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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과 축복
본문 : 왕상 17:2∼7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10)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등지고 버렸을 때 엘리야는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심을 믿었습니다.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도 엘리야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리자로 보내셨음을 확신했습니다.그래서 영적으로 쇠퇴해가는 세대에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역사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 큰일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다시 숨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릿 시냇가로 가서 숨으라는 명령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이것은 본성을 거스르는 강한 훈련입니다.자기를 내려놓는 훈련은 보통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훈련이 아닙니다.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뭔가를 이루었을 때 우쭐하고 싶은 근성이 있기 때문입니다.자기를 낮추는 훈련없이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했느냐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목숨을 걸고 왕 앞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낮추고 그것까지 순종하는지를 보셨습니다. 엘리야가 단순히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이 명령에 복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엘리야가 개인적인 야심의 사람이었다면 아합왕과 결전을 해서 이스라엘 민족사에 자기 이름을 영원히 남기고 존경받기를 원했을 것이고 이제 가서 숨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게 장애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위대한 일을 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 수고한 일에 대해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그러나 이제 “그만 하고 숨으라”고 할 때 순종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그런데 숨으라는 곳도 얼마 있지 않으면 곧 말라버릴 가뭄에 대한 보장이 없는 그런 평범한 냇가였습니다.일한 것에 비해 너무나 형편없는 대가가 돌아올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만약 대가를 바라고 일을 한다면 견디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일한다면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나님은 엘리야가 하나님 중심의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데 마음이 있는 사람인지 시험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즉시 순종해서 갔고 하나님은 그 순종에 보답하셨습니다.아침과 저녁에 까마귀가 떡과 고기를 날라다 주었습니다.하나님에게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우리가 순종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주십니다.하나님은 까마귀를 동원하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서라도 책임을 지셨습니다.까마귀가 엘리야를 먹인 것이 아니라 그 까마귀의 하나님이 엘리야와 세운 약속대로 엘리야를 책임져주신 것입니다.그때 까마귀를 쓰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내 삶속에서 역사하십니다.순종하면 지금도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내가 해야 할 책임을 다 하면 하나님도 하나님이 하실 책임을 다 하십니다.
기도: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자기를 부인하고 낮추며 하나님을 높이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하나님나라 운동을 일으키는데 쓰임받게 하여 주시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정삼지목사
순종과 성장
하나님은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믿음과 행동을 요하는 차원으로
함께 가자고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순종하지 않으면
당신은 결코 믿음 안에서
그분과 함께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분 안에서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언제나 이전 사명보다 큰
다음 사명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헨리&리처드 블랙가비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40일’ 중에서-
신앙의 성장을 위해 기도하면서
정작 순종의 훈련에는 소홀하진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경적 지식을 쌓기 보다는
이미 아는 것들에 대해 순종하며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순종이 없는 지식은 열매 또한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측정하는 유일한 잣대
그것은 순종입니다
본문 : 왕상 17:2∼7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10)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등지고 버렸을 때 엘리야는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심을 믿었습니다.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도 엘리야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리자로 보내셨음을 확신했습니다.그래서 영적으로 쇠퇴해가는 세대에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역사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 큰일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다시 숨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릿 시냇가로 가서 숨으라는 명령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이것은 본성을 거스르는 강한 훈련입니다.자기를 내려놓는 훈련은 보통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훈련이 아닙니다.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뭔가를 이루었을 때 우쭐하고 싶은 근성이 있기 때문입니다.자기를 낮추는 훈련없이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했느냐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목숨을 걸고 왕 앞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낮추고 그것까지 순종하는지를 보셨습니다. 엘리야가 단순히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이 명령에 복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엘리야가 개인적인 야심의 사람이었다면 아합왕과 결전을 해서 이스라엘 민족사에 자기 이름을 영원히 남기고 존경받기를 원했을 것이고 이제 가서 숨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게 장애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위대한 일을 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 수고한 일에 대해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그러나 이제 “그만 하고 숨으라”고 할 때 순종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그런데 숨으라는 곳도 얼마 있지 않으면 곧 말라버릴 가뭄에 대한 보장이 없는 그런 평범한 냇가였습니다.일한 것에 비해 너무나 형편없는 대가가 돌아올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만약 대가를 바라고 일을 한다면 견디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일한다면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나님은 엘리야가 하나님 중심의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데 마음이 있는 사람인지 시험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즉시 순종해서 갔고 하나님은 그 순종에 보답하셨습니다.아침과 저녁에 까마귀가 떡과 고기를 날라다 주었습니다.하나님에게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우리가 순종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주십니다.하나님은 까마귀를 동원하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서라도 책임을 지셨습니다.까마귀가 엘리야를 먹인 것이 아니라 그 까마귀의 하나님이 엘리야와 세운 약속대로 엘리야를 책임져주신 것입니다.그때 까마귀를 쓰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내 삶속에서 역사하십니다.순종하면 지금도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내가 해야 할 책임을 다 하면 하나님도 하나님이 하실 책임을 다 하십니다.
기도: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자기를 부인하고 낮추며 하나님을 높이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하나님나라 운동을 일으키는데 쓰임받게 하여 주시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정삼지목사
순종과 성장
하나님은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믿음과 행동을 요하는 차원으로
함께 가자고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순종하지 않으면
당신은 결코 믿음 안에서
그분과 함께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분 안에서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언제나 이전 사명보다 큰
다음 사명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헨리&리처드 블랙가비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40일’ 중에서-
신앙의 성장을 위해 기도하면서
정작 순종의 훈련에는 소홀하진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경적 지식을 쌓기 보다는
이미 아는 것들에 대해 순종하며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순종이 없는 지식은 열매 또한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측정하는 유일한 잣대
그것은 순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