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오직 하나뿐(79)

복음............... 조회 수 380 추천 수 0 2005.06.15 17:30:59
.........
진리는 오직 하나뿐(79)

본문 : 요한복음 14장 1 절- 11 절

젊었을 때부터 힌두교에 심취해 있다가 어떤 자매의 전도로 그리스도인이 된 유명한 교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교수가 뉴델리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에는 교수까지 모두 네 사람이 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간단히 자기 소개를 했고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교롭게도 네 사람 모두 종교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종교가 달라도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지요. 결국 같은 목적지를 가진, 같은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러자 가만히 앉아 있던 교수가 버럭 고함을 쳤습니다. "아니오. 당신들은 같은 배를 탔는지 모르지만 나는 다르오. 나는 다른 배를 탔소!"
그렇습니다. 진리는 거짓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참 목자는 양의 우리에 들어갈 때 오직 하나의 문을 통해서 자기 양들에게 나아갑니다. 그것이 진리의 문입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은 모든 지도자들은 거짓된 목자들입니다. 진리 안에 바로 서십시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다는 것은 어떤 종교적인 의식이나 인격수양의 차원을 넘어선 절대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에 관해 말하기를 "아무 신앙이나 한 가지만 가지면 되지 반드시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 4 :12)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누구든지 인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값없이 의를 얻고 흑암의 권세에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옮기는 위대한 신분의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이가 만물을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우주를 만들고 그 모든 내용을 일일이 아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진실을 알고 진리이십니다.
사도행전 14장 15절에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장 17절에는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이사야 44장 6절에는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공산주의가 얼마나 인정도 없고 무서운가를 잘 압니다. 그들을 동족이란 이름으로 같은 민족을 처참하게 죽인 살인집단일 뿐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한 세대는 이를 잘 압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을 하지 못한 요즘의 젊은이들은 쉽게 그들과 우리를 동족이라는 말로 무조건 얼싸안으려 합니다. 공산주의에게는 동족이란 없습니다. 그들에게 동족이란 것은 하나의 가면에 불과합니다. 공산주의는 오직 혁명적 통일만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도 거기에 속으면 안 되는데 공산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이러한 공산주의의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진리는 경험해야 알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진리입니까? 예수님은 알파요 오메가로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우주를 지을 때부터 시작해서 우주를 완성하고,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우주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으므로 우리가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죽음의 문제도 확실히 알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는 죽음도 알고 삶도 아십니다. 진리는 두 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과 버금가는 다른 진리는 없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철학과 윤리, 도덕, 사상 등은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그러나 진리가 진리인 것은 영원불변하기 때문입니다. 천상천하에 변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남아있는 진리는 예수님 오직 한 분이십니다.
오늘날은 종교도 많고 진리도 많고 가르침도 많습니다. 그러나 모두 죽음 저 건너편에 갔다온 사람은 없습니다. 상상할 뿐입니다. 마호메트는 60세에 한 여인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크라테스는 70세에 사약을 먹고 죽었습니다. 석가모니는 8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플라톤도 80세까지 살다가 죽었습니다. 세계 성인이요 종교의 창시자였던 이들이었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는 모두 무릎을 꿇고 죽고 난 다음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3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 저 건너편에서 돌아왔습니다. 죄악의 빚을 잔뜩 짊어지고 무덤으로 들어간 사람은 그 빚을 갚아야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성인군자나 종교의 창시자들은 모두 죽음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 다시는 나오지 못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죄를 갚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그 죄의 값을 갚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감옥으로 들어갔으나 사흘만에 모두 청산하고 너끈히 살아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이 진리되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요삼1:2-4)
모든 사람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긴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그 엄청난 건물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지할 대상이 우리의 마음에서 이미 다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없습니다. 학교에는 스승이 없습니다. 나라에는 지도자가 없습니다. 다 버리고 다 무시하고 혼자 서있습니다. 이상한 몸짓으로 미친 듯이 우리를 유혹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었고 우리의 메시야가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가정이 거꾸로 돌아갑니다. 길거리의 간판마저 거꾸로 달려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갑니다. 인간의 양심과 도덕과 질서가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밝은 내일에 대한 꿈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직 진리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진리는 헬라어로 '알레테이야'라고 합니다. 이 말은 어떤 것이 은폐되지 않고 사실이 드러난 것을 뜻합니다. 이 세상은 모두가 은폐되어져 있습니다. 역사나 자연, 우주, 가정, 인간 등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가면입니다. 어떤 사람도 이 감춰진 것들을 벗겨낼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벗기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인생의 모든 비밀을 다 벗겨내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의 큰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대가 흐르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현실주의, 쾌락주의, 물질주의 배를 타고 흘러가는 대로 따라갑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 또 하나는 이 시대를 고민하면서 좀 더 의미 있게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氣), 요가, 명상 같은 것을 찾아다니고 종교나 수도(修道), 수양을 따라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철스님도 수 십 년 진리를 찾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자신은 지옥으로 간다고 고백하며 죽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되는 대로 살 수도 없고, 또 진리를 스스로 찾아서 살수도 없습니다. 오직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바른 삶을 살 수 있으며, 구원은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기는 믿음(롬10:17)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어느 나라의 왕이 왕위를 물려줄 아들을 선택하기 위해 세 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맏아들은 부채를 가져왔습니다. 이 부채를 부치니까 권력과 군사가 한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힘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멧돌을 가져왔습니다. 이 멧돌을 돌리니까 돈이 막 쏟아져 나왔습니다. 돈으로 국가의 안보도 안전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아들은 책을 가져왔습니다. 이 책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라는 문제를 가르쳐 주는 책이었습니다. 사람이 바른 길을 찾아 살게 되면 나라의 안보도 경제도 정치도 다 견고해질 수 있고 나라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왕은 셋째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를 이 세상에서 온전케 살도록 인도하여 주십니다. 공포와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만이 평안을 줄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이 진리를 세상에 증거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염려 가운데 빠져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주신 위로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저 무슨 기분으로 위로한 것이 아닙니다. 요사이 어떤 청소년들은 소위 대마초를 담배처럼 피우면서 신경을 마비시켜 긴장과 공포를, 근심과 염려를 없애고 3,4시간 동안 환상의 세계를 다니는 재미를 본다고 합니다. 특히 연예인들, 대학생 심지어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이런 일이 있어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매우 위험한 노릇입니다. 습관이 되면 몸과 정신을 몽땅 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전에 아편이 이와 비슷했습니다. 잠시 동안의 쾌감과 향락, 현실도피 감각 때문에 일생을 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마약은 당장의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을 마비시키는 것뿐이지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으로는 이런 방법으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공산당 소련 지도자 레닌은 종교를 평가하여 종교는 아편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말은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무신론자의 무식한 판단입니다.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향해 주신 위로의 말씀은 그저 몇 시간 동안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신경마비 작용을 일으키는 세상적인 위로가 아닙니다. 주님의 위로는 영광을 약속하는 참된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 도다. 하늘 나라에 집이 있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보장,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독교는 고통을 잊어버리게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고통을 피하게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고통을 직시하고, 직면하고, 싸워나가는 종교입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16장의 마지막 절인 33절에 가보면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였습니다. 기독교적인 위로는 기분전환이 아니라 새로운 힘으로 같이 하는 것입니다. 직면한 어려움을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참된 위로입니다.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하실 때 언제나 확실한 증거를 찾기 원하는 제자인 도마는 예수님께 솔직히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이때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자기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과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님 자신인 것을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다. 첫째,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 사도 베드로가 이런 말씀으로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인간을 가리켜 나그네와 행인 같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인간을 나그네, 길가는 나그네라는 말은 성경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동서고금 모든 지혜 있는 사람, 어진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 가운데 인생여로 (人生旅路), 인생행로 (人生行路)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길가는 나그네라는 뜻입니다. 인생행로는 일방통행입니다. 한 번 가고 다시 못 돌아 오는 길입니다. 소년 시절이 한 번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솔로몬도 청년들을 향하여 '너는 청년의 때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고 간곡히 권면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영도자 모세는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그는 120살까지 사신 분입니다. 시편 90편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가 있습니다. 인생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 사실을 말하면서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다' 고 했습니다. 잠자는 사람이 시계를 보지 않으면 얼마나 오래 잤는지 모르는 것처럼 인생이 그렇습니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남겨 놓게 되니 또 이해도 다 살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청춘이 언제 늙어 백발이 되었는지 놀랄 정도로 빨리빨리 지나갑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우리 사람은 자신은 모르나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생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행로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1년 살았으면 그만큼이 내 생에서 잘라져 나갑니다. 다시 말하면 남은 날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의식하려 하지도 아니하고, 그 날 그 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길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라고 말씀하셨는데 헬라어 원문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즉 그 길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길은 없고 그 길 하나밖에 없는 길이란 뜻입니다. 인간으로서 갈 길을 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시 말씀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신명기 5장 32∼33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사야 30장 21절에 보면 '이것이 정로(正路)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하였습니다. 이사야 35장 8절에는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하였습니다. 시편 27편 11절에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소서 '하였습니다. 사실 인생행로를 걸을 때 바른 길을 택해야 합니다. 인생행로에서 길을 잃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이는 사상적으로 길을 잃습니다. 어떤 이는 경제적으로 길을 잃습니다. 어떤 이는 사회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길을 잘못 들어섭니다. 그래서 고난 당하고, 실패하고, 가정이 파탄되고, 갖은 비극이 연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형무소에 가보면 길이 잘못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정법원에 가보면 길이 잘못된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날 신문의 사회면을 보면 우리 사회, 우리 겨레 가운데 길을 잘못 들어 상상도 못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바른 길이 있습니다. 틀림없는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을 걸으면 반드시 구원을 얻습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길이요. 이 말씀은 천국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친히 그의 손으로 우리의 손을 잡고 인도하며, 같이 걷고 힘을 더하며, 매일매일 우리와 개인적으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취직시켜준다고 유혹해도, 놀다 가라고 잡아도 예수님의 손에만 붙들려 같이 가면 문제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라고 하십니다. 그 길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그 길이십니다. 이 길을 걷고 계십니까? 둘째,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나는 진리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 진리에 대하여 자주 말씀하신 곳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했습니다. 1장 17절에는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8장 31∼32절에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일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였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과거에 많은 사람들, 많은 철학자, 많은 종교가, 많은 도덕가들이 진리에 대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그 자신으로 온전히 보여주신 이는 한 분밖에 없습니다. 과학적 진리를 가르치는 것과 그 교사의 품격이나 생활은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즉 착한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수학을, 화학을, 물리학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덕적 진리를 가르치는 데는 그 교사의 품격과 생활이 관계됩니다. 자기는 도둑질하면서 학생에게 정직한 생활을 하라고 가르칠 수 있습니까? 자기는 음란한 생활을 하면서 남에게는 성실한 생활을 하고 가르칠 수 있겠어요? 반드시 모범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인간은 여기에서 실패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를 말씀으로 가르치실 뿐 아니라 그 생활로 보여 주셨습니다. 내가 진리를 가르쳤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리를 보여주신 이는 예수님밖에 안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말씀, 그의 성품, 그의 생활로 친히 우리에게 도덕적 진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진리이십니다. 많은 사람이 죄인을 불쌍히 여겼고, 회개와 죄사함의 진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만이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죄를 대속해 주시고, 그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는 진리이십니다. 셋째,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라는 그림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아담을 창조하는 그림입니다. 하나님의 손가락이 아담의 손가락에 닿을 때에 아담에게 생명이 있게 됩니다. 아담이 산 사람이 됩니다. 생명의 근본은 하나님이 십니다. 산 것이 산 것을 낳습니다. 죽은 것이 산 것을 낳을 수 없습니다. 이 우주의 생명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하신 일 가운데 찾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예수님은 고별 예배를 인도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을 만날 때 살려주셨습니다. 죽은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베다니의 나사로를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접촉하면 새 생명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와 접촉할 때,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심령이 살아납니다. 이 살아난 우리의 심령은 육신이 무너진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적인 견지에서 볼 때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입니다. 아들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19세기 미국의 부흥사 무디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여러분은 나에 대한 소문을 들을 것입니다. 이 무디가 죽었다는 소문 말입니다. 혹 신문에도 나서 여러분이 보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에게 부탁하는 것은 그런 소문 곧이 듣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나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내가 이 육신을 벗어 놓을 때는 지금보다 더 분명히, 더 똑똑히, 더 깨끗이, 더 풍성하게, 더 행복하게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일까요?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인생 길을 걷고 있는 나그네 같은 우리가 바른 길을 택하였습니까? 진리를 얻었습니까? 생명을 얻었습니까? 참된 길을 찾으시고 진리를 체득하시고 생명을 얻는 영원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기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주님, 저희의 삶에 어려움이 있음은 하나님의 능력과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함임을 깨닫습니다. 저희가 연약할수록 더욱 강하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오늘도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요,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모든 사람은 참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음을 전파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자유와 진리

이숙영이라는 아나운서가 쓴 수필집에는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합니다. 사람들은 자가용을 탈 때가 가장 자유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자가용만큼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것도 드물다는 것입니다. 가령 남자들의 예를 들어보면 마누라도 호락호락하지 않지, 아이들은 머리 컸다고 툭하면 반항하지, 회사에 가면 아래나 위나 모두 상전이라, 그 비위를 맞추기가 한없이 피곤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자가용만은 타면 언제나 원하는 대로 가주고 멈추라면 멈춰주고 카세트를 집어넣으면 기분 좋은 음악이 금방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자가용 안이 현대인들의 유일한 자기만의 공간이라는 논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거리에서 보면 차안을 안방 이상으로 요란스럽게 꾸미거나 값비싼 오디오 세트를 구비한 차를 종종 만날 수 있는데 혼자 만의 자유를 만끽하려는 것 같습니다. 어느 영화에서 보니까, 스트레스가 쌓인 사람이 자가용을 타고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했다고 진정한 자유를 누렸을까요?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십니다. 진리란 유일하신 진리를 가리킵니다(14:6). 예수님 자신을 둘러싸고 계시된 그의 말씀인 동시에, 예수님 자신으로 구체화 된 계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모든 언행은 진리이며, 그의 보내신 성령의 하시는 모든 기적적인 역사도 진리입니다.

2. 묵상 및 토의
0 진리는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확신합니까?
0 나는 진리로 인해 담대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0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응답 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날로 더해지고 있습니까?
0 말씀을 바르게 깨달으며 주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고, 주님을 깊이 앎으로 더욱 성장하기를 갈망합니까?
0 잠시라도 하나님의 진리에서 벗어나 세상 사람을 만족시키고자 불의한 행동을 한 적은 없습니까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 진리를 터득하려면

어떤 날 랍비가 말하기를, "진리는 길에 널려있는 돌멩이처럼 흔한 것이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 그렇게 흔한 것인데 왜 사람들은 진리를 터득하지 못합니까?" 랍비는 다시 대답합니다. "그거야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기 싫어하기 때문이지. 허리를 굽히기 싫어하기 때문에 돌을 주울 수가 없단다" 그렇습니다. 허리를 굽혀야돼요. 허리를 굽혀야 진리를 터득하고 진리를 터득해야 참된 지도자가 되는 것이죠.

* 예화(2): 진리를 따라 산다

17세기의 유명한 수학자이면서 철학가이자 저술가인 파스칼은 후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진 「팡세」라는 글 모음집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이 글을 쓴 동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친구에게 증명하고자 해서였다. 이 책에 들어 있는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마호메트가 한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일에 불과하다. 마호메트는 기적을 행하지도 않았고 예언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 누구도 못하는 일을 했다.”
“인간은 천사도 아니며 짐승도 아니다. 그런데 인간의 불행은 천사를 닮고 싶어하면서도 짐승을 닮아가는 데서 비롯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파스칼은 생각하는 과학자의 대표적인 사람이다. 생각이 없는 과학자, 생각이 없는 철학자, 생각이 없는 예술가, 생각이 없는 정치가를 생각해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특히 진리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의 열심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의 생각은 진리를 향해야 한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영속적인 것을 의미한다. 진리를 계속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는 위대한 것이 나온다. 사람은 늘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야 한다. 특히 자신을 만들었고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잘 아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하나님은 바로 진리 그 자체이시다. 성경은 진리를 알 때 우리가 가장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진리를 알 때 우리는 생활의 만족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4. 성경말씀;
0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약3:14)
0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엡6:14)
0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4)
0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시69:13)
0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니이다(시119:151)
0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잠23:23)
0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
0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0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0 성령은 진리니라(요일5:7)
0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5)
0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요일2:21)
0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요삼1:8)

5. 금언
0 개개인은 죽을지라도 진리는 영원하다(제럴드)
0 진리의 길은 걷는데 고통스럽고 험난하다(죤 밀턴)
0 진리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것이다(제프리 초서)
0 진리는 공평하고 항구적인 것이다(플라톤)
0 진리를 찾는 자가 횃불을 밝힌다.(잉거솔)
0 진리는 깊은 곳에 쌓여져서 숨겨져 있다.(세네카)
0 진리를 탐구하는 자는 국경이 없다(볼테르)
0 그대가 사는 동안은 진리를 말하고, 악마를 부끄럽게 할지라(세익스피어)
0 진리는 언제나 가장 강한 주장이다.(그리스 격언)

6. 찬송: (276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하나님의 진리 등대 길이길이 빛나니
우리들도 등대되어 주의 사랑 비추세
우리 작은 불을 켜서 험한 바다 비추세
물에 빠져 헤매는 이 견져 내어 살리세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주문: 전화: (02) 386-8660, 팩스(02)386-2961
교보문고, 영풍문고, 기독교 서점에서도 판매함
좋은땅 인터넷 http://www.g-world.co.kr
좋은땅 이메일 gworld@g-world.co.kr
전국서점총판/하늘유통(02)959-6478
인터넷 주문/http://www.lifebook.co.kr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185 양자 택일(36) 복음 2005-06-15 470
7184 귀성전쟁(8) 복음 2005-06-15 469
7183 귀성전쟁(8) 복음 2005-06-15 269
» 진리는 오직 하나뿐(79) 복음 2005-06-15 380
7181 즐거운 배신 복음 2005-06-16 517
7180 사용해야 할 선물(63) 복음 2005-06-16 537
7179 말의 영향력 복음 2005-06-16 528
7178 말의 영향력/잠18: 20- 21 복음 2005-06-16 482
7177 관점(시각차)(77) 복음 2005-06-16 418
7176 달구고, 두드리고... 복음 2005-06-17 598
7175 정신적 재산 복음 2005-06-17 410
7174 멸시천대 받아도 복음 2005-06-17 744
7173 구속의 찬송 복음 2005-06-17 673
7172 절름발이 발레리나 복음 2005-06-17 498
7171 다섯 번 죽는 배추 복음 2005-06-17 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