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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
1995년 1월 중순의 어느 날이라고 기억된다. 그날 따라 LA의 Estwood 거리에는 쌀쌀한 바람이 불고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후 8시쯤 비누와 치약을 사러 UCLA 부근의 약국으로 내 전동 휠체어를 운전해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은 앞도 잘 안 보이고 길이 미끄러워서 휠체어를 운전해가기가 여간 힘들고 어려운 게 아니다. 더구나 한 손으로는 핸들을 잡아야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기어와 브레이크를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우산을 쓸 수 없어 비까지 쫄딱 다 맞아야 한다. (저자는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홀로 외출할 때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한다)
어둡고 질척한 길을 간신히 헤쳐 나가며 UCLA 정문 앞 횡단보도를 건널 때 건너편 ‘버거킹’ 앞에 왠 금발머리의 백인소녀가 우중충한 검은 코트를 입은 채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homeless 같았다. 현재 한국의 노숙자들처럼 미국에도 homeless people이 많다. 대부분 흑인이나 멕시칸들로서 길에서 돈을 구걸하거나 신문지나 거적때기를 덮고 바닥에 누워 자는 모습들을 미국에서도 가장 부촌이고 금싸라기 땅이라는 West LA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볼 일을 보러 학교 밖 다운타운으로 나갈 때면 항상 맨 먼저 마주치게 되는 homeless에게 1불씩을 주곤 한다. 그러나 그 날은 흑인이나 멕시칸이 아닌 백인이, 그것도 어린 여자아이가 비를 맞으며 구걸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좀 의아했지만 비도 내리고 어느 누군가가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어서 그냥 지나쳐 갔다.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나오니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조심 간신히 운전해 돌아와 다시 그 횡단보도를 건너게 되었다. 얼핏 옆을 돌아보니 그 소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울고 있기까지 하지 않는가.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나 역시 곧 파란 불이 들어와 횡단보도를 건너 캠퍼스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러나 차마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그녀의 울고있는 모습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휠체어 핸들을 확 꺾었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갑자기 다가온 나의 모습에 그녀는 울음을 멈추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Why are you crying here? Do you have no home?" 하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녀는 “No…” 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안타까운 심정에 다시 물었다. “What can I do for you? Do you need money?”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갑을 꺼내 열어 보았다. 20불 짜리 1장과 5불 짜리 1장이 들어 있었다. 그 20불은 그 전날 교회에서, 지금은 돌아가신 고 윤병훈 장로님이 용돈으로 주신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5불 짜리에 손이 갔지만 결국 그 20불 지폐를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Please cheer up. You never lose a courage. Jesus Christ loves you !!” 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큰 소리로 “Thank you!” 하며 그녀가 일어나 나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옷에서 별로 좋지 않은 냄새가 났지만 나도 그녀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 후 약 두 달 동안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 나는 그 거리를 지날 때면 그녀를 만났고 그 때마다 항상 20불씩 주었으며 ‘버거킹’에 들어가 함께 햄버거를 먹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이름은 Jennifer, 세르비아 출신이란다. 발칸 반도의 내전을 피해 온 난민이다. 미국에 온 대부분의 소수 이민계가 그렇듯이 그녀의 집안 환경도 매우 좋지 않다. 아버지는 마약 중독자에 어머니는 술주정뱅이. 폭력과 구타와 욕설이 난무하는 집안을 뛰쳐나와 여기저기를 떠돌며 homeless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당뇨 증세가 있어 무료 보건소를 다니며 치료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그 동안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만 듣고 있었던 homeless people의 참담한 생활상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호의호식해온 내가 부끄러웠음은 말할 것도 없었거니와 이 불쌍한 소녀 Jennifer를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너무나 무능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란다. 모두 평등하지. 이 세상에서 보다 우월하거나 보다 열등한 사람은 없어. 그 아무도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단다. 그것은 죄야. 예수님은 죽음과 어두움의 세력에서 너를 구원하시기 위해, 너를 위해 돌아가셨어. 너는 이제 자유하단다. 슬프거나 낙심될 때일지라도 용기를 잃지 마. 예수님께서 영원히 너와 함께 하실 거야.”
(We are all the children of God. We are all equal. There is no inferior nor superior in the world. Nobody should judge others. That is sin. Jesus Christ died for you, so you are saved from power of death and darkness. You are free now. Please keep a courage no matter how sad and hopeless you are. Jesus will be with you forever…)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녀를 만날 때면 누가복음 10장에 실린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떠올리곤 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험한 산길에서 한 나그네가 강도를 만나 돈도 빼앗기고 중상을 입어 쓰러져 있을 때, 같은 동족이자 경건하고 의롭다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사람을 못 본 체 그냥 지나쳐 버렸지만 히브리 민족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는 한 사마리아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구해내 상처를 치료해주고 여관으로 데려가 주인에게 돈을 더 주면서까지 그를 극진히 보살폈다고 하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생각하며, 나도 나와 다른 이방인 소녀 Jennifer에게 작으나마 착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해준 것이 기뻤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비록 Jennifer에게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했지만, 나로서는 아무래도 ‘강도 만난 나그네’일 경우가 더 많다. 뇌성마비 장애를 지닌 채 미국에서 홀로 유학하고 있는 나에게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으며, 이를 여러 이방인들의 도움으로 극복하며 살아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5년 동안 뇌성마비 장애 한국인인 나를 UCLA의 학생으로 받아주어 박사학위 과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신 History department의 여러 미국인 교수님들, Counsellor, Advisor 선생님들. 그리고 내가 불편없이 생활하도록 많은 편의를 봐주고 있는 기숙사와 cafeteria의 staff들이야말로 내가 첫 번째로 감사해야 할 ‘착한 사마리아인’들이다.
또 내가 잘 가는 학교 근처 식당의 베트남 아저씨, 일본 아줌마, 중국인 할머니, 식료품 가게의 뚱뚱한 미국인 할아버지도 나에게 참 잘 해주는 고마운 이방인들이다.
한편, 내가 머리를 깎으러 코리아타운의 한국 미용실에 가면 내가 몸을 많이 흔들어 깎을 수 없다고 나가라고 하는 나와 같은 동족인 한국인 교포 아줌마와, 그보다 훨씬 허름한 이발관을 운영하면서도 내가 가면 반가워하고 기꺼이 머리를 정성스럽게 깎아주며 언제든지 오라고 하는 흑인 이발사 아저씨… 또 내가 한국 식당에서 밥을 사먹을 때 저런 장애인이 왜 왔나 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한국인 주인과 나에게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서비스해주는 멕시칸 종업원… 이 둘을 비교하며 나는 인간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예의는 민족과 이념, 종교를 초월한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아울러 우리 한국인은 지나치게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크리스천들조차도 신앙과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음에 심히 안타까움을 느낀다. 나를 배척하고 차별한 한국 미용실 아줌마와 식당 주인도 강도 만난 나그네를 그냥 지나쳐 버린 ‘의로운’ 제사장과 레위인 처럼, 그들 교회에서는 아마 ‘경건한’ 장로요, 권사요, 집사일 것이다. 장애인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것, 자신보다 약하고 가난한 인종과 민족을 깔보고 얕보는 것은 국내에 있는 한국인들이나 해외 교포들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너희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너희보다 약한 민족을 멸시하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찢어지게 가난도 겪어보고 다른 민족에게 모욕적인 식민지 설움도 당해 보고 진절머리나는 전쟁도 수백 번 겪어 본 우리 민족이다. 그리고 그런 고난과 시련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악착같이 일어나서 여기까지 성장해 온 우리 한국 민족이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성장과 발전의 빠른 걸음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으로서의 사명과 가치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선택받은 민족답게, 세계 만방에 주님의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고귀한 사명을 지닌 민족답게 좀 더 크고 의연하며 너그러운 마음을 지녔으면 한다. 어느 누구도 배척하거나 멸시하지 말고 존귀하게 받아들이며 우리보다 못한 이들에게는 진실된 위로와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우리의 어려웠던 과거를 망각하지 않는 겸손하고 정의로운 한민족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모든 아픔을 넘어, 고뇌를 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이 시대 작은 예언자의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 나갈 것임을 주님의 이름으로 다짐해 본다.
예화포커스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육, 교회, 믿음,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효도,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 태 완 목사 편저, 좋은 땅 (전화:386-8660), 각 권 값3,800원
http://je333.ce.ro, http://allcome.ce.ro
1995년 1월 중순의 어느 날이라고 기억된다. 그날 따라 LA의 Estwood 거리에는 쌀쌀한 바람이 불고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후 8시쯤 비누와 치약을 사러 UCLA 부근의 약국으로 내 전동 휠체어를 운전해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은 앞도 잘 안 보이고 길이 미끄러워서 휠체어를 운전해가기가 여간 힘들고 어려운 게 아니다. 더구나 한 손으로는 핸들을 잡아야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기어와 브레이크를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우산을 쓸 수 없어 비까지 쫄딱 다 맞아야 한다. (저자는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홀로 외출할 때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한다)
어둡고 질척한 길을 간신히 헤쳐 나가며 UCLA 정문 앞 횡단보도를 건널 때 건너편 ‘버거킹’ 앞에 왠 금발머리의 백인소녀가 우중충한 검은 코트를 입은 채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homeless 같았다. 현재 한국의 노숙자들처럼 미국에도 homeless people이 많다. 대부분 흑인이나 멕시칸들로서 길에서 돈을 구걸하거나 신문지나 거적때기를 덮고 바닥에 누워 자는 모습들을 미국에서도 가장 부촌이고 금싸라기 땅이라는 West LA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볼 일을 보러 학교 밖 다운타운으로 나갈 때면 항상 맨 먼저 마주치게 되는 homeless에게 1불씩을 주곤 한다. 그러나 그 날은 흑인이나 멕시칸이 아닌 백인이, 그것도 어린 여자아이가 비를 맞으며 구걸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좀 의아했지만 비도 내리고 어느 누군가가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어서 그냥 지나쳐 갔다.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나오니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조심 간신히 운전해 돌아와 다시 그 횡단보도를 건너게 되었다. 얼핏 옆을 돌아보니 그 소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울고 있기까지 하지 않는가.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나 역시 곧 파란 불이 들어와 횡단보도를 건너 캠퍼스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러나 차마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그녀의 울고있는 모습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휠체어 핸들을 확 꺾었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갑자기 다가온 나의 모습에 그녀는 울음을 멈추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Why are you crying here? Do you have no home?" 하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녀는 “No…” 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안타까운 심정에 다시 물었다. “What can I do for you? Do you need money?”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갑을 꺼내 열어 보았다. 20불 짜리 1장과 5불 짜리 1장이 들어 있었다. 그 20불은 그 전날 교회에서, 지금은 돌아가신 고 윤병훈 장로님이 용돈으로 주신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5불 짜리에 손이 갔지만 결국 그 20불 지폐를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Please cheer up. You never lose a courage. Jesus Christ loves you !!” 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큰 소리로 “Thank you!” 하며 그녀가 일어나 나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옷에서 별로 좋지 않은 냄새가 났지만 나도 그녀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 후 약 두 달 동안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 나는 그 거리를 지날 때면 그녀를 만났고 그 때마다 항상 20불씩 주었으며 ‘버거킹’에 들어가 함께 햄버거를 먹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이름은 Jennifer, 세르비아 출신이란다. 발칸 반도의 내전을 피해 온 난민이다. 미국에 온 대부분의 소수 이민계가 그렇듯이 그녀의 집안 환경도 매우 좋지 않다. 아버지는 마약 중독자에 어머니는 술주정뱅이. 폭력과 구타와 욕설이 난무하는 집안을 뛰쳐나와 여기저기를 떠돌며 homeless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당뇨 증세가 있어 무료 보건소를 다니며 치료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그 동안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만 듣고 있었던 homeless people의 참담한 생활상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호의호식해온 내가 부끄러웠음은 말할 것도 없었거니와 이 불쌍한 소녀 Jennifer를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너무나 무능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란다. 모두 평등하지. 이 세상에서 보다 우월하거나 보다 열등한 사람은 없어. 그 아무도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단다. 그것은 죄야. 예수님은 죽음과 어두움의 세력에서 너를 구원하시기 위해, 너를 위해 돌아가셨어. 너는 이제 자유하단다. 슬프거나 낙심될 때일지라도 용기를 잃지 마. 예수님께서 영원히 너와 함께 하실 거야.”
(We are all the children of God. We are all equal. There is no inferior nor superior in the world. Nobody should judge others. That is sin. Jesus Christ died for you, so you are saved from power of death and darkness. You are free now. Please keep a courage no matter how sad and hopeless you are. Jesus will be with you forever…)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녀를 만날 때면 누가복음 10장에 실린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떠올리곤 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험한 산길에서 한 나그네가 강도를 만나 돈도 빼앗기고 중상을 입어 쓰러져 있을 때, 같은 동족이자 경건하고 의롭다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사람을 못 본 체 그냥 지나쳐 버렸지만 히브리 민족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는 한 사마리아인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구해내 상처를 치료해주고 여관으로 데려가 주인에게 돈을 더 주면서까지 그를 극진히 보살폈다고 하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생각하며, 나도 나와 다른 이방인 소녀 Jennifer에게 작으나마 착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해준 것이 기뻤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비록 Jennifer에게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했지만, 나로서는 아무래도 ‘강도 만난 나그네’일 경우가 더 많다. 뇌성마비 장애를 지닌 채 미국에서 홀로 유학하고 있는 나에게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으며, 이를 여러 이방인들의 도움으로 극복하며 살아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5년 동안 뇌성마비 장애 한국인인 나를 UCLA의 학생으로 받아주어 박사학위 과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신 History department의 여러 미국인 교수님들, Counsellor, Advisor 선생님들. 그리고 내가 불편없이 생활하도록 많은 편의를 봐주고 있는 기숙사와 cafeteria의 staff들이야말로 내가 첫 번째로 감사해야 할 ‘착한 사마리아인’들이다.
또 내가 잘 가는 학교 근처 식당의 베트남 아저씨, 일본 아줌마, 중국인 할머니, 식료품 가게의 뚱뚱한 미국인 할아버지도 나에게 참 잘 해주는 고마운 이방인들이다.
한편, 내가 머리를 깎으러 코리아타운의 한국 미용실에 가면 내가 몸을 많이 흔들어 깎을 수 없다고 나가라고 하는 나와 같은 동족인 한국인 교포 아줌마와, 그보다 훨씬 허름한 이발관을 운영하면서도 내가 가면 반가워하고 기꺼이 머리를 정성스럽게 깎아주며 언제든지 오라고 하는 흑인 이발사 아저씨… 또 내가 한국 식당에서 밥을 사먹을 때 저런 장애인이 왜 왔나 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한국인 주인과 나에게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서비스해주는 멕시칸 종업원… 이 둘을 비교하며 나는 인간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예의는 민족과 이념, 종교를 초월한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아울러 우리 한국인은 지나치게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크리스천들조차도 신앙과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음에 심히 안타까움을 느낀다. 나를 배척하고 차별한 한국 미용실 아줌마와 식당 주인도 강도 만난 나그네를 그냥 지나쳐 버린 ‘의로운’ 제사장과 레위인 처럼, 그들 교회에서는 아마 ‘경건한’ 장로요, 권사요, 집사일 것이다. 장애인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것, 자신보다 약하고 가난한 인종과 민족을 깔보고 얕보는 것은 국내에 있는 한국인들이나 해외 교포들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너희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너희보다 약한 민족을 멸시하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찢어지게 가난도 겪어보고 다른 민족에게 모욕적인 식민지 설움도 당해 보고 진절머리나는 전쟁도 수백 번 겪어 본 우리 민족이다. 그리고 그런 고난과 시련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악착같이 일어나서 여기까지 성장해 온 우리 한국 민족이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성장과 발전의 빠른 걸음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으로서의 사명과 가치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선택받은 민족답게, 세계 만방에 주님의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고귀한 사명을 지닌 민족답게 좀 더 크고 의연하며 너그러운 마음을 지녔으면 한다. 어느 누구도 배척하거나 멸시하지 말고 존귀하게 받아들이며 우리보다 못한 이들에게는 진실된 위로와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우리의 어려웠던 과거를 망각하지 않는 겸손하고 정의로운 한민족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모든 아픔을 넘어, 고뇌를 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이 시대 작은 예언자의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 나갈 것임을 주님의 이름으로 다짐해 본다.
예화포커스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육, 교회, 믿음,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효도,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 태 완 목사 편저, 좋은 땅 (전화:386-8660), 각 권 값3,800원
http://je333.ce.ro, http://allcome.c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