의했기에 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작은 선이기 때문에 또는 작은 악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람들은 좌편으로 밀려나 영벌을 받는다는 주님의 말씀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교훈입니다(마 25:31-46).
예수님의 눈은 작은 것을 보시는 눈입니다. 큰 것에만 눈이 팔리는 사람은 아직 예수님의 눈을 갖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잠 22:9).

둘째, 도르가는 자기가 섬겨야 할 자를 찾아 섬기며 살았습니다. 사람은 대개 자기를 위해 주고 자기를 잘 섬겨줄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찾습니다. 그래서 요행히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내가 찾던 사람이며 친구라고 불러주고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하기를 마지않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잘 받들어 주지도 않고 섬겨주지도 않는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고 공연히 미워하고 중상까지도 합니다. 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단체나 정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국제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추종자가 많을수록 위대해지며 위성국가가 많을수록 종주국의 체면이 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은 자기의 충복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의 도르가는 반대로 자기가 섬겨줄 사람을 찾아낸 것입니다. 즉 집 없는 고아, 의지 없는 과부, 자녀 없는 노인,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찾아 돌보아준 도르가의 눈은 진실로 아름답고 복 받은 눈으로서 속된 무리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의 눈에는 예수께서 지배자답게 위풍이 당당하지 못하다는 점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영웅처럼 위압하고 제왕처럼 군림하며 장군처럼 호령하는 지배자이기를 바랐건만 그는 영웅보다는 친구로, 받기보다는 주기에, 지배보다는 봉사에만 치중하셔서 몸소 제자의 발을 씻겨주시는 못난 선생으로 자처하셨습니다. 즉 주님의 눈에는 자기가 섬겨야 할 자만 보인 것입니다. 도르가의 눈은 곧 예수님의 눈이었습니다. 우리들의 눈은 어떠합니까? 혹 나의 상전보다는 나의 충복을 찾기에만 급급하지 아니합니까. 나를 섬겨줄 자만 찾는 사람의 눈에는 그렇지 않는 모든 사람이 증오의 대상으로만 보이지만 내가 섬겨줄 자만 찾는 사람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긍휼의 대상으로만 보이며, 이 세상이 나의 땀과 눈물을 받아야 할 제단으로 보여지는 법입니다. 그러기에 받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지옥을 살고, 주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지옥에서도 천국을 삽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 함이라"(막 10:45)

셋째, 도르가는 보물을 쌓아야 할 곳을 잘 찾아 쌓으며 살았습니다.
보물의 가치는 보물 자체가 지니고 있는 것이지만 보물의 수명은 보물이 놓여지는 그 장소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가장 안전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는 좀이 먹거나 동록이 슬거나 도적 맞을 우려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물 그 자체만 귀중하게 여길 줄 알았지 그것이 쌓여져야 할 장소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저 아무 데고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러기에 애써서 얻은 보물을 곧 다시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보물은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 보물이 무엇입니까? 말할 것도 없이 값지고 귀한 것이 보물입니다. 진귀한 보석이나 금은패물도 보물이지만 건강과 시간 그리고 좋은 품성과 재능은 더욱 귀한 재물입니다. 인기를 얻은 사람은 그 인기가 보물이며 지식도 재물도 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여 모은 재물이 허술한 장소에 버려진다는 것은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사람들은 보물을 모을 줄만 알았지 간수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처럼 인생낭비자가 되고 맙니다. 오늘의 부자들이 그 많은 돈을 쏟는 곳이 겨우 주색잡기와 사치와 허영뿐이라면 이는 분명히 보물의 낭비입니다.
도르가는 그의 보물을 하늘에 쌓았습니다. 쌓을 곳을 제대로 찾아낸 것입니다. 즉 그의 시간과 정력과 건강과 물질과 재능을 전적으로 불행한 형제들의 구호를 위해 바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째서 하늘에 쌓는 일이 되는 것입니까?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잠 19:17).
사랑하는 귀한 자식을 악어에게 던져버리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는 인도의 여인들처럼 우리의 귀한 보물을 허탄한 곳에 쏟아버리는 것을 무슨 큰 자랑으로 아는 것은 한심한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눈이 저속하다는 증거입니다.
도르가의 눈을 가져봅시다. 그것은 자신의 불행 속에서 남의 불행을 보는 눈입니다. 현재에서 미래를 보는 눈이며 땅에서 하늘을 보는 눈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눈이 감겨졌을 때 곡성이 진동했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눈은 역사 속에 영원히 감겨져서는 안될 눈이기 때문입니다. 시기와 질투와 교만과 허영과 아첨과 음욕과 탐욕으로 가득찬 눈을 가지고 미인으로 자부하지 말고 진실로 아름다운 눈을 가진 하나님의 미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름처럼 산 사람! 내 이름은 무엇인가? 내 이름처럼 나는 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처럼 살고 있습니까?

5.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느라 도르가는 중한 병이 들어 결국 숨을 거둡니다. 숨이 완전히 끓긴 도르가의 시신을 교회 식구들은 깨끗이 씻어 다락에 뉘였습니다. 하지만 교인들은 끝까지 도르가를 잃기 싫어 소망을 갖고 사도 베드로를 초청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이르러 도르가의 시신이 있는 다락에 올라갔을 때 모든 과부들이 도르가가 손수 지어 입힌 옷을 내어 보이며 슬피 울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그 모습은 도르가 생전의 삶을 보여줍니다.
이에 베드로도 감동을 받고 도르가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은 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힘차게 외칩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그 소리에 다비다는 눈을 떴고 정말로 일어나 앉았다. 죽었던 도르가가 다시 생명을 얻어 살아난 것입니다. 그녀의 구제와 선행을 필요로 하던 이웃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녀를 다시 교회에 돌려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도르가의 구제와 선행은 죽음조차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그 향기를 오래도록 내뿜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 큰 일을 하였습니다. 이웃에 구제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예수를 믿게 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는 분문 36절에서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라고 하더니, 42절에서는 많이 주를 믿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선행과 구제뿐 아니라 전도도 많이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생애가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었습니까! 그녀의 일을 통하여 해놓은 것은, 오직 선행과 구제와 전도의 열매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얼마나 많은 전도의 열매가 있습니까? 우리는 이제 다시 한 번 눈을 돌려 내 가정을 바라봅시다. 내 학교를 바라봅시다. 내 이웃을 바라봅시다. 옳은 데로 인도해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은 것처럼(요12:11), 도르가를 인하여 많은 욥바 사람들이 주를 믿음 것처럼, 오늘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여러분의 믿지 않는 가족, 친척, 친구, 이웃들이 많이 돌아와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말씀이었습니다.(롬10:15, 딤후4:1)
그리고 다니엘서 12장 3절 말씀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하였습니다.

6. 구제와 봉사의 어머니 도르가
도르가가 하나님께 헌신하였던 방법은 뛰어나고 값진 물건이나 권력을 통해서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재봉에 뛰어난 자신의 재능을 통해서였습니다.(행9:39) 이와 같은 모습은 하나님께 귀한 재능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형편과 처지를 내세우며 선행과 구제하는 데 인색한 현대의 이기적인 성도들에게 귀한 귀감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도르가의 죽음에 대한 동료 과부들의 태도에서 우리는 그들 사이에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으며, 도르가의 생전 선행이 지극히도 감동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뜨거운 사랑의 교제와 헌신의 모습은, 교회의 외적 성장에만 치우쳐 점차 의례적인 성도간의 교제가 이뤄지는 경향에 처한 현대 교회 공동체에 다시금 살아 움직여야 하겠습니다.(벧전4: 7- 11)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9-10)

도르가를 통해 우리가 배울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도르가는 희생적인 봉사와 사랑의 실천을 통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드러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아름다운 삶을 통해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행1:8, 롬10:15, 딤후4:1)
2. 불쌍한 이웃에게 손수 옷을 만들어 주면서 일생을 선행과 구제로서 헌신적인 삶, 선행일치의 삶을 산 도르가의 삶은 실로 아름다운 모범입니다. 이러한 신행 일치의 삶은 구체적인 결단과 자기희생을 통해서만 성취 가능한 것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강도 만난 자의 상처를 싸매어 주는 사마리아인처럼 우리도 말과 혀로만 형제를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합시다.(요일3:18)
3. 누가 교회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교회 내에서 우리는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의 어려움을 돌보며 남몰래 섬기는 그런 사람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도르가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짧게 기록되어 있는 그녀는 욥바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쉴새없이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남을 도와 주는 일에 바빴던 그녀에겐 아마도 아플 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죽었어도 남에게 폐를 끼칠까 두려워했을 그런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도르가가 갑자기 죽었을 때 욥바의 교인들은 마침 가까운 지방을 방문중인 베드로에게 좀 와 달라는 간청을 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베드로를 장례식에 초대함으로써 도르가에 대한 그들의 존경을 표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장사지낼 준비만 하고 있었지 기적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도착하고 얼마 후, 그 초상집은 떠들썩한 잔치집으로 변했습니다. 그토록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던 그들에게 그녀의 부활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겠습니까?
살아난 도르가는 틀림없이 자신이 하던 바느질과 구제, 봉사의 일을 계속 했을 것입니다. 누가는 그의 글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하신 일을 통해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교회에서 도르가가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그리고 즐겁게 남을 돕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그분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으로 감사를 표하지 않겠습니까?
3. 교회나 가정, 학교 등에서 당신이 남을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하고 실천해 봅시다. 신앙이 없는 실천이 헛것이듯 실천이 없는 신앙도 헛것입니다. 도르가는 확고한 믿음과 동시에 그 믿음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욕에 불타기는 쉬워도 그것들을 실행해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엔 어떤 손해나 희생이 자신에게 미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4. 도르가는 자신의 재봉 기술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하는 자신의 소임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는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셨습니다. 이에 모세는 "지팡이니이다."고 대답했습니다.(출4:2) 이렇듯 주님께서 도르가에게도 물으셨을 때 도르가는 "바늘 이니이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녀의 행위 속에 당신의 권위를 부여하셨고, 도르가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느질을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5. 오늘날도 교회나 훌륭한 단체 안에서는 박애주의적인 이상을 가지고 다양한 구제와 구원 사업에 종사하는 많은 여성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활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들의 자선사업에 나타나는 특징은 교회 내의 가난한 신자들이나 주변의 이웃들은 외면된 채 북한을 돕자는 등 대외적으로만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위한 것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 잔의 냉수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주어질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6. 희생적인 봉사와 사랑의 실천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낸 도르가는 죽은 후 베드로의 기도로 다시 살아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생명 가운데로 인도했습니다.(행9:,41,42) 이렇듯 신실한 성도는 사나 죽으나 오직 그리스도만을 존귀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힘쓸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주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신앙을 위해 늘 기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마5:16)
7. 하루는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선생님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참다운 영생을 얻는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며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를 일컬어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정한 사랑이 어디에 근본을 두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알지만 하나님의 참사랑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특징은 내가 먼저 받는 사랑이 아니라 내가 먼저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사랑은 주는 사랑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랑만 받으려 하고 베푸는 사랑이 없기에 사랑의 근원이요 공급처가 되어야 할 교회마저도 사랑이 메마르고 기갈된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 자체이신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앞서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환경, 조건을 초월한 아가페의 사랑,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교회는 상처받고 환난받고 고통당하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어야 하고 나아가 외로운 자들에게 휴식처요 평안한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길거리를 방황하는 노숙자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육적인 경제가 어려워서 생겨난 노숙자들보다도 영적인 노숙자들이 더욱 방황하고 있는 데 문제가 있고 그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마다 거리에서 방황하는 노숙자들을 위해서 밥도 주고, 빵도 주고, 옷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그들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임시방편임을 압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줘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교회에서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비롯한 국민 모두의 관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영적인 노숙자들은 육신의 먹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 우리 목회자, 우리 성도들이 마음과 힘을 합해 통회하며 가슴을 찢는 회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고난과 헌신, 희생없이는 그들을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다시 깨어 성령운동을 전개하고 성령의 불을 던져야 합니다. 교회가 살아야 국가가 살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살고, 성도가 살아야 모든 이에게 구원의 역사가, 천국이 확장됩니다. 국가를 탓하고 정치가 부패했다고 탓하기 전에 교회가 교회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목회자가, 성도가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음을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강도 만난 자의 구원자가 사마리아인이었다면 오늘날 마귀에게 세상에서 상처받고 신음하는 인간들의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는 모든 세상 사람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 그들에게 기쁨과 소망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내가 너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명심하면서 우리 모두 “나도 이같이 행하리라”는 다짐을 하길 원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4-25)

오늘 이 시간, 구제와 선행이 메마른 이 땅 위에 믿음과 행함이 괴리된 우리들 마음 속에 다시 힘차게 살아나야 하겠습니다.
다비다여! 일어나라. 한국의 크리스천이여! 일어나라
성도 여러분 모두가 도르가처럼 서로 돕고 서로 십자가를 져 주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구제와 선행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도르가처럼 구제와 선행과 전도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는 가정과 부모와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또 일할 수 있는 직장과 조국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주님을 마음껏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우리처럼 그렇게 행복한 삶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거처할 가정이 없이 방황하는 자들과 신앙이 박해받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근로 환경이 열악한 상태에서 낮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격무에 시달려 일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과 가정에서 동정을 받지 못함은 물론 심지어 학대를 당하는 자들과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자들과 정신 이상에 걸려 정신요양소에 수용되어 있는 자들과 옥에 갇혀 있는 자들과 사람들로부터 멸시 당하고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은총을 베푸시옵소서. 오! 하나님, 내가 행복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그들의 불행을 결코 잊지 않게 하옵소서 이 모든 것을 주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다비다가 남긴 교훈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행 9:40)

본문에 보면 히브리어로는 다비다, 헬라어로는 도르가라고 하는 욥바 교회 여제자가 소개돼 있습니다. 욥바는 지금의 텔아비브를 가리킵니다. 이 다비다가 세상을 떠나므로 많은 사람이 슬퍼하였습니다. 이는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았고 속옷과 겉옷을 지어 사람들에게 봉사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애도한 그의 죽음을 보게 됩니다. 단순한 정분이나 친교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남긴 감화와 선한 봉사가 많은 사람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정말 다비다는 본인으로서도 최선의 삶을 살았고 그를 아는 많은 사람에게 말 없이 좋은 교훈을 남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더 살아야 할 사람이고 그를 통해 많은 사람이 영적으로나 신앙으로 격려를 받고 영적 지원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 그의 죽음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영적 도전을 주었던 사실이 더 교훈적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언행이나 봉사, 교회를 섬기는 일, 사람을 보살피는 일까지 주변 사람에게 본이 되고 덕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본문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베드로의 기도로 다비다가 다시 살아난 사실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통해 허락된 은혜이기 때문에 성경에도 많은 초자연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그 신앙 자체가 신비스러운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람과 바다도 잔잔하게 하실 수 있고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죽을병도 치료해 주십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신앙의 가능성을 확인시킨 말씀입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많은 체험과 표적이나 능력까지도 경험하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내가 내 자신을 이기는 것도 기적이요 변화 받아 새 사람이 되는 것도 기적입니다. 더 소중한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다비다와 같이 물질로 많은 선행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은혜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다비다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통해 많은 구제와 봉사적인 삶이 여러분에게도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의 자녀로 남을 섬기며 사는 데 부끄럽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구제와 봉사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게 하여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묵상 및 토의
0 도르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 해보세요
0 나는 도르가의 어떤 면을 닮고 싶은지 이야기 해보세요.
0 도르가는 일하는 시간 외에는 구제를 했습니다. 당신의 여가는 과연 어떠한 일로 채워져 있습니까?
0 도르가의 집에는 그녀를 추모하는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죽어 장례를 치른다면 당신은 어떤 평가를 받겠습니까?
0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사람의 능력이나 가능성을 과소평가 하지 않으십니까.
0 성도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이야기 해 보세요
0 나는 도르가가 약한 자들의 의지처가 되어주듯이, 도르가처럼 먼저 약한 자들의 의지처가 돼주려고 합니까?
0 나는 약한 자를 돕기에 힘쓰는가?
0 나는 춥고 배고픈 이웃들을 도울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가?
0 나는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있는가?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라

잉글랜드의 오스왈드 왕에 관한 일화입니다. 그가 왕만이 먹는 진수성찬이 담긴 아름다운 은접시가 즐비한 식탁에 앉아 막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였습니다. 시종으로부터 성문 앞에는 아직도 불쌍한 사람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시종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청했습니다. 그 때에 왕은 "하나님이여, 그들을 도우소서. 하나님이여, 그들을 구원하소서. 하나님이여, 그들을 위로하소서"라고 말하지 않고 시종에게 즉시 그 은접시를 가져가서 음식을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그 다음에는 그 접시를 모두 부수어 그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내게 도울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외면한다면, 내가 어려움을 당해 도와달라고 부르짖을 때에 나 역시 외면당하게 됩니다. 내게 힘이 있을 때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나도 어려울 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심고 거두는 법칙'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남을 도와주면 반드시 돌려 받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을 모른 척하지 말고 힘껏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21:13)

* 예화(2): 옷 만드는 재주를 가진 여인

미국의 어떤 도시에 한때 의복이나 외투를 만드는 일에 비상한 재주를 가진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심한 병으로 인해 의기소침하여 그 일을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녀는 게으름을 피우며 가치 없이 살아가는 생활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누추한 옷을 재단하여 맞추어 주고 그 대가는 받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들이 과로에 지쳐 쓰러진 것을 보면, "내가 며칠동안 당신에게 바느질을 해주려고 왔소"라고 말하길 좋아했다. 주일 날 입고 갈 옷이 마땅치 않아서 교회에 나가지 못하면 그 옷을 깨끗이 빨아주고 그 옷을 입고 교회에 나갈 수 있도록 했다. 어린애들이 날씨는 추운데 솜이 얇고 다 떨어져서 주일학교에 나가지 못하면 낡은 옷에 다시 솜을 넣고 얇은 숄 밑에 입을 따뜻한 자켓을 만드는 일로 무척 행복해 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는 내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으셔요. 내 건강이 허약하고 내 마음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나의 마지막이 닥쳐오면 하나님께서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였다'라고 말씀하시게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곤 했다.

* 예화(3): 작은 자에게 한것

톨스토이의 이야기 중에 어느 제화공이 있었는데 늘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했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 예수님이 나타나 내일 네 집에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대단히 기뻐하며 음식을 차려놓고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한 번은 거지가 오고 또 한번은 청소부 영감이 저녁 때는 사과장수 아주머니가 왔습니다. 모두 가난하고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구두방 할아버지는 불쌍하게 생각하며 예수님을 위해 준비했던 음식을 그들에게 먹였습니다. 그날 밤 꿈속에 다시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나는 오늘 너희 집에 세번이나 가서 세 번 다 잘 대접받았다 참으로 너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 이다. 네 이웃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곧 나를 대접하는 것이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40)

4. 찬송: (376장)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1.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주의 일 하다가 이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2. 꿈같이 헛된 세상 일 취할 것 무어냐 이 수고 암만 하여도 헛된 것 뿐일세
3. 불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맙시다 구주의 권능 크시니 이기고 남겠네
4.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5. 살같이 빠른 광음을 주 위해 아끼세 온몸과 맘을 바치고 힘써서 일하세 아멘

5. 구제와 선행에 관한 말씀
0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7)
0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겔18:7)
0 사람을 학대하지도 아니하며 전당을 잡지도 아니하며 억탈하지도 아니하고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겔18:16)
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며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것이며(사58:10)
0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0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시112:9)
0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것이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15:10-11)
0 ....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에9:22)
0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8)
0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3:3-4)
0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0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2)
0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
0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6:17-18)
0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신15:10)
0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시41:1)
0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잠3:27-28)
0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니라(잠28:27)
0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며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 지어다(시37:3)
0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성경의 인물
성경에 나오는 왕에서 노예, 예언자, 거짓 선지자에 이르기까지 약 400명의 인물들을 정렬하고, 관계 성구, 배경해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되새기도록 구성한 인물 백과사전.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살고, 투쟁하고, 실패하고 성취하며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부록: 성경에 나오는 전 인물<약2500명> 수록)
한 태 완 목사 著, 좋은 땅 (주문전화:386-8660), 정가 40,000원
좋은땅 인터넷 http://www.g-world.co.kr
좋은땅 이메일 gworld@g-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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