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21세기 한국교회

운영자............... 조회 수 532 추천 수 0 2001.10.28 06:38:07
.........
종교개혁과 21세기 한국교회



루터는 세상 떠나기 얼마전 시간이 있으면 "시험"에 대해서 글을 썼으면 했다. 이 "시험"이란 단순히 돈과 명예와 여자 문제와 같은 윤리적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을 엄습해 오는 회의, 영적인 혼란, 마음의 고민, 공포, 비참과 절망과 같은 사탄의 시험이었다. 본래 루터는 이 "시험" 때문에 수도원에 들어갔다. 루터가 에르푸르트 법과대학에서 첫 학기를 끝내고 귀가하던 중,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은 것을 목격하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루터는 수도원에서 수도원적인 삶의 이상(사도적 청빈, 순결, 순종)을 따른 삶을 살았지만, 그의 "시험"은 극복될 수 없었다. 루터는 훗날 과거 자신의 수도원적인 삶을 통해서 결코 그것을 극복할 수 없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루터가 모범된 수도승으로서 수도원적인 삶의 이상을 성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양심은 죄책감에 눌려있었다. "샘 솟는 기쁨이"이 없었다. 루터는 수도원적 삶을 모범 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그리고 심판주 되시는 하나님 존전에서 항상 자신이 죄인임을 느꼈고,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는 종종 예수 그리스도를 무서운 심판주로 느껴, 그분 앞에서 피할래야 피할 수조차 없었다고 하며, 심지어 이 그리스도를 진로에 찬 심판주, 사형 집행인, 아니 마귀로 체험하였다고 한다. 루터는 감추어진 하나님(Deus absconditus)을 경험했던 것이다.

루터는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의 속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우리의 영생을 위해서 부활하셨다고 하는 계시된 하나님(Deus revelatus)의 객관적인 복음에 대한 주관적인 구원론적 체험에서 그를 고민에 빠트렸던 "시험"을 극복해 냈다. 그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 : 17 ; 참고: 롬 3 : 21-27)라고 고백하였다. 유대교적 율법주의로 고민하던 바울이 체험적으로 복음을 수용했던 것처럼 중세기적 율법주의로 고민하던 루터 역시 체험적으로 복음을 수용하였다. 향후 루터는 이와 같은 복음체험에 입각해서,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 등 신약성경과 나아가서 구약성경을 해석한다. 복음과 복음에 대한 구원론적 경험이 그의 성경해석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하였다.

그리하여 향후 루터의 모든 신학적인 주제들은 이와 같은 이신칭의의 복음이해에 의해서 조건 지워져 있다. "성경이해"(경전 안의 경전), "율법과 복음", "두 종류의 의",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 "만인제사장직론", "하나님의 소명에 입각한 직업윤리", "두 왕국론", "노예의지론", 등이 그러하다. 이 중에서 우리는 1. "복음의 재발견과 오직 성경"(sola Scriptura), 2. "만인제사장직론", 3."하나님의 소명에 따른 직업윤리"만을 논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주제들이 21세기 한국 교회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루터는 말씀을 통한 성령 역사로 교회를 개혁하였다. 그의 개혁은 폭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글과 강의와 공개 토론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실질적인 개혁원리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이 인간을 위해서 성육신하셨고, 십자가를 지셨다가 부활하셨다고 하는 복음이었다.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는 종교개혁의 형식적인 원리였다. "오직 성경으로만"이라고 하는 모토는 루터가 복음을 체험적으로 받아들인 이후, 즉 1519년 라이프찌히 토론에서 등장하는 바, 그것의 삶의 자리는 오직 성경이 교황의 교도권과 교회 공의회의 권위에 의해서 결정된 교리나 교회 법 등보다 우위에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물론 루터는 니케아 공의회(325)의 삼위일체론, 콘스탄티노플의 성령론(381), 에베소 공의회(431)의 구원론 및 칼세돈 공의회(451)의 정통 기독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칼빈은 루터처럼 "복음"을 성경의 중심으로 보면서도 루터 보다 기록된 말씀을 강조하였고, 칼 바르트의 바르멘 신학선언(1934) 이후의 장로교 혹은 개혁교회 전통은 루터 식으로 복음을 성경의 중심으로 보면서도, 기독교적 삶(성화)과 교회 직제를 위한 성경사용을 강조하는 경향이다.

1520년 루터의 세 저서(교회의 바벨론 포로, 기독자의 자유, 독일귀족에게 주는 글)는 그의 복음이해(이신칭의)에 따른 만인제사장직론을 밑에 깔고 있다. 만인제사장직(the universal priesthood of all the believers)이란 세례 받은 모든 기독교 평신도들은 원칙적으로 복음을 설교할 수 있고, 형제자매의 죄를 용서할 수 있으며, 중보기도를 올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들 모든 평신도들은 성령을 통해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작은 그리스도들(little christs)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터는 다만 이와 같은 만인제사장직론에만 머물러 있으면, 교회가 화평과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회중에서 선출된 안수례받은 직제를 주장하였다.

칼빈은 루터보다 교회론를 강조하고, 성화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4중직을 주장하였다. 칼빈은 만인제사장을 밑에 깔면서도 목사, 장로, 집사와 같은 안수례 받은 직제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1524년 농민전쟁 이전까지 회중교회주의를 지향하다가, 1926년 이후 감독교회 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하였다.

소명에 따른 직업윤리 루터는 세례 받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하나님 존전 에서 그 신분(status)이 동등하다고 본다. 예컨대, 목사와 기독교인 농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존전 에서 그 신분이 동등하고, 그 맡은 바 일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진실로 루터는 그의 복음이해에 따른 기독교인의 기본적인 정체성에 입각하여 성직 계층과 평신도 계층을 하늘과 땅 사이처럼 나누던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이분법적 가치관에 결정타를 가한 것이다. 중세기는 성직자들만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것으로 보았지만 루터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수행하는 모든 직업활동이 하나님의 소명(vocatio = Beruf)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의 직업윤리는 중세기에서 근대 자본주의적 산업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비록 그것이 자본주의에 공헌하는 과정에서 그의 직업윤리의 역기능적인 면도 나타났지만 말이다.

그런데 칼빈과 개혁주의 전통은 두 왕국론 에서 하나님의 모든 보편사와 창조세계 전체에 대한 주권을 강조하는 바, 이것이 직업윤리에도 영향을 준다. 즉,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제시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모든 세속적인 삶을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서양문화와 직업활동에 좋은 영향을 준 개혁교회의 역사가 이를 증명할 것이다.

복음의 재발견과 오직 성경(sola Scriptura), 만인제사장직론, 하나님의 소명에 따른 직업윤리와 같은 루터의 신학적 주제들은 여전히 오늘날 21세기 한국교회를 위해서도 좋은 길잡이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오직 성경으로만"이라고 하는 종교개혁의 형식적인 원리만을 받아들여, 성경의 명제적 진리들에 비중을 두다가, 실질적으로 루터 종교개혁의 추진력이었던 복음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또한 우리 한국교회는 교회 직제의 계층 질서화와 경직화에 따라서 루터와 칼빈의 만인제사장직론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끝으로 우리는 성직자의 직분은 거룩하고, 기타 모든 기독교인들의 직업활동은 속되다고 하는 중세기적 이분법을 오늘날에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하지만 종교개혁은 어디까지나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개혁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서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과 같은 교회의 사회참여나 복음전도 및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입각한 교회의 세계선교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전혀 개념이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가 하나되어 복음을 선교하고(요 17 : 21), 역사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사명(골 1 : 20; 엡 1 : 10)과 같은 거시적인 교회의 비전에 관하여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세 흐름(신앙과 직제, 삶과 봉사, 세계선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개혁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서 교회의 사회참여나 세계선교에 대해서는 전혀 개념이 없었다. 교회가 하나되어 복음을 전하고 역사와 자연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거시적인 교회의 비전은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형기/ 장신대 교수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사람의 힘이나 돈이나 명예나 권세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그리스도만이 해결해 드립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참 평안과 안식을!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영원한 평안과 기쁨을 당신과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하나 교회는 당신에게 참된 안식의 길로 안내해 드립니다. 지금 곧 연락하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하나교회의 비전

1. 365일 예배드리는 교회(히10: 25)

오늘날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매일 말씀을 읽고, 듣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말씀의 거울을 통해 매일 마음을 바르고 깨끗이 하여서 예수와 복음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막8:35)

2. 더불어 사는 공동체 (행2:42- 47)

하나님은 영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육신까지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교회는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안에서 한 가족이 되고, 교회 직영 사업을 통해 청장년의 일자리 마련, 노후생활 보장 등의 꿈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교회(롬14: 17)

정의롭고(선행에 힘쓰고), 근심, 걱정, 두려움이 없고(기도에 힘쓰고), 기쁨과 찬송이 넘치는 교회

4.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마22:37- 39)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이러한 꿈과 비전이 있는 교회를 개척하고자 합니다. 연락바랍니다.



하나 교회 한 태 완 목사

전화: 016-9219-3049, 자택: (02) 959-3049

홈페이지: http://allcome.ce.ro, allcome.wo.to

이메일: jesuskorea@naver.com



예화포커스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육, 교회, 믿음,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효도,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기도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 태 완 목사 편저, 좋은 땅 (전화:386-8660), 각 권 값3,800원

http://truthway.ce.ro,

http://je333.ce.ro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022 가리발디 운영자 2001-10-26 597
28021 누가 먼저 그만두려 하느냐 운영자 2001-10-26 423
28020 작지만 귀한 일 운영자 2001-10-26 497
28019 일생 교과목 운영자 2001-10-26 328
28018 신사임당을 그리며… 운영자 2001-10-26 499
28017 나는 누구입니까? 운영자 2001-10-26 886
28016 싸늘한 광야의 방황을 끝내려면… 운영자 2001-10-26 527
28015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복음 2001-10-27 760
28014 가장 위대한 능력 운영자 2001-10-27 756
28013 일본식 돈가스 전문점 ‘돈끼’ 운영자 2001-10-28 845
28012 성 윤리 운영자 2001-10-28 458
28011 인간의 죄로 인한 3대 고통 운영자 2001-10-28 878
» 종교개혁과 21세기 한국교회 운영자 2001-10-28 532
28009 선교사 예수님 운영자 2001-10-29 656
28008 십일조의 목적 운영자 2001-10-29 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