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풍랑 속에서도

한승지............... 조회 수 1062 추천 수 0 2002.12.19 02: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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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풍랑 속에서도



본문 : 사도행전 27장 9 절- 26 절



오늘 우리는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아슬아슬한 파선기를 읽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성경뿐만 아니 라 항해 역사상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던 바울이 그 동족에게 미움과 핍박을 받고 신성 모독죄와 소란죄라는 죄목으로 피소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총독에게 몇 번씩이 나 재판을 받았으나 유대 땅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할 길이 없어서 직접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기 위하여 로마로 호송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처음에는 아드라뭇데노의 한 무역선을 탔었습니다. 도중에 애굽에서 로마로 쌀을 싣고 가는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의 배로 옮겨 타게 되었습니다. 이 배는 상당히 큰 배로서 많은 화물 과 함께 사람도 탈 수 있는, 객선을 겸한 화물선이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하나의 죄수로서 다른 여러 죄수들과 같이 이 배에 탔었고 이 배 안에는 죄수들을 인솔하는 책임을 진 율리오라는 백부 장과 그 밖에 여러 군인, 그리고 선원들이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기록한 대로 보면 이 알렉산드리아호에는 화물 말고도 276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별 것 아니지만 2,000년 전의 배라고 생각하면 대단히 큰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 배는 유대인의 대제일인 속죄일 전에 미항이라는 항구까지 간신히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옛 날에는 아무리 큰 배라도 돛을 이용했기 때문에 바람이 좋지 않으면 순조로운 항해를 할 수가 없 었습니다. 바울이 탄 배는 미항에서 대제일을 보내고 다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제 일 후에는 대개 풍랑이 심하기 때문에 항해를 하지 아니하고 혹시 항해를 한다 해도 아주 조심하 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에는 겨울을 지내고 해동과 더불어 항해를 하는 것 이 상례였습니다. 그런데 이 큰 배 알렉산드리아호는 미항에서 겨울을 지낼 것이냐 아니면 좀 더 가서 뵈닉스에 서 과동할 것인가 하는 것 때문에 여러 가지 의논이 있었는데 결국 선장의 의견대로 그것은 미항 을 떠나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와 같은 결정에 대하여 강경하게 반대한 사 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호송되어 가고 있는 바울이었습니다. 바 울은 대제일 후에 있을 풍랑을 생각해서 겨울에 항해하는 것을 기어코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이 배를 탄 사람 가운데 실권자는 율리오라는 군인 장교였습니다.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미항을 떠나 뵈닉스로 향할 것을 지시했던 것입니다. 일은 여기서부 터 잘못되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풍랑을 만나게 되고 배에 탔던 사람들은 선원이건 죄수이건 군인이건 할 것 없이 두 주일 동안이나 바다에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늦게라도 바울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들은 14일 후에 구원을 얻어 전원이 멜리데 라는 섬에 표류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유명한 이야기 가운데서 중요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알렉산드리아호에 탄 사람들을 보세요. 군인들은 로마로 가면 오랫동안 헤어졌던 사랑하는 아내, 귀여운 자녀를 만날 수가 있었 습니다. 그러므로 군인들에게 있어서 이번 항해는 무척 기쁘고 흥겨운 여행이었습니다. 뱃사람들 은 어떻습니까? 선주나 선장 그리고 선원들은 애굽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로서 사업차 항해를 하 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때 세계를 지배하던 대로마 제국에 가게 되면 그만큼 재미보는 일도 많이 있고, 수중에 굴러들어 오는 수입도 적지 않아서 로마로 항해하는 일을 가장 신명나는 일로 생각 하였습니다. 맛있는 로마의 술과 애교있는 로마의 미인들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차츰 가까워오 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마음은 피어나는 구름처럼 흥이 나가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배에 탄 사람 가운데는 적지 않은 수가 죄수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물론 각각 그 이유는 다르겠지만 이제 로마로 가면 좀 더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로마의 시민권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현지에서 재판을 받게 되어 있었는데 로마로 호송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보면 로마 사람들이었거나 아니면 바울처럼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는가 짐작됩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죄수이기는 하지만 좀 다른 목적을 가진 죄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울입니다. 바울도 물론 가이사의 재판을 받는 것이 표 면적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도 비록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기는 하지만 그곳에 가서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같 은 배에 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지만 한 배에 타고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한 가지 같은 것이 있었다면 제각기 어떤 희망을 가지고 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알렉산드리아호는 미항에서 뵈닉스로 갈 것이냐 아니면 미항에서 과동할 것이냐 하는 것 때 문에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미항은 뵈닉스보다는 작은 항구요, 겨울을 보내기에는 아무 재미가 없어 보이는 항구였습니다. 그 대신 뵈닉스는 크고 화려한 곳으로 겨울을 지내기에 심심치 않은 곳이므로 선장과 선주는 지휘관 율리오에게 뵈닉스로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기 술을 믿었고 다소 바람이 불기는 하지만 뵈닉스까지는 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을 가지고 결정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죄수 가운데 한 사람인 바울은 펄펄 뛰면서 반대하였습니다. 사실 바울의 입장은 반대고 찬성이고 할 만한 처지가 못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볼 때 이 배가 지금 떠나면 위기 를 면치 못할 것이 분명히 보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은 매우 위험합니다. 당신들이 그대로 밀고 나간다면 화물과 배뿐 아니라 우리의 생명에도 큰 타격 과 많은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호의 지휘관 율리오는 죄수 바울의 말을 시끄 럽게 생각하고 경험과 기술이 있는 선장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 한 나라에 있어서도 교회가 주장 하는 것이 이와 꼭 같습니다. 대우받는 주장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기술과 경험만을 앞세 우고 집권자의 의욕으로 전진을 명령하지만 매우 위험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개인이든 국가든 나아가는 앞날에 우리의 기술과 경험, 불타는 의욕까지도 무 너뜨리는 광풍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대우받는 입장에 놓여 있지는 못하지만 개인이나 국가 의 위기를 예고하고, 지도자가 잘못 판단할 때는 경종을 울려 주는 것이 교회의 예언자적인 사명인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비록 그 소리가 미약해 보여도 교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미항을 떠나 뵈닉스로 향한 알렉산드리아호의 백부장이나 선장은 남풍이 순하게 불 때는 만족해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밀어닥치는 바람에 이 큰 배는 파도에 쫓기기 시작하여 24시간 안에 짐을 몽땅 바다에 던져 버려야 했습니다. 50시간도 못되어 배 안의 모든 기구를 물 속에 집어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낮 사흘을 풍랑과 싸운 뱃사람들은 맥이 빠졌습니다. 기술도, 경험도, 의욕도, 자신감도 이젠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거의 절망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다 고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항해를 얼마나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의 목적 지를 향해 항해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인생이라는 배는 때로는 순항을 하지만 때로는 풍랑을 만나 난항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광풍에 휩쓸려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때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풍랑 속에서도 큰 평안을 누리며 오히려 이 배에 타고 있던 어쩔 줄 몰라 하는 승객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이 큰 풍랑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이 큰 풍랑의 와중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평안할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그리고 바다와 파도를 다스 리시는 주님에게 자기의 시선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이 풍랑의 와중에서도 주님의 음 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23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이 풍랑 속에 바울의 곁으로 다가오십니다.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이 큰 풍랑 속에서도 바울이 끝까지 붙들고 있 었던 것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도 생생한 교제였습니다. 이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같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바울에게는 더 이상 겁을 내거나 두려워하거나 절망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생명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없을 때 남아 있는 것 은 인간적인 절망뿐입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 내게 닥쳐오는 어려움과 씨름할 때 자주 넘어지면서도 아주 넘어지지 아니하고 다시 일어서서 걸어가고자 하는 이 연약한 나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한, 그래서 내 어려움과 실망을 아뢸 수 있는 한 나에게 더 이 상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는 한 그것이 나의 희망이요, 생 명이요, 구원이요, 능력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고 계시는 한, 내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내 삶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그래서 말씀을 통해 내 삶을 향한 뚜렷한 하나님의 지시가 내게 들려 오는 한, 큰 풍랑이 일어나도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이 풍랑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모험이며 도전인 것입니다. 나를 덮쳐 오는 거센 풍 랑 속에서도 주님을 찬양하며 걸어갈 수 있는 평안함과 비밀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큰 풍랑 속에 서도 평안하려면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둘째로, 그는 인생의 사명을 발견했습니다.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은 큰 풍랑 속에 서도 고난과 싸움의 의미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고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괴롭지만 무 엇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의 자각이야 말로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24절을 보세요.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큰 풍랑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 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 를 다 네게 주셨다 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물론 가이사 앞에서 그의 무죄를 증명받아야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로마에 가서 복음의 횃불을 붙이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명을 알고 있는 한 바울에게 고난 은 오히려 도전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에게 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맡겨졌다고 했습니다.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 사명을 깨 달을 때 바울이 자기의 목숨을 걱정하는 것은 차라리 사치였습니다. 그에게는 할 일이 분명히 있 었기 때문입니다. 죄수로 호송되어 가고 있는 바울이 큰 풍랑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사람들에게 방향 을 제시하면서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는 모습을 보세요. 사명감은 지도자를 지도자 되게 합니다. 요셉을 보세요. 보디발 장군의 가정에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애굽에 노예로 끌려왔지만 그 는 어디서든지 지도자였습니다. 환경이 그를 지도자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의 지도자적 자질이 어디서든지 그를 지도자로 만든 것입니다. 어떻게요? 요셉은 자기의 사명이 무엇임을 알고 있었 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자각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명 따라 사는 사람들은 큰 풍랑을 향해서 도전할 수 있습니다. 큰 풍랑 속 에서도 찬양할 수 있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마침내 이 풍랑을 극복할 것입니다. 여기 풍랑 속에서 삶과 역 사의 방향을 제시하는 바울의 놀라운 모습을 보세요. 그는 자기의 사명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 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존재 이유를 아는 한,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아는 한, 절망이란 없습니다. 큰 풍랑 속에서도 노래할 수가 있습니다. 각자의 사명 을 깨닫고 의미 있게, 보람되게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습니다. 거세게 물아치는 풍랑 속에서 바울이 승객들을 향하여 외치는 메시지를 들 어보세요. 25절에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고 했습니다. 큰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약속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 던 신앙의 사람 바울의 모습이 보이십니까? 사람의 신앙의 깊이는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평상시의 순탄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신앙의 깊이를 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 삶에 진정한 위기가 닥쳤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의 깊이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 웨슬레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가 대서양을 건너다가 풍랑을 만났습니 다. 그는 구원의 확신이 없는 선교사였습니다. 그런데 갑판에서 찬송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습니 다. 알아보니 모라비안이라는 이름 모를 교파에 속한 몇몇 사람이 풍랑이 일고 있는 것과는 아랑 곳없이 갑판에서 기도회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습니다.당신들은 두렵지 않 소? 두려워 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내가 사랑했던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면 우리는 구원의 주님 앞에 설 것 아니겠어요? 요한 웨슬레는 나중에 그의 일기장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풍 랑을 만났다는 사실보다도 죽음 앞에서 담대할 수 있었던 이 모라비안 형제들의 신앙 간증이 나 에게 더 커다란 도전이었고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도 예배 시간에 신앙고백을 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런데 우리가 과연 이렇게 신앙을 고백한 것을 삶 속에서 적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 삶이 환난의 풍랑을 만날 때 그리고 내 삶이 절망의 벼랑 끝에 서게 될 때 여전히 이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이상한 것은 우리가 꼭 믿음을 가져야 할 때 믿음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역설적인 모습입니다. 바울이 타고 있던 배에 풍랑이 밀려올 때 하나님께서도 함께 다가오신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풍랑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 님은 풍랑 속에서도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너는 가이사 앞에 설 것이다. 그리고 배에 타고 있는 이 사람들을 네 손에 맡기노라. 그들에게 메시지를 증거하라.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일어나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의 상황 속에서 충실히 사명을 감당하는 지도자로 변신한 것입니다. 고난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우편에 계십니다. 왜요?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약속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풍랑을 만나 고생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유령 인 줄 알고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물 위를 걸어 주께 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 베드로를 구해 주신 후 믿음 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조금만 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더라 면, 그리고 조금만 더 주님을 신뢰할 수 있었더라면 풍랑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의 절정은 사도행전 27장 34∼35절입니다. 바울은 배의 갑판에 사람들을 모으고 축사를 시작합니다. 음식을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 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했다 고 말했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큰 풍랑이 일어나 배는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는데, 사 람들은 아우성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떡을 떼며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 를 드리고 있는 모습을 보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 느니라. 이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큰 풍랑 속에서도 감사를 드리며 놀라운 평안을 누릴 수가 있 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우리는 풍랑을 만나면 겁이 나고 낙심하고 고통스러워 하고 좌절합니다. 왜요? 큰 풍랑 속에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어 서 그렇습니다.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내가 해야 할 소중한 사명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천지를 지으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해서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남은 날들을 감사와 기쁨과 찬양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박조준 목사



성경의 인물

성경에 나오는 왕에서 노예, 예언자, 거짓 선지자에 이르기까지 약 400명의 인물들을 정렬하고, 관계 성구, 배경해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되새기도록 구성한 인물 백과사전.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살고, 투쟁하고, 실패하고 성취하며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부록: 성경에 나오는 전 인물<약2500명> 수록)

한 태 완 목사 著, 좋은 땅 (주문전화:386-8660), 정가 4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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