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증거 하지 말지니라

복음............... 조회 수 525 추천 수 0 2004.03.18 2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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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증거 하지 말지니라



본문: 출20:16



열 두 살 난 소년이 한 소송의 중요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한 변호사가 집중적으로 심문한 후에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지, 그렇지?"

"예."하고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무엇이라고 가르쳐 주셨는지 우리들에게 말해 줄래?" 하고 변호사가 채근했습니다. "제가 증언할 때 변호사가 제 말을 뒤죽박죽 되게 만들려고 하겠지만, 제가 조심하고 진실만 말하면 매번 옳은 것만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라고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아무 것도 숨길 것이 없으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그의 부정직함으로 인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거짓말을 한 사람은 자신의 속임수의 거미줄에 걸리게 됩니다. 거짓말에는 엄중한 형벌이 따르고, 거짓말하는 사람의 결국은 멸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소한 것이라도 진실이 아닌 것은 입에 담지 말고 정직을 실천하여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 사회에 팽배한 불신을 몰아내고 정직한 세상을 이루어 나가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하여 인간의 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의 혀는 불의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제9계명은 이 혀를 어떻게 단속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혀를 단속하기 위하여 2개의 자연적 울타리인 이와 입술을 주셨고 마지막 울타리가 되는 제9계명을 주셨습니다. 말의 위력은 대단하여, 한 사람의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약3:5~10절을 보면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라고 말씀함으로 사람의 입의 파괴적인 기능을 잘 나타냅니다.

적어도 십계명의 제 9계명은 일차적으로 법정적인 상황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법정에서 다른 사람을 해하려는 목적으로 거짓 증거를 하는 문제입니다. 법정에서 증인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과학적인 수사가 어려웠던 고대 사회에 있어서 증인들의 증거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구약성경은 거짓 증거에 대한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우선 모든 법정적인 증언은 반드시 2명 이상이어야 했습니다. 증인들의 증언에 따라 사형에까지 처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잘못된 증언이나, 거짓증언으로 인하여 이웃의 생명을 해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두 명 이상의 증인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신19;15절은 “사람의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계명에 대해서 보다 철저한 규정을 지켜왔습니다. 가령 두 명의 증인은 반드시 각각 다른 장소에서 증언을 해야 했습니다. 이 둘 중에 어떤 사람이라도 다른 증언을 하면 모든 증언은 무효가 됩니다. 또한 증인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재판을 받는 사람과는 어떤 형태로든지 관련이 없어야 합니다. 가령 원한관계, 채무 관계, 혹은 친인척관계, 인격이 의심되거나, 도벽 등 범죄에 연루된 사람 등은 법정인 증인의 자격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법정에서의 거짓증거의 대가 또한 매우 중했습니다. 신19:18~21절에는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 악을 제하라”고 말씀하여, 거짓증거를 한 사람에게는 그 거짓증거로 인하여 상대방에게 주려던 형벌의 무게만큼 죄를 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 증거로 인하여 사형에 처해지는 죄였다면, 거짓증거를 한 사람은 사형에 처해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동해복수법(Lex Talionis)의 원리입니다.

기본적으로 제9계명은 정직한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공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이웃에 대한 거짓 증언이 난무한 사회에서는 인간의 안전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진실됨은 공동체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본질적인 영역입니다. 거짓된 모든 행동은 필연적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가로막는 가장 일반적이고 무서운 죄악임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아울러서 제 9계명은 우리에게 모든 형태의 거짓된 말을 제할 것을 요구합니다.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모든 형태의 부정직한 말입니다. 거짓말, 허위 사실을 알리는 것, 악한 마음으로 중상 모략하는 것 등입니다. 먼저 지적해야할 것은 성경전체를 통해서 거짓말은 매우 중대한 범죄행위라는 사실입니다. 십계명의 다른 계명들 즉 부모공경, 살인, 간음, 도적질 등에 대해서는 그 죄악의 중요성을 곧장 인정하지만, 실제로 다른 죄악들에 비해서 거짓말은 훨씬 더 그 죄의 무게를 작게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의 문제는 종종 죄의식 없이 거짓말을 하고 지내는 상황을 도출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원리적으로 볼 때 거짓말은 하나님께서 매우 싫어하시며, 거짓말은 공동체의 안녕과 공동체의 정의를 구현해 가는데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거짓말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는 악한 마음의 동기를 가지고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해를 끼치려는 목적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누가 보아도 죄악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둘째는 익살스러운 형태의 거짓말입니다. 이런 경우는 판단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양치기 소년의 경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농담이었어요”라고 말함으로 거짓말의 가치를 떨어뜨리려 했지만, 이런 경우에 대해서도 성경은 분명한 메시지를 줍니다. 잠28:18~19절은 “횃불을 던지며 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자기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고 분명히 경고합니다.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고는 농담이었다고 말하고는 넘어가려는 경우에 대해서도 성경은 반대합니다. 이처럼 제 9계명은 엄숙한 문제인 것입니다. 웃음은 건강하고 좋은 것이지만, 그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옳지 않은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 형태의 거짓말은 필요에 의한 거짓말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합니다. 이웃의 유익을 위한 거짓말, 선한 동기를 가지고 하는 거짓말 등이 이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이는 이웃을 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을 돕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십계명의 제 9 계명을 범한 것이라고 단정하는데 주저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세계 제 2차 대전때의 일입니다. 유대인들을 색출하려는 나치에게 유대인을 숨겨주고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우리 집에 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제 9계명을 지키는 것인가? 라고 반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라합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그녀는 정탐꾼을 숨겨주고는 그들을 잡으려고 온 병사들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이때 진실을 말하는 것은 오히려 제 6계명을 범하는 죄는 아닐까요?

성경은 거짓은 어떤 형태이든지 진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요일2:21). 이 때문에 어거스틴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현재적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영원한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선의의 거짓말의 문제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 전체의 문맥적인 고려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단지 기록되었다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 것입니다. 가령 누군가가 오른 뺨을 치면 왼 뺨도 돌려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문자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맹세하지 말라 하셨다고 해서 우리는 어떤 형태의 맹세도 해선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또한 선의의 거짓말 즉 필요에 의한 거짓말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시대 십브아와 부아라는 히브리 산파는 히브리 남자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성경을 그런 행위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셨다고 말씀합니다(출1:15~21). 라합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라합의 거짓말하는 행위를 두고 히11:31절은 그녀가 정탐군들을 평안한 가운데 영접했다는 것을 믿음의 본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거짓말을 한 것이 칭찬 받는 본질적인 제목은 아닙니다. 그들의 믿음이 본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은 어떤 행위가 있는 믿음인데(약2:25) 그것은 선의의 거짓말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선 혹은 침묵의 문제는 훨씬 더 회색지대에 해당합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으면서도 어떤 사람이 잘못되게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뉘앙스의 말이나, 혹은 잘못된 이해로 가고 있는데도 아무런 교정을 하지 않고 침묵하는 경우들도 고려해야 합니다. 장례식장에 가서 슬프지도 않으면서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등의 경우이겠지요. 어떤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도 포함됩니다. 가령 인사말같이 “식사하셨어요?”라고 말했는데, 안 했다고 하면 또 어색할 것 같고 부담도 될 것 같아서 밥 먹었다고 말하는 경우도 포함됩니다. 다른 사람을 해하려는 동기도 선의의 거짓말의 동기도 아닌 경우입니다. 또한 공손의 거짓말도 있습니다. 거짓말하려는 동기로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더 높이고 존중하기 위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입니다. 대개의 경우 이는 예의바름에 대한 일반적인 풍습으로 간주됩니다. 이는 속이기 위한 동기라기보다는 에티켓으로 간주하는 일반적인 전통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해선 안 된다고 단정하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을 가져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의의 거짓말의 영역을 넓혀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선배들이 선의의 거짓말조차도 거부하였던 전통 위에 서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식의 경우론을 허용하기 시작하면 제 9계명을 지키기 매우 어려워집니다. 선의의 거짓말도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허용되어야 합니다. 이 극단적인 상황은 단순히 우리가 거짓말을 함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능한 경우는 매우 제한되어 있어야 합니다. 전쟁이나 나의 생명과 이웃의 생명의 문제일 경우나 매우 극단적인 필요의 상황일 때만 허용되어야 합니다. 제9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희생이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과 동일한 무게를 가진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은 사회적인 범죄요, 자신과 이웃을 죽이는 범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정치인이 항상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에서 항상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진리는 바로 설지 모르지만 덕을 세우지 못하고, 반대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무에게도 거짓증언을 하지말고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하지 말며 잡담이나 비방하지 말고 정당한 이유 없이 또는 사연을 들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남을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정이나 기타 다른 곳에서 거짓말이나 모든 위증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러한 일들은 악마가 사용하는 수단이며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초래합니다. 오직 진리를 사랑하고 진실을 말하며 그것을 공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의 선한 이름을 보호하고 드높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제9계명의 정신을 잘 표현합니다. 거짓말을 해서도 안되지만,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대의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죽게 만드는 것 또한 옳지 않다는 뜻입니다. 원리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실을 말하고, 이웃의 명예를 보호하고 높이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지막 형태의 거짓말을 말할 때가 되었습니다. 레5:1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보고 증거해야 할 것을 증거하지 않는 죄도 동일한 거짓증거의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방면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고 증거하지 않는 죄도 동일하게 거짓증거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이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이름을 ‘증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할 수 있는 자들이 주님의 제자들이며, 증인들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동일하게 신약시대이후 ‘순교자’라는 의미를 포함하였습니다. 그들은 보고들은 바를 증거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았기 때문에 증거하는 사람을 순교자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고, 그것을 증거해야 할 책임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이 복음을 온전히 말하는 것이야말로 제 9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아무도 거짓말하지 않고 일생을 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악의에 찬 거짓말도 했을 것이고, 혹은 심각한 죄로 간주하지 않고 가볍게 거짓말을 하면서 지내기도 했을 것입니다. 먼저 이 시간에 매우 제한된 경우를 제외하면 어떤 형태로든지 거짓말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죄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길 바랍니다. 살인하는 것, 간음하는 것, 도적질하는 것과 동일한 무게의 죄라는 사실을 인식하길 바랍니다. 모든 거짓의 아비는 마귀입니다(요8:44). 반대로 우리 하나님께는 진리만이 있으며, 그 분 안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오직 참된 것을 말해야할 책무가 있는 것입니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사람은 저마다 하루에 약 3 만 마디 정도의 말을 하고 산다고 합니다. 그 말들 중에 나의 말은 얼마나 이웃을 더 존중하고 세워주며, 진실된 것을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4:22~25)

제9계명이 금하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살펴봅시다.

첫 번째 교훈은 ‘이웃을 중상하지 말라’입니다. 전갈은 꼬리에 독을 운반하지만 남을 중상자는 혀에 독을 운반합니다. 즉, 중상이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불의하게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예, 렘 18:18). 그런데 성경은 혀로써 참소치 않는 자가 주의 성전에 오른다고 하였습니다(시 15:3).

두 번째 교훈은‘거짓 증거하지 말라’로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거짓말이 있습니다. 거짓말이란 참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참된 것처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이 거짓말을 대단히 미워하십니다(잠 12:22). 왜냐하면 성령은‘진리의 영’(요일 4:6)이기 때문입니다.(예, 삼하 15:7의 압살롬의 거짓말).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 이르느니라"(잠13:5)

2) 거짓 증거하는 일입니다. 거짓 증거는 남을 위해 하는 것과 남을 반대하여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전자는 뇌물이나 다른 유익을 위해서이고(사 5:23) 후자는 사단의 영향을 받아 공연히 남을 고소하는 데서 일어납니다(예, 왕상 21:13 나봇을 고소한 두 사람).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잠14:25)

3) 거짓 맹세는 흔히 다른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킵니다. 그런데 스가랴 8장 17절을 보면 하나님은 거짓 맹세를 미워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의 혀를 단속할 수 있으며 제9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시 19편 9절 말씀과 같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마음과 혀를 깨끗하게 만드는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상과 거짓 증거를 당하게 될 때에 다윗처럼(삼하 16:10) 내가 갚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게 잘못이 없을 때 하나님은 나의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참고, 시 31:20). 사실 중상을 당해보면 참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고 기다리면 원수는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나를 중상하는 사람은 또 다른 사람도 중상하다가 결국 덫에 걸리고 맙니다.

세 번째 교훈은 이웃을 해치려고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왕상 21:7 이하에는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깡패들을 사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증거하게 하여 나봇을 때려죽이고 자기가 그 땅을 차지했다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 깡패들은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나봇을 죽였고, 이세벨은 그 일을 배후에서 지휘하였습니다. 법적 증언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데, 그 일을 함부로 하여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게 십계명 중 제9계명의 뜻입니다.

법정의 거짓말뿐 아니라, 소문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과장하여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이 계명에 저촉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니, 특별히 말을 조심하여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말로 남을 죽게 했으면 그 사람은 살인자인 것입니다.

네 번째 교훈은 좋은 의도로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친구를 도와 주기 위해서 일부러 그 차를 들이받아서 보험을 타게 하는 일은 선행이 아니라 범죄입니다. 친구가 나쁜 짓을 한 것을 알면서 자기는 모른다고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엉터리 진단서를 끊어서 불쌍한 사람을 군대에 가지 않게 하는 것도 안 됩니다. 세례 받지 않은 사람을 취직시키려고 세례 증명서를 만들어 주는 일,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인 줄 알면서도 좋게 추천서를 써 주는 일등도 모두 범죄입니다. 사적인 것만 생각하여 공적인 질서를 어지럽히기 때문입니다. 대리출석을 해 줘도 안 되고, 나이나 직업이나 고향을 속여서도 안 됩니다.

다섯 번 째 교훈은 거짓은 그 자체가 악이라는 것입니다. 정직은 그 자체가 의롭습니다.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있으려면 정직을 찾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해서 "믿을 신"자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참기름부터 고급시계까지 다 가짜가 판치는 가짜 천국이 아닌가? 학력도 가짜가 많고, 언론인도, 정치인도, 종교인도 믿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으니, 우리나라에선 9계명이 특별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거짓이 신앙과 무관한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잠19:9)

이제 우리의 삶을 다시 세워야 할 때입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을 보면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순수하고 깨끗하게 서기를 원합니다. 진실하게 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어떤 가식과 위선도 없이, 사람 앞에 거짓과 속임도 없이 진실하게 서기를 원합니다. 이 순수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거룩하신 주님, 제 안에 죄에 대한 민감함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거짓을 멀리하고 정직한 영을 갖게 하시고 경건한 삶을 살므로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가짜와 진짜



한 여고생 동창모임이 있었습니다. 중년 여인들이 만나는 모임이기에 서로 아름답게 꾸미고 왔습니다. 그런데 가짜 귀고리와 보석반지를 끼고 온 친구들이 진짜 보석귀고리와 반지를 끼고 온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것이나 우리 것이나 다 똑같은 거야” 그러자 진짜 보석을 가진 여인이 화를 내면서 “어떻게 가짜와 진짜가 같을 수 있는 거니. 너희 것은 모조품이고 내 거야말로 진짜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동일시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여러 종교의 교주 중 한 분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조 반지를 진짜 반지와 동일시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자기는 죄를 용서할 능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는 반드시 자기가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공자도 죄를 지으면 하늘에도 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석가모니도 공자도 죄 용서함을 받는 길, 진정한 영생과 구원의 길을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죄의 길과 구원의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십니다. 십자가의 도 이외의 구원 주장은 거짓증거입니다.



2. 묵상과 토의

0 내가 고쳐야 할 거짓은 무엇일까?

0 우리나라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0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입니까?

0 당신이 솔직하지 못했던 일 등을 적어보십시오.



3. 예화(1) : 거짓말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① 도덕형 거짓말 : 예를 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환자에게 믿음으로 치료받으면 건강이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② 사기형 거짓말 : 남을 속여 자기의 유익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다.

③ 악질형 거짓말 : 남을 괴롭히고 망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거짓말로 이같은 거짓말은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④ 농담형 거짓말 : 자기의 유익이나 남에게 손해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장난삼아 하는 거짓말이다.

⑤ 아부형 거짓말 : 남을 기쁘게 해줌으로써 자신의 이득을 노리는 아부가 여기에 속한다.

⑥ 위장형 거짓말 :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이다.

⑦ 교육형 거짓말 : 교육을 목적으로 사실이 아닌 어떤 우화를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경우이다.

⑧ 회피형 거짓말 : 자신의 책임이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꿈속에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 예화(2): 거짓과 속임수



어떤 한 사업가가 믿음과 신앙으로 작은 회사를 설립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은혜로 사업은 점점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모임에 나가다 보니 한 두 번씩 주일 예배를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권고가 있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갑자기 사업에 크게 실패한 뒤 회개하며 주님께 나오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그 사업가는 인삼을 동남아에 수출하는 일을 했는데 각 국으로부터 반응이 좋아 주문이 밀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욕심이 나서 불량품 인삼을 헐값에 사서 포장만 그럴 듯하게 해서 수출했습니다. 이런 속임수가 오래 갈 리 없었습니다. 곧 손해배상청구소송에 걸려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되었고 끝내 사업은 파산되고 말았습니다. 불의하고 불공평하고 거짓된 거래를 하는 사람은 그 거래에 심겨져 있는 파멸의 씨앗이 싹터 미움과 불신의 가지를 내어 심판과 파멸의 열매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윤이 적더라도 공정한 거래, 정직한 거래, 양심적인 거래를 하여 신뢰가 회복되고 기쁨과 보람과 활력이 넘치는 건강한 경제, 서로 믿고 사는 사회를 이룩해야겠습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잠 11:1)



* 예화(3): 거짓의 형태



오늘날 거짓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로, 의도적인 거짓이 있다. 고의적으로 남을 모함하거나 속이는 것이다. 그러나 본래 의도는 그렇지 않은데 부주의로 인한 거짓도 있다. 이는 성격이 급하거나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하얀 거짓말’도 거짓말이라는 사실이다. 예로 어느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정말 음식이 맛있군요”하는 투이다. 그저 인사로 맛있다고 할 수는 있으나, 오히려 다른 말이 낫겠다.

둘째로, 침묵으로 하는 거짓도 있다. 진실을 아는 이가 입을 다물므로 누군가 해를 입는다면 이는 거짓 증거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거짓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범죄했을 때는 고백하고 또 간구해야 한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4. 찬송: (368장) 내 죄를 회개하고



1. 내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믿으니 내 주를 사랑하며 잘 섬기리로다

2. 내 주의 뜻을 따라 나 살려 하오니 이 세상 있을 동안 주 섬기리로다

3. 내 모든 정성 드려 주 위해 일하며 내 주의 말씀 따라 잘 섬기리로다

4. 주님의 능력 크사 날 도와 주시니 내 본분 다하여서 주 섬기리로다

5. 내 직분 감당하고 저 천국 올라가 내 주를 길이 길이 잘 섬기리로다



[후렴]

나 어디 가든지 무엇 하든지 주 예수 위하여 진실하리라



5. 거짓에 관한 금언

0 농담으로도 거짓을 말하지 말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안창호)

0 항상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참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아리스토텔레스)

0 정직은 마음이 유쾌하고 허물할 것이 없으나, 거짓을 행하는 마음은 불안하다.

0 거짓말은 눈덩이와 같다. 이것을 굴리면 굴릴수록 그 덩어리는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마르틴 루터)

0 정직하지 않고 본성이 악한 자에게는 다른 모든 지식이 해로울 뿐이다.

0 허위의 탈속에 자기를 감추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오히려 적에게 공격하기 좋은 빈틈을 줄뿐이다. 당신이 최후의 승리를 원한다면 진실을 따라야 한다. 치료받을 수 있는 상처를 겁내서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앙드레 지드)

0 거짓말을 신용하는 자는 진실이 나오면 망한다.

0 거짓말쟁이는 항상 맹세를 아끼지 않는다.(피에르 코르네이유)

0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거짓말 할 때에 가장 큰 소리로 거짓말을 한다.(호퍼)

0 거짓이 많은 국민으로 망하지 않는 국민이 어디 있으며 거짓이 많은 채 부흥한 국민이 어디 있는가?(안창호)

0 한 마디의 거짓말을 토한 사람은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스무 마디의 거짓말을 생각해 내지 않을 수 없다(알렉산더 포프)

0 사람이 거짓말한 이후에는 훌륭한 기억력이 필요하다.(피에르 코르네이유)

0 거짓말쟁이가 받는 벌은 사실을 말해도 남이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바빌로니아 율법서)

0 거짓말은 국가의 복리를 위한 경우일지라도 버릇이 되기 쉬우니 행하지 말 것이라. 버릇이 되면 악에 이용되기 때문이다.(간디)

0 거짓말은 그 자체로서도 죄악일 뿐 아니라 영혼도 죄악으로 더럽힌다.(플라톤)

0 자연은 거짓을 용서치 않는다.(토마스 칼라일)

0 하나의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는다.(한렌스)



* 에스더는 이방 나라의 왕비가 되었지만 자신의 민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아가기 전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결국 에스더의 결단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임했더니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역설의 진리입니다.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신앙의 선배들인 루터, 칼뱅, 츠빙글리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타락한 로마 카톨릭을 향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했던 그 결과로 오늘의 개신교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개신교도 세월이 흐르면서 비성경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비성경적인 전통과 기득권을 버리고 손해를 보더라도, 생명을 잃을지라도 진리를 위해 개혁을 외치는 소리가 많아져야 합니다. 교회는 오직 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자들을 통해서 개혁되는 것입니다.



하나교회의 비전

1. 365일 예배드리는 교회(히10: 25, 행17:11)

오늘날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매일 말씀을 읽고, 듣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말씀의 거울을 통해 매일 마음을 바르고 깨끗이 하여서 예수와 복음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막8:35)

2. 더불어 사는 공동체 (행2:42- 47)

하나님은 영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육신까지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교회는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안에서 한 가족이 되고, 교회 직영 사업을 통해 청장년의 일자리 마련, 노후생활 보장 등의 꿈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교회(롬14: 17)

정의롭고(선행에 힘쓰고), 근심, 걱정, 두려움이 없고(기도에 힘쓰고), 기쁨과 찬송이 넘치는 교회

4.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마22:37- 39)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이러한 꿈과 비전이 있는 교회를 개척하고자 합니다. 연락바랍니다.



하나 교회 한 태 완 목사

전화: 010-7676-3049, 자택: (02) 959-3049

홈페이지: http://comesee.ce.ro, je333.ce.ro

이메일: jesu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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