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엇다 둬요

운영자............... 조회 수 843 추천 수 0 2001.12.03 11: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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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엇다 둬요




이문열 선생이 청년시절 힘겹게 서울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선생은 밤이 으슥해서야 무허가 여인숙으로 향했다. 당시 하루 묵어 가는 값이 독방이 300원, 합숙이 200원이었는데 선생은 합숙을 택했다. 지금 맡은 번역물을 마치기까지는 가지고 있던 500원을 아껴 써야 했던 것이다.


선생이 번역물을 들고 두어 시간쯤 일을 했을 때 합숙할 소년이 방으로 들어왔다. 팔다만 신문뭉치를 들고 있는 소년의 행색은 더럽고 초라했다. 선생의 머릿속엔 갑자기 도회지 불량소년들의 나쁜 소행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헤아려 보았다. 돈 300원과 아끼는 몇 권의 책 그것이 전부였다.


소년이 세수를 하러 나간 뒤 선생은 돈 300원을 꼬깃꼬깃 접어 속셔츠 주머니 속에 감추고 책 몇 권은 타월로 말아 베개 대신 베었다. 그러고 나자 소년이 들어섰다. 선생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소년은 곧바로 자지 않고 무언가 주물럭거렸다. 보아하니 소년은 하루종일 신문 판 돈을 헤아리고 있는 듯 했다. 이불 위에 쏟아 놓은 돈은 어림으로 천원은 되어 보였다. 돈 세기를 마친 소년은 돈을 속옷 주머니에 넣고는 그 옷을 머리맡에 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선생은 소년을 흔들어 깨웠다.


"얘야, 그 많은 돈을 그렇게 아무렇게나 놓으면 어떡하느냐."


"그럼 엇다 둬요?"


선생은 소년의 말에 누가 훔쳐가기라도 하면 어찌하느냐고 물었다.


소년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누가 가져간다구요? 이 방엔 아저씨와 저뿐이잖아요?"


말문이 막힌 선생은 다시 번역물을 집어들었다. 그러나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것은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선생은 다시 소년을 깨웠다.


"얘야, 미안하구나...난 네가 의심스러워서 이 얼마 안 되는 돈을 감추고 책은 이렇게 베개를 삼았단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선생은 돈과 책을 꺼내 보였다.


"나를 용서해 주겠니?"


곧 소년의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아저씨가 저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해요. 그러나 제가 아저씨를 의심하는 건 잘못이지요."


선생은 자기도 모르게 소년의 자그마한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청량고등학교 교사 (등대교회 협동목사) 한 태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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