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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기쁨을 회복하는 법
본문: 누가복음 5장 1-11절
< 기다림의 절기에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
요즘 현대인들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생애를 걸만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분야에 관심은 많고 정보도 많지만, 소중하고 뚜렷한 목표가 없습니다.
왜 요새 사람들이 잘 낙심합니까? 무엇보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요새 사람들이 잘 기다리지 못합니까? 역시 목표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2월은 흔히 기다림의 절기라고 하는데, 정작 기다릴 목표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다리는 대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까?
오늘은 주님의 성탄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임하는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이 대강절에 주님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지난 목요일 저녁부터 저는 항상 하던 씨름을 했습니다.
"하나님! 이번 주는 성탄을 준비하는 대강절 첫 주일인데 어떤 말씀을 전할까요?"
한참 동안 그 문제를 가지고 생각을 했지만 말씀의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금요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다시 목양실 의자에 앉아 그 문제로 씨름했지만
역시 감이 잡히지 않았고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의자에 앉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비몽사몽간에 남자가 없는 어떤 모녀 가정을 보여주셨습니다.
분위기가 어두웠고 희망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런 가정이 보였습니다.
이 모녀는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그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워서 이 모녀에게 "예수님을 잡으세요"라고 외치다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오늘 본문 말씀이 생각나면서 예수님이 더욱 보고 싶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실패한 자에게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은혜로 기쁨을 회복하고,
그 과정에서 인생의 참 의미와 사명을 발견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이 어부들은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한 어부들이었습니다(5절).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살다보면 우리도 이런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삶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는데 그물에 고기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실패가 반드시 해로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실패 속에서 오히려 주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신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삶의 용기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지 않습니까? 그 믿음으로 시련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물을 씻되, 슬픈 마음으로 씻지 말고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씻어야 합니다.
오늘은 실패했지만 내일은 반드시 고기를 잡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한번 더 시도하고, 한번 더 참아야 합니다.
포기하면 낙오자가 됩니다. 반드시 뒤쳐집니다. 포기하면 결코 전진하지 못합니다.
< 위기는 위험이면서도 동시에 기회입니다 >
가끔 어떤 분은 연이은 실패 앞에서 스스로 자책합니다. "나는 완전 실패작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주시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 소리입니다.
내가 실패작이라면, 그 말은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실패했다는 말이 아닙니까?
우리가 실패해도 우리는 실패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실패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반드시 작품 인생의 재료가 될 것입니다.
실패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무시하면 또 실패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패 속에서 예수님을 붙잡고 내일을 준비하면 반드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실패는 좋은 실패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좋은 실패의 경험을 잘 승화시키면 그 인생은 반드시 성공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돈이 많아도 인격이 없고, 자리가 높아도 하나님이 없는 성공은 성공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성공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공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맡기신 나의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라면 그 일을 하는 길 안에 있는 것이 바로 성공입니다.
비록 목적지에 도착은 하지 못했어도 그 길 안에 있으면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길을 아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모든 사건은 그 뜻과 길을 찾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뜻과 길이 정확하지 않다고 해서 시간을 그냥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길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현실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고 그때 그물을 씻으십시오.
전도서 11장 4절에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좋은 시절에만 일을 하겠다고 하면 아무 것도 못하고, 발전도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다짐을 합니다. "앞으로 잘되면 좋은 일을 많이 해야지."
신앙인들을 보면 이런 다짐을 많이 합니다. "앞으로 여유가 생기면 헌신해야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 중에 일이 잘되고 여유를 찾는 분이 별로 없습니다.
사실상 진정한 나눔은 여유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고 부족할 때 하는 것입니다.
진정 좋은 일이라면 여유가 없어도 지금 해야 하고, 바빠도 지금 해야 합니다.
여유가 없는 때 헌신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삶의 맛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그물을 씻으십시오.
"안된다, 죽겠다, 못살겠다, 힘들어죽겠다"고 하는 것은 결단코 마귀의 음성입니다.
믿음은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희망의 영이고, 생명의 영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생명을 얻되 아주 풍성히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위기는 오히려 주님이 함께 하실 놀라운 기회가 됩니다.
혹시 지금 고기 없는 빈 배와 같은 심정이십니까? 이때 주님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비록 고기는 잡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잡은 사람이 정말 성공한 사람입니다.
매일 만선을 이루어도 고기만 잡고 주님을 잡지 못했다면 그것이 진짜 불행입니다.
그러나 창조주 예수님을 붙잡았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존재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가 어떻게 주님을 붙잡았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처음에 예수님은 두 배 중에 베드로의 빈 배 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배를 강단 삼아서 무리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고기를 잡지 못했다고 짜증낼 수 있었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배를 빌려드렸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소중한 장점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원래 베드로의 성격은 불같은 다혈질입니다. 그래도 그의 인격은 아주 선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다른 사람이 도와달라는 요청을 외면하지 못하는 선함이 있었습니다.
실수는 많아도 그의 마음의 중심은 선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십시오 >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더 짜증날 수 있을만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입니다(4절).
지금 베드로는 갈릴리에서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고기잡이 프로였습니다.
그가 주님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불도저 앞에서 삽질한다고 생각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 말씀을 창조주 하나님 말씀으로 듣고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했을까요?
고기를 잡게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보다 깊은 주님의 메시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더 차원 높은 삶'을 향해 나아가라는 예수님의 뜻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은 그러한 삶을 도전하고 있을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먹고 즐기는 것 이상의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처럼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우리는 어느 분야에 있든지 깊은 데로 가야 합니다.
피상적으로 살고, 피상적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면 인생의 묘미를 알기가 힘듭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깊이 뛰어들어야 보다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도 깊이 보면 모든 비판이 사라지고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봉사도 깊어야 합니다. 깊은 봉사는 알아주기를 원하지 않고 칭찬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봉사할 때는 잘 표가 나지 않습니다. 그분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그분이 얼마간 없으면 당장에 표가 나고 너무 그 공백이 크게 느껴집니다.
그처럼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을 때 당장 표가 나는 봉사가 깊은 차원의 봉사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런 차원의 삶으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깊은 데로 가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무엇이든지 깊은 데로 가야 참된 진리와 풍성함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 말씀에 의지하십시오 >
그런데 깊은 곳으로 가서 다시 그물을 내리려면 귀찮고 상식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상식을 말씀으로 극복하고 고백합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У돈
본문: 누가복음 5장 1-11절
< 기다림의 절기에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
요즘 현대인들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생애를 걸만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분야에 관심은 많고 정보도 많지만, 소중하고 뚜렷한 목표가 없습니다.
왜 요새 사람들이 잘 낙심합니까? 무엇보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요새 사람들이 잘 기다리지 못합니까? 역시 목표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2월은 흔히 기다림의 절기라고 하는데, 정작 기다릴 목표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다리는 대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까?
오늘은 주님의 성탄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임하는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이 대강절에 주님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지난 목요일 저녁부터 저는 항상 하던 씨름을 했습니다.
"하나님! 이번 주는 성탄을 준비하는 대강절 첫 주일인데 어떤 말씀을 전할까요?"
한참 동안 그 문제를 가지고 생각을 했지만 말씀의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금요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다시 목양실 의자에 앉아 그 문제로 씨름했지만
역시 감이 잡히지 않았고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의자에 앉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비몽사몽간에 남자가 없는 어떤 모녀 가정을 보여주셨습니다.
분위기가 어두웠고 희망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런 가정이 보였습니다.
이 모녀는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그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워서 이 모녀에게 "예수님을 잡으세요"라고 외치다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오늘 본문 말씀이 생각나면서 예수님이 더욱 보고 싶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실패한 자에게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은혜로 기쁨을 회복하고,
그 과정에서 인생의 참 의미와 사명을 발견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이 어부들은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한 어부들이었습니다(5절).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살다보면 우리도 이런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삶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는데 그물에 고기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실패가 반드시 해로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실패 속에서 오히려 주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신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삶의 용기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지 않습니까? 그 믿음으로 시련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물을 씻되, 슬픈 마음으로 씻지 말고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씻어야 합니다.
오늘은 실패했지만 내일은 반드시 고기를 잡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한번 더 시도하고, 한번 더 참아야 합니다.
포기하면 낙오자가 됩니다. 반드시 뒤쳐집니다. 포기하면 결코 전진하지 못합니다.
< 위기는 위험이면서도 동시에 기회입니다 >
가끔 어떤 분은 연이은 실패 앞에서 스스로 자책합니다. "나는 완전 실패작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주시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 소리입니다.
내가 실패작이라면, 그 말은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실패했다는 말이 아닙니까?
우리가 실패해도 우리는 실패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실패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반드시 작품 인생의 재료가 될 것입니다.
실패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무시하면 또 실패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패 속에서 예수님을 붙잡고 내일을 준비하면 반드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실패는 좋은 실패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좋은 실패의 경험을 잘 승화시키면 그 인생은 반드시 성공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돈이 많아도 인격이 없고, 자리가 높아도 하나님이 없는 성공은 성공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성공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공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맡기신 나의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라면 그 일을 하는 길 안에 있는 것이 바로 성공입니다.
비록 목적지에 도착은 하지 못했어도 그 길 안에 있으면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길을 아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모든 사건은 그 뜻과 길을 찾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뜻과 길이 정확하지 않다고 해서 시간을 그냥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길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현실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고 그때 그물을 씻으십시오.
전도서 11장 4절에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좋은 시절에만 일을 하겠다고 하면 아무 것도 못하고, 발전도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다짐을 합니다. "앞으로 잘되면 좋은 일을 많이 해야지."
신앙인들을 보면 이런 다짐을 많이 합니다. "앞으로 여유가 생기면 헌신해야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 중에 일이 잘되고 여유를 찾는 분이 별로 없습니다.
사실상 진정한 나눔은 여유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고 부족할 때 하는 것입니다.
진정 좋은 일이라면 여유가 없어도 지금 해야 하고, 바빠도 지금 해야 합니다.
여유가 없는 때 헌신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삶의 맛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그물을 씻으십시오.
"안된다, 죽겠다, 못살겠다, 힘들어죽겠다"고 하는 것은 결단코 마귀의 음성입니다.
믿음은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희망의 영이고, 생명의 영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생명을 얻되 아주 풍성히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위기는 오히려 주님이 함께 하실 놀라운 기회가 됩니다.
혹시 지금 고기 없는 빈 배와 같은 심정이십니까? 이때 주님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비록 고기는 잡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잡은 사람이 정말 성공한 사람입니다.
매일 만선을 이루어도 고기만 잡고 주님을 잡지 못했다면 그것이 진짜 불행입니다.
그러나 창조주 예수님을 붙잡았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존재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가 어떻게 주님을 붙잡았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처음에 예수님은 두 배 중에 베드로의 빈 배 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배를 강단 삼아서 무리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고기를 잡지 못했다고 짜증낼 수 있었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배를 빌려드렸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소중한 장점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원래 베드로의 성격은 불같은 다혈질입니다. 그래도 그의 인격은 아주 선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다른 사람이 도와달라는 요청을 외면하지 못하는 선함이 있었습니다.
실수는 많아도 그의 마음의 중심은 선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십시오 >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더 짜증날 수 있을만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입니다(4절).
지금 베드로는 갈릴리에서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고기잡이 프로였습니다.
그가 주님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불도저 앞에서 삽질한다고 생각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 말씀을 창조주 하나님 말씀으로 듣고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했을까요?
고기를 잡게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보다 깊은 주님의 메시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더 차원 높은 삶'을 향해 나아가라는 예수님의 뜻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은 그러한 삶을 도전하고 있을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먹고 즐기는 것 이상의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처럼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우리는 어느 분야에 있든지 깊은 데로 가야 합니다.
피상적으로 살고, 피상적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면 인생의 묘미를 알기가 힘듭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깊이 뛰어들어야 보다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도 깊이 보면 모든 비판이 사라지고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봉사도 깊어야 합니다. 깊은 봉사는 알아주기를 원하지 않고 칭찬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봉사할 때는 잘 표가 나지 않습니다. 그분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그분이 얼마간 없으면 당장에 표가 나고 너무 그 공백이 크게 느껴집니다.
그처럼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을 때 당장 표가 나는 봉사가 깊은 차원의 봉사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런 차원의 삶으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깊은 데로 가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무엇이든지 깊은 데로 가야 참된 진리와 풍성함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 말씀에 의지하십시오 >
그런데 깊은 곳으로 가서 다시 그물을 내리려면 귀찮고 상식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상식을 말씀으로 극복하고 고백합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У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