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1,157
.........
주님이 가장 미워한 사람
본문: 마태복음 6장 1-4절, 23장 27-28절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쓴 명작 "지킬박사와 하이드"(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란 책에 보면 어느 곳에 마음이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의사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흠모한 나머지 저 사람이 혹시 천사가 사람이 되어 내려오지 아니 하였는가? 이렇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에는 밤마다 무서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살인, 방화, 절도, 소녀 유괴등 끔찍한 범죄사건이 밤마다 일어나서 모든 사람이 범인이 잡히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 칼경이란 유명인사가 살해되었는데 단장(지팡이)에 얻어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단장을 조사해보니까 앤더슨이란 변호사가 지킬박사에게 준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지킬 박사를 찾으려 했으나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어서 지킬박사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았더니 지킬 박사의 옷을 입고 자살한 하이드란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천사같이 착한 사람 지킬 박사와 악마같이 악한 사람 하이드란 사람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지킬박사는 이상한 약을 먹고 마음도 얼굴도 흉악해져서 하이드란 사람이 되어 밤마다 그런 끔찍한 죄를 범하다가 결국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 소설이 왜 명작으로 불리우는가 하면 누구나 사람의 마음속에 이 두 가지 요소, 지극히 선한 성품과 지극히 악한 성품이 있어서 이중인격자(二重人格者)혹은 위선자가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스티븐슨이 쓴 "브로디 목사"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이 책에도 브로디 목사가 낮에는 거룩한 목사 노릇을 하고 밤에는 도둑질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이중인격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입니다.
우리 모두가 조심할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선한 지킬박사도 될 수 있고 악한 하이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다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두려워하고 항상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심지어 대 사도 바울도 로마서 7장에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서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8장에 가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런 갈등을 해소하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1. 가장 미워하고 저주하신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러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시면서도 원수를 용서해 달라고 하신 예수님인데도 뜻밖에 몹시 미워하시고 일곱 번 저주한 사람들은 바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외식"이란 말은 바로 "위선자"(hypocrite)란 뜻이며 "이중인격자"란 말입니다. 즉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실이 다르고, 남 앞에서 하는 말과 돌아서서 하는 말이 다른 사람입니다.
이런 위선자들 보다 차라리 강도나 창녀나 도둑놈들이 더 낫고 하나님나라에 더 가깝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똑같기 때문입니다. 속은 악한데 겉으로는 거룩한 체 하거나 착한 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회개할 가능성이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외식하는 자들 위선자들은 회개할 수도 없고 구원받을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아예 저주하시고 가증히 여기셨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용서를 받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살인자, 강도,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온 사람도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가 있었지만 겉으로는 거룩한 체하고 착한 체하면서 속에는 흉악한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털어놓지 않기 때문에 회개할 수가 없고 구원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위선자 이중인격자 되지 않도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거짓말하고 악을 선으로 가장하는 것이 사탄의 성품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3절 말씀에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사랑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하고 일곱 번이나 저주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23장 27절에 보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책망했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특징은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쓴 이리와 같이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실이 다른 것입니다.
가령, 예수님 믿은지 얼마 않되서 아직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것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큰 흠이 안됩니다. "믿음이 자라면 끊을 날이 오겠지"하고 이해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는데도 술 취하고 담배 피우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띄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의 생활을 해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죄 자체를 미워하시는 것보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을 더 미워하십니다. 거룩하면 거룩한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겉과 속이 같으면 천국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가령 진실하고 거룩한 천사나 장로나 목사인줄 알았는데 몰래 도박하러 다니고 언젠가는 작은 마누라를 숨겨 두고 있다가 10살, 20살 난 아이가 여자와 함께 나타났다고 하면 얼마나 세상을 놀라게 하겠습니까? 누구나 시험에 들면 실수하여 무슨 죄라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가 되어 계속 죄를 숨기는 생활을 한다면 이것은 저주의 대상이 안될 수가 없습니다.
2. 이 무서운 위선자가 되지 않으려면
이스라엘 나라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도 한때 시험에 들어 간음죄 살인죄를 지었지만 애통하며 눈물 흘리며 자복하고 회개하고 돌이켰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한 그 칭찬에 어긋나지 않게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위선"(hypocrite)이란 말의 헬라어의 뜻은 "가면을 쓴 배우"(an actor who wears mask)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속 중심과 겉 행동이 다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겉과 속 사이에 차이(gab)가 생기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는 항상 불성실하고 부정직했습니다. 종교생활을 죄를 가리우는데 사용했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물질과의 관계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늘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칭찬을(applause) 목적 삼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영광만을 추구하기 위해 종교생활을 실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위선자가 되고 이중인격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식하는 자, 위선자가 되지 않기 위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조심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① 항상 솔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한 사람이라고 실수가 없다거나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을 해도 진실하고 솔직한 사람은 죄를 그대로 품고 있을 수가 없어서 토설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6절에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죄가 있거나 없거나 하나님 앞에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진실성이 없는 모든 제사나 기도나 설교나 찬송은 하나님 앞에 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남 보기에 큰 죄인이라도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은 용서받을 길이 있고 구원받을 가능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 외식하는 사람은 회개할 수도 없고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강도, 창녀, 도둑놈이 하나님나라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살인 간음 도적질 죄보다 더 나쁜 것은 외식이요 위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강도 창녀 보다 더 미워하시고 일곱 번이나 저주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는데 여기서 "청결"이란 말은 헬라어로 "카타로스"(καθαροՒ)라고 하는데 "순수한" 즉 한가지 마음, 위선이 없는 마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위선이 없는 사람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많은 죄가 있어도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은 하나님나라에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양심이 마비되지 않도록 하고 양심이 흐려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양심은 영혼의 창문이라고 하는데 창문이 흙탕물로 더러워진 채 그대로 두면 햇빛이 들어올 수 없는 것 같이 양심이 더러워지고 마비가 되면, 하나님의 계시의 빛이 우리 심령에 들어올 수가 없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대신에 마귀의 소리가 들려오는 법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양심을 버린 사람은 그 믿음이 파선한 배와 같아서 그 신자는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양심으로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회개 할 수도 없고 따라서 십자가의 보혈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깨달을 수 없고 영의 세계에 대해서는 캄캄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0절에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고 했습니다. 양심을 버린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과 책망이 우리 양심을 통해 들려 올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변명하고 합리화시키게 됩니다. 회개와는 거리가 멀게 됩니다. 시편 19편 14절에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다윗이 기도 했는데, 말로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 할 것이 아니라 남이 볼 수 없는 마음의 숨은 생각까지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생각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입니까? 마귀는 그 대표적인 속성이 "거짓말쟁이"요 "살인자"입니다.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일을 합니다.
②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외식하는 자, 이중인격자, 성격이 굳어져버린 사람은 회개할 수도 없지마는 시초에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도 철저히 회개하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A.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양심이 화인맞고 이중인격자로 굳어져버리면 죄에 대한 아픔이나 양심의 고통이 사라지고 뻔뻔스러워지고 양심의 고통이 사라지고 맙니다. 스바냐서 2장 1절-2절에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찌어다" 얼굴이 두꺼워져서, 수치를 모르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가 임하기 전에 어서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죄에 대한 애통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이 있게 됩니다.
이사야 57장 15절에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고,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지만 통회하는 자와 함께 하시고 통회하는 자의 영을 소성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B. 죄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죄는 하나님께만 자백하면 되지만 때로는 철저한 회개를 위해서 내 자신의 회개의 확신을 갖기 위해서 믿을만한 사람에게 자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신부에게 고해성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faithful)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할 때 모든 죄와 불의를 깨끗이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기도 시간에나 예배시간 "참회의 기도"시간에 가만히 있지 말고 비록 조용한 목소리로 기도할지라도 애통하는 마음,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 자복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자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복할 때 우리 죄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는(agree with)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나 신부나 어떤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백했는데 그 자백을 듣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유포시킨다면 그 죄를 지은 사람보다 열 배, 백 배 더 악한 것입니다. 살인 도적질 간음죄보다도 위선자 이중 인격자 되는 것이 더 큰 죄요, 위선과 외식의 죄보다 더 큰 죄는 남이 회개 자복한 죄를 유포시키는 죄로 이는 더 큰 심판을 받을 무서운 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모하다가 명동성당이나 교회에 들어가 숨어도 공권력을 투입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성역을 인정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C. 죄를 끊고 돌아서는 것
아무리 슬퍼하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그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회개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큰 손해가 나고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도 죄를 끊고 돌아설 때 진정한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7절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죄의 생각까지도 버리고 돌아서서 하나님께 나아올 때 그 어떠한 죄라도 다 용서해 주시고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개가 토하였던 것을 다시 주워 먹듯이 말로만 회개한다고 하면서 죄를 계속 하면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외식자, 위선자가 되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안되면 다섯 번, 열 번이라도 노력하면 이루어집니다. /김홍도 목사
청량고등학교 교사 (등대교회 협동목사) 한 태 완
http://allcome.ce.ro,
http://je333.ce.ro, http://sermonhouse.ce.ro
본문: 마태복음 6장 1-4절, 23장 27-28절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쓴 명작 "지킬박사와 하이드"(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란 책에 보면 어느 곳에 마음이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의사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흠모한 나머지 저 사람이 혹시 천사가 사람이 되어 내려오지 아니 하였는가? 이렇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에는 밤마다 무서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살인, 방화, 절도, 소녀 유괴등 끔찍한 범죄사건이 밤마다 일어나서 모든 사람이 범인이 잡히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 칼경이란 유명인사가 살해되었는데 단장(지팡이)에 얻어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단장을 조사해보니까 앤더슨이란 변호사가 지킬박사에게 준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지킬 박사를 찾으려 했으나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어서 지킬박사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았더니 지킬 박사의 옷을 입고 자살한 하이드란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천사같이 착한 사람 지킬 박사와 악마같이 악한 사람 하이드란 사람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지킬박사는 이상한 약을 먹고 마음도 얼굴도 흉악해져서 하이드란 사람이 되어 밤마다 그런 끔찍한 죄를 범하다가 결국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 소설이 왜 명작으로 불리우는가 하면 누구나 사람의 마음속에 이 두 가지 요소, 지극히 선한 성품과 지극히 악한 성품이 있어서 이중인격자(二重人格者)혹은 위선자가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스티븐슨이 쓴 "브로디 목사"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이 책에도 브로디 목사가 낮에는 거룩한 목사 노릇을 하고 밤에는 도둑질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이중인격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입니다.
우리 모두가 조심할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선한 지킬박사도 될 수 있고 악한 하이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다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두려워하고 항상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심지어 대 사도 바울도 로마서 7장에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서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8장에 가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런 갈등을 해소하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1. 가장 미워하고 저주하신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러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시면서도 원수를 용서해 달라고 하신 예수님인데도 뜻밖에 몹시 미워하시고 일곱 번 저주한 사람들은 바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외식"이란 말은 바로 "위선자"(hypocrite)란 뜻이며 "이중인격자"란 말입니다. 즉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실이 다르고, 남 앞에서 하는 말과 돌아서서 하는 말이 다른 사람입니다.
이런 위선자들 보다 차라리 강도나 창녀나 도둑놈들이 더 낫고 하나님나라에 더 가깝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똑같기 때문입니다. 속은 악한데 겉으로는 거룩한 체 하거나 착한 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회개할 가능성이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외식하는 자들 위선자들은 회개할 수도 없고 구원받을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아예 저주하시고 가증히 여기셨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용서를 받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살인자, 강도,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온 사람도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가 있었지만 겉으로는 거룩한 체하고 착한 체하면서 속에는 흉악한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털어놓지 않기 때문에 회개할 수가 없고 구원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위선자 이중인격자 되지 않도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거짓말하고 악을 선으로 가장하는 것이 사탄의 성품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3절 말씀에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사랑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하고 일곱 번이나 저주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23장 27절에 보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책망했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특징은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쓴 이리와 같이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실이 다른 것입니다.
가령, 예수님 믿은지 얼마 않되서 아직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것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큰 흠이 안됩니다. "믿음이 자라면 끊을 날이 오겠지"하고 이해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는데도 술 취하고 담배 피우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띄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의 생활을 해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죄 자체를 미워하시는 것보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을 더 미워하십니다. 거룩하면 거룩한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겉과 속이 같으면 천국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가령 진실하고 거룩한 천사나 장로나 목사인줄 알았는데 몰래 도박하러 다니고 언젠가는 작은 마누라를 숨겨 두고 있다가 10살, 20살 난 아이가 여자와 함께 나타났다고 하면 얼마나 세상을 놀라게 하겠습니까? 누구나 시험에 들면 실수하여 무슨 죄라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가 되어 계속 죄를 숨기는 생활을 한다면 이것은 저주의 대상이 안될 수가 없습니다.
2. 이 무서운 위선자가 되지 않으려면
이스라엘 나라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도 한때 시험에 들어 간음죄 살인죄를 지었지만 애통하며 눈물 흘리며 자복하고 회개하고 돌이켰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한 그 칭찬에 어긋나지 않게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위선"(hypocrite)이란 말의 헬라어의 뜻은 "가면을 쓴 배우"(an actor who wears mask)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속 중심과 겉 행동이 다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겉과 속 사이에 차이(gab)가 생기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는 항상 불성실하고 부정직했습니다. 종교생활을 죄를 가리우는데 사용했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물질과의 관계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늘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칭찬을(applause) 목적 삼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영광만을 추구하기 위해 종교생활을 실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위선자가 되고 이중인격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식하는 자, 위선자가 되지 않기 위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조심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① 항상 솔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한 사람이라고 실수가 없다거나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을 해도 진실하고 솔직한 사람은 죄를 그대로 품고 있을 수가 없어서 토설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6절에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죄가 있거나 없거나 하나님 앞에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진실성이 없는 모든 제사나 기도나 설교나 찬송은 하나님 앞에 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남 보기에 큰 죄인이라도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은 용서받을 길이 있고 구원받을 가능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 외식하는 사람은 회개할 수도 없고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강도, 창녀, 도둑놈이 하나님나라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살인 간음 도적질 죄보다 더 나쁜 것은 외식이요 위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강도 창녀 보다 더 미워하시고 일곱 번이나 저주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는데 여기서 "청결"이란 말은 헬라어로 "카타로스"(καθαροՒ)라고 하는데 "순수한" 즉 한가지 마음, 위선이 없는 마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위선이 없는 사람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많은 죄가 있어도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은 하나님나라에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양심이 마비되지 않도록 하고 양심이 흐려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양심은 영혼의 창문이라고 하는데 창문이 흙탕물로 더러워진 채 그대로 두면 햇빛이 들어올 수 없는 것 같이 양심이 더러워지고 마비가 되면, 하나님의 계시의 빛이 우리 심령에 들어올 수가 없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대신에 마귀의 소리가 들려오는 법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양심을 버린 사람은 그 믿음이 파선한 배와 같아서 그 신자는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양심으로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회개 할 수도 없고 따라서 십자가의 보혈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깨달을 수 없고 영의 세계에 대해서는 캄캄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0절에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고 했습니다. 양심을 버린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과 책망이 우리 양심을 통해 들려 올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변명하고 합리화시키게 됩니다. 회개와는 거리가 멀게 됩니다. 시편 19편 14절에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다윗이 기도 했는데, 말로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 할 것이 아니라 남이 볼 수 없는 마음의 숨은 생각까지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생각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입니까? 마귀는 그 대표적인 속성이 "거짓말쟁이"요 "살인자"입니다.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일을 합니다.
②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외식하는 자, 이중인격자, 성격이 굳어져버린 사람은 회개할 수도 없지마는 시초에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도 철저히 회개하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A.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양심이 화인맞고 이중인격자로 굳어져버리면 죄에 대한 아픔이나 양심의 고통이 사라지고 뻔뻔스러워지고 양심의 고통이 사라지고 맙니다. 스바냐서 2장 1절-2절에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찌어다" 얼굴이 두꺼워져서, 수치를 모르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가 임하기 전에 어서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죄에 대한 애통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이 있게 됩니다.
이사야 57장 15절에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고,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지만 통회하는 자와 함께 하시고 통회하는 자의 영을 소성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B. 죄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죄는 하나님께만 자백하면 되지만 때로는 철저한 회개를 위해서 내 자신의 회개의 확신을 갖기 위해서 믿을만한 사람에게 자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신부에게 고해성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faithful)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할 때 모든 죄와 불의를 깨끗이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기도 시간에나 예배시간 "참회의 기도"시간에 가만히 있지 말고 비록 조용한 목소리로 기도할지라도 애통하는 마음,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 자복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자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복할 때 우리 죄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는(agree with)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나 신부나 어떤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백했는데 그 자백을 듣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유포시킨다면 그 죄를 지은 사람보다 열 배, 백 배 더 악한 것입니다. 살인 도적질 간음죄보다도 위선자 이중 인격자 되는 것이 더 큰 죄요, 위선과 외식의 죄보다 더 큰 죄는 남이 회개 자복한 죄를 유포시키는 죄로 이는 더 큰 심판을 받을 무서운 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모하다가 명동성당이나 교회에 들어가 숨어도 공권력을 투입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성역을 인정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C. 죄를 끊고 돌아서는 것
아무리 슬퍼하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그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회개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큰 손해가 나고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도 죄를 끊고 돌아설 때 진정한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7절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죄의 생각까지도 버리고 돌아서서 하나님께 나아올 때 그 어떠한 죄라도 다 용서해 주시고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개가 토하였던 것을 다시 주워 먹듯이 말로만 회개한다고 하면서 죄를 계속 하면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외식자, 위선자가 되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안되면 다섯 번, 열 번이라도 노력하면 이루어집니다. /김홍도 목사
청량고등학교 교사 (등대교회 협동목사) 한 태 완
http://allcome.ce.ro,
http://je333.ce.ro, http://sermonhouse.c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