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적과 수단

복음............... 조회 수 915 추천 수 0 2004.09.14 21: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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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과 수단



본문: 요일2: 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김동인이 쓴 "감자"라는 단편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복녀는 가난한 농가에서 착실하게 자라납니다. 그녀는 열 다섯 살 나이에 돈에 팔려 시집을 갑니다. 그런데 남편은 극도로 게으른 사람이라 얼마 못 가서 물려받은 재산을 다 날리고, 복녀 부부는 빈민굴로 들어가 살게 됩니다. 얼굴이 제법 반반한 복녀는 송충이 잡이를 나갔다가 음흉한 감독의 눈에 들어 일하지 않고도 몇 푼씩 챙겨 가지고 집에 왔습니다. 얼굴에는 분(화장)도 발랐습니다. 그들 부부의 생활도 궁하지 않게 됩니다. 가을이 되자 복녀는 동네 여인들과 함께 중국인 왕서방의 밭에 가서 감자며 배추를 곧잘 훔쳐 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밤 복녀는 감자를 훔쳐 가지고 나오다 왕서방에게 잡히게 됩니다. 그 뒤부터 복녀는 왕서방집에 자주 갔고, 왕서방도 복녀집에 찾아 다녔습니다. 왕서방을 안 후부터 복녀 부부는 빈민굴의 부자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런데 복녀에게 싫증을 느낀 왕서방은 어떤 처녀를 새 부인으로 맞아들이게 됩니다. 질투심에 불타는 복녀는 왕서방의 배신보다는 어쩐지 새색시만 한없이 미웠습니다. 복녀는 손에 낫자루를 들고 신방에 찾아가 신부를 혼내어 쫓아내려 합니다. 그러나 왕서방이 이를 달갑게 여길 리가 없습니다. 분을 못 참은 복녀는 낫을 휘둘렀으나 이내 피를 흘리며 푹 쓰러진 쪽은 복녀였습니다. 복녀의 시체는 남편의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시체주위엔 세 사람이 둘러앉았습니다. 한 사람은 그녀의 남편, 한 사람은 왕서방, 또 한 사람은 한방의사였습니다. 왕서방은 돈주머니를 꺼내어 복녀 남편과 한방의사의 손에 쥐어줍니다. 이렇게 하여 사흘이 되던 날, 스물이 갓넘은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사의 사망진단에 따라 공동묘지에 묻히고 맙니다. 돈 받고 묵인해 주는 한심한 남편, 의사가 양심을 저버리고 허위진단을 내린 한방의사, 이들은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딤전4:2)

성경은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리라."(히13:4)

사람의 생명은 결코 돈으로 환산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항상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옛날 가난한 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도덕군자였고 학자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책을 읽어 둔갑술도 대단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용한 의원이 찾아와 개 천 마리를 먹으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 효자는 한밤중에 도술을 부려 호랑이로 둔갑했습니다. 그리고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개 도둑질을 했습니다.

개 9백99마리를 잡아와 어머니에게 드리니 병도 거의 나았습니다. 이제 한 마리만 먹으면 씻은 듯이 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안 남편의 행적을 이상하게 여겼던 아내가 책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로 둔갑했던 그 효자는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어, 거친 호랑이로 날뛰다가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도 죽고 그의 아내도 죽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는 목적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 수단이 그릇되면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구실로 남의 촛불을 훔쳐서는 안 된다."는 서양 격언도 바로 이런 것을 깨우치고자 한 것입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사회질서를 혼탁하게 만든 무리들이, 사회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다고 변명한다면 이는 그 개도둑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사탄의 사상인 공산주의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하면서 공산주의 확장을 위해서는 살인, 전쟁, 거짓말,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고 자행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있을지라도 악한 방법을 써서 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마귀의 방법은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령 천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을 때 백해 무익한 수전노 한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빼앗아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 같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한 목적을 위해서라도 악한 방법을 쓸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로마의 법으로 처형 당하시면서도 그들을 진멸하지 않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활과 승리를 주셨고, 세상을 사랑으로 정복하셨습니다.

19세기 정치가이며 외교관이었던 찰스 아담스는 일기를 썼는데, 하루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오늘은 내 아들과 낚시를 하러 갔다. …하루가 낭비되었다." 반면에 그의 아들, 브룩 아담스도 역시 일기를 썼는데, 그는 그 날의 일기를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오늘 아빠와 함께 낚시를 했다. … 오늘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멋진 날이었다." 이런 차이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버지는 아들과 낚시하는 동안 그 시간을 낭비로 보았지만, 아들은 낚시하는 것을 시간을 투자할 만한 일로 보았던 것입니다. 아들에게는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보낸 시간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낭비로 여겨질 수도, 좋은 투자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와 같습니다. 인생의 낭비가 있을 수 있고, 좋은 투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을 알고 그에 따라 판단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그만큼 낭비하는 시간이 많을 것입니다.

몇 년 전, 한 대학생이 자살했습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하여 자살한 거라면 이해가 갑니다만, 그는 우수한 성적을 받아 원하던 대학에 들어간 학생이었습니다. 합격을 축하하던 사람들은 그의 소식을 듣고 매우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후 책상 서랍에서 그 학생의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자살 이유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는 이제 살기가 싫어졌습니다. 오로지 대학 입시만을 위해 공부했습니다만 합격한 지금에 와서는 그 모든 것이 헛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만, 저는 그의 죽음 속에서 인생의 본질적 질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어떤 가치와 목적을 향해 살아가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삶의 진실성 여부는 우리가 어떤 가치와 목적을 향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높은 곳에 푯대를 세우고 달려가는 사람은 눈과 마음과 일상 속에서 밝은 빛이 나옵니다. 반면 저급하고 값싼 목적 안에서 헤매는 사람의 삶에는 음울한 그늘이 드리워집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인생의 의미나 삶의 목적을 찾고 싶어하는 깊은 갈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직업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내 인생의 목적은 치과 의사가 되는 거야.”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고상한 사명감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되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에 가치를 둡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한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일을 하려고 합니다. 쉬지 않고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들은 무엇을 소유했는가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짓습니다. 이들은 새 차, 새 집 또는 새 옷에서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경제적인 문제에 연연하고 마음을 졸입니다. 항상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뿐인 진리는 다른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존재는 그저 광활한 우주를 떠다니는 잡동사니에 불과합니다.

목적론(Teleology)적으로 말할 때 모든 것은 다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이 볼펜도 전화기도 시계도 다 저 혼자 보기 좋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졌고 또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존재의 목적은 물건전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의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시계는 자기 혼자 뱅글뱅글 돌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시간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도 먹고 자고 일하고 자식 낳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 아닙니다.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에 진정한 행복과 만족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목적에서 어긋날 때 혹은 알지 못할 때 아무리 명예와 재산을 다 소유했다고 해도 참 만족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 치고 자기에게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시장을 지나다가 사람들을 만나 길을 물었다고 합니다. 신발을 만드는 가게를 물어도 잘 가르쳐주고. 옷장을 만드는 집 등 이것저것 여러 가지 것을 다 물어보아도 아주 상세히 길을 가르쳐 주더랍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사람을 만드는 집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는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더랍니다. 이는 물건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상세하게 알고 있으나.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등한시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하나의 풍자입니다. 이렇듯이 인간은 양말 한 켤레나 돈 천 원, 만원을 잃어버리면 크게 신경을 쓰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둔감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소중함이 절실히 요망됩니다. 우리는 근대화와 경제건설의 경쟁적 추세에서 사람 낚는 일보다 고기 잡는 일에 너무나 많은 것을 유보하고 망각하고 있습니다. 생활비를 얻기 위하여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분주하게만 살아갈 따름입니다. 예쁜 옷을 마련하기 위하여 정신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정작 예쁜 옷이 필요한 시간은 잃어버렸다는 슬픈 이야기처럼, 우리는 삶의 중심이 흐트러진 세상에서 갈팡질팡 생활하고 있습니다. 고기잡이도. 장사도. 과학기술도 엄밀히 말해서 생활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들은 가족과 생활터전을 버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어부에게 있어서 물고기는 곧 돈이며 생활인에게 있어서 돈은 마치 전부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생활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진정한 인생의 목적을 찾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생활 전체에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사람 낚는 일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꼭 찾고 싶어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오래 전에 이 사원을 방문했던 방문객들의 입에서부터 이런 흥미 있는 일화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인도해주던 안내자가 있었습니다. 이 안내자는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그리고 무덤에 묻혀 있는 지나간 세기의 찬란한 영웅들의 삶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또 현재 그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이 끝난 후에 안내자는 방문객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아 주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어느 여신도 한 사람이 안내자를 향해서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과 내력에 관해서 훌륭한 설명을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한가지만 하겠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이 뜻밖의 질문 앞에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안내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모임)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와 내용은 무엇이며, 오늘 우리가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 모든 형식과 허상은 그 목적과 어떤 관련이 되어져야 하는지 우리는 뒤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보시오, 당신은 어딜 그렇게 바삐 가는 거요?" 분주한 인생 길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그때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한 노인이 지나는 나그네에게 물었습니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 거냐고. 나그네는 서울에 간다고 대답했습니다. 노인은 딱하다는 듯이 "서울은 북쪽인데, 어째서 남쪽으로 가는 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나그네는 다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염려 마세요. 나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니 노력만 하면 안 될 게 없지요." 나그네가 어리석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쯤, 당신도 자기 삶의 목적과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문제는 방향입니다.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는 날벌레들의 생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던 중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날벌레들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무턱대고 앞에서 날고 있는 놈만 따라서 빙빙 돈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향이나 목적지도 없이 그냥 도는 것입니다. 빙빙 돌고 있는 바로 밑에다 먹을 것을 가져다 놓아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돌기만 합니다. 이렇게 무턱대고 7일 동안이나 계속 돌던 날벌레들은 결국 굶어서 죽어 간다고 합니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아무런 목표 없이 파브르가 관찰한 날벌레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전체 인류의 87%에 이른다고 합니다. 여러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거부가 된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이 1884년 4월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신문에 자신의 사망기사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은 그의 형인 루드비히 노벨이 죽은 것을 신문사가 잘못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노벨이 받았던 충격은 자신의 사망기사 때문이 아니라 그의 호칭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사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라는 폭탄을 발명한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사망하다.“

노벨은 사람들이 자신을 ‘죽음의 상인’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노벨은 자신의 죽음과 죽음 후를 심각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 재산을 기부해서 인류의 행복과 생명을 위해서 기여한 사람들에게 상을 주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약 그가 잘못된 그의 사망기사가 게재된 신문을 읽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그는 ‘죽음의 상인’으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과연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 성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를 생각하며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나의 존재를 생각해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고 기록돼 있습니다. 에노스라는 의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한계성을 인식할 때 창조주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별수없는 존재, 한계적인 존재, 길을 잃어버린 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분은 우리의 참목자이신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잘 돌아가고 가시적 성과들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정신 없이 마치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달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좀 여유를 갖고 달려온 그 삶을 잠시 정지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와 난제들을 풀어가는 열쇠는 나의 한계성과 피조성,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정든 집과 부모님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동안 땀 흘리며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물론 그 덕택에 그는 거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4명의 부인과 11명의 아들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만하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야곱의 마음속에는 참된 행복과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날 라반의 집에서 나와 얍복강에 이릅니다. 거기서 야곱은 모든 소유를 먼저 보내고 자신은 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영혼을 꿰뚫는 질문을 합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은 한번도 자신이 야곱이면서도 야곱인 줄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질문을 통해서 처음으로 자신을 뒤돌아봅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예, 제 이름이 야곱입니다.” 야곱이라는 말은 붙잡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산다고 하였지만 자신의 신념을 붙들고, 고집을 붙들고, 자아를 붙들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신을 발견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축복해줍니다. 그때 비로소 그의 마음속에는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된 기쁨과 환희와 감격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하시던 일을 잠시 멈추고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진정한 삶의 방향을 찾아 참된 평안을 누리는 여유로움을 가져보지 않으시겠습니까?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지금까지는 방향이 올바른지 점검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방향을 점검하길 원합니다. 나의 달려갈 목표와 길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달려갈 길이 향방 없는 자처럼 내 달음질과 수고가 헛되지 않게 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내가 주님을 바라보며 적극적인 마음으로 살도록 해주소서 목표를 향해 서두르지 말고 거기서 돌아서지도 말고 희미한 과거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슬퍼하지도 말고 숨겨진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물러서지도 않고 내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기쁨에 찬 마음으로 주님을 푯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해주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예화: 사람과 환경



인류 역사상 사람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은 환경에 눌려 실패한 예가 거의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이며, 그중에서도 어머니들입니다. 정상적인 어머니들은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그 환경에 굴복하는 예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보다 자신의 일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기 쉬운 아버지들은 환경에 눌려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한 그 목적을 이룬다 할지라도 외로움과 고통 속에 신음하는 노년의 어르신들을 무수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람과 환경의 두 요소 중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요? 사람과 환경은 서로가 수단도 되고 목적도 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 환경을 사용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환경을 얻기 위해서 사람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어느 한 쪽이 목적으로 귀착됩니다. 환경과 사람이 동시에 목적이 되거나 동시에 수단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물질문화가 언제나 우리들의 인생의 목적을 물질에 두도록 유혹을 하지만 우리는 사람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최종적으로 환경을 얻기 위해 사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환경이 목적이 되고, 사람은 그 환경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어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대인들의 다수가 사람보다 환경을 더 추구합니다. 냉철히 바라보면 우리들의 인간관계의 대다수가 우리가 기대하는 환경을 얻기 위한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기대하는 환경을 얻기 위해 대 다수의 사람들을 배치합니다. 환경을 얻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그 사람들이 포기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최종적으로 사람을 얻기 위해서 환경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이 목적이 되고, 환경은 그 사람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자신이 기대하는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 대 다수의 환경들이 재배치됩니다.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 환경은 얼마든지 포기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을 얻기 위해 환경을 포기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로 여겨지는 경우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사람을 얻기 위해 환경을 사용하도록 요구합니다.



성경의 인물

성경에 나오는 왕에서 노예, 예언자, 거짓 선지자에 이르기까지 약 400명의 인물들을 정렬하고, 관계 성구, 배경해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되새기도록 구성한 인물 백과사전.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살고, 투쟁하고, 실패하고 성취하며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부록: 성경에 나오는 전 인물<약2500명> 수록)

한 태 완 목사 著, 좋은 땅 (주문전화:386-8660), 정가 40,000원

좋은땅 인터넷 http://www.g-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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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홈페이지: http://allcome.ce.ro, http://je333.c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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