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24)

복음............... 조회 수 1797 추천 수 0 2005.01.31 07: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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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24)



본문 : 마가복음 4: 36∼40



만년설로 덮인 히말라야 산 속 깊숙이에 있는 동굴 속에서 하나님 앞에 명상하며 한평생 기도하는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유명한 수도사인데 이 분이 어느 날 눈을 감고 명상하며 기도하다가 눈을 떠본즉 자기 앞에 어느 카톨릭 수도원원장이 엎드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여기에 왔나?" 했더니 "큰 문제가 있어서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원장으로 있는 수도원은 많은 젊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경건을 훈련받는 훌륭한 수도원인데 지금은 왜 그런지 수도원이 텅텅 비었습니다. 찾아오는 젊은이도 없고 찬양소리도 그쳤습니다. 그저 책임자 몇 사람만 모여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수도원을 다시 부흥시킬 수 있겠습니까?" 합니다. 히말라야의 수도사는 잠자코 있다가 대답합니다. "죄 때문이요." "죄 때문이라고요? 아니, 우리가 수도원에 있는데 누구를 살인을 하겠습니까, 강도질을 하겠습니까, 도적질을 하겠습니까? 도대체 수도원에서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죄가 있지요. 무지라는 죄가 있어요." "우리가 무엇을 모른다는 말입니까?" 히말라야의 수도사는 대답합니다. "당신들 속에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한 하나님이 계시오. 그런데 당신들이 그를 몰라보고 있어요." 이 말을 듣고 수도원으로 돌아온 원장은 수도사들을 모아놓고 그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처음에는 믿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가운데에 사람으로 변장한 하나님이 계시다는데....'

그들은 저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형제를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분일까, 저 분일까? 이 분이 하나님일까 저 분이 하나님일까- 그러는 동안에 말도 조심하게 되고, 믿음을 다시 추스르게 되고, 사람을 존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사이에 저들은 찬송을 부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누군지 모르지마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함께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분위기는 확 바뀌었습니다. 감사 찬송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이렇게 치유되기 시작할 때에 많은 젊은이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수도원이 젊은이들로 북적거립니다. 그처럼 냉랭하게 다 끝난 줄만 알았던 썰렁한 수도원이 은혜로 충만하고 감사로 충만한 수도원으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중 하나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는 느낌이 없습니까? 여러분이 그런 느낌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폴 린델은 암으로 죽음이 임박해 있을 때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 베트남에서 아버지가 '내 아들이 죽었을 때 하나님은 어디 있었느냐?'는 질문을 했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그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아들이 갈보리에서 죽었을 때 바로 거기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친아들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고통 중에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수평선이 보이는 모래밭 위를 걷는 꿈이었습니다. 긴 모래 길은 자신의 일생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모래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보였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것, 또 하나는 늘 동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일생을 통해 극심한 고통을 당했을 때마다 모래 위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늘 함께 하신다고 하셨잖아요."라고 그가 물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내 발자국이다. 네가 고통 가운데 있었을 때는 내가 너를 업고 지나왔단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돌보시고, 고통을 당하는 동안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같이 생각되는 것은 여러분의 느낌일 뿐이지 정말로 그분이 멀리 계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아주 사소한 부분들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심지어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세고 계시는 분입니다.(마10:9-31) 머리카락까지 셀 정도로 관심이 많다면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고통에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겠습니까?

약한 종이 한 장은 새끼손가락 가지고도 찢어지지만 철판이나 나무판을 의지하고 있으면 주먹으로 쳐도 찢어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연약한 인간이 예수를 믿고 영접하면 죄사함 받고 구원받을 뿐 아니라 이 세상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셔서 어떤 고난과 고통이라도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가장 크고, 가장 본질적인 축복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시는 것’. 그보다 더 크고 더 본질적이며 우리가 바랄 다른 복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주시는 임마누엘의 복, 이것은 모든 인류가 소망해야 할 궁극적인 복이며 우리의 마지막 피난처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병도 안 걸리고, 재물의 고통도 안 당하고,만사 형통하는 복이 임할 줄 기대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임마누엘의 복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임마누엘의 복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 그것이 때로는 큰 병이고, 때로는 큰 실패이며 심지어 죽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 권능의 손에서 나를 지켜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내가 당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과 함께 당하는 일이 되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내 죽음까지도 하나님께는 무한한 가치를 갖는 사건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죽음을 귀하게 보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의 복이 가장 큰 축복이라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는 임마누엘 신앙이야말로 축복된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임마누엘의 신앙만 있으면 우리는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는 행복한 생활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 왕이 난을 만나서 신하들과 더불어 서민 복장을 한 채 피난길을 나섰습니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이르러 한 농부의 집을 찾아 며칠 유하자고 청했습니다. 고맙게도 그 농부는 이 일행이 누구들인지도 모르면서 기꺼이 맞아들여 한동안 정성을 다해 대접했다고 합니다 왕은 이 농부가 여간 고맙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정세가 회복되어 환궁하게 되자 왕은 여전히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농부보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신세를 많이 졌소. 내가 이 은혜를 갚아야 되겠으니, 소원이 있으면 한 가지 말해 보시오 들어주리다." 농부는 대답했습니다. "제게 무슨 별 다른 소원이 있겠습니까? 보시다시피 먹을 것도 넉넉하고 몸도 건강합니다. 여태껏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왕은 기어이 소원을 말해 보라고 거듭거듭 청했습니다.

"굳이 그러하시다면" 하고 농부는 마지못해 말합니다. "몇 달 있으면 제 환갑입니다. 아이들이 정성을 모아서 잔치를 해준다고 하니, 그 때 왕림해 주십시오." 왕은 내심 착하고 욕심 없는 농부의 사람됨에 탄복하면서 "알겠소."하고 돌아갔습니다. 몇 달 후 환갑날, 농부네 집에 난데없이 임금님의 대 행차가 이르렀습니다. 그 환갑잔치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농부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이 농부가 예삿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사방에서 예물이 들어오고, 명예를 얻었을 뿐 아니라 농부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그 집에 임금님이 다녀갔다고 해서 기념비까지 세웠다고 합니다.(골3:4, 대상11: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겁날 것이 없을 뿐 아니라, 평안과 강성함을 얻을 줄 믿습니다.

미국의 지글러가 가정 예배를 드릴 때의 일입니다. 지글러가 이렇게 식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6척 장군 골리앗이 있었단다. 그가 이스라엘에 쳐들어와 전쟁하자고 외쳤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무서워 나무 뒤에, 숲 속에, 굴속에 숨었단다. 이스라엘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꺼져가고 있을 때 17살밖에 안되어 솜털밖에 안 나서 면도칼도 필요 없는 소년 다윗이 용감하게 싸우러 나갔단다." 여기까지 설교가 이어졌을 때 아들이 설교를 갑자기 중단시키며 말했습니다. "아빠! 다윗이 용감한 것이 아니라 골리앗이 용감하네요." 지글러는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얘야! 다윗이 용감하지 어째서 골리앗이 용감하니?"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소년 다윗은 아무리 조그마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나가서 싸우는 것이 당연하지만 골리앗은 아무리 커도 하나님도 함께 하지 않는데 자기만 믿고 싸우는 것이 얼마나 용감합니까?" 아버지 지글러는 무릎을 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렇다. 세상에는 골리앗과 같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만 의지하고 사는 독립선언한 사람과 다윗과 같이 다윗과 같이 아무리 약하고 어려도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살겠다고 하나님께 종속선언한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늘 같이 계심을 믿는 종속선언자만이 하나님과 함께 자기 이상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혼자라는 생각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창세기 5장에는 아담 후손들의 족보가 기록돼 있습니다. 5장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말은 “누가 몇 세에 누구를 낳고 몇 년을 향수하다가 죽었더라”하는 것입니다. 향수한다는 말은 ‘오래 사는 복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므두셀라로 969세나 살았고 대부분의 사람도 900세 이상 장수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사람의 수명이 줄어들었는데 창조과학자들은 홍수 때 궁창의 물이 다 쏟아져서 자외선을 차단할 수 없게 돼 점차 수명이 줄어들었다고 해석합니다. 분명한 것은 창세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니 수명을 다 누리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시편 128편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첫째는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복이며 둘째는 가정이 풍성한 복이며 셋째는 장수하는 복입니다. 그런데 장수한다고 반드시 복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5장에서 가장 짧은 인생을 사신 분이 바로 에녹입니다. 그의 선조들은 900세 이상을 살았는데 에녹은 겨우 365세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 무려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당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갔습니다.

미가서 6장 8절은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것은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은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에녹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4장 16절을 보면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에녹은 항상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녹 뿐 아니라 가인에게도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했고 에녹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살았습니다. 성결교회의 유명한 부흥사이셨던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항상 오른손 주먹을 쥐고 다니셨답니다.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물으면 “나는 항상 주님의 손을 잡고 다닌다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프리카 개척자며 선교사인 리빙스턴이 오랜만에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글래스고 대학이 그에게 명예법학 박사학위를 수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학위를 받기 위해 행사장에 나타난 리빙스턴을 본 사람들은 몹시 놀랐습니다. 옛날의 잘 생기고 멋진 건강한 청년이었던 그의 모습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몹시 쇠약해 보였습니다. 사실 아프리카 원시림에서 사자에 물리기도 했고, 아프리카 특유의 심한 열병으로 스무 번이나 쓰러졌었습니다. 학위를 받은 리빙스턴이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아프리카에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그 극심한 고생이 기다리는 살아가는 것조차도 불확실한 땅 아프리카에 그가 다시 돌아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글래스고 대학 강당은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리빙스턴은 아무 말 없이 사람들을 둘러본 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살아 계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나의 길동무가 되어 원시림과 광야를 함께 걸어가 주십니다. 그러니 제게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성경에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1:9),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며 예수를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벅차고 고달픈 인생길, 미칠 것만 같은 고통을 받는 인생들이여! 예수님께 나아 오십시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27:1)"

줄리어스 시저, 곧 카이사르는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였습니다. 어느 날 카이사르가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별안간 거대한 폭풍우가 일면서 배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고 사공도 불안에 휩싸여 젓던 노를 던져버리고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카이사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사공을 꾸짖었습니다.“노를 잡아라! 카이사르가 타고 있는 한 아무 걱정할 것 없다. 배는 침몰되지 않는다” 물론 배는 침몰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카이사르의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뱃사공은 노를 젓지 않고 머뭇거리다 큰 봉변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시던 중 제자들과 함께 타고 있던 배에 광풍이 불어와서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불안에 떨었고 결국은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웁니다. “주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그때 주님은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십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꾸짖으며 말씀합니다.“왜들 무서워서 호들갑들이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이 내 인생의 배에 타고 있는 한 아무 걱정할 것 없다’는 믿음과 확신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앞에 놓이는 수많은 광풍과 같이 한 치 앞도 홀로 헤쳐갈 수 없는 상황들 가운데서 주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니, 인생의 중심에 주님이 계신가 재발견해야 합니다. 사람은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삶에 주님이 없는 사람, 주변에 손을 뻗으면 주님의 도우심을 얻을 수 있는 사람, 어떤 경우에도 주님이 행하실 때까지 기다리며 인생의 중심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그것입니다. 이 중에서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은 내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는 한 아무것도 걱정하거나 불안할 것 없다” 자신 있게 살아갑시다. 오늘 내 삶의 무게와 공포 때문에 믿음의 노를 젓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내 인생의 항로를 올바로 합시다.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주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요, 주님의 결정에 순종하는 삶이요, 끝까지 믿음의 노를 놓지 않고 저어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시작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장은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마지막 장은 무엇으로 끝날까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마태복음의 결론도 임마누엘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의 가운데 부분인 18장 20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은 처음에도 중간에도 마지막에서도 예수님께서 변치 않고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시련 중에 있을 때나 갈등 가운데 있을 때나 병중에 있을 때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어려움 중에 있을 때 우리가 어떤 문제로 고통 당하고 좌절과 실의에 빠져있는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에는 온통 임마누엘의 사건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4장에 보면 우리 주님은 병자들을 고치기 위하여 그들과 함게 거하셨습니다. 또 귀신들린 자들을 자유케하시기 위해 그들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5장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주시기 위해 그들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6장에 보면 염려하는 자의 염려를 없애주시기 위해 그들과 함께 거하셨고 7장에서는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자를 권면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한센병 환자를 고치시기 위해 그들과 함께 하셨고(8장) 굶주리고 있는 자를 먹이시기 위해 함께 해주셨고(14, 15장) 손 마른 자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해주셨습니다(12, 15장). 그리고 그 밖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하여 함께 거하시며 무엇보다도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들과도 함께 해주셔서 죄인의 친구라는 별명을 듣기까지도 하신 사랑 많으신 주님이신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지금 이 시간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함께 계십니다.

한 젊은 육상 선수가 올림픽에서 명성을 얻은 뒤 성공을 거둔 소감을 말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발을 내딛는 순간마다 나와 함께 달려주셨기 때문에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해설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하나님께서 오늘 당신이 이기도록 도우셨다는 말은 아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훈련하는 데 필요한 준비도 못했을 것이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할 필요성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달려 주셨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오늘 경기에서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고백입니까? 우리는 너무도 자주 매일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부터 지금껏 살아온 하루하루 삶의 기적, 그리고 우리가 가진 재능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과 이 세상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계신 그분을 인정할 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동행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492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함께 부르겠습니다.

1.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2. 세상 부귀 안일함과 모든 명예 버리고 험한 길을 가는 동안 나와 동행하소서

3. 어둔 골짝 지나가며 험한 바다 건너서 천국 문에 이르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후렴]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길 다 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아멘



한 사업가가 있는데 그는 참 어려운 시기를 만났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살고 있던 집이 가압류 당하고 곳곳에 빨간딱지가 붙었답니다. 한번은 밤에 화장실을 가다가 아버님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봤습니다. 혹시 괴로워서 온 밤을 지새우시는 것은 아닌지, 아버님이 계신 방의 문을 살짝 열어 보았는데 아버님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단정하게 앉아 책을 읽고 계셨답니다. 그는 어지러운 집안에서도 평소보다 더 침착하게 독서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버님이 미더워 그 날 이후로 잠을 푹 잘 수 있었답니다. 그 아버님이 말씀하시길 “사람들은 내가 이제는 다 망했다고 말한다. 망했으니 불행하겠지?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돈 벌어 재산 모으는 것을 행복으로 알고 살아왔지. 이제부턴 나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빚을 갚는 일을 즐거움으로 여기고 살 작정이다. 물론 너희들이 고생이 되겠지만 이것을 알아야 한다. 기쁨이란 즐거울 때만 오는 것은 아니다. 망할 때에도 즐거울 수가 있단다. 빚을 갚는 것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즐거울 수 있단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겠니?”

성도 여러분! 우리의 안전은 외적인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외부적인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변함 없으신 하나님, 바람이 불어도 요동치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도우시며 힘주셔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십니다. 능력의 주님을 믿으며 승리하는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

* 기도: 우리와 항상 동행해 주신 하나님, 나와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사오니 언제나 흔들림 없는 임마누엘의 신앙 속에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등뒤에 있는 분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은퇴 후 자신의 기념도서관을 방문했다. 그러자 마을 초등학생들이 대통령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그 중 한 학생이 대통령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공부를 잘하셨지요? 반장을 하셨나요?” 트루먼의 대답. “난 공부를 참 못했지. 눈이 나빠서 안경을 벗으면 거의 시각장애인이었어. 특별한 재주도 없었고 겁도 많은 편이었지.”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됐나요?” 트루먼의 상냥한 답변. “나는 믿음이 있었단다. 내게 힘이 없을 때 힘을 주시는 하나님과 성경을 믿었어. 하나님은 항상 내 등뒤에서 나를 응원하고 계셨단다. 그것이 가장 큰 힘이었지.”

당신의 등뒤에는 뭐가 있는가. 힘겨운 삶의 무게인가,아니면 가족 부양의 중압감인가? 참된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응원단장을 모시고 산다. 그들은 어떤 시련에 처해도 절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등뒤에서 응원하는,보이지 않는 손길을 믿기 때문이다. 이제 인생의 짐을 응원단장에게 맡기세요. 그리고 자유를 누리세요. 힘을 내세요.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0 나는 나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동행하심을 깨닫는가?

0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처해 있을지라도 주를 의지하고 담대할 수 있는가?

0 나는 세상에 속한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가?

0 나는 나의 인생을 주님께 모두 맡기고 살아가는가?

0 나는 내 생애를 하나님의 장 중에 맡기고 사는 가?

0 나는 밝은데서 홀로 걷기보다 차라리 어두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는가?

0 나는 나의 연약함을 주님께 맡기는가?

0 나는 주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느끼며 살고 있는가?

0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느끼며 사는가?

0 주님이 나의 보호자이심을 아는가?

0 나는 어린아이가 부모를 의지하듯이 주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이 있는가?

0 나는 남에게 문제를 의탁하고 적절한 도움을 구하지 않은 채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진 않습니까?

0 우리와 함께하고자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임마누엘의 주님을 얼마나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갑니까?

0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나와 함께하심을 누리며 살아가십니까? 그 사랑과 능력의 주님께 일상의 삶 속에서 감사함으로 찬양하십니까?



3. 예화(1): 외투 자락을 붙잡아라



대부흥사 무디의 일화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무디의 부흥회가 열렸는데 초만원이어서 16세 미만의 아이들은 입장 금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열두 살쯤 된 소년 하나가 거절을 당하자 문가에 울며 앉아 있었습니다. 이때 마차로 무디 선생이 도착하였는데 무디의 눈이 우연히도 이 소년을 발견하였습니다. “너 왜 울고 있니? 집을 잃었니, 아니면 배가 고파서 그러니?” 소년은 야위었고 헌 누더기옷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무디 선생님의 말씀이 듣고 싶은데 아이들은 못 들어가게 해요.” 무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나의 외투 뒷자락을 꼭 붙잡고 따라오너라.” 소년은 무디의 외투자락을 잡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성전 입구는 물론 강단 위까지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리둥절한 소년에게 무디가 말했습니다. “저 큰 의자에 끝까지 앉아 있어도 좋다. 여기는 내 옷자락만 붙들고 있으면 언제나 들어온다는 것을 잊지 마라.”

15년 후 이 시골 교회에 새로 부임해온 목사는 그때의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어리고 약한 우리가 험한 이 세상을 살아갈 최선의 방법은 하나님만을 꼭 잡고 그 분과 동행하는 것뿐입니다.



* 예화(2): 나를 지으신 주님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 주셨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난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버지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4. 찬송(1): (493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1. 나 이제 주님의 새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이 빛난다

2. 주안에 감추인 새생명 얻으니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값없다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맛보니 찬송과 기도로 주 함께 살리라

3. 산천도 초목도 새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새생명 얻은 자 영생을 맛보니 주님을 모신 맘 새 하늘이로다

4. 주 따라가는 길 험하고 멀어도 찬송을 부르며 뒤따라 가리라 나 주를 모시고 영원히 살리라 날마다 섬기며 주 함께 살리라



[후렴]

영생을 맛보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 찬송(2): (499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



1.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2. 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울던 새도 잠잠케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3.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후렴]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5. 성경말씀:

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9-20)

0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레위기11:45)

0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39:23)

0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45:8)

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3:10)

0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시5:11)

0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셀라>(시32:7)

0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시96:7)

0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시121:5)

0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3:17)



6. 시: 우리 함께 가는 길에



그대를 만남이

그대를 찾음이

나에게는 축복입니다.



우리 함께 가는 길에

동행할 수 있음이

나에게는 행복이기에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 하나 하나가

한 떨기 꽃이 될 수만 있다면

그대 가슴에 안겨 주고만 싶습니다.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대에게만은

별이 되어 빛나고 싶습니다.



꽃이 되어 피어나고 싶습니다.

- 용혜원의 <우리 함께 가는 길에> 중에서 -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주문: 전화: (02) 386-8660, 팩스(02)386-2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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