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란 무엇인가(17)

운영자............... 조회 수 1051 추천 수 0 2003.12.08 10: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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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란 무엇인가(17)

“있을 곳이 없게 하는 것”



본문: 눅2:1-7



지난 월요일 아침 송명희 시인이 다음과 같은 성탄 메시지를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그 메시지의 제목은 "자리를 빼앗긴 노숙자 아기 예수" 였습니다. 그 메시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무식한 느낌인지 모르나 선물을 주는 산타는 사탄 같고 뿔 달린 빨간 코의 루롤프 사슴은 루시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직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과 하나님께서 사람 되신 놀라운 선물을 알지 못하게 하려는 사탄의 방해에 해마다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 분위기 띄우는 날인 양 흥청대는 밤 거리의 캐롤송이 마음을 아프게 만듭니다. 성모 마리아와 요셉도, 그 무엇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릴 수는 없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화려한 백화점 앞의 산타도 분주한 거리의 사람들도, 성모 마리아도 아닙니다. 오직 말씀이 육신 되시고 하나님이 사람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제 만왕의 왕으로 다시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2003년 크리스마스를 맞으며.. 송명희 시인”

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즉시 써서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송명희 시인에게, 2003년도 성탄을 맞으며 지금 우리들의 서글프고 부끄럽고 안타까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서술한 글을 오늘 12월 1일 아침에 보내주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송명희 시인의 글은 그 옛날 누가가 서술했던 서글픈 성탄의 이야기의 글과 꼭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을 몰아내고 우리가 주인이 되어 파티를 열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항상 예리한 영혼의 가슴과 눈과 귀와 손으로 주님을 보고 듣고 느끼고 사랑하며 그리고 세상을 똑 바로 보고 묘사하는 송명희 시인의 글을 저는 너무너무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지난 9월 28일 주일 갑자기 송명희 시인과 부모님이 우리 강변교회에 와서 함께 예배 드릴 수 있었던 것 참으로 좋았습니다. 이번 12월에도 다시 한번 올 수 있으면 너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송명희 시인과 가정에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2003년 12월 1일 김명혁 목사”

송명희 시인은 2002년 성탄절에도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라면 하나로 세 사람이 끼니를 때우고 추위와 배고픔을 안고 이리 저리 방황하는 노숙자 가족을 보면서 얼마나 추울까? 얼마나 배 고플까?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날 새벽에 노숙자로 오신 아기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맏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한 젊은 부부가 외지에서 얼마동안 묵을 숙소를 찾았지만 그들에게 따뜻한 방 하나 빌려 줄 사람이 없어서 그들은 길거리를 헤매었고 마침 그 아내는 임산부였습니다, 하마터면 길에서 아기를 낳을 뻔 했는데 숙소를 찾다 찾다 마굿간에 가서 아기를 낳았던 쓸쓸한 그 노숙자 가족! 그 이야기가 바로 크리스마스 스토리입니다. 해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누구를 위한 크리스마스인가? 누구를 위해 징글벨 종은 울리나? 주인을 잃은 크리스마스와 자리를 빼앗기신 노숙자 아기 예수님을 인해 가슴이 저립니다.”

오늘 아침 12월 첫째 주일을 맞아 “죄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17번째 설교를 합니다. 오늘 아침 설교 제목은 “있을 곳이 없게 하는 것” 입니다. 예수님을 노숙자로 만드는 것이 죄이고 그래서 예수님이 “있을 곳이 없게 하는 것”이 죄란 말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했을 때 있을 곳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찼는데 마리아가 있을 곳이 없었고 아기 예수가 세상에 탄생했는데 아기 예수가 누울 곳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죄는 우리들을 찾아 오신 주님을 노숙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이 있을 곳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문을 닫고, 우리의 집 문을 닫고, 우리의 일터의 문을 닫아 우리를 찾아 오신 주님이 있을 곳이 없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불행한 사실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1:11).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왔으나 너희가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5:43).

예수님이 1907년 조선 땅에 오셨을 때에도 조선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있을 곳이 없게 했습니다. 그래서 길선주 장로님이 “이상한 귀빈과 괴이한 주인”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은 이상한 귀빈이시고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는 괴이한 주인입니다. 존귀하신 분이 비천하고 누추한 땅에 오셨으니 이상한 귀빈이십니다. 귀중한 몸인데도 오셔서 밖에서 오래 기다리시니 이상한 귀빈이시고 전능하신 분이 간절히 두드리시니 이상한 귀빈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같은 귀빈을 맞아드리지 않으니 괴이한 주인입니다. 자애하신 귀빈을 환영치 않으니 괴이한 주인이고 간절하신 음성을 듣지 않으니 괴이한 주인이며 굳게 닫은 방문을 열지 않으니 괴이한 주인입니다.” 길선주 장로님은 준엄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습니다. “문을 열라 문을 열라 문을 열고 환영하라.” 설교가 끝나고 길선주 장로님의 기도가 시작되자 감동을 받은 회중은 여기 저기서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지르며 통회 자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내는 금새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조선 땅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조선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모셔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에 탄생했을 때 베들레헴 사람들은 아기 예수가 있을 곳이 없게 했습니다. 아무도 자기 집을 열고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모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여관 문을 열고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모시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마음을 열고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모시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째 자기 일들에 분주하고 바빴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베들레헴 사람들은 고향 찾아오는 고향 사람 맞느라 정신이 없었고 여관 주인들은 손님 받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갈리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눅2:1-5). 베들레헴은 고향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것이고 돈 벌이로 북적거렸을 것입니다. 헨드릭슨이라는 유명한 주석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것은 재산, 명예, 쾌락, 사업 등에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예수께서 머무르실 방이 없었고, 예수를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바클리라는 주석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오시기를 원했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 너무 많은 잡동사니들이 가득 차 있어서 들어오실 수가 없었다. 지금도 주님은 들어오시기를 원하시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주님을 거절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 가정 일이나 친척 일이나 고향 사람 일이나 사업 일에 정신이 팔릴 때 주님이 있을 곳이 없게 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 일에 너무 분주하고 바쁜 사람은 주님을 모시는 예배 시간과 기도 시간을 모두 빼앗아 버릴 수가 있습니다. 자기 일에 너무 분주하고 바쁜 사람은 주님을 모실 수가 없게 됩니다. 주님을 노숙자로 만듭니다. 주님이 있을 곳이 없게 만듭니다. 이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둘째 아기로 오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베들레헴 사람들이 아기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것은 자기들을 찾아오신 아기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것을 몰랐고 그 아기가 자기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이신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겔덴후이즈라는 주석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주님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도 사람들은 주님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자신의 감정이나 애정이나 생각이나 소원이나 결단이나 행동이나 습관에 들어오시기를 거절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를 때 그것을 거절할 수가 있습니다. 가정 일이 제일 중요하고 사업이 제일 중요하고 공부가 제일 중요하다고 착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거절할 수가 있습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고향 사람들이 더 중요하고 돈 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기들을 찾아오신 가장 중요한 분을 받아드리지 않고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아기로 오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아기 예수를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노숙자로 만들었습니다. 주님이 있을 곳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셋째 아기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헤롯왕은 아기 예수가 유대인의 왕으로, 메시야로 오셨다는 사실을 동방 박사들을 통해서 그리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통해서 듣고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었습니다. 헤롯왕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아기 예수에 대한 지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아기 예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헤롯왕은 아기 예수를 맞아드리는 대신 그를 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애굽의 피난민으로 애굽의 노숙자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듣고 많이 알고 있지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자기 마음과 자기 집에 모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이 자기의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자기 마음과 자기 집에 모셔드렸습니다. 임명희 목사와 이선희 목사가 노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며 예수님을 자기 마음과 자기 집에 모셔드렸습니다. 이천년 전에도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드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베다니에 살던 마리아와 마르다와 나사로는 자기 집을 열고 예수님을 모시곤 했습니다.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니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눅10:38). 세리장 삭개오도 뽕 나무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눅19:6). 베다니에 살던 문둥이 시몬이란 사람도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자기 집에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막14:3). 자기의 문둥병을 고쳐준 주님의 은혜와 한 동내에 사는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려주신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만찬이었습니다. 주님을 자기 집에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무엇이 죄입니까?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이 있을 곳이 없게 하는 것이 죄입니다. 마음 문과 집 문과 일터의 문을 굳게 닫아 걸고 주님이 있을 곳이 없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자기의 마음 문과 집 문과 일터의 문을 열고 주님을 맞아드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 문과 집 문과 일터의 문을 열라고 두드리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문을 열고 주님을 모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의 것을 다 들어내고 항복하는 것을 의미하며 주님을 높이고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으로 하여금 나의 주인이 되게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으로 하여금 나의 마음과 몸의 주인이 되게 하시고, 나의 가정의 주인이 되게 하시고, 나의 일터의 주인이 되게 하시고, 나의 삶의 주인이 되게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안식일 곧 주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주일 하루의 주인이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주일 오후와 저녁 시간에서 주님을 좇아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시24:7). 닫혀있던 것들을 다 여십시다. 숨기고 있던 것을 다 들어내십시다. 손 들고 항복하십시다. 그리고 주님을 모셔드립시다. 주님으로 하여금 나의 마음과 몸과 집과 일터와 시간의 주인이 되시게 하십시다. 성탄의 달과 사랑의 달을 맞아 문을 열고 주님을 모셔 드리는 행복한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324장을 부르시겠습니다.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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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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