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32)

복음............... 조회 수 584 추천 수 0 2004.01.27 17: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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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32)



본문 : 마태복음 5장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어떤 사람이 사막을 여행하다가 마실 물이 동이 났습니다. 물은 찾을 길이 없고 목은 점점 말라왔습니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기가 타고 있는 낙타를 죽여 그 속에 있는 물을 마시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자살 행위와 같다는 것을 알았지만 타는 듯한 목마름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배고픔과 갈증은 이렇게 강렬합니다.

인간은 주릴 때에 음식에 대한 욕망이 있습니다. 목이 마를 때에 물을 구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겸하면 얼마나 갈급하겠습니까?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인간 심령의 가장 강렬한 욕망을 표시합니다. 인간에게는 물론 여러 가지 욕망이 있습니다. 지식, 물질, 사랑, 권세, 명예 등이 있습니다. 이런 욕망 외에 인간에게는 의에 대한 욕망이 있습니다. 옳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옳은 일을 하면 좋겠다 하는 욕망도 있습니다. 누구나 이런 욕망이 어느 정도는 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악하기로 유명한 네로 황제도 젊어서 사형을 허락하는 첫 번 싸인을 할 때에 "내가 차라리 글씨 쓰는 것을 안 배웠더라면.." 하고 탄식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의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우리에게 강렬한가가 문제입니다.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재물과 지식과 명예와 이성은 추구할지언정 가장 중요한 의를 위해서는 작은 희생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의'입니다. 우리는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죄와 싸워 이겨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배부름입니다.

우리의 삶에 가장 기본이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나 모든 생명체가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배고픔의 고통을 압니다. 목마름의 고통도 압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먹지 못하는 것은 어떤 것 보다 가장 힘이 드는 것입니다. 서러움 중에 배고픈 서러움보다 더 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배고프면 어떤 체면도 없습니다. 성경은 의에 대해 주리고 목마른 것처럼 하라 했습니다. 즉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같이 하라는 것은 전심전력하라는 것입니다. 열성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도“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편42편1절)함과 같습니다. 사람이 배고프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죽음을 앞 둔 사람은 배고픈 것을 모릅니다. 젊은이는 먹고 나면 곧 배고픕니다. 이는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먹고 나서 돌아서면 배고픕니다. 마시고 나면 곧 목마릅니다. 이것이 젊음이요 건강하다는 표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다 욕구불만에 빠져 있습니다. 욕심이 한이 없습니다.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대단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돈도 명예도 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욕망에 한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두가 다 불만투성입니다. 남 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자기주장이 앞서야 합니다.

지금 세상일에 전념하는 사람은 나중에 허탈해 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찌꺼기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세속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TV 광고를 보는데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모 카드사의 광고 멘트가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것은 그 광고가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소망의 정곡을 찌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행복을 위해 돈을 벌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돈으로 행복해지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 앞에서 과시욕을 부리며 다른 사람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 것을 기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한 구절로 경고하고자 합니다. 야고보서 5장 1절∼5절을 보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혹 외모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10년이면 시들어버릴 외모보다 더 값진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의 아름답고도 겸허한 마음입니다. 성경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 5:3)며 천국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외모에 들이는 공의 반만이라도 마음을 살피고, 그릇되고 악하고 음란한 생각들을 버린다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게 바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학벌이 없어 불행하십니까? 배운 사람들이 무지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무시하며 행복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학벌이 매우 중요시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해마다 너 나 할 것 없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밤잠 못 자는 우리의 아이들을 보면 참말로 교육문제로 이민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 들어간 대학인데 자랑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했고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 학위를 땄겠습니까마는 그것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도구로 쓰여진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행복하다면 노력하고 돈을 들여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세상 지식과 학벌은 잠깐이고 모두가 허무하고 헛된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자랑하면 넘어지고 패망하게 됩니다.

위에서 행복의 조건으로 열거한 돈이나 아름다운 외모나 학벌 위주의 지식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목적으로 쓰여진다면 그것은 타인은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결코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행복에 눈먼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습니다.“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돼라”(마5:6),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 쓰기보다는 “마음이 청결하게 돼라”(마 5:8)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걸고 열심히 쌓아놓고 만들어놓지만 행복을 느끼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따라서 마음가짐을 고치지 않고서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의(義)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의(義)입니다. 예수님이 곧 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의입니다. 의를 목숨 걸고 사랑하고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일을 위해서는 목숨을 겁니다. 그러나 정작 주님의 일에는 늘 뒤로 미루어 버립니다. '다음에 하지' 하는 식입니다. 여기에 목숨을 걸고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의를 갈망하고 의를 행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의를 행하는 자가 복이 있고 그 후손에 이르기까지 복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지는 못했으나 세울 마음은 간절했습니다. 그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중에 혹 마음에 "나는 아직도 죄를 계속하여 짓습니다. 그러나 이 죄를 꼭 끊기를 원합니다. 오 주여! 이 죄를 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아직도 나쁜 성질을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꼭 고치고 싶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오 주여! 우리 사회에 얼마나 불의가 많습니까? 그러나 좀 더 옳은 사회, 좀 더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내 정성을 다 하려고 합니다. 주여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며, 기도하며, 힘쓰는 이들은 이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속에 새 생명이 이미 싹트고 움직이고 자라는 중인 까닭입니다.

내가 할 일이 과연 하나님 앞과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가? 인간이 의롭게 살려고 하여도 의롭게 살아지지 않는 것이 삶입니다. 그런데 옳게 살려고 하는 믿음과 의지조차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때론 의롭게 사는 일에 실패하고 좌절할 수는 있어도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비추어보며 의를 향한 불의와의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공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06:3)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영히 복이 있으리라"(신12:28)

2.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돈에 대하여 혈안이 되어 뛰어다니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랑(이성)에 대하여 갈급하는 이도 많습니다. 하루에도 수백만의 사람이 서울 거리를 지나갑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의(義)에 대해서 주리고 목말라 하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야곱은 팥죽 한 그릇보다 장자의 명분이 더 귀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때문에 가정을 떠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루터는 의를 갈급하다가 결국은 종교개혁의 선봉자가 되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생명보다 믿음이 더 중요한 것을 알고 생명을 버렸습니다.

저의 삶의 목표는 많은 사람을 의로운 길,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의로운 길을 따라 살겠다는 자기 포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의를 따라 살며 손해보는 삶이 때로는 어리석은 것 같아도 그것이 참 지혜로운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매사에 먼저 의를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손해를 본 것의 갑절이나 풍성히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의의 결과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32:17)

3. 의를 인하여 구원을 얻고(잠11:6), 장차 의를 따라 상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세상에서 불의와 거짓이 승리하는 것 같아도 길게 놓고 보면 궁극적으로 의와 진실이 승리한다는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힘이 의가 아니고 의가 힘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돌아가지만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불의를 심판하고 의를 이루며 돌아갑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의 최후 승리를 믿고 오늘 불의한 세상에서 의를 위한 고난을 기쁨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사특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잠11:6)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삼하22:21, 시18:20)

4. 의를 행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고(창18:19), 의를 굳게 지키는 자가 생명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너무 욕심이 많습니다. 이 세상 것에 욕심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안약을 사서 발라라 한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라 한 것입니다. 이 세상 것으로 너무 많이 채워져 있습니다. 문제는 나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 세상 일 때문에 밤잠을 자지 않습니다. 땀을 흘립니다. 머리가 돌 정도로 고민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러지 못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의를 위해 목숨을 걸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삽니다. 하나님에 대해 해바라기가 되야 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하나님을 피해 다니려고 합니다. 날마다 우리는 우리 방법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행복해 질 수가 있습니까. 어림없지요. 날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럼 의가 무엇입니까. 의란 ‘디카이오수네’라 합니다. 이 말은 “의”“옳음” “올바름“ ‘정의”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말씀을 지키는 일이라는 뜻이고, 옳은 것, 옳은 사람, 올바른 생활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정말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 양심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그릇됨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표준은 예수님이고,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은 누구도 거룩하지 않습니다. 정의롭지 않습니다. 아무도 깨끗하지 않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나무랄 자격이 없습니다. 다 흠이 있습니다. 다 결격사유가 많습니다. 사람은 비뚤어져 있습니다. 그릇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부족하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변합니다. 우리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가치가 없고, 만물 보다 거짓됩니다. 날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가장 거룩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위선입니다. 회칠한 무덤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변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아야 합니다. 송이 꿀보다 더 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남보다 더 많이 하나님 말씀을 갈망해야 합니다. 목마른 것처럼 사모해야 합니다. 배고픈 것처럼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하나님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불행입니다. 얼마나 세상은 변해가고 있습니까. 우리도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그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의 의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점점 세상은 빗나가고 있습니다. 사슴이 포수에게 쫓깁니다. 이 산 저 산으로 도망갑니다. 온 몸은 땀으로 젖어 있습니다. 힘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기진맥진합니다. 더 이상 갈 힘이 없습니다. 산꼭대기에서 숨을 몰아쉽니다. 이젠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는 것 처럼 갈급함을 말합니다. 우리는 의를 사모하기를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다 욕망이 있습니다. 돈에 대한 욕망이 많습니다. 사랑에 대한 욕망도 있습니다. 명예에 대한 욕망도 있습니다. 지식에 대한 욕망도 대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는 말을 잘 아시지요. 그런 것처럼 우리는 의에 대해서도 욕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굶주린 사람이 음식을 찾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워하라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망했습니다. 하나님이 불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늘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말 우리는 이 시대의 증인입니다. 빛입니다. 소금입니다. 늘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삶을 말합니다.

"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잠11:19)

5.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잠15:9)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10:35)

6.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21: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3)

7.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배부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정말 배고픈 허기진 시대입니다. 목마른 시대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다 그렇습니다.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다 그렇습니다. 돈을 모아도 별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자살하는 숫자가 늘어납니까. 다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 못난 사람이 아닙니다. 다 늙은이가 아닙니다. 젊고 건강하고 잘 난 사람이 자살합니다. 정말 대책이 없다고 합니다. 가난해도 부자처럼 삽니다. 부자이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부르다는 것은 만족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불만이 목에까지 차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도 욕합니다. 장관도 욕합니다. 학생은 선생님을 욕합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나라가 큰 일 날 것입니다. 살길은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창고이십니다. 축복의 근원입니다. 배부르게 하시는 주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 만나를 하루도 그치지 않으시고 내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누구도 굶어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도 목말라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늘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늘 가난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배부르게 한다는 말씀에는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롭게 사는 사람은 늘 정직합니다. 늘 진실합니다. 말씀이 떠나지 않습니다. 항상 즐겁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없습니다. 늘 사랑이 넘칩니다. 허기진 인생에게 하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름처럼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족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변방만 두드리면 안 됩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급선무입니다. 가장 급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에게 엎드리십시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늘 겸손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족하고 배부르게 하실 것입니다.

요한 복음 6장 3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하였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의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늘 그렇게 살아 하나님의 복을 받고 진리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 기도 : 의로우신 하나님, 주님께서 구하시는 의를 우리도 구하게 하시고 의를 따라 사는 길이 때로 힘들고 손해되는 삶이라 할지라도 그 길을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가 의를 추구함으로 영적인 배부름을 얻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의롭게 공평하게 살라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정직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다녔는데 하루는 그 교회에 계신 미국인 선교사가 장작을 한 차 사들여 왔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에게 장작을 쌓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청년은 교회의 한 귀퉁이에 장작을 가지런히 쌓아놓고 청소까지 말끔히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오시더니 "이곳은 비를 맞을 염려가 있으니 저쪽으로 옮겨 쌓았으면 좋겠다." 고 하였습니다. 청년은 불평할 법도한데 선교사님이 시키는 대로 말없이 장작을 옮겨 쌓았습니다. 그 해 눈이 많이 내린 크리스마스 날 선교사님은 청년에게 선물을 한 가지 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이미 이 청년의 유학 길을 마련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청년의 정직함과 성실함을 눈 여겨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의롭고 공평하게 살면 재물을 얻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우리에게 "의롭고 공평하게 사는 지혜로운 자는 재물을 얻되 곳간까지 채울 정도로 많이 얻는다"고 가르쳐 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의 인도함을 받아 의로운 길, 공평한 길로 행합니다. 이처럼 의를 행하고 공평한 길로 행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다음은 어느 무명 성도의 선행을 위한 고백입니다.

"저는 이 세상을 단 한 번만 지나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행할 수 있는 선한 일과 친절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게 하옵소서. 제가 그것을 미루거나 핑계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는 제가 다시 이 길을 지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아침이면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안개와 같은 인생을 우리가 의미있게 살 수 있는 길은 선한 길을 걸어가, 공의와 정직을 행하는 것입이다. 공의와 공평과 정직 안에 모든 선한 길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한 길'이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행동 방식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여 얻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공의롭고 공평하며 정직하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잠2:9)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잠8:20- 21)



2. 묵상 및 토의

0 그리스도로 옷 입은 당신은 오늘 어떻게 살았습니까?

0 나는 공평의 원리를 따라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기회를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기회를 주지는 않습니까?

0 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인가?

0 나는 공의를 따라 행하기를 힘쓰는가?

0 나는 이웃을 구원할 소돔의 10명의 의인인가?

0 나는 현재 죄악된 세상에서 의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본받는 삶을 살고 있는가?

0 나는 주의 의로우심을 본받아 내 생활도 의롭게 되기를 원하는가?

0 나는 잠깐의 이익을 위해 공의를 굽게 하지는 않았는가?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찬송: (316장) 목마른 자들아



1.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오라 이곳에 좋은 샘 흐르도다 힘쓰고 애씀이 없을지라도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겠네

2. 이 샘에 나는 물 강같이 흘러 온 천하 만국에 다 통하네 빈부나 귀천이 분별이 없이 다 와서 쉬고 또 마시겠네

3. 신기한 샘물을 마신자마다 목 다시 갈하지 아니하고 속에서 솟아나 생수가 되어 영원히 솟아 늘 풍성하리

4. 이 샘의 이름은 생명의 샘물 저 수정빛 같이 늘 맑도다 어린양 보좌가 근원이 되어 생명수 샘이 늘 그치쟎네



4. 예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죄



‘로베로 장군’이라는 프랑스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들이 처형당할 때 저항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잡혀온 한 사나이가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나는 평범한 시민일 뿐이오. 나는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소. 결코 저항운동을 한 적이 없단 말이오.” 이때 같은 사형수인 한 레지스탕스가 그에게 비웃듯 쏘아붙입니다. “전쟁이 5년이나 흘렀소. 그동안 수많은 프랑스인이 피를 흘리고 도시들이 파괴되었소. 그리고 지금 조국은 멸망 직전에 놓여 있소. 그런데도 당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이오? 바로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그것이 당신이 죽어야 할 이유요.”

불법과 부정부패를 비난하기는 쉽습니다. 불의에 편승하거나 순응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불의의 시대에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은 불의에 항거하여 정의를 실천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



*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가장 귀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이 일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며 당신이 이루어야 할 귀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 사십니까? 돈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성공하여 권력을 얻는 것입니까? 건강하고 장수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얻었다 하여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모두 다 버려 두고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생은 헛되고 또 헛된 것입니다. 언제 떠나십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시기는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언젠가는 부모, 형제, 처, 자식과 그 아끼던 모든 것을 다 버려 두고 떠나야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사망을 이기고 영생을 얻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고 목적지가 달라집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지옥의 길과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두 갈래 길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복된 삶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하나교회의 비전

1. 365일 예배드리는 교회(히10: 25, 행17:11)

오늘날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매일 말씀을 읽고, 듣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말씀의 거울을 통해 매일 마음을 바르고 깨끗이 하여서 예수와 복음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막8:35)

2. 더불어 사는 공동체 (행2:42- 47)

하나님은 영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육신까지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교회는 예수님이 주인이신 예수공동체이며,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안에서 한 가족이 되고, 교회 직영 사업을 통해 청장년의 일자리 마련, 노후생활 보장 등의 꿈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교회(롬14: 17)

정의롭고(선행에 힘쓰고), 근심, 걱정, 두려움이 없고(기도에 힘쓰고), 기쁨과 찬송이 넘치는 교회

4.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마22:37- 39)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이러한 꿈과 비전이 있는 교회를 개척하고자 합니다. 연락바랍니다.



하나 교회 한 태 완 목사

전화: 010-7676-3049, 자택: (02) 959-3049

홈페이지: http://comesee.ce.ro, je333.ce.ro

이메일: jesu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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