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하나 됨

운영자............... 조회 수 888 추천 수 0 2001.08.29 19: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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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하나 됨




본문: 에베소서 4:4∼6




미국 달라스제일침례교회에서 목회하시는 W. A. 크리스웰 목사님은 이 교회를 큰 교회로 성장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교회에서 계속 설교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크리스웰 목사님은 성경 한 절 한 절을 깊이 있게 설교하시는 목사님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강해설교는 다 책으로 인쇄되어 많은 목회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에베소서 강해」를 보면 본문의 제목을 "The True Ecumenism"이라 하였습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이 본문에서 기인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헬라어 'oikoumene'라는 말에서부터 에큐메니칼이란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잠깐 설명하고 지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치적으로나 조직, 구조면으로 말하면 에큐메니칼 운동에 관계하고 주장하는 세계 기구는 W.C.C.(World Council of Churches)입니다. 물론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요, 또 그런 생각을 하게끔 염려스러운 일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흔히 W.C.C.(세계교회협의회)는 용공이라고 말합니다. 공산 세계에서 나온 교회 대표들과도 같이 자리하고 의논하기 때문입니다. 공산 세계에는 교회가 없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의 정치적인 연극에 불과한데 그런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 한다는 것은 공산주의를 용납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오해를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은 세계교회를 하나의 교회로 만들려는 정치 운동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신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운동을 하는 것으로 그 이상의 어떤 구속력이 있는 기구는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협의체입니다. 지금 개신교만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말하면 300이 넘는데 서로 다른 것만을 고집하지 말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그 교리나 신조를 초월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것을 생각하면서 주안에서 같은 사업을 하는 데 동참해 보자는 것입니다.


교리를 같이 만들자는 말이 아닙니다. 신조를 하나로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주 안에서 다투지 말고 협력하는 데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그 원리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4절 이하에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첫째로, 몸이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한 몸입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머리가 없는 몸이 있을 수 없음같이 그리스도 없는 교회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하나입니다.


신약 시대에 있어서 교회란 지방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가령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 문법적으로 말하면 복수입니다. 마게도니아에 있는 교회들, 복수입니다. 아가야와 유다에 있는 교회들, 복수입니다. 그러나 또한 성경에서는 일반적인 의미로 교회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우주적인 의미로도 사용된 낱말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3절에 보면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라는 말이 나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권속으로서의 우주적인 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우주적인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뜻을 찾으며 행하려는 사람들로 구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교회를 이끄시는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교회를 움직이는 것은 성령이십니다. 믿음의 표준과 규칙 그리고 실천은 성경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성도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형제를 찾게 됩니다. 거기서 깊은 사랑의 교제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가 하나라는 말은 세상에 보이는 교회가 하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세상에 보이는 교회는 지금은 여럿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교회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어떤 물질적인 것이나 인간의 구조나 조직상의 하나가 아니라 서로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초로 하여 하나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성찬식에 참여할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된 것을 깊이 느낍니다. 우리는 한 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령이 하나입니다.


헬라어의 '성령'이란 뜻은 '영' 혹은 '호흡'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호흡이 끊어진 몸은 죽은 몸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의 생명이 코에 있다"고 했는데 호흡을 코로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을 무엇으로 압니까? 산 사람은 호흡을 합니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숨을 내쉬는 일만 하고 거의 들이쉬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숨이 끊어지고 맙니다. 호흡을 해야 산소가 몸에 들어와 피를 새롭게 하고 생명을 유지시키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몸 된 교회에도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와 역사해서, 피를 새롭게 하는 것처럼 교회를 계속 새롭게 하고 힘있게 하고 자라나게 합니다. 만일에 성령이 떠나시면 교회는 죽고 말 것입니다. 성령이 떠난 교회는 건물이 아무리 훌륭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는 활력이 넘칩니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생생한 호흡은 그리스도의 영인 것입니다. 호흡이 몸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성령은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없는 교회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교회가 생기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20명의 무리가 함께 모여 기도하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은 것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에게 임할 때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지상 교회의 탄생입니다. 이 땅 위의 교회는 성령이 임하면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구약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했는데,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기 전에는 흙으로 만든 몸뚱이뿐이었습니다. 생기가 코를 통해 들어갈 때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근본이신 하나님 안에서만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마른 뼈의 골짜기에서 바람에게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호흡, 바람, 하나님의 영을 의미합니다. 그때 모든 사람이 일어나 군대가 되었습니다.


공관복음의 교회는 보이는 것을 의미하지만, 오순절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참 교회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될 때 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령으로 하나 되지 않고 흩어질 때,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성령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듣지 않을 때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몸이 하나입니다. 성령이 하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성령은 두 분이 아닙니다.


셋째로, 소망도 하나입니다.


히브리서 6장 18∼19절에 보면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했습니다.


저 휘장 너머 뒤에는 천당이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장 20절에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휘장 뒤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시간도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해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모르는 불멸의 소망, 산 소망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서 2장 13절에서 "복스러운 소망"(blessed hope)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망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향해 가고 있는 목표는 결국 하나입니다. 여기에 하나가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방법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기관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교단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조나 교리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은 하나입니다. 목표는 하나입니다. 우리가 마지막에는 다 한 아버지 집에 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유명한 미국의 부흥사 D. L. 무디가 시카고에서 집회를 하는데 운동장에서 했다고 합니다. 그때 그가 강단에 올라서서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물었다고 합니다.


"베드로 선생님, 거기 하늘나라에 장로교인 몇 명이나 됩니까?"


"장로교인은 없다."


"그래요. 그러면 감리교인은 몇 명이나 됩니까?"


"여기는 감리교인도 없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침례교인은 몇 명이나 됩니까?"


"침례교인도 없다."


"그러면, 거기는 도대체 누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있습니까?"


"여기는 회개하여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만이 있는 곳이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계신 하나님의 나라에 장차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는 교파를 따지는 곳이 아닙니다. 서로가 다르다고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전에 브라질에 이민 가신 분들의 말씀을 들으니까, 요사이는 비행기를 타고 갑니다만 전에는 기선을 타고 약 두 달은 걸려야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끄러운 말이지만 같은 배를 타고 가는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그 동안에 의견이 맞지 않아서 같은 배 안에서 시비가 붙고 싸우고 말도 안하고, 이 씨가 이쪽으로 가면 김 씨는 저 문으로 빠져 나가고 하는 유감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달 후에는 결국 같은 브라질에 다 가서 내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배 안에서 다투어도 결국 가는 곳은 한 곳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예수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면서도 다투고 시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과만 얼굴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기 싫어하던 사람과도 얼굴을 대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세상에서는 미운 사람 안 보고 지낼 수 있겠지만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함께 볼 수밖에 없겠는데 그때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소망이 하나인 것을 기억하고 화평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넷째로, 주도 하나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교회를 주장하시는 주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가 우리를, 그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고 사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시고, 하늘의 진리를 가르치시고, 우리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가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40일 후에 승천하셨고, 언젠가는 다시 오실 주님이십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9∼10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했습니다. 그 날에 주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높임을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1절 이하에도 사도 요한이 신령한 눈으로 본 것을 기록했습니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그래서 요한이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그리고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들이) 새 노래로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 어린양 예수를 이렇게 높이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것의 모든 것입니다. 교회가 가정이라면 그는 주인이십니다. 교회가 믿음의 학교와 같다면 그는 우리의 선생님이십니다. 교회가 큰 군대와 같다면 그는 우리의 대장이십니다. 교회가 신부라면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십니다. 우리에게 다른 주님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세상에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로마제국이 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는지 아십니까? 로마제국이 모든 나라를 점령할 때 그 나라의 종교는 로마제국을 받아들였습니다. 헤드니안은 로마 시내에 '판테온'(The Pantheon)이라 하는 굉장한 탑을 건설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모든 신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이 점령하는 나라의 신들을 판테온에다가 모두 병합을 시켰습니다. 쥬피터, 쥬노, 아르테미스, 오시루스, 비너스, 넵튠 같은 신도 다 거기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만은 이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주님은 여러 신 중에 하나가 아니라 유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에 의해서 핍박을 받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 사도는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요, 소망이 하나요, 주도 하나"라고 한 것입니다.


다섯째로, 믿음도 하나입니다. 우리의 신조나 예배의식은 교회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고 시대에 따라서 조금씩 변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 된, 우리의 심령이 구원받는 하나님의 진리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인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내셨다가 사흘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의 승천과 재림을 믿습니다. 마지막 날의 심판을 믿습니다. 이 믿음은 하나입니다.


여섯째로, 세례도 하나입니다.


누가 어느 교파에서 세례를 받든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 받는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침례를 하는 데서는 세례 받는 사람의 몸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가 나오게 합니다. 우리는 머리에 물을 얹습니다. 그러나 의미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장사지내는 것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옛사람, 육신에 속했던 사람, 마귀에게 종노릇하던 사람은 죽어 장사지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6장에는 세례의 의미를 자세히 말했습니다.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장사지냈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다시 살았습니다. 이것이 세례의 의미입니다. 아무리 세례를 받았다고 해도 이 의미와 상관없이 살 때 세례는 무의미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 주시고 그리스도의 산 몸으로 하나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는 하나입니다. 물세례는 이 영광스러운 영적인 부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일곱째로, 하나님 아버지도 한 분이십니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럿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번역할 때 '하나님'과 '하느님' 때문에 말썽이 있곤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하늘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 신교에서는 한 분밖에 안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유일성을 강조해서 '하나님'이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분이 아니시고 단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참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으로 우리에게 그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 있어서는, 그러니까 도성인신하시기 전에는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불렀습니다. 이제 신약시대, 말씀이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때 그의 이름은 주 예수라 부릅니다. 그는 우리를 다스리는 이요, 영광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 오는 것은 하나님께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바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일곱 가지 근거 위에서 한 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평화의 줄을 끊지 말라고 간곡히 권면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똑같아서 한 몸이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의 말씀처럼 한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습니다. 그 지체가 맡은 직무도 다릅니다. 그러나 이 여러 다른 지체들이 한 데 모여 한 몸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꼭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어 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리 믿는 사람끼리도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가 거듭났다고 하는 의미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특히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단결하여 하나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문자 그대로 공산주의 사상, 유물주의 사상, 세속주의 사상이 우리에게 도전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이 겨레를 죄악 가운데서, 악한 사상 가운데서 건져내야겠습니다.


몸이 하나입니다. 성령이 하나입니다. 소망도 하나입니다. 주도 하나입니다. 믿음도 하나입니다. 세례도 하나입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다.


/박조준 목사




예화포커스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육, 교회, 믿음,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효도,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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