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병을 고침받은 나아만 장군

복음............... 조회 수 1319 추천 수 0 2007.01.23 10: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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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병을 고침받은 나아만 장군

본문: 왕하5: 1-15

오늘은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나아만이란 이름의 뜻은 ‘유쾌’ ‘즐거움’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람(수리아)왕의 군대장관이자 구국공신입니다. 우가리트 문헌에 의하면 나아만의 이름 철자는 ‘매력’ ‘사랑스러움’을 가리키는 일반적 별칭이라고 합니다.
아람 왕 벤하닷 2세의 대장으로 전공이 많아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불행히도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지금은 의약품의 발달로 문둥병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고, 나병도 고칠 수 있다고 인식되고 있지만, 옛날에는 문둥병을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하였고 인간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용감무쌍한 그의 힘과 용기로도, 그가 가진 막강한 지위와 권세로도 그가 누린 많은 재산과 영화를 가지고도 문등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습니다.
문둥병에 걸려 고통하는 중에 나아만 아내의 몸종인 어린 히브리 하녀가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칠 수 있는 선지자가 사마리아에 있음을 이야기 듣고 나아만은 이스라엘 왕을 방문하여 치유를 요청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가 나아만을 자기에게 오도록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교만한 태도로 엘리사의 집을 방문한 나아만에게 엘리사는 그를 직접 만나주지 않고 시종을 통해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도록 명하였습니다.
나아만은 이러한 조치에 분개했으나 그의 종들이 진정시켜 요단강에 몸을 씻도록하니 그의 문둥병이 깨끗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상숭배를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기로 결정한 나아만은 여호와의 제단을 쌓기 위해 가나안 흙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나아만이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1. 나아만의 성품
가.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아람을 구원한 것으로보아 군사적 지략이 뛰어난 자입니다.(왕하5:1)
나. 계집 종의 말을 믿고 이스라엘까지 갔으며, 또 종들의 간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아 아랫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왕하5:2- 14)
다. 엘리사에게 직접가지 않고 이스라엘 왕에게 간 점이나 자신의 모습을 화려하게 하여 엘리사를 찾아간 것을 볼 때 자신의 높은 신분에 대해 자만한 자입니다.(왕하5:6,7)
라. 여호와의 은혜로 나음을 입었을 때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아 매우 순수한 자입니다.(왕하5:15)

2. 나아만의 업적과 실수
나아만 장군의 주요 업적은 앗수르로 부터 아람을 구하였고(왕하5:1),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하였다는 점입니다.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왕하5:15- 18)
나아만의 주요 실수는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엘리사의 말에 노하여 돌아가려 하였다는 것입니다.(왕하5:10- 12)

3.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 이스라엘을 찾아간 나아만
나아만은 앗시리아의 군대 장관으로 문둥병에 걸린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는 앗시리아가 지금의 미국처럼 큰 나라였고, 이스라엘은 아주 조그만 나라, 힘이 없는 나라,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 큰 나라의 군대 장관이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하지만 왕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었던 그였기에 그는 군대장관으로 그냥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아무리 군대 장관이고 왕이 총애를 한다고 해고 문둥병이 들었으니 얼마나 처참했겠습니까?
몸이 서서히 썩어 들어가 죽을텐데, 군대 장관의 직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앉으나 서나, 먹으나 안 먹으나 그것이 걱정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에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계집종 하나가 나아만의 부인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나라에 가면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는데, 그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문둥병이 나을 수 있을 겁니다."
물 속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남편이 저녁이 되어서 들어오자 그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왕에게 그 얘기를 하고, 왕이 써준 친서를 받아든 채 이스라엘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약대(낙타)에다 금은 보화와 비단을 가득 싣고, 수십 명의 하인을 이끌고 이스라엘 왕 앞에 가서 자기 왕의 편지를 내 놓았습니다. 그 때 편지를 본 이스라엘 왕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막강한 앗시리아 왕이 난데없이 편지를 보내어 문둥병을 고치라고 했으니 이는 틀림없이 싸움을 걸기 위한 트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신들도 야단이 났습니다. 머리에 재를 쓰고서 옷들을 찢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 때 한 신하가 나서서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왕이시여! 걱정마시고 그 사람을 엘리사한테 보내시지요.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선지자인지라 능히 그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약대 열 필에 금은 보화를 가득 싣고 엘리사에게로 떠났습니다. 그는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문둥병에 걸렸지만 앗시리아의 군대 장관이고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니 내가 도착하면 엘리사가 뛰쳐나와서 공손히 절을 하고, 하나님께 곧바로 기도를 해서 고쳐 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도착을 했는데 상황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가 도착하자 정작 엘리사는 보이지를 않고, 대신 그의 종이 나와서 하는 말이 "나아만 장군님! 우리 선생님이 당신의 병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면 낫는다고 전하랍니다." 하고는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나아만이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아니 내가 앗시리아 왕 다음으로 가는 군대장관인데, 건방지게 나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다니!' 하고 화가 나서 돌아가자고 그러는데 마침 그의 밑에 있던 충직한 신하 한 명이 그를 말리며 간언을 했습니다.
"장관님! 장관님은 그가 어려운 일을 시켰더라도 했을 것 아닙니까? 요단강에 가서 목욕 일곱 번 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밑져야 본전이니까 일단 가 보시지요."
그래서 나아만은 요단강으로 가서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 시작합니다. 한 번을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삿 번, 여섯 번을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일곤 번째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의 살이 어린아이 피부처럼 뽀얗게 변했습니다.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제서야 이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내가 이제야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인 줄 알겠노라. 나는 이제부터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께만 봉사하겠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이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나아만이 요단강에 들어가기 전 믿음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 사람 스스로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아내의 권유로, 왕의 호의로, 신하의 간청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것은 곧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만큼 전도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옆에서 끊임없이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문둥병을 치유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의 씨앗을 뿌릴 때 하나님이 참 믿음으로 그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이처럼 믿음이라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생기고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옆에서 부단히 도와주는 사람과, 하겠다는 순종이 있을 때 비로소 예수를 믿는 참 신앙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 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눅4:27)

나아만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정리하여 보겠습니다.
1. 자신의 모습을 아주 화려하게 장식하고 엘리사의 집을 찾아갔으나 엘리사가 직접 만나주지 않자 분개하고 엘리사의 명을 따르지 않은 것을 볼 때 나아만은 자신의 높은 신분에 대해 자만하는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나아만을 여러 종들을 통해 믿음 있고 겸손하며 경건한 사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나아만의 치유는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관심의 한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아니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왕하5:15)
2. 아람 군대의 장관인 나아만이 여호와의 은혜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당시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의의를 가집니다. 즉 이는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국한된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역사를 주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증거해 주시는 것입니다.(행17:24) 따라서 성도는 온 인류가 한 형제임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화해의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행1:8)
3. 이스라엘의 하찮은 선지자 엘리사에게 괄시를 받고 다메섹으로 행차를 돌렸으나 부하들이 “그 명령대로 해보십시다.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습니까? 더운데 먼지 털고 좋지 않습니까?”라고 진언해서 그대로 하여 문등병이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나아만이 일곱 번 목욕하라고 했는데 여섯 번만 하고 포기했다면 과연 문둥병이 고침을 받을 수 있었을 까요. 그가 끝까지 순종했으므로 고침을 받은 사실을 우리는 똑바로 알아두어야 하겠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합시다(신30:8)
4. 엘리야와 엘리사 당시의 백성들은 패역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배척하였습니다.(눅4:24) 이러한 사회적 배경하에서 이방인 중에서도 군대장관이라는 높은 직위에 있는 자가 자기 백성들에게 소외되어 있던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온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우주적 성격을 암시함과 아울러 나아만의 겸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방 로마군대의 백부장도 겸손했으므로 이적을 체험했습니다.(마8:5-13)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잠3:34, 약4:6, 벧전5:5)
5. 나아만은 앗수르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아람을 구원하였는데 이에 대해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크신 하나님, 이방인까지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매일의 기도 속에서 나만의 하나님, 내 나라만의 하나님으로 제한하고 잇지는 않습니까?(시103: 17- 19)
6. 나아만은 엘리사가 요단 강에 몸을 씻으라 하였을 때에 노하여 돌아가려 하였습니다.(왕하5:11) 만약에 나아만이 그대로 돌아갔더라면 그는 결코 문둥병을 고침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노함(분노)은 이렇게 어리석은 일을 행하게 합니다. 성경에도 분노는 다툼을 일으키고 급기야는 죄를 짖게 하므로 합당하지 않은 행위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잠29:22, 요4:4) 우리들의 행동에도 노하기를 속히 하는 어리석음이 있지는 않습니까? 시로 분노가 일어났으나, 이를 떨쳐버리고 선지자의 말에 순종함으로써 병고침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나아만을 기억합시다.
7.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그의 말에 순종하게 된 데에는 일차적으로 아랫 사람의 지혜로운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던 그의 겸손함이 선행되었었습니다. 솔로몬도 잠언에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시10:17, 잠3:34)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도 내 생각만을 주장하려 하고, 나만 높아지려하는 모습은 없습니까? 성경은 겸손한 자에게는 권고를 듣는 지혜가 있다고 말씀합니다.(잠11:2, 12, 15)
8. 나아만이라는 동명이인으로는 베냐민 지파 벨라의 아들이있다.(민26:40)

성도 여러분, 나아만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종을 찾아와 그 말씀대로 순종하므로 문둥병을 치유받은 것처럼 우리가 비록 과거에 문둥병과 같은 더러운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면 다 용서하시고 은혜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달으시고 아무쪼록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귀히 사용하시는 일꾼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주님, 하나님께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더하소서. 주님은 이 땅에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저를 위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믿지 않는 이들에게 주님의 크신 권능을 증거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특별히, 기도하옵기는 질병으로 인해, 하루 온종일 병상에 누워있어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거동할 수 없어서 기독교TV를 켜놓고 눈과 귀로 복음을 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부어주사 방송을 통해 접하는 말씀과 찬양으로 은혜받게 하시고, 상한 마음이 치유되어 감사와 기쁨이 넘쳐나게 하옵소서. 또한, 연약한 육신 가운데 혈액순환이 잘되고, 힘줄이 붙고, 근육이 생겨나 마른 뼈가 살아나는 역사가 있게 해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힘있게 쓰임받는 십자가 군사로, 주님의 제자로 세워지게 하옵시고, 그들로 인해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병상에 있는 지체들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길 간구하오며, 만병의 대 의사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문둥병자 나아만 (왕하 5:1-15)

구약시대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에 북방의 아람 나라에 나아만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람 왕의 군대장관으로서 전에 아람 나라를 적국으로부터 구해낸 일로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큰 용사였으나 문둥병자였습니다. 그 즈음, 그는 자기 집에서 일하는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소녀를 통해서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가 그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에 나아만은 왕에게 이 사실을 고하고,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는 왕의 친서와 많은 예물을 가지고 사마리아로 떠났습니다.
나아만으로부터 아람 왕의 친서를 받아 읽어본 이스라엘의 요람 왕은 얼굴빛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거기에는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주소서”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요람 왕은 자기 옷을 찢으며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했습니다.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습니까 그 사람을 내게로 보내십시오.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나아만이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때 엘리사는 사환을 저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시오. 그러면 장군의 문둥병이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은 대단히 화가 났습니다. 그는 발걸음을 돌이키면서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상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에 있는 아마나 강과 바르발 강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그 때 그의 부하들이 나아와서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큰일을 행하라고 시켰으면 행치 아니 하였겠습니까 하물며 강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한 것을 못하실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하면서 만류하였습니다. 이에 나아만이 마음을 고쳐먹고 요단강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나아만이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말하기를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저는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진리가 무엇인지 말씀해 드림으로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로, 나아만의 문둥병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영적 상태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그 사람의 외적인 조건을 보고 평가합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쯤 되면 어딜 가나 VIP대접을 받습니다. 대학교수 쯤 되면 어딜 가나 식자로서 존경을 받습니다. 백화점이나 컨트리클럽 같은 데서는 지갑이 두둑한 사람들이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아만 장군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모두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그것도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군대장관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전에 아람 나라를 구해낸 큰 공을 세웠던 것입니다. 아람 나라에서 나아만은 크고 존귀한 자요 큰 용사였습니다. 부귀공명을 한 몸에 지닌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말 못할 고민이 있었으니, 이는 그가 문둥병자였던 것입니다. 살이 썩어 들어가는 문둥병에 걸렸으니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조건들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영적으로 볼 때, 이 문둥병은 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문둥병자 나아만은 죄에 감염된 죄인들을 말합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죄에 감염된 죄인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라고 선언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이 성경의 판단입니다.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요 큰 용사였으나 실상은 문둥병자였습니다. 화려한 옷으로 피 고름이 흐르는 몸을 감출지라도 그것으로 그가 문둥병자인 사실을 모면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기를 좋아합니다. “저 사람은 집안도 좋고, 학벌도 좋고, 직업도 좋고, 재산도 많고, 그러니 훌륭한 사람임에 틀림없어” “저 사람은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조건을 갖추었으니 참 행복할거야” 과연, 그럴까요?
본문에 나아만을 보고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현대인들에게 적용해 보면, “현대인들은 배운 것도 많고, 가진 것도 많고, 재능도 있고, 매너도 세련되고, 외모도 아름답게 꾸몄지만, 영적 문둥병자더라”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맨 나중에 붙인 조건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고 하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나아만처럼 큰 용사가 되기를 원하고 그렇게 되려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사람마다 사회에서 보다 나은 대접을 받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는 모국어도 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부모들도 많고, 자녀 교육을 위해 가족이 헤어져 사는 기러기 가족도 적지 않습니다. 이 모든 노력이 이 사회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외적인 조건에 관심을 집중할수록 그들의 내적인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될 뿐입니다.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로 유명한 헤밍웨이는 62세에 엽총으로 자살했습니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돈도 많았습니다. 그는 스포츠, 사냥, 모험 등을 즐겼고, 사랑을 추구해서 결혼도 네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명예, 돈, 사랑, 예술 등 모든 것을 누렸으나 마음의 공허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유서에다 “나는 필라멘트가 끊어진 텅 빈 전구와 같이 공허하다”고 썼습니다. 헤밍웨이의 심적 공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수가성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면서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마치 우물물과 같아서 다시 목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알콜 중독자가 술을 마셔도 마셔도 그 때 뿐이고, 다시 목이 갈하여 술을 찾듯이, 세상이 주는 만족은 일시적이고 더 심한 갈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이 주는 것은 어느 것이나 죄에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병이 무서운 이유는, 이 병에 걸리면 감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뜨거운 것을 만져도 뜨거운 줄 모르고, 살이 패여도 아픈 줄을 모릅니다. 그 때문에 몸을 함부로 사용하므로 망가지기 쉽고 그렇게 상처 난 곳으로 병균이 들어가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실상이 이와 같습니다. 죄에 감염되면 영적인 감각이 없어집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그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 줄 모릅니다. 현대인들은 겉은 화려하지만 그 속은 썩고 악취가 납니다. 오늘날 신문과 티비 뉴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부정부패, 인신매매, 살인, 파괴 사건들은 죄에 감염된 사람들의 내면의 상태가 겉으로 드러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은 누구나 죄를 청산하지 않는 한 나아만처럼 소망이 없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나아만이 이스라엘인 하녀에게서 문둥병을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자기가 문둥병에 걸렸음을 알았을 때, 나아만은 겉으로는 군대장관으로서 위엄을 지켰을지 몰라도 속으로는 절망하였을 것입니다. 환자가 자기의 병든 사실을 올바로 아는 것은 치료를 위해서 매우 필요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심하게 지내다가 너무 늦게 병든 사실을 알게 되어 치료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당신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의롭고 괜찮은 사람인지를 설명하거나 개중에는 노골적으로 화를 내며 싸우려 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치 암환자에게 “당신은 암에 걸렸습니다” 말해 주면 화를 내고 믿으려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병을 고치려면 병든 사실을 아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자기가 영적 문둥병에 걸린 사실을 알지 못하면 여전히 세상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무슨 방법으로 자기가 영적 문둥병에 걸린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율법으로 자신을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방법으로는 절대로 영혼의 상태를 진단할 수 없습니다. 정신과적인 진단으로는 죄를 발견해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비유하자면 곧은 자와 같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행실이 올바르다고 할지라도 율법의 자로 대어보면 심히 굽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로마서 7장의 말씀처럼, 우리는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무엇이 죄인지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우리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는 사람도 죄인인 것은 변함이 없지만, 율법을 알고 자기가 죄인인 사실을 알게 되어야 죄를 해결 받기 위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롬 7:9- 13) 처음 교회에 인도함 받아 나온 사람은 기독교에 대하여 어린아이와 같아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주 예배에 참석해서 설교를 듣는 중에 하나님의 법과 기준에 대하여 알아 갑니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자기의 영적 실상을 밝히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고 탄식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기가 죄인인 사실을 절감하는 것은 나아만이 자기가 문둥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 것과 같습니다. 문둥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 나아만은 백방으로 치료방법을 찾아보지만 결국은 인간의 힘으로 고칠 수 없음을 알고 절망합니다. 마찬가지로, 죄인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죄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절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절망을 통해서 지금까지 의지하던 인간적인 방법을 포기하게 됩니다. 곧 자기의 의로움을 의지하여 구원 받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도리를 받아들입니다. 나아만이 자기 집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소녀에게서 복음을 듣고 이스라엘로 엘리사를 찾아갔듯이, 죄인들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나아만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아셨을 것입니다. 복음은 문둥병자 나아만을 치료하여 새 삶을 살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인들을 회개시켜 죄 사함을 받게 하여 새 생명을 누리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르시기를 “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겔 3:10,11) 하셨는가 하면, 또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겔 3:27).
우리가 복음을 전해 준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듣는 사람보다는 듣지 않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먼저 믿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세째로, 나아만은 선지자의 말대로 행하여 문둥병에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로 간 나아만은 순조롭게 선지자의 집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엘리사의 집 대문에 이르러 큰 장애물에 부딪혔습니다. 나아만이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엘리사의 집 앞에 도착하고 보니 그를 환영 나온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만나려는 선지자 엘리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선지자의 사환이 나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시면 장군의 문둥병이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는 말을 전하였습니다. 그 때 나아만은 노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상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그런데 요단강에 가서 목욕을 하라고? 다메섹의 아바나 강과 바르발 강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고 했습니다. 무엇이 나아만을 그토록 화나게 만든 것일까요? 그에 대한 대접이 소홀한 것이 그를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교만입니다. “내가 이래뵈도 아람의 군대 장관인데”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가련한 문둥병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제 잘난 척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멸망당할 죄인에 불과함을 알아야 합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대접 받으려 하면 안 됩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그렇게 깨어진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의 은총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나아만에게 요구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처음에 순종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아만은 엘리사가 제시한 방법이 그의 지식과 경험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반발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의 이 말을 살펴보면, 그는 선지자가 엄숙한 종교 의식을 행해서 그의 병을 고칠 줄 알았는데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잠그라”고 하니, 그가 기대했던 것과 너무나 거리가 멀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길이 자기들의 생각과 맞지 않기 때문에 반발합니다. 다시 말하면, 너무 쉽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는다고 하니까 너무 쉽다는 것입니다. 고행도 하고, 금식도 하고, 자선도 하고, 기도문도 외우고, 무언가 인간적인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수긍이 갈 것 같은데, 그런 것은 하나도 할 것이 없고 그저 예수만 믿으면 된다고 하니까 나아만처럼 믿지 못하고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구원의 방법은 인간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구원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방법을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유일한 구원의 방법입니다.
선지자의 소홀한 대우에 노한 나아만은 발걸음을 돌이켜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 했지만, 부하들의 간청에 못 이겨 요단강에 내려가 일곱 번 몸을 잠궜고, 문둥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부하들은 간청하기를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세상 종교는 사람들에게 번거로운 종교 의식을 강요합니다. 실은, 내용이 빈약할수록 형식과 절차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무슨 종교 의식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에 보면, 인격적으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위대한 사람도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이는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구원은 은혜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선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바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요” 하신 주님의 말씀과 같이,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히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죄인이 구원받는 길입니다. 순종할 때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됩니다. 교만한 마음을 품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려는 자와 같습니다. 그래서는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나아만이 교만을 버리고 선지자의 말에 순종한 결과, 문둥병을 고침 받았듯이, 오늘날도 자기 생각과 경험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하는 자라야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나아만은 큰 용사였으나 문둥병자였습니다. 나아만은 외적인 조건에만 집착하고 내면적으로는 죄로 인해 병들고 곤고한 현대인들의 표상입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지자 엘리사를 소개 받아 문둥병에서 깨끗함을 받았으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참 신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이 영혼의 문둥병인 죄에서 깨끗함 받는 길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은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공로나 의로움은 구원 받는데 전혀 소용이 닿지 않습니다. 혹시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거든 모든 인간적인 선입견과 고집을 버리고 요단강에 내려가 몸을 담갔던 나아만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구원 받은 성도님들께서는 나아만 집의 이스라엘 소녀처럼, 그리고 선지자의 말을 나아만에게 전했던 사환처럼 복음을 전하는데 힘써야 할 줄 믿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지만, 믿지 않는다면 주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 것이요, 주의 이름을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전파하는 자가 없이는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일보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과제입니다. 아무쪼록 성도님들의 전도를 통해서 불신 이웃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영혼의 문둥병을 치료받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양인 목사)

2. 묵상 및 토의
0 나아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 해보세요
0 나는 나아만의 어떤 면을 닮고 싶은지 이야기 해보세요.
0 나는 분노(화)를 자주 내는 편입니까?
0 나는 아랫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입니까?
0 성경에 나아만 말고 문둥병자가 고침받은 이야기가 또 나옵니다. 이야기 해보세요.(마8:3, 눅5:12-13, 눅17:11- 19)
0 나아만은 순종하여 요단강에 일곱 번 목욕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0 성도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이야기 해 보세요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분노와 순종

어떤 교회에서 당회가 계속되고 있었다. 목사는 교회 운영과 지도 방침을 놓고 오랫동안 기도하고 연구하여 내놓았다. 당회에서 목사는 그 필요성과 방법을 설명하니 여러 장로님들은 참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교회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수석 장로라고 하는 분은 반대했다. 그 이유는 시기상조라느니 핑요가 없다느니 방법이 잘못됐다느니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중심은 자기와 먼저 의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목사는 다시 세밀히 설명하고 다른 장로님들도 그 장로님에게 찬성해 줄 것을 종용한다. 대세가 이쯤 되니 그는 이론이 막히게 되고 피할 길이 없어졌다. 그러나 그의 고집과 교만은 꺾이지 않는다. 드디어 그는 과격한 표현을 하게 된다.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아쇼. 내 대가리가 두쪽이 나도 못합니다." 그래도 장로님들은 동조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그는 가지고 있던 당회록을 집어던지면서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목사님 다해 먹으시오"하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다른 장로님들은 그를 붙잡고 못 나가게 한다. 그때 그 목사는 "장로님 20분 내로 후회할 것입니다. 젊잖은 분이 그게 무슨 태도입니까?"라고 말했다. 그 장로는 "후회 좋아하네!"하고 큰 소리를 쳤다. 그는 교회 뜰에 나가서 집으로 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다방에 갈 수도 없었다. 교회 뜰만 빙빙 돌면서 죄 없는 돌, 나무 등을 발로 차면서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10여분 지났다. 그는 점점 풀이 죽어가고 후회하는 기색이 보인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목사와 몇몇 장로들은 그를 끌고 들어오니 그는 못이기는 체하며 끌려 들어와 속회한다. 그의 첫 마디는 "목사님 정말 미안합니다. 이놈의 혈기 때문에 이 모양입니다...." 그때가 바로 그가 화를 내고 뛰쳐나긴지 15분만이었다. 그래서 그 안건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나의 자존심, 나의 혈기는 언제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장애가 되는 것이다.

* 예화(2): “예수 믿으세요”의 비밀

“예수 믿으세요.” 이 말을 현대인들은 검은 양복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전도인의 직업적인 이야기로 일축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단한 한 마디, 인기 없는 말이지만 이 말 속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나타나는 몇 가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약한 것을 강하게 합니다.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장래 일에 대하여, 마귀에 대하여, 신령한 일에 대하여 연약한 존재이지만 예수님은 믿는 사람에게 이런 일에 대하여 강하게 하십니다. 둘째,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근본적으로 죽은 자, 멸망할 사람을 살리십니다. 의사가 되어 질병을 치료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 연구해야 합니다. 죄의 값으로 영원한 사망이 약속되어진 사람을 속량하여 살리는 일은 예수님께 나와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원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죄와 저주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영생을 얻게 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문둥병 환자처럼 “나는 저주받은 사람입니다”라고 소리쳐야 될 사람들이 감사와 찬양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악한 세력에 사로잡혀 인격과 의지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귀신을 쫓아내시어 자유를 주십니다. 악의 요구대로 행할 수밖에 없던 사람, 귀신의 노예가 된 사람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완전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한 마디의 말 “예수 믿으세요”이지만 이렇게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4. 찬송: (530장) 네 병든 손 내밀라고

1. 네 병든 손 내밀라고 주 예수님 말씀하네
그 말씀을 굳게 믿고 병든 손을 내밀어라
옛날같이 오늘날도 주 권능이 크시오니
전능하신 권능으로 만백성을 구원하네
2. 기도하는 손 내밀고 믿음의 손 내밀어라
순종의 손 내밀어서 주님의 손 붙잡아라
저 갈릴리 바다에서 주 예수님 행하신 일
오늘날도 믿는 자는 그 능력을 보리로다
3. 모든 의심 물리치면 허약한 맘 사라지니
주를 믿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손 내밀라
주 예수는 자비하사 크신 사랑 베푸시니
지체말고 믿는 자는 영생 복락 받으리라

[후렴] 네 병든손 내밀어라 주 예수님 고치시리
네 병든 손 내밀어라 주님 고치시리라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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