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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껍질을 벗자
제가 살고 있던 곳에 아들 하나를 둔 거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매우 착하고 평화스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3대째 거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거지 생활을 면해 보자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가졌더라면 3대째 거지 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생활이 편안하다는 암시가 은연중에 있었기 때문에 3대째 계속 거지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제가 항상 다니던 길목에 구두를 수선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평생 다른 직업을 가져 보지도 않고 이 일만을 계속해왔습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궤짝 하나만 차려 놓으면 그럭저럭 밥을 먹고사니까 별 불만 없이 그 일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6 · 25 후에 그 분의 친구 하나가 일자리가 없어 할아버지 옆에서 조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술도 없고 하니까 옆에서 보따리를 펴놓고 비누나 칫솔 같은 일용품을 팔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수지가 맞으니까 궤짝을 놓고 팔게 되었고 거기서 발전하여 구멍 가게를 하다가 점점 더 커져서 지금은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할아버지는 자기의 구두 궤짝이 고맙기도 하지만 이 꿰짝이 없었으면 자기도 보따리 장사를 해서 친구와 같이 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손해를 본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중대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념과 의지와 노력으로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이, 신념과 의지와 노력의 몇 천 배의 더 크고 더 뜻깊은 일을 신앙을 통해서 할 수 있었던 사람이 이 구두 궤짝이나 거지 생활'과 같은 궤도를 일생 동안 돌다가 죽어 버린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들에게는 그런 구두 궤짝은 없습니까? 거지 보따리는 없습니까? 물론 직업에 귀천은 없습니다. 구두를 닦든지 무슨 장사를 하든지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위대한 꿈을 가지고 민족을 지도할 수 있고 세계를 지도할 수 도 있고 모든 사람에게 빛을 줄 수도 있고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사도 바울같이 그렇게 쓰임을 받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다 죽어 가고 있습니다. 조그만 상점 하나에 묶여서 살고, 직업 보따리 속에서 궤도를 일생동안 돌다가 죽고, 한 번도 껍데기를 깨 보지 못하고, 한 번도 그 궤도를 벗어나 보지 못하고, 한 번도 누에가 고치 속에서 나오지 못해 나비가 되어 보지 못한 것처럼 그렇게 경화되어 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죽음의 궤도를 도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한번 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궤도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딱딱한 껍질 속에 들어 있는지 모릅니다. 병아리는 껍질을 깨 버려야 병아리가 되어 나옵니다. 그 껍질을 깨 버리지 않고 그 속에서 살려고 노력을 하면 죽어 버리고 맙니다. 아기가 엄마의 배속이 편안하다고 해서 밖에 나가지 않으려고 하면 아기는 죽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자기의 정신 생활에 있어서, 인격 생활에 있어서, 지적인 생활에 있어서, 신앙 생활에 있어서,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장을 할 때마다 껍질이 있는데 이 낡은 껍질을 빗겨 버려야 합니다. 아픔이 있더라도 이것을 벗겨 버리고 탈피하고 초월하고 비약하는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2∼24)
/김준곤
목사아프리카 20년
어떤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20년을 살았다. 그는 12년 동안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했다. 그는 온갖 고통을 겪으며 심성도 황폐해졌다. 작은 일에도 짜증을 잘 냈다. 항상 기분이 상해 있었다. 조금만 언짢아도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결국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사람들과 제대로 사귀지 못하는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그를 ‘재미없는 친구’라고 불렀다. 이 사람이 드디어 영국으로 돌아가 말라리아를 치료받았다. 그러나 몸은 완전히 치유되었는데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계속 짜증을 내고 참지 못하고 분노했다. 그는 스스로를 고독하고 불행한 사람으로 여겼다.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한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것은 행동과 성격을 완전히 바꾸는 결단이다. 우리는 이제라도 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주여, 저를 바꾸어 주십시오. 변화시켜 주옵소서. 아멘.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http://je333.com
제가 살고 있던 곳에 아들 하나를 둔 거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매우 착하고 평화스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3대째 거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거지 생활을 면해 보자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가졌더라면 3대째 거지 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생활이 편안하다는 암시가 은연중에 있었기 때문에 3대째 계속 거지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제가 항상 다니던 길목에 구두를 수선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평생 다른 직업을 가져 보지도 않고 이 일만을 계속해왔습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궤짝 하나만 차려 놓으면 그럭저럭 밥을 먹고사니까 별 불만 없이 그 일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6 · 25 후에 그 분의 친구 하나가 일자리가 없어 할아버지 옆에서 조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술도 없고 하니까 옆에서 보따리를 펴놓고 비누나 칫솔 같은 일용품을 팔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수지가 맞으니까 궤짝을 놓고 팔게 되었고 거기서 발전하여 구멍 가게를 하다가 점점 더 커져서 지금은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할아버지는 자기의 구두 궤짝이 고맙기도 하지만 이 꿰짝이 없었으면 자기도 보따리 장사를 해서 친구와 같이 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손해를 본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중대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념과 의지와 노력으로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이, 신념과 의지와 노력의 몇 천 배의 더 크고 더 뜻깊은 일을 신앙을 통해서 할 수 있었던 사람이 이 구두 궤짝이나 거지 생활'과 같은 궤도를 일생 동안 돌다가 죽어 버린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들에게는 그런 구두 궤짝은 없습니까? 거지 보따리는 없습니까? 물론 직업에 귀천은 없습니다. 구두를 닦든지 무슨 장사를 하든지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위대한 꿈을 가지고 민족을 지도할 수 있고 세계를 지도할 수 도 있고 모든 사람에게 빛을 줄 수도 있고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사도 바울같이 그렇게 쓰임을 받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다 죽어 가고 있습니다. 조그만 상점 하나에 묶여서 살고, 직업 보따리 속에서 궤도를 일생동안 돌다가 죽고, 한 번도 껍데기를 깨 보지 못하고, 한 번도 그 궤도를 벗어나 보지 못하고, 한 번도 누에가 고치 속에서 나오지 못해 나비가 되어 보지 못한 것처럼 그렇게 경화되어 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죽음의 궤도를 도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한번 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궤도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딱딱한 껍질 속에 들어 있는지 모릅니다. 병아리는 껍질을 깨 버려야 병아리가 되어 나옵니다. 그 껍질을 깨 버리지 않고 그 속에서 살려고 노력을 하면 죽어 버리고 맙니다. 아기가 엄마의 배속이 편안하다고 해서 밖에 나가지 않으려고 하면 아기는 죽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자기의 정신 생활에 있어서, 인격 생활에 있어서, 지적인 생활에 있어서, 신앙 생활에 있어서,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장을 할 때마다 껍질이 있는데 이 낡은 껍질을 빗겨 버려야 합니다. 아픔이 있더라도 이것을 벗겨 버리고 탈피하고 초월하고 비약하는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2∼24)
/김준곤
목사아프리카 20년
어떤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20년을 살았다. 그는 12년 동안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했다. 그는 온갖 고통을 겪으며 심성도 황폐해졌다. 작은 일에도 짜증을 잘 냈다. 항상 기분이 상해 있었다. 조금만 언짢아도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결국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사람들과 제대로 사귀지 못하는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그를 ‘재미없는 친구’라고 불렀다. 이 사람이 드디어 영국으로 돌아가 말라리아를 치료받았다. 그러나 몸은 완전히 치유되었는데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계속 짜증을 내고 참지 못하고 분노했다. 그는 스스로를 고독하고 불행한 사람으로 여겼다.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한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것은 행동과 성격을 완전히 바꾸는 결단이다. 우리는 이제라도 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주여, 저를 바꾸어 주십시오. 변화시켜 주옵소서. 아멘.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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