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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를 지켜 주소서
열다섯 살 된 딸애가 처음으로 매트 해이즈를 내게 소개시켜 주었을 때였다. 나는 왜 딸애가 그애에게 푹 빠져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딸애는 항상 나이보다 성숙했고 책임감도 있었다. 딸애는 이웃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계속 아기를 돌봐 달라는 요청을 받을 정도였다. 딸애는 학교 생활을 즐겼고 삶을 사랑했다. 그리고 딸애는 우리를 사랑했다. 그애 아버지와 나는 딸애의 판단을 무조건 신뢰했다. 딸애는 그애가 냉정한 아버지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에서 자랐다고 말해 주었다. 매트가 따뜻하고 사랑스런 우리 딸애에게 몰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 아이를 도와야만 해. 그애에게 필요한 격려도 해주어야 하고.’ 나는 다짐했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우리 가정을 매트에게 완전히 개방했다. 매트는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는 적이 안하는 적보다 훨씬 많았고, 주일에도 대부분 우리와 함께 교회로 갔다. 그런데 그애를 자주 만날수록 한 가지 좀 이상한 행동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건바로 매트가 때때로 일종의 무아지경에 빠져서 몇 시간이고 날씨 방송만 보고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왜 저러는 거니?”나는 딸애에게 성가실 정도로물었다.“엄마, 매트는 그냥 다른 지역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뿐이예요.”학교에서도 매트는 수업 시간마다 딸애를 따라다녔다.“매트는 내게서 떨어져 있기 싫대요.” 딸애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딸애는 화장하는 것도 그만두었고, 머리 치장도 그만두었다. 대신 간단하고 평범하게 한 가닥으로 묶고 다녔다. “매트가 이런 스타일을 더 좋아해요.”그건 딸애가 성숙했다는 증거였기에, 나는 제니와 매트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단둘이 함께 보내는 것에 대해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제니의 성적은 계속해서 조금씩 떨어졌다. 여전히 딸애는 모범생이었다. 제니는 과외 활동을 하나씩 하나씩 그만두었다.‘딸애는 성장하고 있는 거야. 간섭하지 말자.’나는 나 자신에게도 다짐했다. 우리는 한때 모든 것을 공유했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매트가 우리 사이의 장벽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어느 날 밤, 그애들 둘이 거실에서 또 다시 다투고 있었다. 매트는 으르렁대고 고함을 치면서 마치 TV에서 자신이 보았던 폭풍우가 자기 내부에서 터져 버리기라도 한듯, 끔찍한 욕설과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딸은 말했다.“저희는 그냥 얘기하고 있었던 거예요.”딸애가 매트를 옹호했다.‘주님, 우리 딸애가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저 남자애 편을 들고 있습니다. 제 딸이 말입니다. 딸애를 잃지 않게 해주소서!’매트는 그 이후로 더 이상 우리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교회에 가는 일도 없었다. 점차 제니에게는 까닭을 알 수 없는 혹과 멍자국이 늘어 갔다. “그 녀석이 여기에 더 이상 얼씬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남편이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우리가 매트를 못 만나게 하면 딸애가 우리에게서 더 멀어지게 될까봐 두려웠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규칙을 정해야만 했다. “더 이상
우리집에서는 매트를 환영하지 않는단다.”그러나 딸은 계속 그를 만났다. 그러던 어느날 한밤중에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잠이 깨었을 때, 딸애는 골반이 부러져서 병원으로 실려 가 있었다. 딸애가 매트의 블레이저 트럭 발판 위에 서서 친구들과 얘기하고 있었는데, 질투심에 불탄 매트가 차에 기어를 넣고는 딸애를 바퀴 밑으로 질질 끌면서 마구 몰고 갔던 것이다. 딸애는 두 달 동안 침대에 누운 채 집에서 쉬어야 했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그 사고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적어도 지금은 딸애를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에 두게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딸애가 매트에 대해 진실을 알게 되리라. 그러나 어느 날, 딸애가 그 사고는 모두 자기 탓이라고 설명하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런 식으로 매트를 화나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난 너무 당황스러워 논쟁조차 할 수 없었다. 딸애한테 뭐가 씌운 것일까? 그런 다음 어느날 밤, 나는 딸애 방에서 흘러나오는 남자 목소리를 들었다. 그애가 몰래 들어왔던 창문이 아직 열려 있었다. 분노가 폭발해 눈앞에 보이는 게 없었다. 나는 매트에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질렀다. 매트는 달아났다. 그렇다고 달라진 건 없었다.“목발이 필요없게 되면 곧바로 매트와 산으로 갈 거예요.” 딸애가 선언했다. 딸애가 떠나던 날은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 “우리가 처음 데이트 시작했던 그때의 매트처럼 될 수 있게 내가 도와 주고 싶어요.”“얘야, 그건 가망없는 일이란다.”“그렇게 얘기하지 마세요! 엄마는
몰라요.”딸애가 떠나기 전에 나는 휴대폰을 가져 가라고 간청했고, 딸애는 마지 못해 자기 배낭에 던져 넣었다. “언제든지 전화하거라.”나는 우리 가족이 보는 성경책을 가지고 앉아 시편 121편을 펼쳤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리라.”곧 바로 나는 기도했다. ‘주님, 제니를 지켜 주소서.’ 알 수 없는 평화가 나를 감쌌다. 날이면 날마다, 또 밤이면 밤마다, 나는 기도했다. 늦은 밤, 전화벨이 울렸다.“엄마, 도와 주세요.”제니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전화가 끊어졌다. 그 다음날 하루 종일 나는 기도하며 기다렸다. 오후에 딸애에게서 한 번 더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 지금 말씀 드릴 수가 없어요. 다시 전화 할께요.” 나는 밤새 전화기 옆에 앉아 있었다. 새벽 3시, 현관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흙 투성이에, 외투도 입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은 제니가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나는 딸애를 껴안았다. 나는 주님께서 딸애를 영원히 우리 곁으로 데려오셨음을 마음속 깊이 알았다. 멋진 우리 딸이 정서 장애를 가진 청년의 쉬운 표적이 되었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그는 딸애의 남을 신뢰하는 성격과 베풀고자 하는 천성을 이용하려 한 교활한 청년이었다. 부모로는 겨우 그 정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대적하고 있는 악에 대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만이 그 악과 싸워 낼 수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딸애가 걱정스러울 때면 시편 121편을 기억한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켜 모든 환란을 면케 하시리라.
-가이드 포스트 99년 7월호 중에서 -
아들을 지킨 건, 바로 나란다
몇 해 전, 시아버지께서 미국의 한 주립대학에
1년간 연구교수로 가 있게 되셨습니다.
아버님은 손자에게 넓은 세상을 구경시켜주시겠다며
우리 큰아들 진석이를 데려가고 싶어하셨습니다.
나중에 다른 이유 때문에 못 데려가게 되셨지만,
아버님의 제안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내게서 멀찌감치 떼어놓는 게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께 이렇게 여쭸습니다.
“진석이가 가는 게 옳을까요? 안 가는 게 옳을까요?”
무사히 돌아올까요?
이렇게 헤어져서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요?
그러면 저 못 살아요.”
하나님 앞에서 갖은 오두방정을 떨고 있을 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 낮잠은 어떻게 자느냐?
이제까지 네가 아이들을 지키고 돌봤다고 생각하겠지만,
네가 잠든 순간에도 아이들을 지킨 건,
미안하지만 바로 나란다.”
_ 최에스더, 《성경으로 아들 키우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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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된 딸애가 처음으로 매트 해이즈를 내게 소개시켜 주었을 때였다. 나는 왜 딸애가 그애에게 푹 빠져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딸애는 항상 나이보다 성숙했고 책임감도 있었다. 딸애는 이웃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계속 아기를 돌봐 달라는 요청을 받을 정도였다. 딸애는 학교 생활을 즐겼고 삶을 사랑했다. 그리고 딸애는 우리를 사랑했다. 그애 아버지와 나는 딸애의 판단을 무조건 신뢰했다. 딸애는 그애가 냉정한 아버지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에서 자랐다고 말해 주었다. 매트가 따뜻하고 사랑스런 우리 딸애에게 몰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 아이를 도와야만 해. 그애에게 필요한 격려도 해주어야 하고.’ 나는 다짐했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우리 가정을 매트에게 완전히 개방했다. 매트는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는 적이 안하는 적보다 훨씬 많았고, 주일에도 대부분 우리와 함께 교회로 갔다. 그런데 그애를 자주 만날수록 한 가지 좀 이상한 행동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건바로 매트가 때때로 일종의 무아지경에 빠져서 몇 시간이고 날씨 방송만 보고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왜 저러는 거니?”나는 딸애에게 성가실 정도로물었다.“엄마, 매트는 그냥 다른 지역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뿐이예요.”학교에서도 매트는 수업 시간마다 딸애를 따라다녔다.“매트는 내게서 떨어져 있기 싫대요.” 딸애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딸애는 화장하는 것도 그만두었고, 머리 치장도 그만두었다. 대신 간단하고 평범하게 한 가닥으로 묶고 다녔다. “매트가 이런 스타일을 더 좋아해요.”그건 딸애가 성숙했다는 증거였기에, 나는 제니와 매트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단둘이 함께 보내는 것에 대해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제니의 성적은 계속해서 조금씩 떨어졌다. 여전히 딸애는 모범생이었다. 제니는 과외 활동을 하나씩 하나씩 그만두었다.‘딸애는 성장하고 있는 거야. 간섭하지 말자.’나는 나 자신에게도 다짐했다. 우리는 한때 모든 것을 공유했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매트가 우리 사이의 장벽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어느 날 밤, 그애들 둘이 거실에서 또 다시 다투고 있었다. 매트는 으르렁대고 고함을 치면서 마치 TV에서 자신이 보았던 폭풍우가 자기 내부에서 터져 버리기라도 한듯, 끔찍한 욕설과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딸은 말했다.“저희는 그냥 얘기하고 있었던 거예요.”딸애가 매트를 옹호했다.‘주님, 우리 딸애가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저 남자애 편을 들고 있습니다. 제 딸이 말입니다. 딸애를 잃지 않게 해주소서!’매트는 그 이후로 더 이상 우리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교회에 가는 일도 없었다. 점차 제니에게는 까닭을 알 수 없는 혹과 멍자국이 늘어 갔다. “그 녀석이 여기에 더 이상 얼씬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남편이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우리가 매트를 못 만나게 하면 딸애가 우리에게서 더 멀어지게 될까봐 두려웠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규칙을 정해야만 했다. “더 이상
우리집에서는 매트를 환영하지 않는단다.”그러나 딸은 계속 그를 만났다. 그러던 어느날 한밤중에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잠이 깨었을 때, 딸애는 골반이 부러져서 병원으로 실려 가 있었다. 딸애가 매트의 블레이저 트럭 발판 위에 서서 친구들과 얘기하고 있었는데, 질투심에 불탄 매트가 차에 기어를 넣고는 딸애를 바퀴 밑으로 질질 끌면서 마구 몰고 갔던 것이다. 딸애는 두 달 동안 침대에 누운 채 집에서 쉬어야 했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그 사고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적어도 지금은 딸애를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에 두게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딸애가 매트에 대해 진실을 알게 되리라. 그러나 어느 날, 딸애가 그 사고는 모두 자기 탓이라고 설명하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런 식으로 매트를 화나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난 너무 당황스러워 논쟁조차 할 수 없었다. 딸애한테 뭐가 씌운 것일까? 그런 다음 어느날 밤, 나는 딸애 방에서 흘러나오는 남자 목소리를 들었다. 그애가 몰래 들어왔던 창문이 아직 열려 있었다. 분노가 폭발해 눈앞에 보이는 게 없었다. 나는 매트에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질렀다. 매트는 달아났다. 그렇다고 달라진 건 없었다.“목발이 필요없게 되면 곧바로 매트와 산으로 갈 거예요.” 딸애가 선언했다. 딸애가 떠나던 날은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 “우리가 처음 데이트 시작했던 그때의 매트처럼 될 수 있게 내가 도와 주고 싶어요.”“얘야, 그건 가망없는 일이란다.”“그렇게 얘기하지 마세요! 엄마는
몰라요.”딸애가 떠나기 전에 나는 휴대폰을 가져 가라고 간청했고, 딸애는 마지 못해 자기 배낭에 던져 넣었다. “언제든지 전화하거라.”나는 우리 가족이 보는 성경책을 가지고 앉아 시편 121편을 펼쳤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리라.”곧 바로 나는 기도했다. ‘주님, 제니를 지켜 주소서.’ 알 수 없는 평화가 나를 감쌌다. 날이면 날마다, 또 밤이면 밤마다, 나는 기도했다. 늦은 밤, 전화벨이 울렸다.“엄마, 도와 주세요.”제니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전화가 끊어졌다. 그 다음날 하루 종일 나는 기도하며 기다렸다. 오후에 딸애에게서 한 번 더 전화가 걸려 왔다. “엄마, 지금 말씀 드릴 수가 없어요. 다시 전화 할께요.” 나는 밤새 전화기 옆에 앉아 있었다. 새벽 3시, 현관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흙 투성이에, 외투도 입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은 제니가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나는 딸애를 껴안았다. 나는 주님께서 딸애를 영원히 우리 곁으로 데려오셨음을 마음속 깊이 알았다. 멋진 우리 딸이 정서 장애를 가진 청년의 쉬운 표적이 되었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그는 딸애의 남을 신뢰하는 성격과 베풀고자 하는 천성을 이용하려 한 교활한 청년이었다. 부모로는 겨우 그 정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대적하고 있는 악에 대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만이 그 악과 싸워 낼 수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딸애가 걱정스러울 때면 시편 121편을 기억한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켜 모든 환란을 면케 하시리라.
-가이드 포스트 99년 7월호 중에서 -
아들을 지킨 건, 바로 나란다
몇 해 전, 시아버지께서 미국의 한 주립대학에
1년간 연구교수로 가 있게 되셨습니다.
아버님은 손자에게 넓은 세상을 구경시켜주시겠다며
우리 큰아들 진석이를 데려가고 싶어하셨습니다.
나중에 다른 이유 때문에 못 데려가게 되셨지만,
아버님의 제안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내게서 멀찌감치 떼어놓는 게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께 이렇게 여쭸습니다.
“진석이가 가는 게 옳을까요? 안 가는 게 옳을까요?”
무사히 돌아올까요?
이렇게 헤어져서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요?
그러면 저 못 살아요.”
하나님 앞에서 갖은 오두방정을 떨고 있을 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 낮잠은 어떻게 자느냐?
이제까지 네가 아이들을 지키고 돌봤다고 생각하겠지만,
네가 잠든 순간에도 아이들을 지킨 건,
미안하지만 바로 나란다.”
_ 최에스더, 《성경으로 아들 키우기》 중에서
http://je333.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