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의 하나님

한승지............... 조회 수 1149 추천 수 0 2002.12.19 02: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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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의 하나님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 절- 28 절



우리가 그 동안 수요 기도회 시간마다 데살로니가전서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오늘이 데살로니 가전서의 마지막 시간으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온 성도들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됩니다. 23절 말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들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음으로써 이룩되게 된 것을 데 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에도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 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 라고 축원했습 니다. 로마서 15장 33절에도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 라고 기원했습 니다. 16장 20절에도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고 했습니 다. 고린도후서 13장 11절에 보면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 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고 했습니 다. 빌립보서 4장 9절을 보세요.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고 했습니다. 평강, 이 얼마나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입니까! 유대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만날 때나 헤어질 때 샬롬(Shalom)! 이라는 인사를 합니다. 평안을 비는 인사입니다. 보통으로 평화는 소극적인 개 념으로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정도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히브리말 샬롬은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것은 특별히 영적인 일에 있어서 번창하는 것을 의미하고 번영을 뜻하는 것입니다. 히브리말 샬롬은 헬라말 에이레네( ) 로 번역이 되었는데 구약에서 샬롬이 지니 고 있는 뜻이 이 단어 속에 들어가서 평화란, 우리의 영혼과 몸 전체가 풍성해지는 것을 의미합니 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온 세계 인류가 그렇게도 찾고 있 고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평화입니다. 공부를 하는 사람도 많은 지식을 얻으면 평안하게 살리라는 기대 속에서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합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도 열심히 장사해서 돈을 많이 모으면 평안하게 지내리라 믿기 때문에 장사를 합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권력의 자리에 앉으 면 평안하리라 생각되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권모술수도 사양치 아니하고 권 력을 잡으려고 혈안이 됩니다. 평안, 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는 평안이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 다. 여기에 인간의 비극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려오는 말에 가난이 싸움이다. 는 말이 있습 니다. 너무 가난하기 때문에 다투지, 돈이 많아서 사고 싶은 것 마음대로 사고 쓰고 싶은 대로 쓸 수만 있다면 다툴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고 말합니다. 그래서 찢어지게 가난하다. 는 말을 씁니 다. 가난의 극치를 표현할 때 흔히 쓴 말이었습니다. 옛날 가난한 집에는 도무지 이불이 한 채밖 에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서 식구는 일곱이고 여덟이고 되 는데 잠자리에 들 때는 사방에서 조심스럽게 들어가야 하고, 잠이 들면 어깨가 서늘해질 때 별생 각 없이 이불을 잡아당기게 되니, 사방에서 이렇게 잡아당기니까 이불이 찢어질 것 아니겠습니까? 오죽 가난했으면 이불이 찢어지겠습니까?그리고 또다른 한가지는 전에 일제 말엽에 소위 보리고개 가 되면 집에 쌀이 다 떨어지게 되고 햇곡식은 미처 나오지 않아서 채 익지 않은 곡식을 베어다가 쪄서 말려 가지고 식량을 만들 정도였습니다. 봄철이니까 소나무에 물이 올라 그 두꺼운 껍질을 벗기면 내피가 나오는데 달콤한 물이 오르는 때이므로 그 내피를 칼로 벗겨서 익혀가지고 쌀가루 와 같이 섞어서 빚어 솥에다 찌면 그것이 송굿떡이 됩니다. 그것을 먹으면 배가 고픈 때이니까 맛 도 그런대로 먹을 만하고, 한 덩이를 먹으면 미음이나 죽을 먹은 것보다 빨리 꺼지지 않아 점심 때가 되어도 저녁 때가 되어도 배고픈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니 몸이 못 쓰게 되는 것 은 생각할 여지도 없이 그저 당장 배가 고프지 않으니까 농촌에서는 송굿떡을 해먹었습니다. 먹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이튿날 변을 보는 게 큰 문제입니다. 소나무 내피의 그렇게 질긴 섬유소가 뱃 속에 들어가니까 소화가 되지 않아 배는 고프지 않으나, 수분을 다 흡수해서 변비가 아주 심해져 서 그렇게 고생스러울 수 없고, 나중에는 정말 어려우면 젓가락으로 항문을 쑤시는데 결국 항문이 형편없이 찢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난의 극치를 말할 때 찢어지게 가난하다. 고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먹을 것, 입을 것 넉넉하고 좋은 집 쓰고 살면 평안합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돈 만 많으면 평안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돈 없는 사람보다 돈 많은 사람이 더 불안하게 사는 경 우가 너무 많은 것을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권력은 어떻습니까? 최고의 권력 을 잡으면 평안합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갈수록 더욱 불안한 것입니다. 대통령의 자리는 평 안합니까? 여러분 대통령이 어디 갈 때 혼자 갑니까? 여러 수행원이 따르고 경호원이 경호를 합니 다. 왜요? 보기 좋으라고 그러나요? 두려워서 그럽니다. 우리 대통령이 예수 믿는 분이신데도 주 일이 되어도 예배당엘 마음대로 못나오신다고 해요. 왜요? 경호하는 것이 어려워서 그런답니다. 권력의 자리가 우리에게 평안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교회 오실 때도 혼자 오실 수 있다 는 것이 얼마나 복된 지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디 잠깐 나가도 경호원이 동원되려면 얼마나 불 편하겠어요?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평안을 주시겠다 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평안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평안이 다릅니다. 아마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께서 세상이 주는 평안을 기대하고 나오셨다면 크게 실망하고 돌아가실 것입 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이란 피상적이고 일시적입니다. 그것은 재물이나 지위나 권력 같은 세상 환경 조건에서 오고 또다시 그 환경 조건이 빼앗아가는 평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주시는 평안은 중심적이고 항구적이고 절대적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아무런 환난이나 곤고나 재앙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만일에 그렇다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미신이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소위 무속 신앙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모든 환난이나 역경을 물리치게 해달라는 것 아닙니까?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그것하고는 완전히 그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장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고 하시면서 세 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고 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평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두말할 것 없이 예수님이 가지셨던 평안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평안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의 육신 생활을 보면 아무리 보아도 그가 결코 평안한 생활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 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 말씀하실 정도로 생활하셨습니다. 본래 그는 마굿간에서 나시고, 어려서 애굽으로 피난살이할 수밖에 없었고, 갈릴리 나사렛 가난한 목수의 집에서 어릴 때부터 수고스럽게 목수의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전도하시는 동안에도 많은 고생과 핍박을 당하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일생을 회고해 볼 때 육신적인 면에서는 결코 평안한 생활 을 하셨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평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마디로 마음의 평강입니다. 심령의 평안입니다. 양 심의 평안입니다. 이와 같은 평안이 어디서 옵니까? 주님과 함께 하는 가운데서 오는 평안입니다. 주님께서 이와 같은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이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시기를 빌었습니다. 사실 주님을 온전히 따르며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 은 이런 평강을 소유했습니다. 이런 평강이 참 평강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무슨 일 을 해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몸도 건강하고 좋아집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부인 들이 음식을 만들어도 맛이 있습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장사하는 사람이 장사를 잘 합니다. 마음 이 평안해야 공부하는 학생이 공부를 잘 합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학생이 시험을 바로 치를 수 있 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중 하나가 모든 사람에게 이 마음의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평화를 다 소유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1.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후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2.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벌리고 달려와도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3.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 으사 흰눈보다 더 정하겠네4.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려날 때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없겠네 그러면 어떻게 이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과 평화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1절 말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 안에서 하나님이 지으 신 생명을 가지고 살면서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데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법대로 살지 아니하고 오히려 악을 행하고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과의 관 계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상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인간은 자유스러울 것 같고 평 안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와 반대입니다. 무엇이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끊어버립니까? 죄입니 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불안과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죄지 은 사람의 마음 속에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처럼 된다는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리고 평안했습니까?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악인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합 니다. 왜요? 무서워서입니다.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아니 하셨는데 하나님이 무서워서 동산 나무 뒤에 숨었다고 했습니다. 악인이 숨을 곳이 있습니까? 그 러니까 불안합니다. 두렵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 나타나셔서 숨어 있는 아담과 하와 를 찾으시고 가죽 옷을 해 입히셨습니다. 여기 신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입은 가 죽옷은 의미가 깊은 옷입니다. 가죽을 만들려면 짐승을 잡아야 합니다. 짐승을 잡으면 피를 흘려 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다만 우리에게 윤리적인 교훈이나 주시기 위해서 가 아닙니다. 아름다운 생활의 본이나 보여 주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놀라운 이적을 보여 주시 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끊 어진 것을 회복하고 화목의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 스도는 세례요한이 소개한 그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님은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된 우리와 화목하게 하는 제물 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아무리 큰 죄, 아무리 더러운 죄라고 해도 회개하면 하나님께 로부터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평화를 가져오게 되고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안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도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 로 되어 간다. 고 말했습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하루 종일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생각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착한 생각을 하면 지 각 밖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을 지켜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 리의 생각은 밖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 경건한 생각을 하면 경건하게 살 것입니다. 늘 깨끗한 생각을 하면 깨끗하게 살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각을 하면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 므로 우리는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일에나 부 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말은 듣지 않아야 합니다. 성공하고 승리한 사람들을 보세요.그들은 삶의 부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용기를 꺾은 말을 하는 것을 물리쳤습니다. 사람이란 무슨 일이든지 생각하는 데 따라서 달라지는데 부정적으로, 소극적으로, 비관적으로, 절 망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적극적인 생각입니까! 이 얼마나 힘이 솟아나는 말씀입니까!골로새서 3장 1-2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 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것을 생각하고 땅엣것을 생각 지 말라 위엣것을 생각할 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평강이 임합니다. 땅엣것을 생각하는 동안 우 리에게 평강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시편 42편 5절 말씀 기억하십니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 리로다 하나님을 바라면 마음의 불안이 사라지고 오히려 찬송할 수 있는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감정을 통제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잠언 16장 32절에 이렇게 말 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 보다 낫다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를 돕던 사람들이 그에게 불충성하고, 그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그를 배신하고, 뒷전에서 그를 무시하고(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그의 촌스러운 행동을 비웃으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는 복받쳐오르는 감정을 통제했습니다. 한번은 아브라함 링컨이 백악관에 있을 때 말 많은 사람들이 링컨이 흑인 여자와 몰래 살고 있어서 그처럼 흑인 편이 되었다고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링컨이 어떻게 했을까요? 물론 그 말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링컨은 이 비열한 사람 과 싸우면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긴다고 해도 더러운 냄새를 풍기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비난을 받을 때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 극 복해야 합니다. 잠언 26장 4절에 보면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에 따라 그에게 대답하지 말라 두 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고 말씀했습니다. 비난을 받을 때 변명하거나 대꾸하지 않는 것 이 현명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난이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뿐입 니다. 비난에 대해서 격렬하게 반응할 때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많은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정확하지 못하고, 우리의 결정이 현명하지 못하며, 우리의 한 말이 생각해보면 후 회스러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코끼리 한 마리가 걸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모퉁이를 돌아오는데 작은 개미 한 마리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렇다고 코끼리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개미를 위협하겠습니까? 넷째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주님을 바라 보지 않고 내일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어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입 니다. 내일은 약속 어음이기 때문에 오늘 사용할 수 없는 미래입니다. 우리에게는 오늘이라는 현 재가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과거에 얽매여 살지 맙시다. 반 대로 미래를 점치며 살지 맙시다. 바울처럼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미래를 바라보며 오늘을 쫓아가 는 생활을 합시다. 매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에 한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양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광야에 사는 이스 라엘 사람들에게는 먹을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먹어야 할 만나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자원은 단지 오늘을 위한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미래 속에 영원히 살지 맙시다. 하나님의 평강과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대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현재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오실 때 언제라도 주 님을 만나는 데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주께서 이 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그때 주님의 대답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 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미래에 대한 가장 좋은 준비는 현재를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을 붙드셔야 합니다. 리차드 박스터는 우리에게 후회가 될 일, 하나님의 영광을 드 러내지 못할 일, 남이 보는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데 절대로 시간을 소비하지 마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늘을 삽시다. 하나님께서 오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 다.그리고 어제는 모두 도로 가져가셨습니다. 내일의 모든 것은 아직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평화합시다. 하나님 안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우리의 감정을 통제합시다. 그리고 열심으로 성실하게 오늘을 살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조준 목사



예화포커스 (시리즈1-50권)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육, 교회, 믿음,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효도, 행복 등 각 주제별로 한권씩 책이 이루어져 있고, 책마다 주제의 성경 말씀들과 그에 맞는 예화(80여개), 묵상자료, 금언, 기도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 태 완 목사 편저, 좋은 땅, 각 권 값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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