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종교개혁의 승리(1555년)①

복음............... 조회 수 547 추천 수 0 2005.03.24 08: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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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종교개혁의 승리(1555년)①



마르틴 루터가 활동하던 당시 독일에 군림하던 황제는 카를 5세였다. 그는 소년기를 막 벗어난 16세 때 스페인의 왕이 되었고 약관 19세에 신성로마제국 즉,독일 황제의 자리에 등극한 인물이었다. 그가 황제가 되었을 때 독일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으로 거대한 역사의 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때였다. 불행하게도 그는 혁신과 개혁의 시대를 이끌고 나갈 만한 역사적 통찰력이나 정치적 지도력을 지니지 못했다. 그는 루터 지지파와 가톨릭교회 지지파 사이에 끼여 우왕좌왕하다가 황제의 자리에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퇴위했다. 그후 수도원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다가 생애를 마친 불운한 인물이었다.

카를 5세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곧 보름스에서 제국회의를 소집하고 당시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었던 루터를 범죄자로 규정,법적 보호를 박탈하는 칙령을 선포했다(1521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독일내 루터의 지지 세력은 늘어만 갔고 독일의 많은 제후들들은 강력한 루터의 지지자가 되었다. 원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카를 5세에게는 이러한 독일내 문제만이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긴박한 현안들이 많았다. 항상 숙적관계에 있던 프랑스 문제,유럽의 문턱까지 밀고 들어오는 오스만 제국의 위협,가톨릭 교황청의 무거운 압력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골치 아픈 문제들이었다.

1526년 카를 5세는 하이델베르크 근처 고도(古都) 스파이에르(Speyer)에서 제국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대외적인 모든 상황은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위협은 잠을 설치게 했고 교황의 지원을 받은 프랑스의 압박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제는 독일내 루터를 지지하는 제후들의 협력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루터를 범죄자로 정죄했던 1521년의 ‘보름스 칙령’과 관련하여 그 칙령을 영지내에서 시행하느냐 하지 않느냐 여부는 제후들의 재량에 맡긴다는 것이었다. 즉 루터의 교회개혁에 관한 입장을 제후들의 판단에 맡긴다는 것이었다. 루터 지지파 제후들은 황제의 결정을 그들의 영지에서 ‘루터파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것으로 확대 해석했다. 그들은 마침내 승리했다고 생각했고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루터 지지파 제후들이 승리에 도취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난 후 1529년 스파이에르에서 다시 제국회의가 열렸다. 이때는 대외적 상황이 많이 호전되었고 황제는 긴박한 상황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유약했던 황제는 이러한 상황 변화와 가톨릭측의 압력에 못 이겨 3년전의 결정을 번복해버리고 말았다. 즉 보름스 칙령을 부활시키고 친가톨릭교회 정책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러한 돌변 상황에 루터 지지파 제후들은 침묵할 수 없었다. 이들은 일치단결해서 황제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이때부터 루터 지지파들은 ‘항의하는 자’들이라고 알려졌고 그런 뜻으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로 불리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말은 루터 지지파들 뿐 아니라 가톨릭교회와 대비된 개신교 전체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루터 지지파들은 단순히 항의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1531년 독일 중부지역의 도시 슈말칼덴(Schmalkalden)에 모여 동맹을 결성했다. 황제의 친가톨릭 정책은 결과적으로 루터 지지파들을 더욱 결속시켰다. 루터 지지파들로 구성된 ‘슈말칼텐 동맹’은 독일내에서 황제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들과 황제 사이에는 끊임없는 갈등과 대결 상황이 빚어졌다. 마침내 황제도 이들의 단합된 힘에 손을 들고 말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에서 황제와 루터 지지파 사이에 대화합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개신교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된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Peace of Augsburg)이다. 이 화의의 핵심은 “제후의 영지 내에서는 제후의 종교를 따른다”(cuius regio,eius religio)는 것이다. 이때부터 루터를 지지하는 제후들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루터파 교회를 세울 수 있게 됐다.



1517년 비텐베르크 대학의 소장 학자 마르틴 루터가 대학교회 문에 95개 조항을 계시한 이후 38년만에 그가 이끈 종교개혁은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언제나 자기 백성을 미래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새로운 미래를 향한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주신 것이다. 그러면 루터의 종교개혁이 가져온 변화는 무엇인가? 먼저 교회 예배의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중세 가톨릭교회 예배의식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는 엄격하게 구분되었다. 모든 예배는 성직자 중심이었고 평신도는 방관자에 불과했다. 모든 크리스천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고 믿었던 루터는 모든 예배자가 다 예배에 참여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찬송가를 직접 작곡?작사해서 모두 함께 부르게 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예배의식의 큰 변화였다.

/박준서 교수 <연세대교수·신학박사>



성경의 인물

성경에 나오는 왕에서 노예, 예언자, 거짓 선지자에 이르기까지 약 400명의 인물들을 정렬하고, 관계 성구, 배경해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되새기도록 구성한 인물 백과사전.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살고, 투쟁하고, 실패하고 성취하며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부록: 성경에 나오는 전 인물<약2500명> 수록)

한 태 완 목사 著, 좋은 땅 (주문전화:386-8660), 정가 4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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