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시각차)(77)

복음............... 조회 수 418 추천 수 0 2005.06.16 11:31:52
.........
관점(시각차)(77)

본문: 민수기 13: 30- 33

스미스씨 가족은 새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스미스씨의 아내는 여기저기 점검해보다가 지하실에서 매우 깨끗해 보이는 두 줄로 쌓아놓은 사이다 병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이다 병을 치우려 하다가 보기에는 깨끗하고 텅 빈 병 같아서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병은 2∼3년 동안 방치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하게 집에서 나방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스미스씨 가족은 집에 나방이 생기지 않도록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나방이 자꾸만 불어날 뿐이었습니다. 카페트, 가구 등을 모두 소독하고 청소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원인을 찾다가 마침내 지하실에 놓아둔 사이다 병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거기서 수천 마리의 나방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 생각과 자기 말과 자기 행위가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를 합리화합니다. 그런가 하면 겉으로 보이는 행동과 결과를 놓고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자신의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냉철하게 판단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와 행동을 보고 판단하시지 않고, 그렇게 하게 된 마음속의 동기를 보십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21:2)
삶의 모든 논쟁은 각각의 시각차에서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부가 이혼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서로 마음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부부간에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차로 인한 것입니다. 노사간의 투쟁, 지역간의 알력, 정당간의 논쟁, 국가간의 분쟁 등 이 모두가 서로 다른 시각차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시각차는 대화를 통해 좁힐 수 있고, 화해와 일치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는 결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1. 하나님과 인간의 시각차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입구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모세는 열 두 정탐꾼을 택하여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보고했는데 그 내용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과는 더욱 차이가 있었습니다. 열 두 정탐꾼 중 열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로 인간의 감각과 이성, 경험에 입각한 시각을 보고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 선택에 큰 악영향을 미쳐 이스라엘이 파멸 당할 수 밖에 없는 위기에 처하게까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14장 7∼8절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광야이고 사막일지라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고 믿음으로 행할 때 그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각과 하나님의 시각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은 현재를 보고 그 안에서 체험해야 알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고 경험할 수 없어도 이미 이루어진 것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있는 적들은 이미 정복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14장 9절에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적이 강해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그들은 이미 패배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을 받아 들이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우리 삶의 중요한 관건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10명은 하나님의 시각과 전혀 다른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들어가 본 땅은 주민을 삼키는 박토이고 광막한 황야와 사막이더라. 젖도 나지 않고 꿀 한 방울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현재의 환경을 통해서 주시는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현재는 황막한 광야일지라도 젖과 꿀이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꿈과 믿음으로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으로 믿음을 가지고 꿈을 가질 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지 못하고 꿈과 믿음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육신적 감각을 통해 볼 때 그 땅은 사막과 광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 13장 32절에서와 같이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라고 악평하게 됩니다. 강하고 큰 적이라도 이미 주께서 정복하시어 이겼다고 생각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는 말씀대로 이루어지지만 열 정탐꾼들은 인간의 시각으로 감각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13장 33절에서와 같이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내가 보고 들으며 감각적으로 경험하고 이성적으로 깨달은 것을 받아들일 것이냐에 우리 운명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그러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 즉 하나님의 시각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을 보지 않고, 열 정탐꾼의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반역하여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고 하나님께서는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 정탐꾼을 그 자리에서 재앙으로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하다가 죽게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시각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보았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후손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과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이 있는데, 우리는 이를 잘 구별해야 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사람의 능력으로 살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그것을 꿈과 믿음으로 바라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 주위에서 다가오는 불안, 공포, 초조, 좌절, 절망 이런 것들만 보고 있으면 우리는 꼼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모여 기도하고 예배드릴 때 우리는 사람만 보지말고 함께 계신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게 되면 인간적인 능력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기적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각과 인간의 시각차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인간을 보실 때는 그 외양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교회에 갔는데 목사님께서 각자의 무거운 죄 짐으로 힘들어하지 말고 주께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목사님께 질문하였습니다. “목사님, 저는 예수를 안 믿으니까 죄인이지요? 그런데 저는 하나도 무겁지 않습니다. 죄의 무게가 얼마나 됩니까? 저는 하나도 무겁지 않은데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웃으시면서 “죽은 시체 위에 쌀가마니를 얹어 놓아 보십시오. 죽은 시체가 무겁다고 하는가, 마찬가지로 당신은 영혼이 죽었기 때문에 무거운 죄 짐을 지고도 무거운 줄 모릅니다. 그러니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보실 때는 모두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으로 보십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3절에는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살았다고 큰소리쳐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 영적으로는 죽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을 보실 때는 그러므로 허무와 무의미한 삶으로 보십니다. 지금 이 세상 가운데 아무리 부귀와 영광을 얻었을지라도 세상 가운데 있는 것은 모두 헛된 것입니다. 인생이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영은 죽지 않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우리 마음 가운데 모시면 우리가 탄 인생의 배는 천국을 향해 갑니다. 사람이란 허무와 무의미의 종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많은 부귀와 영화, 공명을 가졌다해도 죽을 때는 그 어느 것 하나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아 풀은 시들고 꽃이 떨어지는 날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란 없다며 자신은 무신론자임을 주장합니다. 혹은 인간이란 아메바에서 진화된 존재로 여기며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 살 동안 물질과 권력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이를 물질과‘엘리야’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예레미야 처럼 눈물을 많이 흘리시고 엘리야 처럼 기적을 행하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세례요한이라고 대답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재차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답을 못하고 잠잠하였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 엄청난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것은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구주로 알고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계시적인 지식이지 감각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온 세상 사람들은 감각적인 지식만 알 수 있기 때문에 계시적인 지식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성공과 쾌락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인생의 성공과 쾌락이 얼마나 갑니까?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십년 가는 권세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쾌락도 이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결국 모든 인간은 황량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과학이 고도로 발달된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기술을 통해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처럼 발달된 과학문명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비극을 보십시오. 이라크 전쟁에서 우리는 과학의 발달로 인해 수만명을 죽이는 파괴력을 보았습니다. 북한은 과학을 통해 원자탄을 만들어 세계를 위협하므로 세계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이 만든 과학 기술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위험 속으로 빠지며 이로 인해 좌절과 절망에 처하게 되었습니까? 과학은 유토피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순식간에 파멸로 이끌 수 있는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지상에서 천국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인본주의 관점과 신본주의 관점은 전혀 다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언16: 25)

2.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
어느 개척교회의 젊은 목사가 교회에 부흥하지 않아 고민하다가 선배 목사를 찾아갔습니다. 그 선배 목사는 후배 목사의 설교원고들을 뒤적거려 보고는 설교가 잘못되어 있음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후배 목사의 설교 내용은 교인들의 죄를 지적하고, 불충을 책망하고, 잘못된 점을 꼬집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선배 목사는 이렇게 조언해주었습니다. "죄를 책망함과 동시에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말하고, 성도들의 불충과 잘못을 지적하고 탓하면서 동시에 칭찬과 상급을 말하라."
세상의 모든 사물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신앙은 긍정의 물을 먹고 자라는 나무입니다. '기쁘게'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평화롭고 밝으면 '기쁜 마지막'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슬프게'예수를 믿는 사람은 근심하고 탄식하고 비관하며 종말론만 뒤적입니다. 똑같은 현실이지만 그것은 긍정적인 면을 보면 사람과 부정적인 면을 보는 사람의 삶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빛은 긍정이요, 어두움은 부정입니다.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것, 단점보다는 장점, 잃은 것보다는 남은 것, 비난할 것보다 는 칭찬할 것, 어두움보다는 빛을 먼저 보는 것이 그리스도인 다운 관점이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어둡게만 보여주는 부정의 색안경은 이제 벗어 던지고 밝은 면을 봅시다. 그리고 빛을 찾아서 빛을 따릅시다.

3. 신앙과 불신앙의 관점(시각차)에 따른 결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절)
사람들은 죽음이란 미래적 사건이며 천국과 지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이나 이야기를 외면하려 합니다. 그러나 듣기 싫고 외면하려 해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감옥이 있다는 것이 듣기 좋은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 감옥으로 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말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죽으면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믿는 자는 영생으로, 믿지 않는 자는 영벌로 들어간다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외면하지만 우리는 진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이란 미래적 사건으로 나와 관계가 없고 천국과 지옥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종교를 믿으면 그를 통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여기지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빚을 잔뜩 지었는데 길거리에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우리가 지은 빚을 대신 갚아 달라고 하면 갚아 줄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빚을 짊어지고 죽어 가는 우리들을 대신해 죽으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절대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종교가가 많습니다. 훌륭한 철학가도 많고, 인생의 교사도 많습니다. 이것은 모두 좋은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길은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우리 죄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몸 찢고 피 흘려 죽음으로 우리의 죄의 값을 갚아주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을 ‘구주’라 말하고 ‘진리’라 말하며 ‘자신이 사람을 살린다’고 말하지만 죽음의 무덤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은 없습니다. 유일하게 나오신 분이 한 분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의 감옥으로 들어갔다가 사흘만에 그 빚을 모두 청산하시고 부활하심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율법이 아무리 정죄해도 겁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갚으셨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비난해도 겁나지 않습니다. 주께서 모두 갚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 안에 들어 있으면 마귀도 율법도 우리를 정죄하거나 비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절대 진리요, 절대 구원자 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대로 예수님 앞에 나와 그 십자가를 믿으면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시각을 받아 들여 우리 자신은 죄인으로 절망적이고 허무와 무의미한 존재이며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 하나님의 해답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값없이 용서와 의로움과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처칠은 한참 전쟁의 막바지에서 폐렴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알렉산더 프래밍이라는 의학박사가 페니실린을 발명하여 처칠은 살아날 수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신문 기자들은 알렉산더 프래밍을 찾아가 과학자로서 지금까지 발견한 것 중 가장 위대한 발견이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프래밍은 “내가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안 것이고, 이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받아 구원을 주셨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보다 더 위대한 진리와 놀라운 발견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과 마귀를 이기고 성령의 충만함과 거룩함을 얻게 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마음과 몸도 고침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치료자로 오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치료와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질병에 걸려 열이 올라 급기야 중추신경마비로 듣는 것과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누워있는 아들에게 성경책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들려주웠습니다. 한번을 다 읽어주었을 때는 별로 감동 없이 끝났습니다. 두 번째 성경을 들려주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임하여 마음에 큰 감동이 오고 눈동자가 달라지면서 큰 은혜를 체험하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후 그는 그 은혜에 힘입어 많은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책 중에 하나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입니다. 그 책 속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희망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주신 것이다. 고민할 때도 변치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희망이었다. 내 마음속에 기쁨이 있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부어주시는 것,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아 이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기쁨이었다” 유명한 일본의 미조리 겐조 이야기입니다. 무엇이 죽은 몸이나 다름없는 이 사람을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진리인 것입니다. 불행 중에 살아야 할 장애인인데 그리스도가 그의 마음을 다스리면서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사는 행복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많은 장애인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웃에게 생명과 구원을 주는 전도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패러다임의 의미는 보는 방식 즉, 관점사고의 인식입니다. 철학자 토머스 쿤이 해석하기를 물 자체는 변치 않으나 물을 마시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패러다임 개념입니다.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눅10:27) 사랑의 시각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절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으로 모든 일들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복 받은 것을 믿으면 우리의 삶 가운데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제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종교는 축복의 종교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축복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믿음과 소망, 사랑이 넘쳐나고 의와 희락과 평강이 넘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천국의 영광이 넘쳐납니다. 영생 천국에 들어갈 때 얼마나 영광스러울지 상상해 보십시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아무 공로도 없이 주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하늘 문이 열리고 눈물과 근심, 탄식하는 것이나 이별하는 것, 곡하는 것이나 앓은 것이 없는 영생천국,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아름다운 맨션, 아름다운 산천초목, 그 아름다운 영원한 처소에 들어가서 영원히 산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것은 사람의 시각으로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인생과 해결책을 등진 사람들은 영적인 죽음을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사망이 인생 가운데 자리잡아 자신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단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과 욕심으로 살다가 정처 없이 떠납니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들은 소망과 평안과 기쁨은 없이 그저 물질과 권력만을 추구하며 삽니다.
영국 런던의 어느 신문사에서 ‘돈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잘 정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응모했는데 신문 배달하는 어린 소년이 1등으로 당첨되었습니다. 그 어린 소년은 돈이란 “천국 가는 것만 제외하고는 온 세상 어디든 통과할 수 있는 통행증이다. 또한 돈은 행복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에서 사지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천국에는 갈 수 없습니다. 행복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삶의 소망과 기쁨, 평안은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알지 못하고 허망한 것을 좇는 인생은 얼마나 처참하고 고통스럽겠습니까? 예수님을 모르고 텅 빈 인생을 살다가 빈배를 타고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나가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절대 절망인 죽음이 오면 무방비 상태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바쁘다고 말합니다.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 백발이 되고 이제 노인이 되어도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죽음의 사자가 와서 “가자!”할 때에는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가야만 합니다. 죽음의 사자에게 끌려 사지로 갑니다. 절대절망인 죽음에 무방비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버리고 십자가를 저버린 사람의 운명이 되어 영원한 지옥불에 불탈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는 하나님께서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 살인자들과 행음자들, 술객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사망은 이 땅에서 몸이 죽는 것이고, 둘째 사망이란 죽음 이후 심판 받아 지옥불에서 영원히 불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과 세상을 보는 시각은 절대 진리이므로 결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고 모셔들이면 천국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반드시 들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을 부정하고 반대하며 인간적인 시각을 좇으면 영적 죽음으로 이 땅에서는 정신적인 광야를 방황하다가 죽음 이후 우주의 쓰레기 소각장인 ‘게엔나’ 즉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만사를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순종하고 살 것이냐, 인본주의 시각으로 만사를 보아 하나님을 등지고 살다가 영원한 멸망을 당할 것이냐 하는 것은 오늘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생명과 사망, 영광과 수치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시각으로 이 세상을 보면 불신자가 되고 무신론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원히 버림받고 불과 유황 못에 타게 됩니다. 주여, 원하오니 우리의 눈을 밝히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시각으로 인생과 사물을 보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고 구원을 얻어 천국 영생에 들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자기 관점

세상 물정에 어두운 어떤 관리가 있었다. 그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유난히 돼지고기를 싫어했다. 어느 날, 그는 부하 두 사람이 서로 치고 받으며 싸우는 것을 보았다.
“이놈들, 당장 그만 두지 못할까!”그는 노하여 두 사람을 꿇어앉혀 놓고 호되게 꾸짖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벌로써 돼지고기를 먹게 했다. 싸운 두 사람이 마주보고 볼이 터지도록 돼지고기를 먹고 있자, 그가 엄숙하게 다시 경고했다. “만약 또다시 싸운다면, 그때는 꼭 돼지고기에다 비계까지 넣어 먹게 할 것이다. 명심하렸다!”
자기 기준으로만 남을 판단하고, 자기 생각으로만 세상을 보는 어리석은 사람을 조롱하는 우화이다. 생각이 얕고 견문이 부족한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기준으로 남을 헤아린다. 자기가 이것을 좋아하면 남도 이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저것을 싫어하면 남도 싫어할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구상에서 인간처럼 복잡하고 흥미로운 동물은 없다. 저마다 개성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다. 또 지적(知的)으로 고르지 못한 것처럼 도덕적으로도 고르지 못하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을 무시하고 매사에 자신의 견해만을 고집한다면, 우화 속의 관리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무릇 물은 깊을수록 소리가 없고, 수레는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조금밖에 모르는 인간이 수다스럽게 떠들어댄다. 정작 지식이 풍부하고 지혜가 깊은 사람은 잠자코 있기를 즐긴다. 조잡한 인간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나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것을 아무에게나 자랑하고 싶어한다.

2. 묵상 및 토의
0 사람의 관점에 따라 같은 일도 크게 차이가 납니다.
나는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 중 주로 어느 쪽을 향하고 있습니까?
0 나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만사를 선택하고 해결하고 있습니까? 인본주의 시각으로 선택하고 해결하고 있습니까?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 시각 차이

오래 전 어느 유명한 신발 회사에서 아프리카로 판매 사원을 보내어 그곳의 신발 판매 가능성 여부를 조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파견된 판매 사원이 가보니 놀랍게도 그 부족 사람들은 아무도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그는 즉시 본사로 연락했습니다.
“구두 판매 계획 취소 요망. 이 부족은 전혀 신발을 신고 있지 않으며 구두를 판매하는 상점도 전혀 없음.”
그 후 회사에서는 다른 판매 사원을 그곳에 보냈습니다.
그는 그곳의 형편을 살핀 후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습니다.
“구두 판매 계획 절실히 요망. 이 부족들은 아무도 신발을 신고 있지 않으므로 얼마든지 신발을 팔 수 있으며, 구두 상점 또한 얼마든지 세울 수 있음.”
두 사람 모두 동일한 상황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시각으로, 또 다른 한 사람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시각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신발 회사는 이 두 번째 판매 사원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곳에 신발 공장을 세워 크게 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4. 찬송: (485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1.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진리를 보게 하소서 진리의 열쇠 내게 주사 참 빛을 찾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눈을 뜨게 하소서 성령이여
2. 막혀진 내 귀 여시사 주님의 귀한 음성을 이 귀로 밝히 들을 때에 내 기쁨 한량 없겠네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귀를 열어 주소서 성령이여
3. 봉해진 내 입 여시사 복음을 널리 전하고 차가운 내 맘 녹여 주사 사랑을 하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입을 열어 주소서 성령이여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주문: 전화: (02) 386-8660, 팩스(02)386-2961
교보문고, 영풍문고, 기독교 서점에서도 판매함
좋은땅 인터넷 http://www.g-world.co.kr
좋은땅 이메일 gworld@g-world.co.kr
전국서점총판/하늘유통(02)959-6478
인터넷 주문/http://www.lifebook.co.kr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185 양자 택일(36) 복음 2005-06-15 470
7184 귀성전쟁(8) 복음 2005-06-15 469
7183 귀성전쟁(8) 복음 2005-06-15 269
7182 진리는 오직 하나뿐(79) 복음 2005-06-15 380
7181 즐거운 배신 복음 2005-06-16 517
7180 사용해야 할 선물(63) 복음 2005-06-16 537
7179 말의 영향력 복음 2005-06-16 528
7178 말의 영향력/잠18: 20- 21 복음 2005-06-16 482
» 관점(시각차)(77) 복음 2005-06-16 418
7176 달구고, 두드리고... 복음 2005-06-17 598
7175 정신적 재산 복음 2005-06-17 410
7174 멸시천대 받아도 복음 2005-06-17 744
7173 구속의 찬송 복음 2005-06-17 673
7172 절름발이 발레리나 복음 2005-06-17 498
7171 다섯 번 죽는 배추 복음 2005-06-17 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