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순종

복음............... 조회 수 3072 추천 수 0 2004.05.01 21: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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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순종



본문: 누가복음 4: 25- 30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애굽에서 해방시켜 인도해 내신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모두 멸하신 이유는 그들의 계속된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십니다.



1. 고향 땅 나사렛의 불신앙과 불순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경계인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격노하게 만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한 집단적인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열 두 명의 정탐꾼이 사십주야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 할 때 그 중 열 명의 정탐꾼은 그 땅을 악평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포와 불안을 느꼈습니다. 열 정탐꾼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인본주의적으로 보고, 듣고 관찰한 것을 말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께 대한 신앙도 없었고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보고로 인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새 통곡하며 지도자를 세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집단적인 반항이요 불신앙이며 불순종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그들을 광야로 회진시켜 40년 동안 방황하게 하시고 모두 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것은 불순종과 불신앙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고향 땅 나사렛에 오셔서 회당에서 구약에 나타난 말씀을 예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엘리야 시대, 3년 6개월 동안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서 이스라엘에는 홀로 된 부인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과부가 이스라엘 땅에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도움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 여인으로 사렙다에 과부가 있었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시돈 땅에 사는데 그곳은 바알을 섬기는 이방 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렙다의 과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이처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렙다의 과부에게 엘리야를 보내셨습니다.

엘리야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사렙다의 과부는 나무를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그녀에게 “빨리 가서 빵을 만들어 물 한 사발과 함께 내게 가지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나는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 밖에 없고 이것을 가지고 마지막 빵을 구워 먹고 나와 내 아들은 죽으려 합니다. 그래서 나무를 줍고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러한 대답에 개의치 않고 “그것은 당신 마음대로 하려니와 먼저 가서 당신이 그 밀가루와 기름으로 빵을 만들어서 내게 가지고 오시오. 또한 물 한 사발도 가지고 오시오. 그러면 이 가뭄이 끝날 때까지 당신의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아니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렙다의 과부는 엘리야의 그 말을 믿었습니다. 배가 고프고 밥을 달라고 우는 어린아이가 있었지만 그녀는 믿음과 순종의 마음으로 떡을 구워서 엘리야에게 주었습니다.

엘리야가 그 떡을 받아 먹고 물을 마시고 난 다음, 하나님의 축복이 그 과부에게 임하여 3년 6개월의 가뭄이 지나갈 동안 그 집의 밀가루 통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기름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이 있는 곳에는 이처럼 주님이 찾아가십니다.

한편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병을 고쳐주실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을 늘 침략하던 이웃 원수의 나라 수리아의 대 장군 나아만이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포로로 잡아온 이스라엘의 어린 소녀가 주모를 돕고 있었는데, 하루는 주모에게 “우리 주인께서 이스라엘에 가서 엘리사 앞에 섰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사가 기도하면 우리 주인님의 문둥병이 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조그마한 어린 소녀의 말을 들은 대장군 나아만은 즉시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왕에게 찾아가 그러한 자신의 정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내가 신이 아니오,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문둥병을 고칠 수 있는가”라며 옷을 찢고 “이것은 아마도 시리아가 빌미를 만들어서 우리를 쳐들어 오려한다”며 통분했습니다. 그 때 엘리사는 “그 사람을 내게로 보내라”라고 말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장군복을 입고 큰 군대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문 앞에 섰는데, 엘리사는 나오지도 않고 그의 종이 나와서 “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고 돌아가시오”라고 전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화가 났습니다. 자신은 수리아의 장군으로서 하나님의 기적을 믿고 이곳까지 왔는데 이처럼 박대하는 것에 대해 노했습니다. 그는 엘리사가 직접 나와 거룩한 물을 뿌리고 축도하여 자신의 병을 고쳐줄줄 알았는데, 그저 하인을 시켜서 요단강 물로 가서 목욕하라고 하는 것을 괘씸히 여겼습니다. 장군은 분하여 돌아서려는데 신하들이 간청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일을 하라 해도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강에 가서 목욕하라는데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나아만 장군은 그들의 간청에 그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그리고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고 나오자 문둥병이 깨끗이 사라지고 어린아이와 같이 부드러운 살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이야기를 회당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렙다의 과부도 시돈 땅의 이방여인이었고, 나아만 장군도 이스라엘과 원수가 되었던 수리아의 대 장군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믿지 않고 순종치 아니하면 도와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원수의 나라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믿고 순종하면 주님은 주의 사자를 보내어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 것입니다. 시편 81편 10∼11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치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치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으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하늘과 세계와 온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전능한 능력으로 우리의 소원과 간구를 채워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오늘날 주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듣지 않고 믿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나타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 나는 세례 받았다. 나는 교회에 출석한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로 인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형식과 의식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믿음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오늘도 하나님은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장엄한 종교적인 의식을 집행한다 해도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마음이 없고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짧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귀가 둔하여 우리 기도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불신앙이 있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2. 마르다와 마리아의 불신앙과 불순종 및 회개

신약 성경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조실부모한 후 나사로만 믿고 살아왔는데 그 오라비가 병들어 죽은 후 장사 지내고 나흘이 지나서야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 때 마르다는 예수님을 원망했습니다. “주께서 나흘 전에 이 자리에 계셨더라면 우리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인데 이제 오시니 우리는 희망이 없습니다”라며 울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마르다는 나흘 전의 예수님은 인정하면서 지금의 예수님은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나흘 전에 오셨으면 자신의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인데 이제 오셨으니 그들의 오라비는 죽어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나 되었으므로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1∼26절에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네 오라비가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부활의 날에나 살 것입니다”라고 응했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지금 부활이요 생명인데 지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믿느냐”라고 다시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주님이 예수 그리스도시오 구주인 것을 믿습니다”라며 다른 소리만 합니다. 주님은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 지금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마르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살아서 역사하실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를 데리고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부활할 것을 알고 계셨는데 왜 우셨을까요? 마르다와 마리아의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고 순종했더라면 어떠한 역경에 처해도 두려워하고 놀라지 않고,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을텐데 현재 주님이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무거운 짐을 지며 고통과 괴로움에 슬퍼하는 것을 보시고 이를 탄식하시고 가련하게 여기셔서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주님은 마르다와 마리아를 데리고 무덤가에 와서 마르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주여 죽은 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주님 명령에 대한 일종의 반항입니다. 주께서 그처럼 사랑하시고 가르친 제자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이처럼 불순종하고 불신앙 하는 것에 대해 예수님은 통분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예수님의 명령에 반항하고 불순종한 것입니다. 그들은 죽은 오라버니가 살아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모여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그들의 불순종과 불신앙을 깨닫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곧 마음을 바꾸어 회개했습니다.

우리가 불순종하고 불신앙 할 때 주께서 우리를 꾸짖으시면 그 때 바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사용해 주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약해서 불순종하고 불신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꾸짖으셨을 때 바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주의 영광은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왜 오늘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왜 나의 삶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회개하라. 불순종을 회개하고 불신앙을 회개하라. 그리고 순종하고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그들의 불순종과 불신앙을 곧 회개하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이처럼 지금까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불신앙했더라도 오늘 이 시간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마음을 바꾸면 하나님은 우리를 영접해 주십니다. 이제 마르다와 마리아는 다시 예수님을 믿기로 마음을 돌려 돌문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돌문은 큽니다. 굴을 파고 시체를 넣고 돌로 그 문을 막아 짐승이 들어가지 못하게 해 놓은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그 돌에 매달려 옮겨 놓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믿었으면 순종하고 행해야 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곧 돌 문을 옮기려 애썼지만 예수님은 옮겨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웃 사람들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해야합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주께서 해 주시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므로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은 반드시 우리 스스로 행해야 합니다. 순종하여 돌을 옮겨 놓고 믿으면 주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나를 구원해 주옵소서”라는 믿음이 있다면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주여 나를 축복해 주시옵소서”라는 믿음의 간구가 있다면 십일조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주님 나를 고쳐주소서”라는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각자가 해야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도 주님은 항상 저들의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보이는 믿음, 행하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물 속에 가라앉은 땅은 땅이 아닙니다. 물 위로 솟아 올라야 비로소 진정한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보이도록 나타난 행함있는 믿음이어야만 합니다.

주님은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눈에 보이는 믿음을 실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돌에 매달려 그 돌을 옮겨 돌문이 굴러가자 무덤문이 열렸습니다.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무덤 앞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고 보고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도 가슴을 졸이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무덤문을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잠시 후 캄캄한 굴 속에서 하얀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더니 나사로가 수의를 입은 채로 걸어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믿고 순종하면 오늘날도 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전심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면 오늘날도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초청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들에 서 계셨습니다. 들에는 소가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어미소 위에는 멍에가 얹혀있고 새끼소는 어미소 곁에 서서 이랑을 함께 갑니다. 농부가 때리면 어미소는 잔뜩 힘을 주고 온 몸에 땀을 흘리면서 목에 걸린 멍에를 매고 쟁기를 끌고 갑니다. 그러나 새끼는 어미소 멍에 밑에 있기 때문에 하나도 무겁지 않습니다. 그저 어미소 옆에 따라만 가면 됩니다. 멍에는 어미소 목에 걸렸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보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무겁고 수고로운 짐은 주께서 지시고 일을 하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우리를 쉬게 하자면 우리의 짐을 주님이 대신 짊어지시고 일해 주셔야 우리가 쉴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2∼3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네가 일을 다하려고 짊어지지 말라. 일은 내 것이요 내가 한다. 그러니 너는 내게 부르짖어 기도하고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송강 정 철의 ‘훈민가’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이 시의 젊은이는 한 노인이 무거운 짐을 이고 지며 땀을 흘리고 걸어가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겨 그 짐을 대신 짊어져 주어 노인으로 쉽고 평안하게 가시게 하겠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도 그와 똑같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것을 보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시며 우리에게 쉽고 가볍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초청하신 것입니다. ‘죄짐이 무거우냐? 세상의 짐이 무거우냐? 마귀의 멍에가 무거우냐? 병의 짐이 무거우냐? 먹고 사는 삶이 그렇게 수고롭고 무거우냐? 인생살이가 고생스러우냐? 죽는 고통이 괴로우냐? 그 짐을 네가 지지 말아라. 내가 짊어져 주마. 내 십자가의 멍에로 내가 그 모든 짐을 졌으니 너는 그냥 나를 믿고 순종하고 내 밑에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는 평안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초청입니까?

한 소년이 있었는데 그는 몹시 가난하지만 신앙을 지키며 십일조를 하며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소년은 성실과 믿음이 인생의 성공을 가져온다고 믿고 가난과 싸워나갔습니다. 그결과 30세에 모빌런치서비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고 이어서 세계적인 도너츠 상표를 개발했습니다. 그가 바로 던킨 도너츠 창업주인 로젠버그입니다. 전 세계 어느 곳에 가도 던킨 도너츠 상점이 있습니다. 그는 72세를 맞이하는 생일축하 자리에서 “나는 가난하고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채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늘 제 짐을 맡아 주셨습니다. 성공은 지식에 있지 않고 태도에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늘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자신의 짐을 맡기고 살았습니다. 주께서 그의 짐을 대신 맡아 주시고 그를 이끌어 주셔서 그는 대기업가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식이 나를 성공시킨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나를 성공시킨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믿고 순종하는 태도가 인생을 성공으로 만들어 주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멍에 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온유해야 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길들임을 잘 받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말합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 소, 말 등은 온유합니다. 이러한 가축들은 사람에게 잘 길들여져서 그 성품이 온유합니다. 그러나 사자나 호랑이, 여우와 이리 같은 사나운 짐승들은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길들임을 받아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3장 18절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유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5장 8∼9절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시편 37편 11절에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많은 시험을 당하고 환난과 풍랑을 겪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깨어져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교육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받으신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순종함을 증명하셨는데, 우리가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을 차지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삶의 굽이굽이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을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닥쳐와야,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나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라며 순종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돌아서거나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우리를 시험해 보십니다. 주님의 멍에 밑에 들어가서 주님이 우리 짐을 대신 져 주시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께 순종해야 합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주님을 다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존 칼빈은 “믿음이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무조건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 복종을 요구하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환경을 바라보며 요동할 것이 아니라 아예 눈을 감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로 들으며 그에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벼랑이라도 그냥 가라 하시면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순종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디트리트 본회퍼는 “신앙은 주님의 명령과 순종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앙이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맥도날드는 “순종이야말로 모든 문을 여는 열쇠”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한 사람, 순종하는 사람은 내 멍에 밑으로 들어올 수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겸손한 사람도 예수님 밑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주를 믿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5∼7절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삶은 자신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능력과 수단, 방법으로 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주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주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인생을 자기 노력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노력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주님을 믿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려 하니 인생이 참 수고롭고 힘이 듭니다. 한편 은혜로 사는 사람은 주님을 믿고 순종하여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주님을 따라 살므로 그 삶이 늘 기쁘고 평안합니다. 이들은 똑같이 이 지구상에 살지만 피땀 흘리고 고생하면서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쉽고 가볍게 주님의 은혜로 주께 의지하며 주님의 복을 받아 인생을 선물로 사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우리의 삶을 은혜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모든 사람들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인생을 자기의 수단과 방법, 자신의 노력으로 살려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고 고생하며 피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시고 우리의 일을 대신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가 믿음과 순종으로 주님 십자가 밑에 들어오기를 원하시오니, 아버지여 우리가 주님을 믿고 순종하며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가 전적으로 주께 순종하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은혜로 인생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네 믿음을 보이라



하나님은 강물이 갈라질 거라는 확실하고 절대적인 증거를
제사장들에게 미리 주지 않으셨다
그들이 강물에 발을 담글 때까지는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으셨다.
헌신과 순종의 첫발을 내딛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들이 그렇게 했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강물을 멈추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 발을 내디뎌 주님의 지시하심을 따를 때,
산을 옮기는 믿음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빌 하이벨스의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중에서-




주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 들어서기 전
우리는 세상 가운데 더럽혀진 신을 벗어 버리고
아직 남아있는 작은 의심과 두려움을
온전히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네 믿음을 보이라” 주님이 말씀하실 때
망설임으로 뒤 돌아보지 마십시오.
주님의 음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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