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으실 만한 헌금(90)

복음............... 조회 수 973 추천 수 0 2004.06.29 05: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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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실 만한 헌금(90)



본문: 마가복음 12:43- 4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미국의 어느 주일학교 예배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헌금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든 아이가 헌금을 하는데 한 아이만 헌금은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앉아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따로 불러 사정을 물어보았더니 아이는 집이 너무 가난하여 헌금할 돈이 없어 대신 그 시간에 기도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무슨 기도를 하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내 몸과 생명과 내 일생을 바치겠다고 기도드려요." 그 말에 감동한 선생님은 아이를 격려하고 나서 약간의 돈을 주고는 잔돈으로 바꿔 매주일 1달러씩 헌금하라고 말했습니다. 몇 주일이 지나자 매주 꼬박 꼬박 헌금을 하던 소년이 더 이상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잔돈으로 바뀌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헌금을 했는데 사먹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어요. 사먹으면 죄를 지을 것 같고... 그래서 지난 주일에 몽땅 바치고 이제는 다시 기도만 하기로 했어요."

어려서부터 이렇게 성실하게 기도하던 소년이 바로 1884년 부활절에 한국에 온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님입니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열왕기상 17:13)

우리가 헌금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레27: 30, 말3:10)

하나님과 예수님도 명령하셨고(마23: 23), 성령도 권유하셨으며(행2: 44), 성도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눅8:3)

둘째,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구원해 주신 데 대한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서입니다.(창28: 20- 22, 출23:13))

셋째, 모든 것을 주께로 받았기 때문입니다.(대상29:10, 14)

옛날 강서지방 함동 교회에 김태연이라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출석한지 1년도 안됐지만 신실한 믿음생활로 인하여 이웃 사람들도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김씨는 새벽기도회와 전도한 일에 열심을 다하였습니다. 그는 직업을 잃는 한이 있어도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신앙인의 태도임을 고백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습니다. 특히 그는 예배당을 수리하는 데 100원(당시 쌀 한가마니가 1원)을 헌금하였고, 유치원에 50원을 보조하면서 "다 주의 것임을 깨닫고 바치는 것이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넷째, 하나님을 공경하는 한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마6:19- 24)

다섯째, 성도는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이므로(눅16:11- 13)

여섯째, 사역자들이 복음 전파 사역에 전념토록 돕기 위해서입니다.(고전9:4- 14, 빌4:15, 16)

영국의 어떤 교회에서 5살 된 한 소년이 헌금을 했습니다. 헌금 시간에 헌금을 하는데 1페니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으로 꼭 신약성경을 사서 인도에 보내 달라고 지정했습니다. 이것은 그냥 우습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5살 된 소년의 뜻을 귀중하게 여겨 그 교회 목사님이 조금 보태어 아주 작은 신약성경 한 권을 사서 소년이 사인을 해, 그 책을 인도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 소년도 잊었고 목사님도 잊었습니다. 20년 후 이 목사님이 인도에 들러 어떤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그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참 진지하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이 마을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까 ?" 그때 뜻밖에도 한 선교사가 이 마을을 찾아와서 작은 신약성경 한 권을 건넨 것이 그 마을의 복음화의 기초가 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성경을 가져왔습니다. 다 떨어지고 남루한 자그마한 신약성경의 마지막 표지에서 20년 전 자기 교회의 5살 된 어떤 소년의 사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역사는, 복음의 위대한 역사는 트럼펫을 울리는 거창한 선전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작은 겨자씨 하나, 그리고 작은 누룩을 통해서 가장 놀라운 일이 시작됩니다.

일곱째,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신14:28, 29, 고후8:14, 15)

어덟째,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성도간의 사랑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방편이 되기 때문입니다.(고후9:13, 14)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몬타나 주의 빌링이라는 곳에서 기차를 세우고 간단한 연설을 할 때의 일입니다.

두 명의 어린 소년이 경찰의 제지선을 넘어서 앞으로 나와 대통령과 그 부인 그리고 유명한 인사들이 자리한 곳 바로 밑에서까지 와서 섰습니다. 그 중의 한 소년이 손에 잡고 있던 작은 미국 성조기를 번쩍 들어서 대통령에게 바치자 부인이 그 국기를 받아 들었습니다. 함께 나왔던 다른 소년은 침울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국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른 자기의 호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찾아 손에 쥐고는 대통령에게 뻗쳤습니다. 그것은 10센트 짜리 동전이었습니다. 대통령은 몸을 구부려서 그 소년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후 5년이 지나서 윌슨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던 부인이 대통령의 지갑을 열어 보았더니 지갑의 따로 된 칸에 5년 전에 소년이 드린 선물인 10센트 짜리가 종이에 쌓인 채로 넣어져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어디를 가든지 소년이 바친 그 선물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이 바치는 예물은 주님께서 이처럼 기억하시고 간직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상급으로 갚아주시고 생명의 면류관으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홉째, 신앙을 성숙시키는 한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빌4:17)

오래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한 부자 장로님이 목사님을 찾아가 권면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 여집사님 한 분이 혼자 살면서 어린아이 다섯을 키우느라 무척 어렵게 삽니다. 남의 집 빨래를 하는 등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분이 주일날이 되면 꼭꼭 5센트의 헌금을 합니다. 큰 액수는 아니겠지만 그 여집사님한테는 적지 않은 액수입니다.” 이 장로님은 2불씩을 헌금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5센트의 2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장로님의 권면인즉 그 여집사님의 몫까지 자기가 대신할테니 그 집사님 불러서 헌금하지 말라고 얘기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권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 집사님을 불러“장로님이 당신 사는 것이 너무 어려운 줄 알고 매주 헌금하는 것을 대신 내주겠다고 하니 다음 주일부터는 헌금 안 하셔도 괜찮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여집사님은 앉은자리에서 목을 놓아 우는 것이었습니다. “왜 우십니까?”하고 목사님이 묻자 여집사님은 대답했습니다. “제가 비록 남의 집 빨래를 해가며 고생스럽게 살지만 하나님께 5센트씩 바칠 때에는 더할 수 없이 기쁘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을 왜 빼앗으려고 하십니까?” 이리하여 장로님도, 목사님도 회개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친다고 할 때에 바치는 일 자체가 엄청난 기쁨입니다. 이것을 바침으로써 복받고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이나 헌금은 그 행위자체에서 기쁨과 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열 번째,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빌4:18, 19)

한 처녀가 집이 너무 가난하여 중학교를 겨우 마치고 취직 자리를 찾았으나 할 수 없이 어느 집에 식모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형편에서도 주인의 양해를 구하여 주일에는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하는 처녀였습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교회건축이 마무리 단계에 왔으나 재정이 모자라 중단할 위기까지 되었으며 내일 밀린 인건비를 주지 않으면 인부들이 목사님께 행패를 부리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처녀는 5년 간 식모살이를 하며 쓰지 않고 모아둔 돈을 몽땅 찾아서 목사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버릇없는 사람들이지 돈을 제때 못 준다고 주의 종에게 행패를 부리다니 말이 됩니까?" "자매님, 이 돈이 있어야 시집이라도 가지요."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한 푼 없어도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목사님은 헌금을 받았으나 그 어린것이 갖은 고생을 하며 소중히 모은 돈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자매와 함께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건축은 계속되었고, 이 사실을 들은 온 교인들은 눈물로 회개하고 헌금하여 교회는 완공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인들 중에서 큰 회사의 사장인 장로님이 무조건 우리 며느리라며 납치하다시피 데려가서 돈 한 푼 없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감한 투자를 하는 자에게 과감한 복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열한 번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입니다.(출36:3-5, 대상22:14- 19)

생명의 삶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우리교회에는 건축헌금이란 명목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이 내는 대부분의 헌금은 구제와 선교에 쓰였습니다. 그런데 요도바시 교회를 떠나고 난 뒤 예배 장소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교인들은 솔선수범해서 건축헌금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6년 전이었을까? 단 한번 강대상에서 건축헌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요도바시 본 교회에서 우리에게 나가달라고 할 때 답답한 마음으로 성도들에게 우리도 건축헌금을 하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3년마다 교인의 30% 이상이 바뀌는 유학생 교회에서 건축헌금을 낼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정해진 기간 동안만 다니게 될 교회의 건축에 무슨 큰 관심이 있으랴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직장을 가지고 있던 제직들이 먼저 자신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들은 교인들에게도 이제는 건축에 동참하도록 설득하자고 했지만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잠을 설쳐가며 새벽부터 신문을 돌리는 학생들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스스로 이 일에 동참했습니다.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면서도, 신문을 돌리면서도 그 작은 월급에서 십일조를 바쳤고 건축헌금을 떼냈습니다. 심지어는 건축헌금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하는 형제들도 있었습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벅차 오르는 가슴을 안고 강대상에 엎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저들을 도와 주시고 축복해 주세요. 저들이야말로 주님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자들입니다.”

헌금하는 바른 자세는 어떠해야 할 까요?

1. 흠이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레1:3, 말1:14)

2.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출25:2, 출36:6, 고후 9:7)

쉐이퍼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의 예배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목사님이 "이제 헌금을 드립시다"라고 하면 모든 성도들이 박수를 치는 순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교회에서 그런 순서를 만든 까닭은 "하나님은 즐겨 내는 사랑하신다"라는 성경 말씀대로 좀더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참된 기쁨으로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며 축복을 더해 주십니다. 그러나 예물을 기쁘게 드렸다고 해도 공동체 안의 분란과 마음속에 분함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마음과 형제간에 화목하지 못한 상태는 병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요일 4:20).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가 화목한 사람만이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4)

3. 능력에 맞게 드려야 합니다.(레14:30, 신16:17)

프랑스 파리의 어느 교회에서 선교사를 보내기 위한 헌금을 하는 중이였습니다. 서양에서는 헌금 접시를 돌릴 때 만약 큰돈을 가졌는데 적게 내고 싶으면 헌금 접시에 큰돈을 놓고 잔돈을 거슬러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기 형편대로 또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은 흉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그 헌금 접시가 어느 눈먼 사람 앞에 멈추었습니다. 그 사람은 1프랑도 헌금할 수 없는 형편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7프랑을 접시에 세어서 놓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옆 사람이 "당신이 어떻게 그많은 돈을?" 하고 묻자, 눈먼 사람은 웃으며 "저는 눈이 안 보이지요.

그런데 제 친구에게 물어보니 저녁 때 불을 켜는 비용이 일 년에 27프랑이 든다고 하더군요. 나는 불을 켤 필요가 없으니 일 년이면 이만큼의 돈을 저축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모은거죠. 그래서 예수님을 몰라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참빛이 비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이 이야기 또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4. 은밀하게 드려야 합니다.(마6:3)

어떤 목사님의 글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희 교회에 출석하시는 주용삼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작년 6월 마지막 주일 아침, 제 손에 봉투를 하나 꼭 쥐어 주시면서 “목사님! 이 돈은 정말 값지게 모은 것이니 값지게 사용하여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봉투를 열어 보니 100만원 수표 두 장이었습니다. “목사님. 새벽기도 올 때에는 이 길로 오고, 갈 때는 저 길로 가면서 길거리 신문지 박스 조각 휴지를 모았다가 팔아 저금하고 또 모으면 저금하여 6개월 간 모은 돈입니다. 누가 들으면 장로가 조잡하다고 할 터이니 창피합니다. 절대로 말하지 마십시오”

장로님의 집과 교회의 거리는 걸어서 15분입니다. 나는 이 말이 끝나자 말자 “절대로 말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주장로님은 지난 12월 말에도 그렇게 하여 300만원을 또 제게 들려주었습니다. 오늘도 새벽예배를 오가며 종이를 줍고 계십니다."

5. 규칙적으로 준비하여 드려야 합니다.(고전16:2)

6. 환난과 많은 시련 중에서도 넘치는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대상22:14, 고후8:2)

어느 주일 아침 어떤 목사님이 예배를 드리려고 목사관 현관을 나서는데 웬 거지가 가로막았습니다. 눈썹도 없고, 코도 문드러졌고, 손가락도 보기 흉하게 일그러진 한센병 환자였습니다. 목사님은 놀라 흠칫 뒤로 물러섰습니다. “목사님을 뵙고자 왔습니다”“제가 목사인데요”“목사님, 저도 신자입니다”“그러시면 예배를 드리러 갈 것이지 나는 왜 찾으시오” 목사님은 불결한 생각과 함께 몹시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어서 나를 만나고자 하는 용건이나 말하시오. 예배 시간에 늦겠소”“목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아무리 거지라도 나름대로 소득이 있습니다. 지난주간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왔습니다. 제가 예배당에 들어가면 성도들이 싫어하고 예배에도 방해가 되니 목사님께서 대신 바쳐달라고 왔습니다. 제 십일조 좀 하나님께 바쳐주세요”

7.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려야 합니다.(막12:42- 44)

시골의 작은 교회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교회사택 옆에 사시던 한 여자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과 살면서 회갑을 훌쩍 넘기고도 믿음을 지키며 낮에는 열심히 농사짓던 전형적인 농촌의 아낙네였습니다. 논에 모를 심고는 추수 전까지 권사님은 밭을 일구며 호박 오이 감자 고추 등을 따서 머리에 이고 새벽차를 시내로 물건을 팔러나가곤 했습니다. 시장의 좋은 목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동트기 전에 떠나야만 합니다. 그분은 산부인과 수술까지 받아 허리가 꾸부정하고 불편했습니다. 그런 몸을 이끌고 시장에 나가 물건을 팔고 주일이면 어김없이 감사헌금 드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던 분이었습니다. 어느 금요 기도회 시간. 좀처럼 말이 없던 그분이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주는 새벽부터 장에 나갔는데 1주일 내내 물건이 팔리지 않아서 감사하고 싶어도 헌금할 것이 없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답니다. 토요일 오후까지 기다려도 아무것도 팔리지 않자 시내에서 집까지 20여리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버스요금 160원을 아껴 헌금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걷기 불편한 몸에 채소를 담은 그릇을 머리에 이고 온몸이 흠뻑 젖어 집에 도착한 것은 6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주일 아침에 이 권사님은 160원을 감사헌금 봉투에 담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때처럼 기뻤던 날이 없었어요!” 그렇게 소리치며 웃으시던 권사님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닦던 성도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분에게 학력은 사치스러운 단어였지만 하나님께서 시골교회에 보내주신 진정한 신앙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 2시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뛰어나갔더니 돼지가 새끼를 낳는다며 기도해 달라시던 그 권사님의 순전함이 유난히 생각납니다. 숨어 있는 스승들을 발견하는 혜안을 우리 민족에게 주시도록 무릎을 꿇어야 할 때입니다.

8. 마음에 정한대로 드려야 합니다.(고후9:7)

시골에 어떤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집의 암소가 송아지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농부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그러니 이 중 한 마리는 하나님께 바칩시다!” 아내도 매우 좋아하면서 궁금한 듯 물었습니다.“어느 것을 하나님의 소로 하고, 어느 것을 우리의 소로 하지요?” 농부는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다 아는 수가 있지!” 며칠 뒤에 새끼 송아지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 농부는 근심에 잠긴 채 아내에게 말했습니다.“여보, 송아지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가 죽었소! 그런데 그만 하나님의 소가 죽고 말았구려!” 사실 이러한 농부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왜 매번 우리의 삶 속에서는 하나님의 소가 죽어야 하는가? 사실 우리가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진실된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인지 아니면 세상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우리의 사랑을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9. 인색함이나 억지로 아니하고 후하게 드려야 합니다.(고후9:11- 13)

가난한 살림 때문에 평소에 용돈을 주지 않던 은강이 어머니가 이웃교회에서 선교사님을 모시고 하는 선교집회에 가겠다는 은강이에게 용돈을 1000원을 주셨습니다. 은강이는 그 돈으로 빵과 사탕을 사 먹어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강아, 그 중에서 300원이나 500원은 선교 모금함에 넣는 것이 좋지 않겠니?"

은강이는 교회로 가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골치 아픈 문제였습니다. '선교헌금으로 300원을 넣어야 하나, 500원을 넣어야 하나? 어머니가 얼마를 넣으라고 정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한참만에 은강이는 300원을 넣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양심의 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뭐라고? 배를 채우는 데는 700원을 쓰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겨우 300원을 내겠다고?'

그리하여 은강이는 군것질에 500원을 쓰고 선교헌금에도 똑 같이 500원을 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가볍질 않았습니다. 드디어 선교 헌금함에 다다른 은강이는 순간적으로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얼마를 넣는 것이 옳은지를 결정하는 것이 어린 소년의 마음에는 커다란 점이었습니다. 은강이는 눈을 딱 감고 용돈으로 받은 1000원 전부를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은강이는 허기로 지쳐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자기가 굶게 된 경위에 대해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접시에 어머니가 만드신 맛있는 빵과 우유를 가득 담아 은강이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자랑스럽게 웃고 계셨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물질과 시간을 드리고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전도의 열매를 드리고 주일과 새벽을 드리고 우리의 평생과 목소리와 영혼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따듯한 사랑의 예물들은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드린 헌금과 시간과 예물과 정성이 하늘에서 보석처럼 빛나기를 바랍니다.

*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나의 몸과 마음을 드리오니 주여 받아 주셔서 세상 살아 갈 동안 찬송하게 하옵소서 나의 물질과 정성 드리오니 주여 받아 주셔서 하늘 나라 위하여 주님 뜻대로 쓰소서. 나의 재능. 시간 모두 드리오니 주여 받아 주셔서 주의 복음 위해 쓰소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많은 사람을 의의 길, 옳은 길로 인도하는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건강과 지혜와 힘을 주시고 늘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주소서. 제 삶의 인도자가 되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하며, 그에 순종함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헌금 다림질



노량진교회를 섬기는 어떤 분의 얘기입니다. 목재사업을 하시는 이 분은 예배 드리는 것이 너무도 감격스러워 매주일 십일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것도 반드시 새돈으로 말입니다. 주일헌금은 물론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등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금요일마다 오후에 은행 가는 것이 주요 일과의 하나라고 하는데 어쩌다가 은행에 가지 못했을 때는 부인이 고달파진답니다. 집안에 있는 현금 중에서 깨끗한 것으로 헌금액만큼 골라 다림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참 별난 분도 있군’하며 웃어 넘겼습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글자 그대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기 위해’ 한 장의 지폐에도 혼신의 정성을 담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헌금을 위해 다림질하는 모습, 어떤가요?



2. 묵상:

0 헌금하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합니까? 헌신에 입각하여 헌금을 합니까, 아니면 습관적으로 헌금합니까?

0 나만 잘되면 그만이란 생각을 갖고 있진 않습니까? 평균케 하시는 주의 뜻을 따라 물질을 흘려보내고 있습니까?

0 하나님 앞에서 작정했으나 여러 변화로 인해 지키지 못한 것은 없습니까? 그에 대해 주님께 도움을 구했습니까?

0 나는 평소에 헌금과 기부, 자선 등을 즐겨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 소똥 십일조



몽골에서 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께서 소개한 이야기입니다. 몽골교회 주일예배 ‹š였습니다. 말씀을 마치고 헌금을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š 한 성도님이 손을 높이 들더니 질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아무거나 십일조해도 되는 겁니까?"

"그럼요,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리면 되는 겁니다."

성도님은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헌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도님이 큰 자루 하나를 들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헌금 바구니에 도저히 넣을 수 없었기 ‹š문에 헌금 바구니 옆에 두었는데 목사님은 그것이 무엇인가해서 자루를 풀어 들여다 보았습니다. 내용물은 소똥이었습니다! 몽골에서 소똥은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겨울이 되어 벽에 소똥을 바르면 난방효과가 탁월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소똥은 8월 중순부터 6월초까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몽골에서는 뗄감으로도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겨울을 나려면 적어도 26만원 가량의 난방비가 필요한데 몽골에서 신입선생님의 월급이 4만 5천원이니 뗄감비는 보통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정말 그 나라에서 소똥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소똥 냄새가 교회를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함께 기도합시다."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 이 성도님의 가정에 만배의 축복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그런데 놀라운일은 다음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마을의 모든 소들이 그 성도님 집 앞에 몰려와 볼일을 보더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소똥이 쌓여 갔습니다. 그 해 그 성도님은 엄청난 소똥 덕분에 ‹ː㉩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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