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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된 삶을 위한 4가지 당부
본문: 역대상 28장 1-10절
어떤 부모가 있었습니다. 자녀를 끔찍이 사랑합니다.
자녀들의 기분을 사려 깊게 생각해줍니다. 그러나 중심을 잡아주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주일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재미없어 다른 곳으로 다니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녀에 대한 사랑이 발동해서 "좀더 재미있는 곳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것은 좋은 일일까요? 아이들 기분에는 좋겠지만 아이들 인격에는 나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할 일은 먼저 적응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관계의 훈련도 하고, 공동체 훈련도 받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학원에서 친구와 한번 싸웠다고 금방 다니던 학원을 바꿔버리고,
아이가 교회에서 별로 재미가 없다고 해서 금방 교회를 옮기게 방치한다면
아이는 점차 사회성이 없고, 자기만 생각하는 아이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이 마음에 든다고 하는 곳만 찾도록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고 재미가 없는 곳에서도 적응하며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가 조금 불평해도 학원을 옮기고, 교회를 옮기고 금방 환경을 바꾸게 놔두면
그런 부모의 태도는 아이를 도우려다가 오히려 망치는 태도가 될 것입니다.
언뜻 보면 순발력 있게 실력과 지식을 좇아 재빨리 움직이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지식이나 실력보다 꾸준한 인격과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 자세가 있어야 윗사람을 알고 권세를 존중하는 자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실력이 있으면 뭐합니까? 태도가 준비되지 않은 실력은 불행만 키울 뿐입니다.
가끔 아이들이 교회에서나 유치원에서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아이는 집에 와서 부모님에게 그것을 다 일러바칩니다.
왜 다 일러바칠까요? 아이의 그런 불평에 부모들이 우왕좌왕했다는 증거입니다.
아이들이 꾸중을 들었을 때 부모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님은 그 즉시 선생님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 아이의 말에 감정적으로 "왜 내 아이 기를 죽이나?"라고 반응하면 안됩니다.
아이를 기죽이지 않으려다가 인생을 죽이고, 인격을 죽이는 일이 있으면 안됩니다.
내 아이에게 꾸중을 해 주었다는 것으로 인해서 감사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내 아이의 감정은 감싸안아 주십시오. 그처럼 아이의 감정은 감싸안아 주시되
조치는 이성적으로 해서 아이들의 구미에 맞추어 조치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가 누구입니까? 아이들이 재미없어 하는 자리에도 있게 하는 자가 부모입니다.
아이들의 기분에 맞추어 재미있게 하려고만 하면 나중에는 통제 불능이 됩니다.
나중에 교회를 안나간다고 할 때 "왜 안 나가느냐?"고 해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법과 규칙과 권세를 존중하게 해야 합니다.
그처럼 재미없는 상황과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도록 만들어서,
하나님 말씀대로 잘 양육하여 내일의 큰 재목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러한 부모의 사명을 일깨우는 귀한 본문입니다.
다윗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랑의 표현으로 다윗은 왕이 된 후 성전 건축의 뜻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해 성전 건축 재료까지 준비했습니다(2절).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성전 건축을 막습니다.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군인이라 피를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다윗은 자기가 다 축복을 받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 평생에 소원이 이것이었는데요?"라고 하나님께 반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히 성전 건축의 아름다운 사명을 아들인 솔로몬에게 인계합니다.
좋은 일을 나만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해도 기뻐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 건축 사명을 솔로몬에게 인계하면서 신앙도 인계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사명 교육을 시킵니다.
우리 자녀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자기의 사명을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꿈을 자녀들에게 심어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물질을 남겨주지 마시고, 비전을 남겨주시고 성전건축의 꿈을 남겨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나라 복음화의 꿈을 남겨주시고, 세계선교의 꿈을 남겨주십시오.
요즘 자녀들 영어공부 열심히 시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영어공부를 시키는 목적을 분명히 하면서 영어공부를 시켜야 합니다.
세계인을 상대로 복음 전하는 사역을 잘 하도록 영어 공부를 시키는 것이라면,
그와 같은 목적이 뚜렷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목적을 기뻐하시겠습니까?
소중한 목적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하는 일을 우리는 사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사명은 땀을 투자하게 만들고, 사람을 용기 있게 만듭니다.
사명은 사람에게 도전정신을 주고 불굴의 의지를 주고 모험하게 합니다.
때로 실패가 있을지라도 사명이 분명한 사람은 반드시 딛고 일어섭니다.
사람은 사명을 의식하는 만큼 강해지고 담대해집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선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사명 때문에 강해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적인 삶,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하는 사명적 삶은
우리들의 삶에 얼마나 풍성한 하나님의 은총을 전해주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을 잘 살펴보십시오. 평범함과 비범함의 차이는 어디에서 생길까요?
머리 좋은 것에서 차이가 생길까요? 부분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배경 있는 것에서 차이가 생길까요? 부분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외적인 어떤 것이 있는 것에서 차이가 생길까요? 부분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평범함과 비범함의 차이를 가장 크게 가져다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삶의 자세의 차이입니다.
사명을 매일 자각하고 그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은 반드시 비범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붙들고 행복해하면서 죽을 수 있는 일(사명)'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명적 존재가 되도록 다윗은 솔로몬에게 본문 9-10절에서 4가지 권면을 합니다.
이 4가지는 축복 받는 인생이 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그 4가지란 무엇일까요?
1.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라!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하나님을 알라고 하는데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라!'고 말합니다.
아마 부모로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자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우리의 전도하는 모습도 그런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의 하나님을 아십시오! 제가 섬기는 주님을 믿어보십시오!"
말로만 "믿으라!"고 하지 말고 행동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미국의 스탠리라는 탐험가가 아프리카에서 잠시 리빙스턴과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며 그는 나중에 신문에 글을 기고하며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저와 함께 있을 때 예수님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을 보고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나 그럴 겁니다."
믿는 사람은 말만 많으면 안됩니다. 그의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입에서 예수님 얘기가 안 나와도 행동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있었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물질을 서로 나누고,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사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사람들은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참 사랑의 의미를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내가 믿는 예수님을 알라!"고 담대히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다윗의 하나님을 아십시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아십시오.
좀더 알아야 합니다. 지식적으로 알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38편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보면 병이나 문제를 계기로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믿으면서 기적적으로 병이 치료되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병이 치료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계속 교회에 나옵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고 승리합니다.
자세히 보면 이것이 더 위대한 축복이고, 더 놀라운 축복입니다.
문제 해결의 축복보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라
9절 말씀은 계속 말합니다.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결국 이런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도 섬길 줄 알 것입니다.
사람은 섬김을 받을 때보다 섬길 때 더 큰 행복을 느끼도록 창조되었습니다.
BMW 차를 타고 호텔에 가면 "어서 옵쇼!" 하고 호텔 직원이 섬겨줍니다.
기분은 좋지만 그런 대접을 받고 "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아원에 가서 희생의 땀을 흘리고 난 다음에는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물질과 권세를 소유하는 것이 기쁨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어찌 섬김과 드림의 기쁨을 능가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과 기쁨은 소유하는 삶에 있지 않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에 있습니다.
그것은 알기에 다윗은 최선을 다해 자기 것을 성전 건축을 위해 드렸습니다.
본문에서 한 장 더 넘겨서 역대상 29장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더니..."(2절)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3절)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최선을 다해 드렸더니 사람들이 움직여서
역대상 29장 6절을 보면 다른 많은 지도자들도 드리는 일에 즐겁게 동참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자신을 기꺼이 비웁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의 호주머니를 비울 때
하나님은 더욱 큰 은혜와 축복으로 그의 삶에 채워주실 것입니다.
3. 삼가라!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는 삼갈지어다."
삼가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삼가라는 말일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사울형 인간이 되지 말고 다윗형 인간이 되라는 말입니다.
사울은 다윗이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니까 다윗을 시기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그처럼 타인의 행복을 막으려고 하다 보니까 자신의 행복이 막히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이 높아진다면 누가 잘 되어도 박수를 쳐 줄 줄 알아야 합니다.
그처럼 타인의 성공을 진정으로 기뻐하는 마음이 삼가는 마음인데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성공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은 저주하시고 다윗은 축복하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그 이름대로 맨날 '싸울'려고만 하지만,
다윗은 모든 사람을 '다 윗' 분으로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처럼 맨날 '싸울'려고만 하지 마시고, 다윗처럼 '다 윗' 분으로 섬기십시오.
그러므로 여기에서 "삼가라!"는 말은 결국 "겸손하라!"는 말입니다.
다 부족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누가 봐도 제일 신앙심이 깊은 것 같은데 그가 가장 겸손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한 가지로 신앙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은데 돈에는 너무 쉽게 넘어집니다.
어떤 분은 돈에는 참으로 초연한데 이성 앞에 가면 또 쉽사리 넘어집니다.
어떤 분은 이성 앞에서는 꿈적도 안 하는데 명예의 유혹에서는 또 넘어집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어느 것 한 가지만 가지고 신앙을 비교한다는 것이 정말 힘듭니다.
어떤 분은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사람들이 그 인격의 가치는 평가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매우 충성하는 것 같은데 물질 면에서는 아주 인색한 모습을 보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모든 것은 바쳐 헌신하는데 언어생활에서 항상 약점을 노출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정말 삼가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 성소의 전을 힘써 건축하라!
10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말씀일까요?
교회를 아름답게 세우고, 교우를 섬기는데 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성도의 보금자리이고, 성도의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화와 출세욕 때문에 교회를 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교회를 버리기는 쉽지만 교회를 다시 찾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경험해 보신 분은 아실 것입니다. 휴전선을 긋기는 쉽지만 지우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생활이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보일지라도
"아이고, 세월이 약이겠지"하고 꾸준히 교회생활을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인이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향할 때
이전보다 더욱 더 타락의 길, 고통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냉장고에서 나온 음식이 더욱 쉽게 부패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우리의 영원한 보금자리로 생각하며 힘써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명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 4가지 권면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본문 7-8절 말씀을 보십시오.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삶의 터전이 견고해지고, 그 터전에서 행복이 주어지고,
대대로 후손에게도 복이 되어 그 삶의 터전이 행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삶을 보십시오. 순종하는 마음이 없이 행복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터전을 진정 행복하게 만들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다른 말을 할 것이 없습니다. 먼저 순종을 배우고 실천하십시오.
특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보십시오. 반드시 행복은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여자 집사님 자기의 가정 생활을 비관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빨리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너무 간절히 기도하니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환상 중에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 오고 싶은 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겠다. 네 소원을 들어주겠다.
그런데 네 소원을 들어주기 전에 몇 가지 내가 하는 말에 순종해보겠니?"
그 집사님이 "예!"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네가 죽으면 장례식을 해야 되는데 집안이 너무 지저분한 것 같구나!
사람들로부터 마지막 정리를 잘 하고 갔다는 말을 듣도록 집안청소 좀 할래!"
그래서 이 집사님이 며칠 동안 열심히 집안 청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주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떠날 때 자식이 맘에 걸리지? 그러면 우리 엄마가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고
느끼도록 며칠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사랑을 한번 표현해봐라."
그러자 그녀는 주님 말씀대로 며칠 동안 자식들을 감싸주고, 품어주고,
정성스럽게 요리를 만들어서 자식들에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자녀들에게 정성을 쏟았는데 며칠 후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갈 때가 가까이 왔다.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하자! 너 남편이 미웠지?
남편이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나도 안단다.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았을 거야.
그런데 남편이 장례식 하면서 '참 좋은 아내였는데.'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남편에게 말대답하지 말고, 사흘만이라도 최대한 친절하고 상냥하게 해봐라."
그 말씀을 듣고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 남편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며칠 후에 주님이 이 집사에게 와서 말합니다.
"이제 나와 함께 천국으로 가자! 그런데 가기 전에 네 집을 한번 돌아보려무나!"
그래서 돌아보니까 깨끗한 집에서 오랜만에 자녀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있고,
남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니까 이 여 집사가 천국으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후 처음으로 "자기 집이 정말 행복한 천국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주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이 행복한 모습이 어떻게 된 것이죠?"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네가 내 말에 순종했기 때문에 천국이 펼쳐진 것이란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서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보십시오.
항상 겸손한 순종을 통해서 아름다운 삶을 엮어 가는 기초석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
청량고등학교 교사 (등대교회 협동목사) 한 태 완
http://jesusgospel.ce.ro,
http://je333.ce.ro, http://yehwa.ce.ro
본문: 역대상 28장 1-10절
어떤 부모가 있었습니다. 자녀를 끔찍이 사랑합니다.
자녀들의 기분을 사려 깊게 생각해줍니다. 그러나 중심을 잡아주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주일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재미없어 다른 곳으로 다니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녀에 대한 사랑이 발동해서 "좀더 재미있는 곳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것은 좋은 일일까요? 아이들 기분에는 좋겠지만 아이들 인격에는 나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할 일은 먼저 적응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관계의 훈련도 하고, 공동체 훈련도 받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학원에서 친구와 한번 싸웠다고 금방 다니던 학원을 바꿔버리고,
아이가 교회에서 별로 재미가 없다고 해서 금방 교회를 옮기게 방치한다면
아이는 점차 사회성이 없고, 자기만 생각하는 아이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이 마음에 든다고 하는 곳만 찾도록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고 재미가 없는 곳에서도 적응하며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가 조금 불평해도 학원을 옮기고, 교회를 옮기고 금방 환경을 바꾸게 놔두면
그런 부모의 태도는 아이를 도우려다가 오히려 망치는 태도가 될 것입니다.
언뜻 보면 순발력 있게 실력과 지식을 좇아 재빨리 움직이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지식이나 실력보다 꾸준한 인격과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 자세가 있어야 윗사람을 알고 권세를 존중하는 자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실력이 있으면 뭐합니까? 태도가 준비되지 않은 실력은 불행만 키울 뿐입니다.
가끔 아이들이 교회에서나 유치원에서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아이는 집에 와서 부모님에게 그것을 다 일러바칩니다.
왜 다 일러바칠까요? 아이의 그런 불평에 부모들이 우왕좌왕했다는 증거입니다.
아이들이 꾸중을 들었을 때 부모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님은 그 즉시 선생님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 아이의 말에 감정적으로 "왜 내 아이 기를 죽이나?"라고 반응하면 안됩니다.
아이를 기죽이지 않으려다가 인생을 죽이고, 인격을 죽이는 일이 있으면 안됩니다.
내 아이에게 꾸중을 해 주었다는 것으로 인해서 감사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내 아이의 감정은 감싸안아 주십시오. 그처럼 아이의 감정은 감싸안아 주시되
조치는 이성적으로 해서 아이들의 구미에 맞추어 조치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가 누구입니까? 아이들이 재미없어 하는 자리에도 있게 하는 자가 부모입니다.
아이들의 기분에 맞추어 재미있게 하려고만 하면 나중에는 통제 불능이 됩니다.
나중에 교회를 안나간다고 할 때 "왜 안 나가느냐?"고 해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법과 규칙과 권세를 존중하게 해야 합니다.
그처럼 재미없는 상황과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도록 만들어서,
하나님 말씀대로 잘 양육하여 내일의 큰 재목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러한 부모의 사명을 일깨우는 귀한 본문입니다.
다윗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랑의 표현으로 다윗은 왕이 된 후 성전 건축의 뜻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해 성전 건축 재료까지 준비했습니다(2절).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성전 건축을 막습니다.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군인이라 피를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다윗은 자기가 다 축복을 받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 평생에 소원이 이것이었는데요?"라고 하나님께 반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히 성전 건축의 아름다운 사명을 아들인 솔로몬에게 인계합니다.
좋은 일을 나만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해도 기뻐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 건축 사명을 솔로몬에게 인계하면서 신앙도 인계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사명 교육을 시킵니다.
우리 자녀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자기의 사명을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꿈을 자녀들에게 심어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물질을 남겨주지 마시고, 비전을 남겨주시고 성전건축의 꿈을 남겨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나라 복음화의 꿈을 남겨주시고, 세계선교의 꿈을 남겨주십시오.
요즘 자녀들 영어공부 열심히 시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영어공부를 시키는 목적을 분명히 하면서 영어공부를 시켜야 합니다.
세계인을 상대로 복음 전하는 사역을 잘 하도록 영어 공부를 시키는 것이라면,
그와 같은 목적이 뚜렷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목적을 기뻐하시겠습니까?
소중한 목적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하는 일을 우리는 사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사명은 땀을 투자하게 만들고, 사람을 용기 있게 만듭니다.
사명은 사람에게 도전정신을 주고 불굴의 의지를 주고 모험하게 합니다.
때로 실패가 있을지라도 사명이 분명한 사람은 반드시 딛고 일어섭니다.
사람은 사명을 의식하는 만큼 강해지고 담대해집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선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사명 때문에 강해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적인 삶,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하는 사명적 삶은
우리들의 삶에 얼마나 풍성한 하나님의 은총을 전해주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을 잘 살펴보십시오. 평범함과 비범함의 차이는 어디에서 생길까요?
머리 좋은 것에서 차이가 생길까요? 부분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배경 있는 것에서 차이가 생길까요? 부분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외적인 어떤 것이 있는 것에서 차이가 생길까요? 부분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평범함과 비범함의 차이를 가장 크게 가져다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삶의 자세의 차이입니다.
사명을 매일 자각하고 그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은 반드시 비범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붙들고 행복해하면서 죽을 수 있는 일(사명)'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명적 존재가 되도록 다윗은 솔로몬에게 본문 9-10절에서 4가지 권면을 합니다.
이 4가지는 축복 받는 인생이 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그 4가지란 무엇일까요?
1.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라!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하나님을 알라고 하는데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라!'고 말합니다.
아마 부모로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자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우리의 전도하는 모습도 그런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의 하나님을 아십시오! 제가 섬기는 주님을 믿어보십시오!"
말로만 "믿으라!"고 하지 말고 행동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미국의 스탠리라는 탐험가가 아프리카에서 잠시 리빙스턴과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며 그는 나중에 신문에 글을 기고하며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저와 함께 있을 때 예수님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을 보고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나 그럴 겁니다."
믿는 사람은 말만 많으면 안됩니다. 그의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입에서 예수님 얘기가 안 나와도 행동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있었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물질을 서로 나누고,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사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사람들은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참 사랑의 의미를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내가 믿는 예수님을 알라!"고 담대히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다윗의 하나님을 아십시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아십시오.
좀더 알아야 합니다. 지식적으로 알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38편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보면 병이나 문제를 계기로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믿으면서 기적적으로 병이 치료되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병이 치료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계속 교회에 나옵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고 승리합니다.
자세히 보면 이것이 더 위대한 축복이고, 더 놀라운 축복입니다.
문제 해결의 축복보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라
9절 말씀은 계속 말합니다.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결국 이런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도 섬길 줄 알 것입니다.
사람은 섬김을 받을 때보다 섬길 때 더 큰 행복을 느끼도록 창조되었습니다.
BMW 차를 타고 호텔에 가면 "어서 옵쇼!" 하고 호텔 직원이 섬겨줍니다.
기분은 좋지만 그런 대접을 받고 "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아원에 가서 희생의 땀을 흘리고 난 다음에는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물질과 권세를 소유하는 것이 기쁨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어찌 섬김과 드림의 기쁨을 능가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과 기쁨은 소유하는 삶에 있지 않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에 있습니다.
그것은 알기에 다윗은 최선을 다해 자기 것을 성전 건축을 위해 드렸습니다.
본문에서 한 장 더 넘겨서 역대상 29장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더니..."(2절)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3절)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최선을 다해 드렸더니 사람들이 움직여서
역대상 29장 6절을 보면 다른 많은 지도자들도 드리는 일에 즐겁게 동참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자신을 기꺼이 비웁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의 호주머니를 비울 때
하나님은 더욱 큰 은혜와 축복으로 그의 삶에 채워주실 것입니다.
3. 삼가라!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는 삼갈지어다."
삼가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삼가라는 말일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사울형 인간이 되지 말고 다윗형 인간이 되라는 말입니다.
사울은 다윗이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니까 다윗을 시기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그처럼 타인의 행복을 막으려고 하다 보니까 자신의 행복이 막히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이 높아진다면 누가 잘 되어도 박수를 쳐 줄 줄 알아야 합니다.
그처럼 타인의 성공을 진정으로 기뻐하는 마음이 삼가는 마음인데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성공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은 저주하시고 다윗은 축복하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그 이름대로 맨날 '싸울'려고만 하지만,
다윗은 모든 사람을 '다 윗' 분으로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처럼 맨날 '싸울'려고만 하지 마시고, 다윗처럼 '다 윗' 분으로 섬기십시오.
그러므로 여기에서 "삼가라!"는 말은 결국 "겸손하라!"는 말입니다.
다 부족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누가 봐도 제일 신앙심이 깊은 것 같은데 그가 가장 겸손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한 가지로 신앙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은데 돈에는 너무 쉽게 넘어집니다.
어떤 분은 돈에는 참으로 초연한데 이성 앞에 가면 또 쉽사리 넘어집니다.
어떤 분은 이성 앞에서는 꿈적도 안 하는데 명예의 유혹에서는 또 넘어집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어느 것 한 가지만 가지고 신앙을 비교한다는 것이 정말 힘듭니다.
어떤 분은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사람들이 그 인격의 가치는 평가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매우 충성하는 것 같은데 물질 면에서는 아주 인색한 모습을 보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모든 것은 바쳐 헌신하는데 언어생활에서 항상 약점을 노출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정말 삼가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 성소의 전을 힘써 건축하라!
10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말씀일까요?
교회를 아름답게 세우고, 교우를 섬기는데 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성도의 보금자리이고, 성도의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화와 출세욕 때문에 교회를 버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교회를 버리기는 쉽지만 교회를 다시 찾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경험해 보신 분은 아실 것입니다. 휴전선을 긋기는 쉽지만 지우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생활이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보일지라도
"아이고, 세월이 약이겠지"하고 꾸준히 교회생활을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인이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향할 때
이전보다 더욱 더 타락의 길, 고통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냉장고에서 나온 음식이 더욱 쉽게 부패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우리의 영원한 보금자리로 생각하며 힘써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명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 4가지 권면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본문 7-8절 말씀을 보십시오.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삶의 터전이 견고해지고, 그 터전에서 행복이 주어지고,
대대로 후손에게도 복이 되어 그 삶의 터전이 행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삶을 보십시오. 순종하는 마음이 없이 행복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터전을 진정 행복하게 만들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다른 말을 할 것이 없습니다. 먼저 순종을 배우고 실천하십시오.
특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보십시오. 반드시 행복은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여자 집사님 자기의 가정 생활을 비관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빨리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너무 간절히 기도하니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환상 중에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 오고 싶은 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겠다. 네 소원을 들어주겠다.
그런데 네 소원을 들어주기 전에 몇 가지 내가 하는 말에 순종해보겠니?"
그 집사님이 "예!"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네가 죽으면 장례식을 해야 되는데 집안이 너무 지저분한 것 같구나!
사람들로부터 마지막 정리를 잘 하고 갔다는 말을 듣도록 집안청소 좀 할래!"
그래서 이 집사님이 며칠 동안 열심히 집안 청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주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떠날 때 자식이 맘에 걸리지? 그러면 우리 엄마가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고
느끼도록 며칠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사랑을 한번 표현해봐라."
그러자 그녀는 주님 말씀대로 며칠 동안 자식들을 감싸주고, 품어주고,
정성스럽게 요리를 만들어서 자식들에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자녀들에게 정성을 쏟았는데 며칠 후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갈 때가 가까이 왔다.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하자! 너 남편이 미웠지?
남편이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나도 안단다.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았을 거야.
그런데 남편이 장례식 하면서 '참 좋은 아내였는데.'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남편에게 말대답하지 말고, 사흘만이라도 최대한 친절하고 상냥하게 해봐라."
그 말씀을 듣고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 남편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며칠 후에 주님이 이 집사에게 와서 말합니다.
"이제 나와 함께 천국으로 가자! 그런데 가기 전에 네 집을 한번 돌아보려무나!"
그래서 돌아보니까 깨끗한 집에서 오랜만에 자녀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있고,
남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니까 이 여 집사가 천국으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후 처음으로 "자기 집이 정말 행복한 천국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주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이 행복한 모습이 어떻게 된 것이죠?"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네가 내 말에 순종했기 때문에 천국이 펼쳐진 것이란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서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보십시오.
항상 겸손한 순종을 통해서 아름다운 삶을 엮어 가는 기초석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
청량고등학교 교사 (등대교회 협동목사) 한 태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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