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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하지 말라
어느 날 나귀가 등에 짐을 잔뜩 싣고 길을 걷다가 그만 연못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나귀는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때 연못가에 있던 개구리가 소리
를 쳤습니다.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연못에 좀 빠졌다고 뭘 그리 엄살이냐! 나는 너보
다 몇 십배나 몸집이 작지만 연못에서 헤엄치고 논다!"
이 이야기속에 나오는 개구리는 바로 우리들 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표
준으로 삼고, 자신과 다른 언행을 하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우리는 많은 시
간을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데 써버립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
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
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약4:11-12) "네
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
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14:10)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은 다 다르
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뿐 입니다.(10인 10색)
세상에는 천 가지 만 가지의 직업이 있습니다. 화가나 소설가의 경우처럼 혼자서 고독
하게 작업을 해야하는 직업이 있는 가 하면 교사나 목사처럼 늘 많은 사람들과 접촉해
야 하는 직업도 있습니다.
또한 일반대중에게 노출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가수, 탤런트, 배우 등의 직업도 있습
니다. 어떤 종류의 직업이든 여러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직업에 종사하게 되면 그
관심도에 비례하여 행동은 그만큼 더 부자연스러워지게 됩니다.
특히 교사라든지 목사의 경우는 그 직업의 성질상 바르고 참되게 살도록 교육하고 훈
계해야 하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이에 따른 인간적인 고충이 더 많게 마련입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그가 가지고 있는 고충을 이렇게 털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심방에
주력하면 설교가 서툴다고 합니다. 공부를 하면 교인 하나 하나의 시중을 들어주지 않
는 다고 합니다. 목사부인이 나서서 말하면 저래서 야단이라고 합니다. 집속에 들어앉
아 있으면 목사부인이 아무 것도 안한다고 합니다. 아이가 없다면 인정을 모른 다고 하
고, 다섯이나 여섯있으면 지나치게 많다고 불평을 합니다."
이웃을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한 사실을 소개합니다.
어느 목사 사모님이 아주 내성적이고 말이 없어서, 심방을 가면 가만히 앉아 있지말고
그 집에 대해 무엇이든지 칭찬을 해주라는 권고를 받았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집에 심
방을 갔는데 참으로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어느 것도 칭찬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
런데 그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예쁘게 수 놓은 책상보였습니다. 그 사모님
은 수를 참 잘 놓았다고 한참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그 집에서 선물이 왔는
데 그 책상보를 잘 개어서 다리고 포장을 해서 보냈더랍니다. 그러자 소문이 돌기를 사
모님이 얼마나 탐심이 많은지 그 가난한 집의 책상보를 빼앗아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사모님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어서 거동을 못하고 말도 잘 못하게 되었습니
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사모님을 고의적으로 해치고자 말한 것이 아니고 아무 생각없이
쉽게 말한 것이지만, 이와 같이 사건의 내용을 모르는 채 얼마든지 남의 가슴을 찢어 놓
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 때의 상황과 형편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향해 이야기하는 것, 특별히 교회안에서 성도들간의 대화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기 보다는 서로가 연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를 세
워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은 잘못 판단하기 쉽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틀려도 하
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도 있고, 현재는 틀려 보이지만 나중에 옳은 것이 판명되기도 하고,
겉으로는 좋아보여도 속으로 나쁠 수도 있습니다.(잠14:12) 또 내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남의 눈에 티를 빼라고 하기도 쉽습니다.(마7:1-2, 롬14:1, 벧젼2:1)
이웃에 대한 험담을 잘하는 아낙네가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든 단점을 먼저 들춰내
헐뜯어 친구가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친정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역시 아
낙네는 창가에 앉아 어머니에게 이웃 집의 불결함에 대해 험담을 해댔습니다. "저기 봐
요, 옆집 빨래 줄에 널린 옷들이 너무 더러워요. 세탁을 엉터리로 했나봐요" 그러자 어
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자세히 보렴. 이웃집 빨레가 아니라 너희집 유리창이 더
러운 거야"
우리는 남을 비판 하는 만큼 자기도 비판을 받게 되고 남에게 너그러우면 자기도 너그
러운 판단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 많이 아는 사람은 남을 판
단하지 않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남을 가리키먼 세 개는 나를 지적합니다. 지혜로운 사람
은 귀가 길고 혀가 짧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고전4:5)
잠실고등학교 주임교사 한 태 완
어느 날 나귀가 등에 짐을 잔뜩 싣고 길을 걷다가 그만 연못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나귀는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때 연못가에 있던 개구리가 소리
를 쳤습니다.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연못에 좀 빠졌다고 뭘 그리 엄살이냐! 나는 너보
다 몇 십배나 몸집이 작지만 연못에서 헤엄치고 논다!"
이 이야기속에 나오는 개구리는 바로 우리들 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표
준으로 삼고, 자신과 다른 언행을 하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우리는 많은 시
간을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데 써버립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
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
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약4:11-12) "네
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
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14:10)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은 다 다르
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뿐 입니다.(10인 10색)
세상에는 천 가지 만 가지의 직업이 있습니다. 화가나 소설가의 경우처럼 혼자서 고독
하게 작업을 해야하는 직업이 있는 가 하면 교사나 목사처럼 늘 많은 사람들과 접촉해
야 하는 직업도 있습니다.
또한 일반대중에게 노출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가수, 탤런트, 배우 등의 직업도 있습
니다. 어떤 종류의 직업이든 여러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직업에 종사하게 되면 그
관심도에 비례하여 행동은 그만큼 더 부자연스러워지게 됩니다.
특히 교사라든지 목사의 경우는 그 직업의 성질상 바르고 참되게 살도록 교육하고 훈
계해야 하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이에 따른 인간적인 고충이 더 많게 마련입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그가 가지고 있는 고충을 이렇게 털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심방에
주력하면 설교가 서툴다고 합니다. 공부를 하면 교인 하나 하나의 시중을 들어주지 않
는 다고 합니다. 목사부인이 나서서 말하면 저래서 야단이라고 합니다. 집속에 들어앉
아 있으면 목사부인이 아무 것도 안한다고 합니다. 아이가 없다면 인정을 모른 다고 하
고, 다섯이나 여섯있으면 지나치게 많다고 불평을 합니다."
이웃을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한 사실을 소개합니다.
어느 목사 사모님이 아주 내성적이고 말이 없어서, 심방을 가면 가만히 앉아 있지말고
그 집에 대해 무엇이든지 칭찬을 해주라는 권고를 받았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집에 심
방을 갔는데 참으로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어느 것도 칭찬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
런데 그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예쁘게 수 놓은 책상보였습니다. 그 사모님
은 수를 참 잘 놓았다고 한참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그 집에서 선물이 왔는
데 그 책상보를 잘 개어서 다리고 포장을 해서 보냈더랍니다. 그러자 소문이 돌기를 사
모님이 얼마나 탐심이 많은지 그 가난한 집의 책상보를 빼앗아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사모님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어서 거동을 못하고 말도 잘 못하게 되었습니
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사모님을 고의적으로 해치고자 말한 것이 아니고 아무 생각없이
쉽게 말한 것이지만, 이와 같이 사건의 내용을 모르는 채 얼마든지 남의 가슴을 찢어 놓
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 때의 상황과 형편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향해 이야기하는 것, 특별히 교회안에서 성도들간의 대화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기 보다는 서로가 연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를 세
워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은 잘못 판단하기 쉽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틀려도 하
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도 있고, 현재는 틀려 보이지만 나중에 옳은 것이 판명되기도 하고,
겉으로는 좋아보여도 속으로 나쁠 수도 있습니다.(잠14:12) 또 내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남의 눈에 티를 빼라고 하기도 쉽습니다.(마7:1-2, 롬14:1, 벧젼2:1)
이웃에 대한 험담을 잘하는 아낙네가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든 단점을 먼저 들춰내
헐뜯어 친구가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친정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역시 아
낙네는 창가에 앉아 어머니에게 이웃 집의 불결함에 대해 험담을 해댔습니다. "저기 봐
요, 옆집 빨래 줄에 널린 옷들이 너무 더러워요. 세탁을 엉터리로 했나봐요" 그러자 어
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자세히 보렴. 이웃집 빨레가 아니라 너희집 유리창이 더
러운 거야"
우리는 남을 비판 하는 만큼 자기도 비판을 받게 되고 남에게 너그러우면 자기도 너그
러운 판단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 많이 아는 사람은 남을 판
단하지 않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남을 가리키먼 세 개는 나를 지적합니다. 지혜로운 사람
은 귀가 길고 혀가 짧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고전4:5)
잠실고등학교 주임교사 한 태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