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가 되면(29)

복음............... 조회 수 386 추천 수 0 2005.07.05 19: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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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가 되면(29)

본문 : 디모데후서 3:1- 5

1979년부터 1982년까지 4년간의 마술서적 판매고는 배로 증가 되었습니다. 그런 종류의 책만도 800가지가 넘었다고 합니다. 다블 데이의 새 책이라는 마술 클럽은 2년 동안에 100,000의 회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장 판매고가 높은 서점의 하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달에 12,000달러치를 팔고 있는 메타피지컬 센터입니다. ‘귀신 쫓는 사람’이란 필름은 년간 7천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고, 같은 제목으로 출판된 책은 1천 만부를 발행했다고 합니다. 또 큰 대학이나 종합대학교에서는 마술과목의 학점을 부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말세의 징조의 하나입니다.
성경은 말세에 나타날 징조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교회적인 징조
1)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대적합니다.(딤전4:1-2, 딛1:16, 갈1:7-8, 딤후2:15-16)
2) 이단들이 득세합니다.(마7:15, 24:24, 벧후2:1, 딛3:10-11)
3)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쾌락을 더 사랑합니다.(롬1:21-23, 약4:8, 히12:1-2)

2. 사회적인 징조
1) 돈을 사랑하며 무정합니다.(딤전6:9-10, 히13:5)
2) 선을 행치 않으며 불의를 일삼습니다.(약3:13-16, 4:17, 엡4:29-30)
3) 서로가 모함하며 사랑이 식어집니다.(마24:10-12, 눅6:27-28))

3. 가정적인 징조
1) 자식이 부모를 거역합니다.(롬1:29-30, 마10:21, 엡6:1-3)
2) 부모가 자식을 학대합니다.(눅12:53, 마10:21, 엡6:4, 골3:21)
3) 주안에서 가족 돌아보기를 싫어합니다.(롬1:28-30, 딤전5:8, 갈6:10)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앞으로 10년, 20년, 임종의 순간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인생의 종착역이 어디인가를 알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앨빈 토플러란 미래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제3의 물결』『권력이동』『미래의 충격』등의 책을 통해서 잘 알려진 미래학자입니다. 그런가하면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라는 미래학자도 있습니다. 올해 93세인데 그도 미래학에 관련한 많은 책을 쓰신 분입니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폴 케네디』『강대국의 흥망』『21세기 준비』등 40여권의 좋은 책을 썼습니다. 어느 때인가 기자들이 그를 만나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그동안 미래에 대하여 참 많은 책을 쓰셨는데 그 많은 책 중에 어느 책이 가장 대표할만한 책입니까?"
그때 드러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것은... 내년도에 출판될 책일세..."
연세 90세가 넘으신 분이 이렇게 내년에 나올 책이 가장 좋은 책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그렇게 해서 출판된 책이 『Next Society』라고 하는... "미래 사회"라는 유명한 책입니다. 한번쯤 읽어 볼만한 책인데 그는 그 책에서 이때까지 자신의 모든 이론을 집대성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미래 사회란 새로운 사회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미래 사회는 20세기 후반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그런 사회가 될 것이다. 미래 사회는 사람들이 상상하며 기대하는 것과도 다른 사회가 될 것이고 미래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요소도 그 선례가 없기 때문에 설명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몇 선진국에서는 미래 사회의 현상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가 내다본 미래 사회의 모습을 개념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미래 사회는 대부분이 장수하여 노인 사회가 될 것이다. 미래 사회는 지식 사회, 정보 사회, 컴퓨터 사회, 인터넷 사회가 될 것이다. 미래 사회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세계를 하나로 묶는 글로벌 경제, 즉 신경제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신경제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는 CEO(Chief Executive Officer)가 될 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미래 학자들이 미래사회에 대하여 좋은 글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마는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표준 새번역 성경으로 말씀드립니다.
"그대는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않으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않으며,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표현하고 있는 '말세'란 미래 사회를 말하는 것으로서 성경은 미래 학자들과는 다르게 미래 사회란 '어려운 때'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미래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은 미래 사회를 복지 사회, 편리한 사회, 정보의 사회 등으로 전망하면서 긍정적으로 보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미래사회는 비록 그 사회가 복지 사회, 편리한 사회, 정보의 사회가 된다고 할찌라도 그러한 사회를 살아갈 사람들은 여전히 거듭나지 못한 죄인들이므로 환경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미래 사회는 더 어려운 사회, 고통의 사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말세에 마귀의 궤계에 휘말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무려 19가지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줄여본다면 사랑의 왜곡입니다. 사랑해서는 안 될 것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자기를 사랑합니다.
이 말씀에서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이기심이란 자기만을 위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기심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자기만을 위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말세를 살아가는 불신자들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이들은 결국 자기를 위하는 것 같지만 자기를 비롯한 모두에게 큰 고통을 안겨다 줍니다. 물론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본문 1절을 보세요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NIV 영어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말세가 되면 terrible times가 도래한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것은 미래 사회의 사람들이 정작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것은 사랑하며 살아가지 않고 사랑해서 안될 것은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기 때문에 고통의 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실례를 19가지 들고 있는데 그 중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2절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돈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4절에서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더하는 것 3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3가지 사랑이 왜 그리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그 이유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2절에서 언급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의 문제점과 그 고통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문제가 없어 보이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신감이나 긍정적인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이기주의적 자기 사랑이 문제라는 것인데 그렇게 자기 자신을 정도 이상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시대가 말세라는 것이며 그렇게 정도 이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면 자기에게 좋을 것 같지만 결국에 가서는 자기 자신에게 그 이기적인 자기 사랑이 고통이 되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형의 사람이 겪게 되는 고통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가정에서도 따돌림 받으며 친구들에게서도 따돌림 받으며 살게 되기 때문에 그 자체가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에 결국에 가서는 저절로 그렇게 따돌림 받는 그런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돈을 사랑합니다. 본문 2절 말씀에서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돈에 집착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물질주의 배금사상에 젖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시대가 어려서부터 돈버는 법을 배워야 할 정도로 돈을 사랑하는 시대입니다. 돈에 집착하고 돈 그 자체가 우상이 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다 주는 그런 시대입니다. 그런데 유념할 것은 돈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반드시 고통을 받게된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매스콤 보도를 통해 아시는 분도 더러 있으시겠지만 어떤 분이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된 후 이 사실을 부모 형제 친척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오직 자기 가족만 돈을 펑펑 쓰다가 그만 도둑으로 오해받았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사건은 그가 현금 수송차량 강탈사건의 범인이 아닌 것으로 마무리는 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드러난 문제점은 사람이 돈을 사랑하게 되면 이처럼 이성도 감정도 마비되어 부모 형제 친척도 모르게 되는 불쌍한 존재가 된다는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돈도 있어야 하고 재물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돈이나 재물을 사랑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인간은 나그네이기에 나그네 정신으로 나그네 모습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인간이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돈이나 재물을 사랑하며 살다보면 어떤 고통이 따르게 되는가 하면 소돔 고모라가 망할 때 재물을 사랑하여 뒤돌아다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와 같이 그런 고통이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셋째, 쾌락을 사랑합니다. 본문 4절에서 말씀하는 "쾌락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쾌락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맛보는 그런 쾌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정상적 쾌락의 정도를 벗어나 비정상적인 삶이 주는 쾌락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사람이 결혼하여 부부관계를 가지면서 쾌락을 누리는 것은 정상적인 쾌락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닌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남녀관계에서의 쾌락은 일시적으로는 자신에게 쾌락을 가져다줄 수는 있을지언정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이 쾌락이란 용어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즐거움"을 지칭하는 것으로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영역에 쾌락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려면 생의 즐거움도 있어야 하고, 쾌락도 있어야 하나 그것이 합법적이고 정상적이어야 하며 또 그것은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쾌락 사랑 때문에 주일 성수가 문제가 되고 쾌락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자가 받게되는 고통에는 무엇이 있는 것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1:24- 28)
이렇게 쾌락을 사랑하고 쾌락적인 삶을 추구하여 하나님의 말씀도 어기고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떠나서라도 쾌락을 누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자신의 몸에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세라고 하는 미래 사회가 되면 사람들은 자기만 사랑하게 되고, 돈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고, 하나님 말씀도 어기면서까지 쾌락을 사랑하며 추구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미리 내다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이 말씀에서 쾌락을 사랑한다는 것은 쾌락에 깊이 빠져드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에 적당한 즐거움은 필요합니다. 재창조(re-creation)를 위해서 쾌락은 큰 유익을 줍니다. 그래서 쾌락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우리 삶에 청량제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쾌락은 적당히 받아들이면 약이 되지만 도가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화투놀이를 재미 삼아 해 봅니다. 재미 삼아 돈을 걸고 합니다. 판돈이 점점 커집니다. 돈을 따기 위해 본격적으로 도박으로 발전합니다. 결국 도박에 발을 들이게 되고 돈 잃고 패가망신하여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쾌락에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쾌락을 사랑한다는 것은 절제를 상실한 상태를 말합니다. 브레이크 파열된 자동차가 언덕을 내려가듯이 절제 없는 쾌락은 위험한 것입니다. 모두에게 정말 큰 고통을 안겨다 줍니다. 요즘 매스컴 보도를 보면 정말 이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쾌락에 깊이 빠져있고 중독되어 있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노래방에서 4상의 부부가 서로 부부를 바꾸어서 성관계를 맺은 스와핑 사건 때문에 시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후에 스와핑을 전문으로 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회원이 6000쌍으로 급증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말세로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쾌락지상주의가 하늘을 찌르는 이런 때 경건한 삶을 살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짐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런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롬 12:2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세적 현상 가운데서 돌아서려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이를 좇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따르고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잘못된 사랑 왜곡된 사랑을 버리고 우리가 올바로 찾아 나서야 할 사랑은 무엇일까요?
마 22:37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주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사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우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죽도록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되 우리가 우리 몸을 아끼듯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세에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합니다. 잘못된 사랑 때문에 자신들이 고통을 겪고 있고,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을 안겨다 줍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것들을 사랑하는 것에서 돌이켜서 진정 사랑할 것을 사랑하는 자라로 나아와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리를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말세임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해서는 안 될 것과 진정 사랑해야 할 것을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이 말세에 고통이 따르는 길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가야합니다. 여기에 영생이 있고, 여기에 진정한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미래 사회에 나타나게 될 사람들의 잘못된 삶의 자세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절부터 4절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무슨 말씀입니까? 참으로 희한한 사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사회가 다가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다 인간의 죄와 욕심 때문입니다. 이 인간의 죄와 욕심이 자신을 망치며 가정을 망치고 사회를 망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죄와 욕심 때문에 결국 이 세상은 심판 받게 되고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3가지 잘못된 사랑은 자기를 파괴하는 고통을 수반한다면 이 잘못된 삶의 자세들은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시키는 고통을 수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뽐내고 교만하고 악담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감사할 줄 모르고 경건하지 않고 무정하고 무자비하며 남을 비방하고 무절제하고 난폭하고 선을 좋아하지 않고 배신하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자만으로 부풀어 있는데 어찌 인간관계가 좋을 수 있겠으며 어찌 이웃과의 관계가 좋을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 포항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청년 2명이 한 처녀에게 자신들은 외국계 비행기 조종사라고 속이면서 접근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처녀와 교제하며 사랑을 나누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성교제 하는데 들어갈 돈이 궁해지자 엉뚱하게도 자기들이 교제하고 있는 이 여자 집에 복면을 하고 침입합니다. 강도 짓을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잘 알고 지내던 터라 이들이 복면을 하고 침입했지만 이 여자가 쉽게 알아보기에 순간 당황하고는... 이 여자를 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시신을 승용차에 싣고 서울로 가 한강에 버렸다가 체포된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점점 악해지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무자비하며 무절제하고 난폭한 사건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이 무슨 현상인가 하면... 말세적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래 사회에 나타날 말세적 현상들이 하나 둘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들이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의 파괴와 가정의 붕괴입니다. 인간이 파괴되기 시작하니까 연쇄적으로 가정도 파괴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살다보니 상대방이 너무 이기주의적이고 자기만 사랑하고 잘 참지도 못하며 무정하고 무절제하고 때로는 난폭하기에 참다 참다 못하여 헤어지는 부부나 깨어지는 가정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니 물론 어른들도 피해를 입지만 더욱 피해를 입는 것은 어린 자녀들입니다.
다음으로는, 미래 사회에 나타나게 될 잘못된 신앙생활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5절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무슨 말씀입니까? 이러한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경건한 것 같습니다. 교회도 다니고 직분도 받았고 교회에서 봉사도 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속빈 강정이라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껍데기인 경건의 모양은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능력도 없고 능력도 부인하면서 위선적으로 말입니다. 그것은 아마 여러 가지 목적 때문에 경건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회적인 체면이나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목적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러한 사회가 미래 사회이며 말세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개인에게서 나타나게 되면 그는 말세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 여러 내용들은 이렇게 다시 알기 쉽게 3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미래 사회가 되면 사랑이 변질됩니다. 미래 사회가 되면 사람들의 삶의 자세도 변질됩니다. 미래 사회가 되면 사람들의 신앙도 변질됩니다. 미래 사회의 삶의 환경은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점점 살기 좋은 환경이 되어가겠지만 사람들 그 자신은 점점 황폐화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미리 알고 미래 사회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 1절입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자, 그렇다면.. 미래 사회가 어떻게 전개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게 되었으면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이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미래 사회의 현상을 알았고 고통도 알았으며 문제점도 다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변질된 것에서부터 다시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인데 이것은 인간 존엄과 인간 관계와 신앙 생활의 치유와 회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치유와 회복에 있어서 가장 잘 듣는 특효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 조금 뒤에 나오는 16-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변질되고 병든 사람을 온전케 하며 다시 새롭게 된 그로 하여금 선한 일을 온전히 행하게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결론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5절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1: 1- 2)
그들의 꾀도 좇지 말고 그들과 함께 걷지도 말며 그들과 자리에 함께 앉지도 말고 그들에게서 완전히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 사회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알고 잘 대비하며 살고 종말론적인 삶을 살되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그러한 불쌍한 자로 살지 말고 언제 오실 지 모르는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며 늘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기름을 준비하며 경건의 모양과 함께 경건의 능력 속에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24: 3- 14절에 보면 제자들은 종말의 징조에 대해 주님께 묻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그 날에는 미혹의 영들이 출현하고, 난리와 기근과 지진의 소문이 있겠으며, 핍박과 박해도 있겠고, 불법이 성행하고 사랑이 식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종말의 결정적인 증거는‘복음의 땅 끝까지 확장’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민족, 온 세상의 복음 전파’ 이외의 다른 것들은 예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 땅에 줄곧 있어온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증거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는 제자된 우리로 하여금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도 소망을 품고 ‘오늘을 종말처럼 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종말의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견고한 신앙을 가지십시오. 전쟁과 난리, 기근과 핍박, 고난과 거짓 선지자들의 등장, 불법이 횡행하고 사랑이 식을지라도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십시오. 사랑하는 가족, 이웃에서부터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요, 민족을 구원하는 일이요, 온 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오늘을 종말처럼 살아가는 지혜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 우리를 죄악에서 구해주시고 영원한 생명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사랑과 겸손한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해주소서.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 행위와 냉혹한 기근이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우리의 삶에 변화를 허락하사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게 하소서.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말세의 징조

마지막 때에 일어날 징조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 징조가 무엇인가 하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으므로 재림의 날짜를 계산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임을 알고 또 경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36절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사도행전 1장 6~7절에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고 물을 때 말씀하시기를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시고 오직 성령의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복음이나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징조로는 말씀하셨습니다.

가. 선민 이스라엘의 징조
마태복음 21장 19절에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한 기사가 기록 되었는데 이것은 장차 선민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을 예표로 보여주셨는데, 사실로 주후 70년에 로마에 의하여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4장 32~33절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멸망했던 이스라엘 나라가 다시 살아나거든 머리 들고 정신을 차리라는 말씀인데, 이스라엘 나라는 2,000년 만인 1948년 5월 14일에 독립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4장 34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한 세대가 몇 년이냐 하는 것인데 30년, 40년을 말한 이들이 있으나 창세기 15장 13~16절에 보면 한 세대를 100년으로 말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라고 했는데, 16절에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하신 것을 보면 400년을 4대라고 하셨으므로 성경에서 한 세대는 100년으로 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이스라엘 독립 후 100년 후에 오신다는 것이 아니라 늦어도 한 세대 안에 마지막 이레, 7년 대환난이 온다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21세기 안에는 마지막 이레 즉 7년 대환난이 시작되고 따라서 예수님의 재림과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멸망의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나. 자연계의 징조
마태복음 24장 29~30절에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8장에 보면 일곱 인의 재앙이 나타나는데 땅 3분의 1이 불타고(핵무기 사용이 아닐까), 바다생물 3분의 1이 죽고(바닷물이 피같이 붉게 되는 것은 적조현상이 아닐까), 큰 별이 강들과 여러 샘물에 떨어져 쑥이 되매 사람 3분의 1이 죽더라(수질오염으로)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7~8절에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고 했습니다. 역사상 전에 없던 큰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 수만 명, 수십만 명이 죽는 일이 요사이 일어나고 일 년에 수백만 명씩 굶어 죽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기후의 변화로 수천 년 얼어붙었던 빙산이 녹아내려 바다 수면이 올라 머지않아 몰디브 같은 섬나라들은 사라지고 만다고 합니다. 또한 석탄이나 석유 같은 지하자원도 몇 십 년 안에 다 고갈되고 마는 때가 옵니다.

다. 국제정세의 징조
다니엘 2장 31절부터 보면 느브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큰 신상을 보았습니다. 머리는 정금으로 되어 있고 가슴과 팔들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데 하늘에서 뜨인 돌이 내려와 신상의 철과 진흙과 발을 쳐서 부스러뜨리매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다 날아가 없어져버리고 우상을 친 돌은 점점 커져서 온 세계에 가득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뜬 돌은 세상나라들을 심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온 세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열 발가락 시대가 오면 머지않아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다는 것입니다. 머리는 바벨론, 가슴과 팔은 메데와 파사, 배와 넓적다리는 헬라, 두 종아리는 철인데 동로마, 서로마로 나뉘어진 로마이고 그 후 구라파에 여러 나라가 연합하면 뜨인 돌이 떨어질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구라파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 유로화를 만들어 여러 나라가 같은 화폐를 쓰고 있습니다. 다니엘 7장에 보면 바다에서 네 짐승이 나오는데 첫째는 사자로 바벨론을 의미하고, 둘째는 곰인데 메데, 파사를 의미하고, 넷째는 큰 철 이를 가진 무서운 짐승인데 열 뿔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로마가 멸망 후 구라파에 열나라가 연합할 것을 의미하는데, 이 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7장 13~14절에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고 했으니 분명한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또 한 적그리스도가 출현합니다. 다니엘 8장 23절에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패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엄장하며 궤휼에 능하며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비상하게 파괴를 행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고 했습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말세가 가까움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얼마나 깨닫고 있는가?
0 나는 심판 날에 주 앞에 설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고 나는 심판날에 구원받을 확신이 있는가?
0 나는 심판날에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자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0 나는 어떤 면에서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내 삶의 푯대는 무엇입니까? 마지막 날 하나님과의 만남이 어떠하기를 바랍니까?
0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이르기 전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
0 나는 항상 주님의 심판을 의식하며 순간 순간을 살고 있는가?
0 주님의 마지막 심판 날 나와 계산하자 말씀하실 때 내가 자신 있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
0 나는 항상 깨어 있어서 마지막 때를 잘 준비하고 있는가?
0 오늘 읽은 하나님의 말씀이 종말을 살아가는 나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0 주의 날이 가까울수록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0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며 내가 버려야 할 교만과 이기심은 무엇입니까?
0 나는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합니까? 혹시 종말의 때에 세상만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0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생각하며 살아갑니까? 매사에 하나님의 평가를 생각하며 결정하고 행합니까?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 영혼을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의 몸과 바이러스에 의해서 질병에 걸리듯이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는 '이기심'과 '변명'이다. 전형적인 '일요 신자'가 드리는 형식적인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주님이 제게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면 기꺼이 지겠습니다.그 대신 짐꾼을 사서 대신 지도록 해주십시오. 제게 정직하게 살라고 하셨지요. 단 장사할 때만은 예외로 해주세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대신 원수의 항복부터 받아 내고 용서하겠습니다. 주님이 물질을 바치라고 하면 기꺼이 바칠 것입니다. 그러나 액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체면을 유지할 정도의 헌금을 드릴 테니 주보에 꼭 이름을 넣어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 주세요."
종은 울려야 종이다. 북은 쳐야 북이다. 신앙은 실천해야 빛이 난다. 마틴 루터 킹은 자신을 '북 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진정한 신앙은 자신을 희생시켜 진리의 소리를 발한다. 건강한 양은 목자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기쁘게 달려간다. 그러나 병든 양은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다.
'이기심'과 ‘변명'은 영혼을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다.
말세가 되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돈을 사랑한다. 오늘도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에게 해가 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또는 자신의 모습에서 발견한다.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는 이기심과 하나님 앞에서 꾸며 대는 변명은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악한 바이러스이다.

4. 찬송: (163장) 언제 주님 다시 오실는지

언제 주님 다시 오실는지 아는 이가 없으니
등 밝히고 너는 깨어 있어 주를 반겨 맞아라
(후렴)
주 안에서 우리 몸과 맘이 깨끗하게 되어서
주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모두 기쁨으로 맞아라

좋은 만남, 복된 만남
복된 만남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기회를 줍니다. 우리 안에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줍니다. 삼중고(三重苦: 입과 눈과 귀의 장애)를 겪는 어린 헬렌 켈러를 만난 설리반은 헬렌에게 있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 가엾은 소녀 속에 감추인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평생 헌신했습니다.
좋은 만남이 좋은 삶을 만들 듯이 하나님과의 만남은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납니다.

하나교회의 비전
1. 365일 예배드리는 교회(히10: 25, 행17:11)
오늘날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매일 말씀을 읽고, 듣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말씀의 거울을 통해 매일 마음을 바르고 깨끗이 하여서 예수와 복음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막8:35)
2. 더불어 사는 공동체 (행2:42- 47)
하나님은 영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육신까지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교회는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안에서 한 가족이 되고, 교회 직영 사업을 통해 청장년의 일자리 마련, 노후생활 보장 등의 꿈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교회(롬14: 17)
정의롭고(선행에 힘쓰고), 근심, 거정, 두려움이 없고(기도에 힘쓰고) 기쁨과 찬송이 넘치는 교회
4.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마22:37- 39)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이러한 꿈과 비전이 있는 교회를 개척하고자 합니다. 연락바랍니다.

하나 교회 한 태 완 목사
전화: 010-7676-3049, 자택: (02) 959-3049
홈페이지: http://comesee.ce.ro, allcome.wo.to
이메일: jesu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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