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평화의 십자가 지고 골고다로 오를 것인가

한승지............... 조회 수 783 추천 수 0 2001.11.27 09:19:08
.........
누가 평화의 십자가 지고 골고다로 오를 것인가




지난 11월 4일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의 5주기 추모식이 있었다. 중동평화의 선구자인 이츠하크 라빈 전 총리는 1995년 텔아비브의 한 평화집회에서 극우파 유대인 청년 이갈 아미르에게 암살되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아미르는 최근까지도 “암살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암살 당시 그가 외친 것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왜 평화와 바꾸려 하는가? 나는 하나님이 시켜서 쏘았다”는 것이었다.


4000년 전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의 불화에서 시작된 유대인과 아랍인의 충돌은 특히 현대사 100년간 극심하게 표출되었다. 두 민족간의 피흘림은 새천년 들어서도 격랑을 타고 있다. 평화의 가치는 고귀하지만 평화의 길은 가시밭길이다. 누가 평화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골고다로 오를 것인가?





1993년 오슬로협정 체결. ‘땅과 평화의 교환’을 약속한 획기적인 평화로의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1995년 9월 오슬로Ⅱ협정. 라빈 전총리가 워싱턴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나 요르단강 서안 점령지를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로 넘겨주기로 한 것으로 중동평화는 순조롭게 진전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4일, 라빈은 암살되었다.


팔레스타인측에서도 하마스나 이슬라믹 지하드 같은 강경파는 오슬로협정 자체를 문제삼는다. 남부 레바논에서 헤즈볼라가 끊임없는 테러와 무장투쟁을 통해 이스라엘군을 철수시킨 것처럼, 우리도 협상을 통해 구걸하지 말고 점령지에서 스스로 철수할 때까지 피를 흘리자는 것이다.


미국이 막대한 평화정착금을 지불하며 양 민족과 주변국을 설득해 평화시스템을 정착시키려 중재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이해를 달리하는 주체들이 양측 내부의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 평화 이행을 지연시키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가나안땅, 현 팔레스타인 점령지 포함)이니 아랍인은 이땅에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50%에 이르는 과격파 유대인들과 “협상이 아닌 성전을 통해 67년 점령당한 우리땅을 반드시 도로 찾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나 이슬라믹 지하드가 그 핵심이다. 유대교는 이스라엘 국회인 크네셋에 상당수의 강경파 지도자들을 진출시키고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현 바라크 총리가 이끄는 ‘한 이스라엘당’은 강경파 지도자 샤론이 이끄는 제2당 리쿠드당의 도움없이는 정책 결정이 어려운 상태다. 리쿠드당은 바라크 정부 출발 당시 연정을 통해 공동보조를 취해오다가 얼마전 바라크가 땅과 평화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연정에서 탈퇴해 바라크를 곤경에 빠뜨렸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 역시 협상에 나선 아라파트를 압박하며 게릴라식 테러를 통해 유대인 살상에 극히 민감한 이스라엘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반복되는 공격, 보복 속에 피흘리는 아랍인들


지난 9월 29일부터 시작된 유혈충돌로 인한 사망자는 11월 10일 현재 200명을 넘어섰다. 테이블에서는 평화협상이 계속되는 한편, 점령지 안에서는 전쟁상황과 같은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사실 모든 면에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상대가 안된다. 창살 없는 감옥과 같은 점령지 안에서 출입구와 마찬가지인 검문소의 이스라엘 군인을 향해 공격하거나 야밤을 틈타 점령지 근처의 유대인 정착촌을 공격하는 것 그리고 게릴라식 폭탄테러가 전부다. 그나마 이같은 공격을 받으면 이스라엘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대로 곧바로 보복공격을 감행한다. 무력으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전 수상 네타냐후(리쿠드당)는 ‘무력으로 지키는 평화’를 주장하고, 온건파로 시작한 바라크 현 총리도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면서 매우 공격적인 입장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잦아드는 듯하던 상황이 파타운동 산하 무장조직 탄짐 지휘관 후세인 아바야트에 대한 이스라엘군 헬기의 미사일 공격으로 다시 불거졌다. 아야바트의 장례식에 참석한 수만명의 아랍인들은 시위대로 변하여 다시 거리로 나섰고, 팔레스타인 저항단체들은 샤울 모파즈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을 보복 살해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는 이들은 거의 다 팔레스타인인들이다.





유혈 분쟁의 장기화, 무엇 때문인가


이러한 죽음의 행렬 속에서 팔레스타인의 정치 지도자 아라파트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유대인들은 아라파트를, 시위대 맨앞줄에 여자와 아이를 앞세워 그들이 다치면 국제동정여론을 이끌어내는 비열한 인간으로 치부한다.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한때 70%에 육박했던 그의 인기는 현저히 하락했다. 내부의 분위기가 협상에 불려 다니는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쪽으로 바뀌자 협상의 여지는 남겨두면서도 강경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전략은 유혈분쟁을 장기화시켜 약자인 자신들에게 포격을 가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자극하면서, 유대인의 유혈을 유발시키는 방법으로 이스라엘이 협상테이블에 나오도록 한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87년 인티파다 이후 6년만에 오슬로 협정을 이끌어낸 것이나 남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 군이 유혈사태를 견디지 못하고 퇴각한 것이 좋은 본보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같은 전략을 통해 아라파트가 주장하는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로 인정, 유엔결의안에 따른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보장,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등을 관철시킬 수 있을까?


가장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은 동예루살렘의 소유권 문제이다. 결국 현재 내부 관리는 팔레스타인에서 하고 외곽경비는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것처럼 공동관리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랍인들은 동예루살렘 내 알 아크사 사원을 메카, 메디나에 이어 세계3대 성지로 삼고 있다. 무슬림들은 이 세 곳의 성지를 다 가보아야 순례를 마치는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소유권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한편 과격파 유대인들은 이곳이 솔로몬 성전터이므로 현재의 알 아크사 사원을 부수고 그 자리에 성전을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팔레스타인이 9월 28일 샤론 리쿠드당 당수의 알 아크사 사원 방문을 ‘사원 파괴=성전재건을 위한 답사’로 보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도발’로 규정하여 이번 유혈분쟁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알 아크사 사원에 대한 그러한 인식은 유대교뿐 아니라 미국 등지에서 세대주의신학 경향을 따르는 상당수의 개신교도들도 동일하게 갖고 있다.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공동관리’에 들어가더라도 여전히 불씨는 남게 될 것 같다.





아라파트는 국제감시단의 파견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약자의 입장에서 분쟁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외부의 힘을 빌어 빼앗긴 점령지 반환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감시단이 파견된다고 해도 미국과의 방위조약체결도 거부한 채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고집하는 이스라엘에서 그들이 실효성을 거둘지는 의문이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문제도 쉽지 않다. 요르단에 제일 많은 난민이 살고 있는데(450만명 인구의 75%), 이들은 이미 요르단 국적으로 살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수백만명에 이르는 난민의 유입에 동의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풀리지 않는 난맥상은 평화협상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하지만 관광수입이 국가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는 이스라엘에 두달 가까이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긴 것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유대인 경제에 종속적인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평화를 위해 심어가는 사람들


평화의 해법은 없는 것일까? 해묵은 아픔들이 하루아침에 치유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우리 나라의 동서간 갈등이나 남북간 이데올로기의 골을 보아도 알 수 있고, 운동경기 때마다 돌출되는 한일간의 민족 감정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동족간에 재결합을 이룬 동서독 사람들간에도 ‘오씨’니 ‘베씨’니 하는 구분이 있는 것을 보아도, 끊임없이 유혈충돌을 거듭해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문제를 정치적인 합의점을 찾는다고 해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스라엘이 불모의 땅에 물을 대고 나무를 심어 사막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처럼, 무모한 것처럼 보이는 민족적 불신과 원한의 골짜기에도 누군가 평화의 씨앗을 심어가야 한다. 힘의 균형에 의한 평화는 언젠가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다시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이같은 아픔의 현장에 소리없이 평화를 심는 이들이 있다. 30년 전 도미니크수도회의 브루노 후사르 선교사는 가자지구와 예루살렘의 중간쯤 되는 곳에 네베 샬롬이라는 공동체 마을을 만들었다. 현재 이 공동체에는 50가정 200여명의 유대인과 아랍인이 반반씩 평화롭게 살고 있다. 서로 결혼한 가정도 한 가정 있다. 이 마을의 학교에서는 히브리어와 아랍어는 물론 두 민족의 문화를 함께 가르친다. 네베 샬롬은 ‘평화의 오아시스’라는 마을 이름의 의미처럼 평화의 영성을 실현한 한 선교사의 좋은 사역 모델을 보여준다.


실리가 설득력을 잃을 정도로 골이 깊은 감정싸움, 영토싸움, 종교싸움의 폭풍 속에서도 우리는 부르노 후사르 선교사처럼 영혼 사랑의 진리를 품고 유대인과 아랍인을 끌어안는, 평화를 심는 이들이 필요하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이들이 이미 유대인을 향하여, 아랍인을 향하여 복음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들어가 있듯이 말이다.


오는 12월 24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내 베들레헴에서는 예수 탄생 2000년 행사가 열린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울고 계실지 모른다. 살육의 현장을 바라보시며 가슴저미는 연민의 눈물을, 흘리실 것만 같다. 그리고 이러한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용서와 치유’라는 평화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골고다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 당신의 아들들을 보시며 또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계실지 모른다. 그들이 심은평화의 씨앗들이 자라나 숲을 이룰 그날을 바라보시며.


/유종성 기자




예화포커스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육, 교회, 믿음,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효도,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기도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 태 완 목사 편저, 좋은 땅 (전화:386-8660), 각 권 값3,800원


http://truthway.ce.ro,


http://je333.ce.ro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7677 구원의 결정권 운영자 2001-11-26 736
27676 오직 그리스도만이 구원하신다 운영자 2001-11-26 1140
27675 빼빼로 운영자 2001-11-27 683
27674 비판보다 칭찬을 앞세우십시오 운영자 2001-11-27 608
27673 사랑이 빛을 발할 때 운영자 2001-11-27 614
27672 예수님의 십자가와 히틀러의 꺾인 십자가 운영자 2001-11-27 1416
27671 노인에게도 일자리가 필요하다 운영자 2001-11-27 477
27670 막힌 담을 헐어야 합니다 운영자 2001-11-27 690
27669 평화와 공존만이 살 길이다 운영자 2001-11-27 595
» 누가 평화의 십자가 지고 골고다로 오를 것인가 한승지 2001-11-27 783
27667 꿈속의 심판대 운영자 2001-11-27 679
27666 두 팔을 써보라! 운영자 2001-11-27 712
27665 마지막 구원자 운영자 2001-11-27 820
27664 마지막 구원자 운영자 2001-11-27 1034
27663 맹견에게 물려 죽은 아이 운영자 2001-11-27 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