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길, 의인의 길, 생명의 길

복음............... 조회 수 746 추천 수 0 2005.02.02 05: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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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길, 의인의 길, 생명의 길

본문: 시1: 1- 6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 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인간의 생활에는 제각기 걸어야 할 길이 있습니다. 스승은 사도를 걸어야 하고, 가정 주부는 부도를 걸어야 하고 신사에게는 신사도가 있고 상업을 하는 사람은 상도가 있고 예술가에게는 예도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가 가야할 길을 바로 걸어야 합니다. 현대문명의 척도는 그 나라의 길을 보아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문명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중국이 오늘날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중국인들이 길을 내는 대신에 성벽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오늘날의 미국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문명을 이룩한 나라가 되기까지는 미국인들이 고속도로와 철도를 많이 건설했기 때문에 그처럼 발달된 나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고속도로 시대가 열렸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 랭킹 제9위의 고속도로 국가입니다. 경부고속도로는 전 세계에서 최소공비, 최단시일에 시공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뚫리고 11년 동안 보수비가 건설비를 웃돌았다고 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어린이 동화에는 체셔 캣이라는 말재주가 좋고 꾀가 많은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찾다 갈림길에서 체셔 캣을 만납니다. “어떤 길로 가야하나?” 체셔 캣은 앨리스에게 되묻습니다. “어디에 가는데?” 앨리스는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체셔 캣은 웃으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아무 데도 갈 수 없어”라고 대답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온 길이 있고 갈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길입니다. 그 길은 철새의 항로보다 더 정확합니다. 그 길을 알아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길을 가게 하는 것은 우리를 단련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욥은 고난의 길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고백합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때론 전혀 모르는 낯선 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길을 갈 때 대개의 사람들은 팻말이나 사람에게 물어 보고 가기보다 그냥 무턱대고 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십중팔구는 낯선 길로 완전히 빠지거나 막다른 골목길에 부딪히게 됩니다.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사람일수록 선배들의 말을 잘 안 듣게 됩니다. 물론 옳은 선배가 많이 없는 탓도 있지만 사람의 속성상 자신이 항상 자신의 주인으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유혹했던 마귀의 가장 확실한 인간 파괴 계략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항해하는 배는 항상 등대를 기준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마음에 모셔 그분을 인생의 등대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을 인도해서 축복과 평화 그리고 사랑과 성공의 항구에 안착시켰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하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길을 보호하고 지키십니다.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잠2:8)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잠2:20)
가을 한 철에만 농어낚시가 허용되는 호수에 아버지와 열 살 배기 아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은 농어잡이가 허용되기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밤이 으슥할 무렵 드디어 아들의 낚싯대 끝이 둥그렇게 구부러지며 큼직한 놈이 한 마리 걸려들었습니다. 농어였습니다. 아버지는 시계를 보았습니다. 밤 10시 30분, 농어잡이는 내일부터 허용되었고 지금은 농어 이외의 고기만 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호수엔 낚시꾼도 배도 없었습니다.
"얘야, 그 농어는 풀어주고 우리 다른 것을 잡도록 하자꾸나" 안돼요 아버지, 이렇게 큰 물고기를 잡은 건 처음이예요" 하지만 아버지의 단호한 결정에 아들은 농어를 놓아주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흐른 뒤 사업가가 된 아들은 정직하고 모범적인 경영자로 뽑힌 자리에서 열 살 때의 그 사건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진정한 정직'을 배웠노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정의는 바른 길입니다. 그러므로 정의에 입각해서 살면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양심의 바른 길을 따라 정의를 가지고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입니다. 불의는 굽은 길이요, 불의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스스로 사람다워지기를 거부하고 파멸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잠10:9)
어느 날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이웃집 부인이 자기의 두 아들과 딸 또 다른 이웃의 두 아이와 같이 흰눈이 쌓인 길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 부인이 아이들과 지도자로서 선두에 서서 눈 속에 길을 만들면서 걸어다녔습니다. 그 부인이 가면서 만들어 나가는 길만 따르면 아무 일이 없으나 만일 그 길을 따르지 않으면 아이들은 걸리고 넘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우리는 촛점을 믿음의 시작이신 예수께 맞추고 단순히 그 분만을 우리의 지도자로 삼고 따를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우리가 지나가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 가시는 우리의 지도자를 따를 때 그 길은 우리를 위한 길이 됩니다.
오늘 여러분의 앞 길이 어두워 보입니까? 구름이 꽉 끼어 있습니까? 어두운 그림자가 여러분 주위를 휩싸고 있습니까? 우리의 지도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앞길을 아십니다. 여러분의 눈을 그 분께 고정시키고 그 분을 따르면 복된 길, 의인의 길, 생명의 길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슬람교를 믿던 터키 사람이 성경을 읽다가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교사에게 들켜서 심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심문하는 교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일전에 내가 어디를 가다 길을 잃었는데 옆을 보니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두 명이 있었습니다. 내가 길을 물어본다면 어떤 사람에게 물어 봐야 되겠습니까?" "그야 물론 산 사람에게 물어야지."
"그런 줄 알면서 왜 당신은 죽은 사람에게 길을 물어 보라고 하십니까?"
당신들이 믿으라고 하는 마호메트는 죽은 사람이요, 내가 믿으려고 애쓰는 예수는 산 예수입니다. 어찌 죽은 마호메트를 의지하겠습니까? 길 되신 예수를 따라야 할 것이 뻔한 노릇인데 참된 인도자를 찾아가는 나를 왜 괴롭히십니까? 그러자 교사는 그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미국의 명문 프린스턴 대학의 기숙사 한 방에서 건장한 학생 둘이 무척 진한 우정을 나누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날, 술집에 들러 얼큰하게 취한 두 젊은이는 2차로 밤새껏 마실 곳을 찾아 비틀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어깨를 붙잡고 얼마를 걸어가고 있는데 그들 눈앞을 우뚝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교회의 종탑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게시판에는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는 성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둘은 취한 음성으로 히히덕거리며 그 성구를 합창했는데 한 사람은 무엇인가 형언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함께 강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발걸음을 돌려 교회 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한 친구는 초지일관하게 술집을 찾아서 비틀거리며 사라져 갔습니다. 그 순간부터 한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바르고 착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사용했고 다른 친구는 취생몽사의 삶을 계속하면서 시간을 의미 없이 소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삶의 길을 걷기 어느덧 30여 년, 그날그날 새로운 결심을 다지며 선한 삶을 살아가던 한 사람은 만 사람의 박수 갈채를 받으며 미국의 제 2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고, 그 옛날 발걸음을 술집으로 향했던 사람은 차디찬 감옥에서 옛 친구의 소식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클리블렌트 대통령이요 다른 한 사람은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흉악한 살인강도였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 14)
문을 잘 못 찾으면 엉뚱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길을 잘못 들면 고생만 하고 목적지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있는가 하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움으로 모든 것이 일그러져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방향을 잘못 잡아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영혼의 결국도 그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자칫하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 멸망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신중하게 생명에 이르는 참된 문을 열고 들어가 확신을 갖고 생명길로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겉만 보고 선택하다보면 잘못 선택하기 쉽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눈치보고 선택하다가는 잘못 선택하기 쉽다는 경고입니다. 우선 당장 편하고 쉬운 것만 앞세우다가는 잘못 선택하여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의 특징은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은 왠지 위험부담이 적어 보입니다. 그리고 쉽게 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이의 눈치를 많이 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였는가?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다른 사람들은 이런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며 좌우를 둘러봅니다. 그리고 따라하려고 합니다. 생명의 길을 걸으려면 의미 없는 다수의 군중에 섞이지 말고 거기서 나와서 믿음의 소수 편에서야 합니다.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오해를 받고 왕따를 당하며,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담대하게 소수의 진리 편에서야 합니다.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영향력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산 사람들은 의미 있는 소수였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더라도 진리의 편에 선 사람들은 다수보다는 소수였습니다. 그 소수는 어떤 소수입니까? 사람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늘 하나님의 편에 서고자하는 열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제자가 되어 훈련받는 대가를 지불하려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제자가 되어 자기를 포기하고 부인하려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게 위해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러나 그 길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입니다. 그 길만이 영생의 열매를 맺는 길입니다.
성도여러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큰문으로 들어가도 여러분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주변의 모든 사람이 넓은 길로 걸어가도 여러분만은 좁은 길을 걷기 바랍니다. 비웃음소리가 들려도 멈추지 말기 바랍니다. 외롭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좁은 길은 길이 협착하다고 했습니다. 길이 험하다는 뜻입니다. 길이 몹시 좁고 꾸불꾸불하고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도 있고 장애물도 많습니다. 그래서 걷기에 불편하고 힘이 많이 듭니다. 아예 예수님은 그 길은 좁고 협착하다고 못을 박아 놓으셨습니다. 아무리 넓게 가려해도 갈 수가 없는 길입니다. 협착한 길이기에 고통이 따릅니다. 찾는 이가 적기에 외로운 길로 누구 한 사람 제대로 이해하여 주지 못하고 함께 동행해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좁은 길이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포기하여야 했습니다.(창12:1-2).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계2:10). 잘못한 것도 없이 핍박을 당하기도 합니다(마5:10-11). 때로는 죽음도 찾아옵니다(계2:13). 왜 편하고 쉬운 길을 옆에 놔두고 사서 고생을 하는 것입니까?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걷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힘들고, 고생스럽고, 불편해도 참고 바른 길을 택하여 가야지 우선 당장 편하고 쉽게 살자고 멸망의 길을 택하여 가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쉽고 편안한 것을 택하셨다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고생하고 고통 당하는 것을 피하려 하셨다면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자원하여 감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이나 베드로 그 외에 예수님의 제자들도 기꺼이 고생과 불편을 감수하려고 하였기에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면서 갖은 고생을 감수하였습니다. 때로 죄도 없이 옥에 갇히고 붙잡혀 매를 맞기도 했으며 때로 굶고 추위에 떨고 오해받고 쫓겨다니기도 했으며 심지어 복음 전하다가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대충 믿기를 원하십니까? 철저하게 잘 믿기를 원하십니까? 예수 잘 믿으려면 먼저 고생과 불편을 감수할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욕 얻어먹는 것은 기본입니다. 잘못 없이 매맞을 각오, 가난한 각오, 자청하여 고생할 각오, 그리고 죽을 각오까지 하셔야 합니다. 편안하고 쉽게 믿는 길은 없냐고요? 물론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 문 앞에까지 교회 차가 가서 '제발 타시죠!' 하여 모셔오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마치면 다시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고 힘들고 어려운 교회 봉사는 하나도 안 해도 됩니다. 골치 아프게 제자 훈련받느라고 시간 빼앗기고 기도생활 하느라고 잠 못 자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공연히 예수 믿으라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권하였다가 무안 당할 필요 없습니다. 욕먹을 일, 비난들을 일, 골치 아픈 일은 다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헌신도 없고 손해볼 일도 없이 쉽게 예수 믿을 길이 원하기만 하면 널려 있습니다. 매 주일 예배드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다른 약속 잡아 볼 일보고 시간 날 때만 가끔 늦은 시간에 잠깐 얼굴을 비치면 됩니다. 그러나 그 길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고생 고생하여야 겨우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문을 들어서면서 겸손하게 허리를 숙여야만 합니다. 자칫 부딪쳐서 아프기도 합니다. 길을 가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걷다가는 미끄러지고 하면서 겨우 나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쉽게들 믿던데 편하게 믿던데 왜 너만 별나게 믿느냐? 바쁘면 예배에 빠질 수도 있는 거고, 적당히 인생도 즐기며 눈치껏 최소한의 헌신과 헌금을 드리면 되지 너는 광신적으로 유별나게 믿느냐?" 하는 비난을 듣는 것이 좁은 길을 걷는 증거입니다. 욕먹어가면서 조롱당하면서도 기쁨으로 섬기고 힘들지만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좁은 길을 걷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걷는 그 길이 험하여 힘들고 고통스럽고 외로워도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며 생명의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계속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넓은 길은 멸망에 이르는 길이나 좁은 길은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 지금 당장을 생각하면 넓은 문 넓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게 보이나 미래를 내다보면 그것은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인생은 하루살이가 아닙니다. 영원한 시간을 살도록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좁은 문을 통과하여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힘들고 불편이 따라오지만 그 결과는 영생이라고 예수님은 약속하십니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낍니다. 전자는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후자는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 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탄한 길을 걸어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순탄하고 평탄한 길을 가다보면 고난과 험난함을 이기고 난 후에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잖아요. 지금 자신의 삶이 평탄한 길이라면, 험난한 길을 한번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복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돈이 많이 있는 사람, 좋은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사람, 비싼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 재산이 많은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부유하게 사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대궐 같은 집에 살아도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1편에는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복 있는 사람은 악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악한 사람의 꾀에 빠져서 어려움을 당하며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개 꾀에 빠져서 어려움을 당해 내 자식은 좋은 자녀인데 친구 꾀임에 빠져서 잘못됐어"라고 말을 합니다. 악인의 꾀에 빠지지 말아야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악한 사람들이 꾈 때에 아무리 내게 유익이 된다고 해도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둘째로 "죄인에 길에 서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눈만 뜨고 나가면 죄짓는 장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죄짓는 장소는 바라보지도 말아야 됩니다. 호텔과 여관은 여행객들이 쉬어 가는 장소인데 그런 것보다는 범죄의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이 범죄의 장소 때문에 가정이 깨지고 사회가 무질서해지고 갖가지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성경에서 말씀했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예수의 피로 죄 사함 받고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만이란 말은 거만함을 말합니다. 하나님도 몰라보고 부모 자식 형제도 몰라보고 자기만 아는 독불장군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무리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려고 애를 써도 안됩니다. 본문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은 묵상하며 즐거워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렇게 죄인에 서지 않고 악인의 꾀를 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 안에 사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어 놓은 나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시냇가에 심어놓은 나무나 산꼭대기에 심어놓은 나무나 똑같이 자랍니다. 그러나 가뭄이 오면 산꼭대기에 심어놓은 나무는 말라버립니다. 그러나 시냇가에 심어놓은 나무는 청청하여 더욱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산꼭대기에 심어놓은 나무같이 교만한 사람은 말라버리지만 시냇가와 같이 낮은데 있는 사람은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이 더욱더 싱싱해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처음에는 똑같아 보이지만 어려움과 고난이 왔을 때 믿는 사람은 더욱더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면서 부르짖어 기도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고난 때문에 더욱더 좋아지지만 안 믿는 사람은 고난이 오면 남의 탓만 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멸망의 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도 고난 때문에 잘되며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왕의 말과 같이 고난이 내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세상 것을 많이 가지고 산다고 하더라도 알곡생활이 아니라 쭉정이가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편안하고 만족하고 기쁨이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모든 것을 다 소유했어도 평안과 만족과 기쁨이 없으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많이 하고 애를 써도 내 맘대로 안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절대로 죄인은 의인에 반열 즉,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의인의 길은 지금 고난의 길이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길이기 때문에 행복이요 기쁨이요 축복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 믿고 세상으로 가는 길은 저주요 멸망이요 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망하는 길을 택하지 말고 영원히 복을 받는 의인의 길 예수를 믿어서 세상에서도 복을 100배나 받고 영원한 천국의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복 있는 사람답게, 복 받은 사람답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의 길, 생명의 길을 가야 합니다. 복된 길, 의인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서 언제나 동행해 주시고 지켜주시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는 말씀을 가슴속에 새기며 힘이 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말씀대로 사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서 세상 방법대로 욕심을 가지고 살았던 우리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길, 생명의 길을 가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 묵상 및 토의
0 당신은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시는 예수님을 증거하며 인생을 설계하고 있습니까?
0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의의 길인가?
0 나의 생애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인가?
0 나는 주의 인도하심에 따라 승리하며 사는가?
0 나는 인생의 방향을 주께서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0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인가, 아니면 잠시 후 멸망할 세상인가?

* 찬송: (265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1.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세계 만민이 의의 길 이 길 따라서 살길을 온세계에 전하세 만백성이 나갈 길
2. 주 예수 따르라 승리의 주 세계 만민이 돌아갈 길과 진리요 참생명 네 창검을 부수고 다 따르라 화평왕
3. 놀라운 이소식 알리어라 세계 만민을 구하려 내주 예수를 보내신 참 사랑의 하나님 만백성이 따를길
4. 고난길 헤치고 찾아온 길 많은 백성을 구한길 모두 나와서 믿어라 온세상이 마침내 이 진리에 살겠네

[후렴]
어둔밤 지나서 동튼다 환한 빛 보아라 저 빛 주 예수의 나라 이땅에 곧 오겠네 오겠네

* 하나님의 길, 사람의 길

영국의 정치가요 혁명가인 크롬웰은 청교도의 경건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으로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국에서 할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편한 대로 가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과 원하는 길로 사람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크롬웰은 17세 되던 해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는 수학, 지리에 흥미가 있었고 축구도 잘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별세하였기 때문에 학업을 더이상 계속할 수 없는 형편에 이르렀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방황했습니다. 그래서 재산을 다 정리하여 한동안 런던에 가 있었습니다. 공부를 계속하려 했지만 그것도 더이상 마음에 큰 만족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짓는 일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밤에는 농민들을 모아놓고 전도와 성경공부를 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1628년 크롬웰은 고향 사람들의 투표로 영국 하원 의원으로 뽑혀 정치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정치가가 된 크롬웰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았고 당시 영국의 악한 왕정을 바로 잡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혁명을 일으켜 차알스 1세를 제거한 후 공화정을 실시하였습니다.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주문: 전화: (02) 386-8660, 팩스(02)386-2961
교보문고, 영풍문고, 기독교 서점에서도 판매함
좋은땅 인터넷 http://www.g-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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